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 * *
[‘야미베어 베이커리(Lv.1)’의 운영이 시작됩니다.]
[‘야미베어 베이커리’에 판매할 제품을 등록해 주세요! (0/3)]
디링―!
[튜토리얼 퀘스트: 빵집 사장이 되는 길(2)]
생애 첫 빵집을 오픈하셨다고요? 첫 손님을 받아 봅시다!
- 첫 손님에게 ‘곰순이 소금빵’ 판매 (0/1)
- 완료 보상: 스킬 ‘맛집이 되는 법 S’ 해금
- 부가 퀘스트: ‘곰순이 소금빵’ 호감도 +50 획득 시 추가 보상 격려금 200만 원.
베이커리 영업 시작을 알리는 알림 메시지와 함께 래희에게 두 번째 튜토리얼 퀘스트가 나타났다.
‘200만 원!’
래희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비비고서는 다시 한번 똑바로 퀘스트 창을 확인했다.
200만 원이라니.
고작 첫 손님에게 빵을 판매하면 200만 원을 준다고?
래희는 재각성 이후 처음으로 시스템이 이쁘게 보이기 시작했다.
래희는 어서 빨리 퀘스트를 진행하고픈 마음에 준비해 둔 소금빵을 몇 개 챙겨서 가게 안으로 이동했다.
[곰순이 소금빵 C]
- 맛 ★★★★
- 향 ★★★
- 기분이 좋아지는 맛
‘일단 판매를 하기 위해서 제품을 등록해 달라고 했으니 시스템부터 등록하자.’
[제품 ‘곰순이 소금빵 C’가 등록되었습니다.]
[판매 가격을 입력해 주세요.]
[‘야미베어 베이커리’ 등록된 제품 (1/3)]
▼
곰순이 소금빵 C 15,000원
(미등록)
(미등록)
“손님, 선결제 부탁드립니다.”
자본주의 미소를 장착한 래희는 아까 전의 쌀쌀맞은 태도는 어디다 버리고 왔는지 친절한 태도로 재언에게 말했다.
적응 안 된다는 표정으로 래희를 바라보던 재언은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래희가 서 있는 계산대까지 긴 다리로 성큼 걸어왔다.
“갑자기 손님 대우를 해 주시네요?”
“네, 손님. 곰순이 소금빵 세 개 4만 5천 원입니다.”
4만 5천 원. 전생의 지구였다면 소금빵 한 개에 1만 5천 원이라는 가격은 말도 안 된다며 욕을 먹고도 남을 가격이었다.
그러나 음식이 귀한 디스토피아 시대는 어떠한가?
특별한 재료가 들어가지 않은 식빵 한 덩이도 만 원이 훌쩍 넘는 시대. 고작 주먹만 한 소금빵 하나가 만 원을 한다고 해서 비싸다고 취급받지는 않는 세상이었다.
특히 그 구매자가 대한민국의 상위 0.1% 연봉을 가진 S급 헌터 윤재언이라면 껌값이나 마찬가지.
“계산 완료되었습니다!”
스킬 버프로 특별한 발효 과정 없이 재료만 넣고 몇 번 휘저으면 만들고자 하는 빵의 반죽이 완성되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반죽을 스킬로 몇 분 굽기만 하면 완성.
하지만 그 맛은 이 지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환상의 맛.
래희는 겉바속촉의 식감에 짠맛과 고소함이 공존하는 소금빵을 들고서 테이블에 앉은 재언을 지켜봤다.
재언은 신기한 음식을 보는 듯이 조그맣게 곰순이 얼굴이 그려진 소금빵을 구경하더니 한입에 소금빵 절반을 베어 물었다.
“음?”
“왜? 별로야? 맛없어?”
너무 짠 건가?
재언은 빵을 씹지도 않고 입 안 한가득 베어 문 채 놀란 듯 눈이 커진 채로 래희를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 감정 표현이 저렇게 크지 않은 재언의 이례적인 반응에, 래희는 맛없다고 느꼈을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맛없으면 먹지 마. 안 먹어도 돼. 내가 소금빵을 만들 때 소금을 너무 많이 넣었나 봐.”
래희가 그에게 물을 내밀어 주자 재언은 여전히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래희를 올려다봤다.
물도 받아 들지 않고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는 재언에 답답해진 래희가 소리치려던 찰나, 래희의 눈앞에 퀘스트 완료를 알리는 메시지 창이 나타났다.
디링―!
[축하합니다! 튜토리얼 퀘스트: 빵집 사장이 되는 길(1)을 성공적으로 수행 완료했습니다.]
[완료 보상으로 스킬 ‘맛집이 되는 법 (S)’이 해금됩니다.]
[축하합니다! ‘윤재언(S)’의 호감도 +50을 획득하였습니다!]
[추가 보상으로 200만 원이 지급됩니다.]
[‘야미베어 베이커리’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Lv.1→Lv.2)]
[등록 가능한 제품 수가 증가합니다. (3→4)]
디링―! 디링―! 디링―!
순식간에 밀려들어 오는 시스템 알림 메시지에 정신없어진 래희는 재언이 하는 말을 한 번에 알아듣지 못했다.
“…게.”
“응?”
시야 안에 꽉 차 있던 메시지를 치우자 나타난 재언의 눈빛에 래희는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온화하고 다정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그의 눈빛에는 무언가에 대한 열망과 집착만 남아 있었다.
래희는 이 표정이 익숙했다. 얼마 전 게이트에서 봤던 류정우가 래희의 빵을 먹을 때 눈빛이 딱 저랬다.
“내가 전부 사 갈게. 아니야, 그냥 이 가게를 살 테니 같이 청해 길드로 갈까?”
아, 아무래도 큰일 난 것 같다. 재언이 이렇게 반응을 할 정도라니.
앞으로 감당 못할 만큼 손님들이 밀려들어 오면 혼자서 어떡하지? 이러다가, 금방 부자가 되겠는데?
* * *
그러나 역시 인생은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베이커리를 오픈한 지도 벌써 일주일. 안전지대 외곽 지역에 위치한 래희네 빵집에는 재언을 제외하고는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다.
‘하, 윤재언. 맛있으면 어디 가서 소문이라도 낼 것이지 소리소문없이 가게에 들렀다가 게이트 토벌을 가 버려?’
그나마 남들에게 입소문이라도 한번 내줄 수 있는 유일한 손님인 재언이 게이트 토벌을 가는 바람에 마땅히 홍보할 방법이 없었다. 토벌이 금방 끝난다 해도 한동안 계속 바쁠 테지…….
“애초에 외곽 지역에 가게를 오픈한 게 잘못된 거겠지…….”
아무래도 사기당한 건가? 분명 계약 당시 부동산 중개인이 이 지역이 점점 떠오르는 상권이라고 말했던 것 같은데…….
물론 퀘스트 때문에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덜컥 계약부터 진행한 래희의 잘못이 클지도 몰랐다.
‘아니지. 애초에 내가 여기로 계약하게 된 이유가 뭔데?’
[성좌 ‘운명의 길잡이’가 당신의 눈치를 봅니다.]
“어휴.”
안전지대 외곽 지역. 이곳에는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원래 외곽 지역은 게이트가 수시로 열리는 비안전지대와 바로 맞닿아 있을 뿐 아니라, 운이 좋지 않으면 게이트 브레이크에 휩쓸리게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시식 행사라도 하는 건데…….’
…그러면 내가 직접 빵을 들고 돌아다니면서 홍보라도 해야 하나?
래희는 아무도 없는 가게 안 카운터에서 머리를 감싸 안으며 엎드렸다.
“아니, 그래도 나름 안전지대인데 어떻게 단 한 명도 지나다니지를 않는 거지?”
그때 창밖으로 누군가가 서성이는 모습이 보였다.
‘손님?’
래희는 벌떡 일어나 옷차림을 정돈했다.
백화 길드 마크가 그려진 유니폼을 입고 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헌터인 것 같았다. 긴 생머리를 높게 올려 묶고 권총 홀스터를 찬 여자는 래희보다도 키가 훨씬 커 보였다.
딸랑―
가게 문에 걸려 있는 종소리가 청아하게 들려왔다.
* * *
백화 길드의 던전 부산물 관리팀 6개월 차 신입인 세연은 야근을 마치고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집으로 퇴근을 하고 있었다.
각성 검사 나이가 훨씬 지난 나이에 C급 헌터로 각성해 3대 길드인 백화 길드에 가입할 수 있었지만 전투계 헌터임에도 그녀가 배정받은 팀은 던전 부산물 관리팀.
다른 토벌팀 헌터들이 휩쓸고 간 자리를 따라다니면서 게이트 부산물을 줍는 역할을 하는 팀이었다. 물론 이것도 위험했기 때문에 전투계 헌터가 필요한 거였겠지.
처음에는 자신이 배정받은 팀에 대한 불만족이 컸지만, 이제는 상관이 없었다.
몇 날 며칠 게이트 토벌팀을 쫓아다니며 부산물을 회수하는 것도 힘들어 죽을 것 같았다.
하지만 비교적 단순 업무인 자신과 비교해서 토벌팀들은 제대로 휴식도 취하지 못하고 몬스터를 잡는 모습을 본 뒤로는 오히려 자신의 부서에 만족하며 지낼 수 있게 되었다.
‘뭐, 어쨌든 돈만 많이 주면 되는 거 아닐까?’
C급 헌터의 스탯으로 사무실에서 야근하는 일은 몸에 큰 무리가 오지 않았다. 약간의 피곤함만 제외하고서는 평소와 별다른 바 없는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었다.
‘사회 초년생일 땐 몰랐지만 역시 직장 생활은 적당히 꿀 빠는 게 좋은 거야.’
어느 세월에 저도 모르게 사회인이 되어 버린 듯했다.
“오늘은 집 근처에 새로 생긴 빵집에 들러 볼까?”
세연은 항상 늦은 밤에 퇴근했기 때문에 굳게 문이 닫힌 빵집을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빵은 비싼 음식이었기 때문에 예전 같았으면 못 본 척 지나갔겠지만 이제 그녀는 정식 헌터가 된 지 벌써 6개월!
이제 좀만 더 있으면 안전지대 중심으로 이사 갈 수 있는 돈을 모을 수 있을 테고 그녀의 벌이에서 빵 하나 사 먹는 건 그렇게 크게 부담되지 않았다.
‘야미베어 베이커리’
분홍색의 귀여운 인테리어 앞에서 잠시 놀라 머뭇거리던 세연은 가게 문손잡이를 잡았다.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고소한 빵 굽는 냄새가 흘러나왔다.
세연은 저도 모르게 홀린 듯이 빵집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곳곳에 배치된 귀여운 곰 인형과 반짝이는 별이 달린 모빌들. 그녀와 눈이 마주친 빵집 사장님과 어울리는 인테리어였다.
“어서 오세요! 야미베어 베이커리입니다!”
“안녕하세요.”
세연은 문 옆에 배치된 쟁반과 집게를 양손에 들고는 빵이 진열된 곳으로 다가갔다.
‘뭘 골라야 하는 거지?’
우선 제일 앞쪽, 가장 눈에 띄는 빵 하나를 집어서 쟁반에 담았다. 곰 얼굴 모양으로 노릇하게 잘 구워진 빵의 귀여운 모양새에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곰순이빵 18,000원.
“아…….”
역시 가격이… 아니지, 이제 나 헌터잖아.
지난 27년을 가난하게 살아와서인지 벌이가 많아졌어도 여전히 망설여졌다.
“손님, 시식 한번 해 보시겠어요? 오픈한 지 얼마 안 되어서 방문하신 손님들께 시식 행사를 해 보려 하거든요.”
진열대 앞에서 망설이는 세연의 옆으로 빵집 사장님이 다가왔다. 친절한 얼굴로 미소 짓고 있는 사장님은 앞에 있는 빵을 집어 올려 한입 크기로 먹기 좋게 잘라 세연에게 건넸다.
“이건 방금 손님이 고르신 곰순이빵이랍니다. 한번 드셔 보시겠어요?”
세연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양손에 물건이 쥐어져 있어 입으로 받아 먹는다는 건 핑계였고, 그냥 무언가에 홀린 듯했다.
…텁.
빵조각을 입에 물었다.
촉촉함이 느껴지는 식감. 약간의 단맛이 고소함을 한층 더 풍미 있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꿀꺽.
“아…….”
정말 한 입 거리의 크기였기 때문에 더 음미하지도 못하고 빵 조각이 입속에서 사라졌다.
빵이란 게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었던가?
아무리 가난하다 하더라도 평생 빵 한 번 못 먹어 본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동안 먹은 빵들에서는 이런 향, 식감, 맛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설명하자면 비싼 가격을 주고 굳이 사 먹을 이유가 없는 맛이었다.
하지만 방금 자신이 먹은 빵은 달랐다.
“와… 정말 맛있네요. 빵이 원래 이렇게 고소한 음식이었나요? 식감도 푸석하지 않고 촉촉한 건 처음이에요.”
세연은 진열대의 빵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말했다. 사장님이 웃으며 건네주는 나머지 빵들을 맛본 세연은 속으로 열심히 계산했다.
곰순이빵 18,000원.
곰순이 소금빵 15,000원.
식빵 20,000원.
바게트 12,000원.
6만 5천 원.
‘음… 가격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
처음 맛보는 황홀한 맛이 27년간 쌓아 왔던 세연의 금전 감각을 전부 무너뜨렸다.
“사장님. 모든 메뉴당 빵 두 개씩 포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