소설리스트

그 헌터네 빵집은 언제 오픈하나요-13화 (13/120)

13화

* * *

퀘스트를 받은 지 벌써 3주.

한 달이 거의 다 되어 가는 시점에 래희는 더는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킹킨의 알과 블랙카우의 우유를 판매하는 곳이 있는지 열심히 인터넷을 서치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어디서도 구할 수 없다는 검색 결과뿐.

“아니, 퀘스트를 시키려면 가능한 걸 시켜야지 이건 애초에 시도조차 불가능한 퀘스트잖아요!”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잠시 먼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이번에는 정말 자신이 결정한 게 아니라며 믿어 달라 말합니다.]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이번 퀘스트 내용은 시스템이 임의로 정한 것이니 원망의 대상이 잘못되었다고 호소합니다.]

래희는 성좌의 메시지 창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전국의 게이트 목록을 뒤져 봐도 킹킨과 블랙카우가 서식한다는 게이트는 찾아볼 수 없었다. 아마 둘 다 C급 몬스터라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게이트를 유지하지 않고 게이트 클리어 후 닫아 버린 게 분명했다.

래희는 한참을 뒹굴거리던 침대에서 일어나 가게로 이동했다.

“차라리, 재언이한테 빵을 뇌물로 바치고 좀 도와 달하고 말해 봐야지.”

명색이 3대 길드 소속 S급 헌터인데 재언이라면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몰랐다.

종이 가방에 종류별로 빵을 포장한 래희는 가게 문을 닫고 곧장 대던전 공략 대비 합동 훈련이 진행되고 있다는 곳으로 향했다. 오늘이 훈련이 끝나는 날이라고 했으니 앞에서 기다리면 될 듯싶었다.

래희가 게이트 근처에 도달하자 우글거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 새벽인데도 사람이 많은 걸 보니, 훈련이 방금 막 끝난 것 같았다.

게이트 근처 일반인 군중 사이에서 서성거리고 있자 백화 길드 쪽 임시 막사에서 나온 누군가가 래희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왔다.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왔음에도 자신을 알아보는 이가 있었다니…….

래희는 헌터 이슈 잡지에 재언과 스캔들 기사가 나지 않기 위해 얼굴을 꽁꽁 숨기며 찾아왔다. 윤재언은 옷깃만 스쳐도 스캔들 기사가 나니 자신이 조심해야만 했다.

“오! 래희야!”

검은 머리의 사람들 사이로 이질적인 순금발이 보였다. 래희는 반짝이는 금발을 보자마자 누군지 바로 알아보았다.

“안녕하세요, 길드장님.”

백화 길드의 길드장. 김유한이었다.

한국에서 유명한 1세대 S급 헌터답게 11년 전 처음 만났을 때와 전혀 차이 없는 그의 젊은 외모는 언제 봐도 놀라웠다.

래희는 괜한 사람들의 오해를 오히려 쉽게 피할 수 있겠다며 반색했다.

“오랜만이네. 어릴 때랑 똑같아서 한눈에 알아봤지.”

김유한은 새삼스럽다는 눈빛으로 래희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민간인의 출입을 막은 안전 펜스를 잠시 걷어 래희를 안쪽으로 들어오게 했다.

“재언이에게 볼일이 있어서 온 거니? 청해 길드 헌터들은 아직 다 안 나왔다고 들었으니 좀 더 기다려야 할 거야.”

평소 김유한이 누군가에게 친절하게 구는 일이 거의 없었던 터라 주변의 백화 길드 헌터들의 힐끗거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그중에는 멀리서 래희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세연도 있었다.

세연과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잠시 당황하는가 싶더니 이내 웃으며 눈인사를 해 보였다.

“얼마 전에 게이트에 휘말렸었다면서? 윤청현 그놈이 난리를 치며 당장 게이트에 구조대를 투입해야 한다고 이성을 잃는 건 오랜만이었는데. 다친 곳은 없니?”

“아… 네, 무릎 까진 게 전부였어요.”

래희의 괜찮다는 답변에도 김유한은 그녀를 빙빙 돌려가며 따로 다친 곳은 없는지 확인했다. 팔다리가 멀쩡하게 움직이는 걸 보니 정말 괜찮아 보였다.

‘애가 어릴 때부터 남한테 도움을 안 받으려 하니…….’

김유한은 걱정된다는 눈빛으로 래희를 내려다보다가 문득 래희의 손에 들린 종이 가방을 발견했다.

‘야미베어 베이커리’

빵집 이름이 적혀 있는 연분홍색의 귀여운 종이 가방이었다.

“이건 뭐니?”

게이트 사건 이후 회사를 그만두고 위험한 외곽 지역에 가게를 차린다며 계속 걱정해 대는 윤청현의 모습을 기억하는 그는 래희가 들고 있는 종이 가방에 흥미가 생겼다.

“아…….”

래희가 자신의 가방을 한번 보더니 김유한에게 대답했다.

“제가 운영하는 빵집의 빵이에요. 한번 드셔 보시겠어요?”

종류별로 하나씩만 빼도 괜찮겠지. 래희는 김유한에게 빵을 건네주었다.

“오…….”

김유한은 래희가 주는 빵들을 받아 들며 래희에게 물었다.

“이거 혹시, 윤청현은 먹어 봤니?”

래희가 아직이라고 대답하자 김유한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윤청현을 약 올릴 만한 방법이 떠올라 입가의 미소가 도무지 사라지질 않았다.

“…그래?”

김유한은 오랜만에 만났는데 래희에게 같이 사진을 찍어줄 수 있냐고 부탁했다.

다정해 보이는 투샷으로 찍은 사진을 만족스럽게 바라본 김유한은 배가 고팠는데 빵을 줘서 고맙다며, 래희의 앞에서 빵 하나를 집어 올려 포장을 벗긴 뒤 한입 베어 물었다.

‘이런 걸 만들려면 정성이 좀 들어가겠는데…….’

“흠?”

김유한은 놀란 표정으로 래희를 바라봤다. 그는 입 안에 들어 있는 음식을 씹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곧바로 꿀떡 삼키며 생각했다.

‘래희가 E급 각성자였던가?’

길드에 소속되려면 각성자여야 하니 그 조건은 충분히 충족된 듯했다. 무조건 붙잡아야 한다. 래희에게서 잭팟의 기운이 느껴졌다.

“래희야… 아저씨 길드에 들어오지 않을래?”

돈 좋아하는 김유한의 눈에는 래희가 화려하게 반짝이는 보석 더미로 보이기 시작했다.

* * *

쫓아오는 김유한을 거절한 뒤 그를 피해 청해 길드 임시 막사로 들어왔다.

아무래도 그의 시야에 계속 얼쩡거리고 있다간 거절도 못 하고 백화 길드에 끌려갈 게 분명했다.

다행히 막사 앞에 서 있던 공략팀 직원들은 래희가 어릴 적부터 그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고 들어올 수 있었다.

“어휴…….”

막사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한숨을 쉰 래희가 천천히 고개를 들자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류정우와 눈이 마주쳤다.

“래희 씨……?”

류정우는 게이트에서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얼굴을 제외하고 온몸이 흙투성이였다.

‘얼굴만 깨끗한 걸 보면 주인공 보정인가?’

그래도 꼴이 영 말이 아닌 류정우를 살펴보던 래희는 얼떨떨한 목소리로 류정우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주변을 둘러보자 막사 안에는 류정우를 제외한 다른 사람은 없었다. 아직 재언은 게이트 밖으로 나오지 않은 듯했다.

래희가 입구에 서서 어색하게 눈을 굴리며 서 있자 류정우가 래희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여기는 어떻게 왔어요?”

“…친구 만나러요.”

래희는 방금까지 전투하고 온 흔적이 역력한 사람 앞에서 팔자 좋게 친구를 만나러 왔다는 자신의 말이 부끄러워졌다.

아니, 틀린 말은 아닌데 상황에 어울리는 문장은 아니었다는 말이지. 남이 일하는 직장에 태연하게 놀러 왔다는 소리나 하고 있다니…….

래희는 잠시 류정우의 눈치를 보다 문득 그의 손에 들린 반짝이는 무언가를 바라봤다.

‘저건……?’

평소라면 그냥 눈길 한번 주고 스쳐 지나갔을 테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다.

‘저게 왜 여기에 있어?’

류정우의 손에 들린 건 바로 열쇠였다.

물론 열쇠라면 흔하디흔한 물건이었지만 래희의 눈앞에 있는 건 ‘보통’ 열쇠가 아니었다. 그건 바로 11년 전 래희가 매일같이 목에 걸고 다닌 열쇠와 같은 모양이었다.

단 한 번도 써 본 적은 없지만, 그녀의 스승이었던 체자레가 언젠가는 필요한 날이 올지도 모른다며 절대 잃어버리지 말라며 당부한 열쇠였었다.

그 말을 기억하며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지만, 지구에 귀환할 당시 목에 걸려 있지 않아 게이트에서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분홍색 다이아와 미세한 마법진이 새겨져 있는 열쇠가 이 세상에 하나 더 있을 리가 없어.’

지구로 귀환 당시에 잃어버린 물건이었지만 래희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래희가 멍하니 류정우의 손에 들린 열쇠를 바라보자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그녀의 손에 열쇠를 쥐여 주었다. 마치 구경하고 싶으면 실컷 구경해도 좋다는 듯한 태도였다.

약간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손위에 올려 두고 관찰해 보니 ‘그’ 열쇠가 맞아 보였다.

그때였다.

[??? 열쇠(S)]

- 주인을 잃어버린 열쇠이다. 적합한 주인을 찾게 된다면 ???을 열 수 있다.

“아…….”

역시, 이거 내가 잃어버린 그 열쇠가 맞는 것 같은데?

래희가 열쇠를 관찰하다 갑자기 탄식을 내뱉자 류정우가 놀란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역시 권래희는 뭔가 다른 건가? 자신이 보지 못한 걸 권래희는 발견한 걸지도 몰랐다.

“뭔가 문제가 있나요?”

래희는 잠시 망설이더니 입을 열었다.

“네……. 주인을 잃어버린 열쇠라는 설명이 있네요.”

류정우는 여전히 의문 섞인 표정으로 래희를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설명이 부족한 것 같았다.

“주인을 찾으면 무언갈 열 수 있다고 하는데…….”

그러나 열쇠는 래희의 손 위에서도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고 있었다. 만약 래희가 주인이 맞다면 그녀의 손안에 들어온 순간 특별한 반응을 보여야 하는 게 맞았다.

‘아니, 내가 주인이 아니었나?’

하지만 열쇠에 적힌 글자는 래희가 기억하는 것과 같았다.

래희는 손에 쥔 열쇠를 이리저리 굴렸다가 문득 글자가 적힌 부분을 쓸며 저도 모르게 이세계의 언어로 중얼거렸다.

귀환 후에 남 앞에서 단 한 번도 사용한 적 없는 언어였지만 열쇠에 눈이 팔린 래희는 눈앞의 류정우를 의식하지 못했다.

[시작에 있는 곳에는 끝이 존재한다.]

그때, 래희의 말이 끝나자마자 류정우의 손이 래희의 손목을 꽉 붙잡았다. 얼마나 강한 악력이었는지 래희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방금 뭐라고……?!”

류정우는 래희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정체 모를 언어에 놀라 래희의 손목을 꽉 쥐고는 그녀의 두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했다.

래희가 갑작스러운 고통에 인상을 쓰며 류정우를 올려다봤다. 그의 얼굴은 놀람과 혼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도대체 갑자기 왜 이러……!!”

저도 모르게 류정우에게 화를 내려던 찰나였다.

류정우에 의해 붙잡힌 손 위로 열쇠의 다이아에서 폭발하듯 빛이 뿜어져 나왔다. 순간적으로 눈이 너무 부신 래희는 갑작스러운 류정우의 행동에 따지려던 것도 잊고,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얼마 뒤, 빛이 사라지자 막사 안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흐트러짐 하나 없이 깨끗했다. 사람이 머물고 있었다는 흔적은 류정우가 벗어 둔 의자 위의 외투 정도.

래희와 류정우 두 사람의 모습은 막사 안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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