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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네 빵집은 언제 오픈하나요-12화 (12/120)

12화

류정우는 기대감 가득한 눈빛으로 곰순이빵을 바라봤다.

갓구운 고소한 빵 냄새가 류정우의 후각 자극을 한 번 더 일깨웠다.

래희는 그 모습에 기가 차서 말을 잃은 채로 류정우를 지켜봤다. 활자로 읽었을 때도, 덕질하던 때에도 류정우의 저런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꼭 사막 한가운데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듯 생기 있는 눈이었다.

‘와… 여태껏 내가 본 건 전부 동태 눈깔이었던 거네…….’

알고 보니 구오빠가 동태 눈깔 인간이었다니… 사람 눈에서 저렇게 빛이 반짝이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았다.

“몇 개 포장해 드리면 될까요?”

래희가 곰순이빵이 가득 담긴 쟁반을 들고나오자 류정우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단호하게 말했다.

“전부 다 주세요.”

류정우의 말에 순간 래희의 눈앞에 재언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개업 첫날, 재언이 소금빵 세 개로는 모자랐는지 가게에 진열된 소금빵을 모두 싹쓸이해, 앉은 자리에서 소금빵 30개를 한 번에 먹어 치웠다. 그것도 래희가 영업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가게에서 쫓아냈기 때문에 적게 먹은 것일지도 몰랐다.

‘S급들 위장은 남다른가?’

래희는 곰순이빵을 하나하나 포장하기 시작했다. 류정우의 손에서 카드를 받아 들어 계산을 끝내자 래희는 그에게 빵이 담긴 종이 가방을 건네주었다.

빵을 받아 든 류정우는 어쩐지 기분이 좋아 보였다.

* * *

안전지대 외곽 지역의 한 골목.

한 남자가 검은 모자를 눌러쓰며 분홍색 건물 밖으로 걸어 나왔다. 남자는 가게를 한번 뒤돌아본 뒤에 들고 있던 종이 가방을 들어 올렸다.

연분홍색의 종이 가방.

가방 속을 들여다본 남자는 종이 가방 안으로 손을 집어넣고선 곰 얼굴 모양의 동그란 빵 하나를 들어 올렸다.

빵을 응시하던 남자는 잠시 무언갈 생각하는 듯하더니 중얼거렸다.

“…섭섭하네.”

남자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씁쓸함이 담겨 있었다.

잠시 뒤, 어두운 건물 사이로 들어간 남자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골목길에서는 발걸음 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았다.

* * *

서울 안전 구역 12번가.

현재 서울의 가장 중심가라고 불리는 이곳은 안전으로 따지자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일지도 몰랐다.

빌딩 숲 사이로 유난히 눈에 띄는 청해 길드 건물의 꼭대기 층 길드장실에는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미남이 해를 등지고 앉아 있었다.

남자의 이름은 윤청현.

청해 길드의 길드장으로 20여 년 전, 대던전이 생길 무렵 각성한 1세대 헌터이다. 하지만 각성자였기 때문에 노화가 중단되어 여전히 각성한 나이였던 36세의 외모에 머물고 있었다.

그는 누가 봐도 20대 중반의 아들을 둔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지잉―

그때, 조용하기만 했던 윤청현의 휴대전화에 진동이 울렸다.

[김유한: 니네 애들은 아직 안 나왔다냐?]

백화 길드 길드장 김유한이 보낸 메시지였다.

“하…….”

답장할 가치도 없었다. 귀찮은 새X. 분명 별거 아닌 걸로 자랑하려고 지X 하는 거겠지.

탁.

윤청현은 휴대전화 화면을 끄고는 책상 위에 소리 나도록 화면을 뒤집어 덮어 버렸다.

지잉― 지잉― 지잉―

‘…지독한 새X’

윤청현은 계속해서 울리는 휴대전화에 한숨을 푹 쉬고는 휴대전화를 다시 들어올렸다.

[김유한: 부럽지?]

윤청현은 뜬금없는 소리에 눈썹을 꿈틀거렸다.

앞뒤 설명 없이 부럽냐는 단어 하나만 달랑 보내다니. 저 머리로 어떻게 길드장이 되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띵―!

윤청현이 꺼진 화면을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을 찰나에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알림음이 울려 퍼졌다.

[김유한: (사진) 네 딸이 나한테 줬다. 아직 너도 못 먹어 봤다는데 내가 먼저 먹게 되네?]

마지막 문장에 순간적으로 욱한 윤청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메시지 화면으로 들어가서 사진을 확대했다.

“빵……?”

여러 종류의 빵 사진과 함께 래희와 찍은 사진도 같이 전송되어있었다.

‘회사 그만두고 외곽 지역에 빵집을 차리겠다더니 정말로 차릴 줄이야…….’

처음 빵집을 차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재언을 통해 길드 건물 1층에 자리를 내어 주겠다는 의견을 래희에게 전달했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부담되니 괜찮다고 말해 오는 칼 같은 거절뿐.

띵―!

[김유한: 게이트 근처에서 마주쳤는데 어릴 때랑 달라진 게 없더라. 니가 밥도 제대로 안 먹이고 키웠냐? 애가 왜 이렇게 작아.]

[김유한: 아무튼, 래희가 주는 빵이 너무 맛있어서 쫓아가서 길드랑 계약하자니까 거절하더라. 어차피 너도 거절당할 테니 불만은 없다.]

김유한의 메시지에 심기가 불편해진 윤청현의 미간에 주름이 졌다.

‘이 새X가…….’

그는 김유한의 메시지 위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한 설정을 찾아내어 적용했다.

[‘김유한’이 수신 차단되었습니다.]

짜증 나는 X끼는 차라리 상대하지 않는 게 나았다.

‘이제야 좀 조용하네.’

윤청현은 잠잠해진 휴대전화를 책상 위에 올려두고는 고개를 의자 뒤로 젖히며 창밖을 바라봤다.

그때였다.

똑똑똑.

“들어오세요.”

방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천해훈이었다.

40대 중반의 외모와 거대한 덩치는 사무직에 전혀 어울려 보이지 않았지만 그런 외모와 다르게 그의 직무는 바로 비서실장이었다.

그는 방어계 A급 헌터지만 토벌 때 얻은 부상 때문에 게이트 공략팀을 나와 청해 길드 길드장 윤청현의 비서가 되었다.

하지만 그가 방 안으로 들어오고 난 뒤, 곧바로 그의 상사인 윤청현에게 보고해야 할 업무를 말하지 못한 채 얼마간 그의 눈치를 보며 뻘쭘하게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길드장 윤청현의 기분이 결코 좋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윤청현 길드장이 그에게 사적인 감정으로 화를 낸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강자에게서 느껴지는 위압감이라는 게 존재했다.

특히 오감이 발달한 각성자일수록 본능을 거부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큰 덩치와 달리 천해훈은 S급 헌터인 윤청현 앞에서 한없이 간 졸이며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속으로 한숨을 쉬며 어느 타이밍에 입을 열어야 할지 생각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보고 드려야 할 게 남아 있는데…….’

천해훈은 윤청현의 표정을 살피며 품에 들고 있던 보고서를 매만졌다.

웬만해서는 화를 잘 내지 않는 그가 이렇게 화가 난 경우는 보통 한 가지 이유에서였다. 윤청현의 오랜 친구이자 악연인 백화 길드의 길드장 김유한. 분명 그 남자가 제 상사의 속을 살살 긁어 댔을 게 분명했다.

원망의 화살을 다른 길드의 길드장에게 돌린 천해훈은 윤청현의 얼굴을 조용히 응시했다.

분명 자신도 나름 고등급이라 불리는 A급 각성자였지만, 조금 많이 늦은 나이에 각성한 탓인지 분명 상사인 윤청현보다 5살이나 어림에도 더 나이가 들어 보였다.

천해훈은 윤청현의 풍성하고 찰랑거리는 검은 머리에 시선을 두고는 괜히 자신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었다. 기분 탓이겠지만 만져지는 머리숱이 적은 듯했다.

윤청현은 누군가 방안으로 들어왔음에도 아무 말도 없자 의자를 뒤로 돌렸다. 그리고 뻘쭘하게 서 있는 비서실장 천해훈을 발견하고는 자세를 바로 한 뒤 입을 열었다.

“보고하게.”

그에 천해훈은 기회를 놓칠세라 재빠르게 입을 열었다.

“전에 말씀하신 권래희 양이 다녔다던 회사 퍼펙트힐 제약 사장을 찾았습니다. 처음부터 직원들의 임금과 퇴직금을 주지 않을 작정이었더군요. 아무래도 예측 불가능한 돌발성 게이트는 국가적 차원의 보상이 없다 보니 돈이 없다는 핑계로 회사를 정리하고 돈만 들고 멕시코로 나를 생각이었나 봅니다.”

천해훈은 보고서를 윤청현 앞에 내밀며 이어 말했다.

“게이트 발생 원인 조사 보고서입니다. 다른 돌발성 게이트들과 다르게 인위적인 에너지 흐름이 관측되었습니다.”

“인위적인?”

가만히 보고를 듣고 있던 윤청현이 고개를 들었다. 게이트 발생과 인위적이라는 표현이 생소했기 때문에 천해훈으로써는 예상한 반응이었다.

“네. 고정 게이트를 닫을 때 사용하는 에너지와 비슷했습니다. 한국대 던전 연구과 김시원 교수의 의견이니 신뢰성이 있다, 판단했습니다.”

천해훈의 말에 윤청현이 그가 들고 온 김시원 교수의 보고서를 손에 들어 올렸다. 보고서를 읽어 가는 그의 미간에는 골이 생기기 시작했다.

“교수의 말이 맞다면 모종의 방법으로 게이트를 인위적으로 열었다는 말인데… 퍼펙트힐 제약 회사 사장은 각성자가 아니라고 하지 않았나?”

윤청현은 고민에 빠진 듯했다.

“흠… 일단 잡아 와야 알 수 있겠군. 던전 관리청은 이 사실을 알고 있던가?”

“아직 공식적인 발표는 없지만, 내부적으로는 말이 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윤청현은 생각에 빠졌다. 이걸 잡아 오면 던전 관리청에 넘기는 게 의미가 있을까? 20년 동안 고인물이 되어 버린 공무원 단체는 믿을 게 되지 못했다.

예전과 달리 각성자가 권력을 잡고 있는 그들의 구조는 오로지 이권만을 추구하며 달려가는 단체가 되지 않았던가. 그들은 더는 국익을 추가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자신들의 권력만을 탐하였다.

“그놈 잡으면… 비밀리에 길드로 데려오게.”

“네, 알겠습니다.”

천해훈은 윤청현의 지시에도 별다른 의문을 품지 않고 받아들였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보기에도 그냥 던전 관리청에 넘기는 건 별로 좋은 선택이 아닌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인위적인 게이트 발생이라…….’

비각성자가 저지를 수 있는 스케일이 아니었다. 분명 그 뒤에 더 큰 단체가 숨어 있는 게 분명했다.

‘게이트를 발생시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뭐지? 게이트 브레이크가 터지면 각성자나 비각성자나 둘 다 끝장나는 건 마찬가지일 터인데.’

윤청현은 천해훈의 보고를 곱씹으며 그가 나가기 전 책상 위에 올려 둔 다른 서류를 집어서 들어 올렸다.

‘류정우.’

그곳에는 얼마 전 각성해 청해 길드 소속이 된 류정우에 대한 정보가 자세하게 기입되어 있었다.

‘특이 사항, 각성 초에 겪는 힘 조절에 대한 어려움 없이 스킬 활용에 대한 적응이 빠름.’

여기까지는 그냥저냥 각성자로서의 역량이 뛰어나다는 설명일 뿐이었다.

하지만 윤청현은 그 끝에 첨부된 마지막 문장이 이상하게도 거슬렸다.

‘극한, 또는 돌발 상황에 대한 적응이 빠름. 다만, 경력에 비해 지나칠 정도로 안정된 모습을 보임.’

* * *

[백화 길드 길드장님: 이게 내 번호니 길드와 계약할 생각이 든다면 언제든지 이 번호로 연락하렴.]

[이현 언니: 래희야 너 어디니 ㅠㅠ 전화도 안 받고 ㅠㅠㅠㅠㅠ]

[윤재언: 래희야, 오늘 수요일인데 가게 문이 닫혀 있네?]

래희는 휴대전화를 들어 자신에게 와 있던 메시지를 확인했다.

아, 임시 휴업한다고 안내를 붙여 놓는 걸 깜빡했다.

워낙 손님이 없으니 오늘 찾아오는 사람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자신의 잘못이었다.

친절히 답장을 보내려는 찰나, 래희는 자신의 휴대전화 위에 떠오른 경고창을 바라봤다.

[서비스 불가 지역입니다.]

“아…….”

서비스 불가 지역, 이곳은 던전 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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