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여운 스파이-2화 (2/21)

2장        여운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소리쳤다.  졸지에 졸렬하고 개똥 같고 세상에서 제일 나쁜 자식이 된 마루가 헤드폰을 끼고 모니터 속의 여운을 노려보며 코와 입과 턱을 격하게 실룩이기 시작한 그때였다. 헤드폰을 통해 생생하게 육성 지원 되는 쌍욕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 열 받아……. 열 받아 죽겠네, 진짜……. 으…… 열 받아! 이 ㄱ ㅅ ㄲ! ㄱ ㄱ ㅇ ㄴ! ㅅ ㅂ ㄴ!    여운의 입에 담지 못할 욕 세례에 마루는 뚜껑이 완전히 열려 부들부들 몸을 떨기 시작했다.    “더는 못 참아!”    마루가 소리를 지르며 책상 옆에 있던 금고의 전자 버튼을 눌러 잠금을 푼 후 금고 안에서 권총을 꺼냈다.    - 아니야. 이런 욕으로는 부족해……. 뭐가 있지? 더 끔찍하고 살벌한 욕…….    여운이 더욱 끔찍하고 살벌한 욕을 생각해 내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기 시작할 때 마루는 금고에서 총알을 꺼내 권총에 장전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헤드폰을 타고 여운의 어마어마한 욕이 터져 나왔다.    - 이 종간나 새끼! 불바다로 만들어 버리겠어!    여운이 두 주먹 불끈 쥐고 외치는 순간 마루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동작 그만 상태로 모니터를 쳐다봤다.    “종간나 새끼? 불바다?”    마루가 로봇처럼 여운이 한 욕을 중얼거릴 때 치를 떨며 어마무시한 욕을 퍼붓던 여운이 재빨리 입을 틀어막으며 바깥의 동태를 살피는 몸짓을 취했다.    - 미쳤나 봐……. 들었으면 어쩌지?    여운은 밖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두 손을 가슴에 대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제발 조심 좀 해!    여운이 목소리를 낮추자 마루는 재빨리 음량 볼륨을 높였다.    - 하마터면 끝장날 뻔했잖아. 휴우……. 어쨌거나 차마루 너란 놈은 아웃이야, 아웃!    여운이 치켜든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내리며 속삭였다.    - 자기가 뭘 안다고……. 네가 날 알아? 네가 날 아냐고.  “아냐고? 알 것 같다…….”    마루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네가 뭔데 날 판단해? 네가 뭔데, 넌 얼마나 잘났는데 맘대로 날 재단하냐고? 시골 촌놈 주제에 감자 몇 개 주워 먹었다고 사람을 단세포 취급을 해?  “이렇게 생긴 시골 촌놈 봤냐? 내가 어딜 봐서 시골 촌놈이야? 저 여자가 눈이 삐었나.”    긴장이 풀어지며 슬슬 다시 화가 나기 시작했다.    - 허우대만 멀쩡하면 뭐 해? 소갈머리가 못돼 처먹었는데.  “뭐? 소갈머리?”  - 자식이 인물이 아깝다.  “넌 아까울 인물도 없거든!”    마루가 뜨거운 분노의 입김을 토해 내며 모니터를 부숴 버릴 듯 노려봤다.    “그래? 한판 붙어? 실력을 보여 줘? 이 자식이 내가 누군 줄 알고……. 잡아다 그냥 확 5단 분리를 해 버릴까 보다!”    여운이 마치 무술을 하는 듯한 몸짓을 했다.    ‘종간나 새끼…… 불바다…… 실력을 보여 줘? 내가 누군 줄 알고? 5단 분리? 이 정도로 무지막지 살벌하다는 건…….’    마루의 의심이 점점 더 깊어지기 시작했다.    - 차마루! 조심해라. 계속 까불다간 한 방에 훅 가는 수가 있다.    여운이 이를 갈며 낮게 뇌까렸고, 마루의 눈동자에는 의심과 분노의 불꽃이 뒤섞여 타오르고 있었다.  그때였다. 여운의 행동이 갑자기 수상해지기 시작했다.  뭔가 굉장히 조심하는 듯한 걸음걸이로 문으로 온 여운이 방문에 귀를 대고 동태를 살피더니 방문을 걸어 잠갔다. 또 창문이 꼭 닫혔는지도 확인했다. 그런 다음 구석으로 가서 벽을 보고 쪼그리고 앉았다. 여운은 다시 한 번 방문 쪽을 쳐다보며 분위기를 살피더니 앞섶 가슴속으로 손을 집어넣고 꼬무락거리다가 무엇인가를 꺼냈다.  마루는 재빨리 컴퓨터를 조작해 감시 카메라의 줌 기능을 활용해 여운의 모습을 확대시켰다. 동작으로 봐서 틀림없이 가슴에서 뭔가를 꺼냈는데 무엇을 꺼냈는지 확인할 수가 없었다. 카메라의 각도를 조정했지만 마치 카메라의 위치와 카메라의 기능을 훤하게 파악하고 있는 듯 여운이 완벽하게 몸을 숨겨 확인 불가능이었다.  여운은 꺼낸 것을 살핀 다음 재빨리 다시 가슴속에 넣은 후 고개를 돌려 방 안을 면밀하게 살폈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다시 방문으로 가서 방문에 귀를 대고 바깥 동태를 살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안심한 듯 돌아서다가 갑자기 감시 카메라를 정확하게 뚫어져라 쳐다봤다. 바로 거기에 카메라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매우 정확하게 뚫어져라 쳐다봤다.  모니터를 통해 마루와 여운의 눈이 정확하게 맞물렸고, 마루는 유령을 만난 듯 온몸이 싸늘하게 굳는 것을 느끼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감시 카메라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여운이 카메라 앞으로 다가오더니 카메라를 찌를 듯이 노려보다가 천천히 재킷을 벗어 카메라를 가려 버렸다.  틀림없었다. 더는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  마루는 재빨리 헤드폰을 벗고 메인 모니터 앞에 있는 컴퓨터 앞으로 자리를 옮겨 마우스를 조작해 국수방이라는 사이트에 접속해 아이디와 비밀 번호를 입력한 후 비밀 대화방 창을 열었다.    제5그린벨트 [국수방.]    5초 후.    국수방 [용건?]  제5그린벨트 [5그린벨트 멧돼지 출몰.]  국수방 [출몰 시간?]  제5그린벨트 [09시.]  국수방 [대기.]    30초 후.    국수방 [수컷?]  제5그린벨트 [암컷.]  국수방 [농작물 피해 규모는?]  제5그린벨트 [현재는 없음.]  국수방 [사냥꾼 접촉 여부?]  제5그린벨트 [없음.]  국수방 [대기.]    20초 후.    국수방 [사냥꾼 접촉, 농작물 피해 징후 포착 후 보고.]  제5그린벨트 [5그린벨트 안에 있음. 내일 5그린벨트 밖으로 방생할 예정.]  국수방 [대기.]    10초 후.    국수방 [방생 불가.]    방생 불가라는 글자가 깜빡이자 마루의 낯이 살짝 찌푸려졌다.    국수방 [멧돼지 발육 상태 면밀하게 주시할 것.]  제5그린벨트 [이상.]  국수방 [이상.]    비밀 채팅창을 닫은 마루는 냉정을 되찾은 얼굴로 감시용 모니터 앞으로 걸어와 여운의 방을 노려봤다. 하지만 카메라가 재킷으로 가려진 탓에 모니터 화면은 검은색인 채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마루는 벗어 두었던 헤드폰을 귀에 대다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낯을 찌푸렸다.    - 드르렁…… 커억…… 그르렁…… 크억…….    헤드폰을 통해 이건 도저히 사람의 소리라고 할 수 없는, 짐승의 그것과도 같은 격렬한 코골이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사람이 아니라 멧돼지 같았다. 아니, 폭격기였다. 인간 폭격기.    “뭐 이런 여자가 다 있어?”    정말 엄청난 멧돼지가 나타났다고 생각하며 시커먼 모니터를 노려보고 있던 마루는 퍼뜩 생각난 듯 심장에 손을 대 보았다.  정상이었다.    *    개 짖는 소리에 눈을 번쩍 뜬 여운은 잠깐 동안 자신이 누워 있는 곳이 어딘지 몰라 어리둥절한 얼굴로 방 안을 살피다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어제 있었던 모든 일들이 순식간에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바깥에서 개가 계속 짖고 있었고 여운은 시끄럽게 짖어 대는 개가 메주라는 것도 금방 깨달았다.    “몇 시지?”    여운은 헝클어진 머리를 손으로 대충 가다듬으며 일어나서 옷걸이에 걸어 두었던 재킷을 끌러 걸쳐 입었다. 방문을 열다 도로 닫은 여운은 재빨리 손으로 눈곱을 떼고 머리도 다시 한 번 다듬은 후 방문을 열고 조심스레 마루로 나갔다. 아무도 없었다.  인사를 할까 말까 고민하던 여운은 어젯밤 다투면서 낯을 붉혔으니 그냥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것이 서로의 신상에 좋겠다고 생각했다.    “인사하다가 또 싸우느니 그냥 가자.”    툇마루로 나가는 미닫이문을 열고 한 걸음 밖으로 나가던 여운이 그대로 동작을 멈췄다.  툇마루에 밥상을 차려 놓고 마루가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 좋은…… 아침이네요.”    여운이 무안해하며 인사하자 마루가 무미건조한 눈길로 여운을 쳐다봤다.    “좋은 점심입니다.”  “점심요?”  “12시 10분입니다.”  “12시가 넘었다고요? 시간이 벌써 그렇게나 됐네요…….”  “잠은 잘 잤습니까?”  “자다니요. 밤새도록 한숨도 못 잤어요. 방도 낯설고…… 기분도 안 좋고…….”  “방도 낯설고 기분도 안 좋아서 한숨도 못 잤다고요? 그럼 그 방에서 터져 나오던 폭격기 소리는 뭡니까?”  “폭격기 소리라니요? 무슨 폭격기요?”  “드르렁 쾅쾅 그르렁 컥컥!”    마루가 코 고는 소리를 그대로 재연하자 여운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건…… 비염이 있어서……. 코가 막혀서…….”  “허!”    말도 안 되는 변명에 마루가 콧방귀를 뀌자 여운의 얼굴이 더욱 새빨개졌다.    “어쨌거나 하룻밤 묵게 해 줘서 고마워요. 그만 갈게요.”    여운이 툇마루 아래로 내려가 신발을 신으려는데 아무리 찾아도 신발 한 짝이 보이지 않았다.    “신발 한 짝이…… 안 보이네요?”  “어떤 신발인데요?”  “파란색 운동화……. 이거요.”    여운이 신발 한 짝을 들어 보였다.    “아! 그거라면 혹시…… 저겁니까?”    마루가 마당 끝 메주를 가리켰다.  여운이 마루의 손가락을 따라 메주를 쳐다보자 메주가 여운의 신발 한 짝을 두 발로 꼭 틀어쥐고 이빨로 잘근잘근 씹어 대고 있었다.    “야! 내 신발 내놔!”    여운이 운동화 한 짝을 발에 꿰고 두리번거리다가 옆에 있는 까만 장화 한 짝을 신은 후 메주에게 달려갔다.    “내 신발 내놔!”    메주에게 소리치던 여운은 메주의 이빨에 군데군데 터지고 씹힌 운동화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에이 씨, 이런 개시키! 내 신발 다 씹어 놨잖아! 내놔! 내 신발 내놔!”    여운은 신발을 뺏으려 했지만 메주가 이빨을 드러내고 맹렬하게 짖어 대는 통에 오히려 깜짝 놀라 물러서다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지고 말았다.    “내 신발이라고!”  “컹컹! 컹컹컹!”    메주는 여운을 향해 맹렬하게 짖다가 신발을 물고 개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야! 신발을 줘야 나갈 것 아니야!”    벌떡 일어나 개집으로 다가가며 소리치던 여운은 메주가 대가리를 내밀고 사납게 짖자 깜짝 놀라 물러서고 말았다.    “아, 진짜…….”    여운이 다가서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어서 난감한 얼굴로 도움을 청하듯 마루를 쳐다보자 마루는 툇마루에 앉아 태평하게 밥을 먹고 있었다.    “저기요, 신발 좀 꺼내 주면 안 될까요?”  “그건 불가능합니다.”  “불가능하다뇨?”  “메주 저 녀석, 워낙 사납고 소유욕이 강해서 한번 문 건 절대 놓지 않아요. 그 신발도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씹다가 재미없어지면 버릴 거예요.”  “아무리 그래도 주인이잖아요. 주인도 못 알아봐요?”  “마음에 드는 게 있을 땐 주인도 못 알아봅니다.”  “주인도 못 알아보는 개를 왜 키우는 거예요?”  “대체로는 주인을 알아보니까요.”    마루의 황당한 대답에 여운은 진짜 이놈의 마을과 이놈의 집과 이놈의 메주까지 죄 재수 옴 붙었다고 생각하며 툇마루로 돌아왔다.

“그럼 장화 좀 빌려 주세요.”  “장화 신고 서울 가게요?”  “아뇨. 창고 앞에 내 짐 부려 놓은 곳에 다른 신발 있어요.”    여운이 한쪽에는 운동화, 한쪽에는 장화, 짝짝이로 신고 가려는데 마루가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밥 먹어요.”    마루에 말에 여운이 놀란 눈으로 마루를 쳐다봤다.    “뭐라구요?”  “밥 먹으라고요.”    마루가 여전히 무뚝뚝한 얼굴로 밥상을 가리켰다.  여운은 이 남자가 웬일로, 아니 무슨 수작으로 밥을 먹으라고 하는 것인지 의심스러운 눈길로 마루를 쳐다보다가 그만 침을 꼴깍 삼키고 말았다. 화려한 음식 냄새가 후각을 사정없이 자극했기 때문이다.    “배고프지 않아요?”  “뭐…… 별로…….”    별로라 하면서도 여운은 침을 또 한 바가지나 삼켰다.    “어제 감자 몇 개 먹었다고 도둑놈 취급에 상식도 없는 사람 취급 하더니…… 밥을 먹으라고요?”    여운이 밥상에 차려진 음식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물었다.    “어젠 미안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집에 들인 적도 없고 더구나 여자라서…… 좀 불편했어요. 조용히 혼자 살고 싶어서 시골로 이사 왔는데 갑자기 그쪽이 나타나고 시끄러워지니까 예민해졌어요. 정식으로 사과할게요.”  “뭐…… 나도 좀 무례하긴 했죠. 허락도 안 받고 감자도 먹고……, 재워 달라고 떼쓰고……. 나도 사과할게요.”  “서로 사과했으니까 퉁치는 의미로 식사해요.”  “정말…… 먹어요?”  “먹어요.”    마루의 말에 여운은 못 이긴 척 밥상 앞에 앉으며 수저를 들고 최대한 게걸스럽게 먹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밥을 먹기 시작했다.  캬! 으음! 정말 꿀맛이었다. 나물 두 가지에 된장찌개, 더덕구이, 계란 프라이가 전부였지만 씹는 것이 아까울 정도로 맛이 좋아 꿀떡꿀떡 넘어갔다.    “오늘…… 서울로 올라갈 겁니까?”  “가야죠. 가서 나한테 사기 친 놈 잡아야죠.”  “서울에 가족이 있습니까?”  “아뇨…….”    여운이 고개를 저었다.    “다른 곳에 사십니까?”  “네.”  “어디요?”  “멀리요. 아주 멀리…….”    여운이 대충 얼버무린 후 꿀맛 같은 밥 먹기에 열중하는데 마루는 그런 여운의 가슴께를 집요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가족이 멀리 산다……. 아주 멀리……. 어젯밤 저 가슴속에서 꺼내 본 것이 뭘까?’    입에 착착 달라붙는 된장찌개와 더덕구이를 입이 터지도록 욱여넣고 먹어 대던 여운은 순간 묘한 기운을 느끼며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들자 마루가 보였다. 그리고 마루의 눈이 보였다. 자신의 몸 어딘가를 집요하게 쳐다보고 있는 마루의 눈.  여운은 마루의 눈을 따라 고개를 내리다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마루의 눈이 집요하게 더듬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자신의 젖가슴이었기 때문이다.    “차마루 씨.”    여운이 마루를 향해 젓가락을 치켜들며 이름을 불렀지만 마루의 여운 젖가슴 더듬기는 멈출 줄을 몰랐다.    “차마루 씨!”    여운이 왼팔로 가슴을 감싸며 빽 소리를 질렀을 때야 마루가 놀란 얼굴로 여운을 쳐다봤다.    “설마…… 밥이 아니라 다른 게 먹고 싶은 건 아니겠죠?”  “무, 무슨…….”  “내 가슴은 왜 뜯어 먹을 것처럼 쳐다보는 거예요?”    여운이 살쾡이처럼 쏘아붙였다.    “아닙니다. 내가 언제 가슴을……. 뜯어 먹다니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마루가 당황해서 더듬거리자 여운의 눈빛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어제부터 수상했어요.”  “수상하다니요?”  “어제도 날 덮치려고 했잖아요!”  “덮치다니, 내가 언제요! 나도 남자고, 나도 눈 있습니다! 아무나 덮치지 않습니다!”    마루가 정색을 하고 버럭 소리쳤다.    “흥!”  “나도 흥입니다!”    결국 말싸움을 한 여운과 마루는 다시 전투적으로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밥을 먹다 보니 슬슬 화가 났다.    ‘나도 남자고, 나도 눈 있습니다? 아무나 덮치지 않습니다?’    여운이 숟가락을 내려놓고 찢을 듯이 마루를 노려봤다.    “무슨 뜻이에요?”  “뭐가 말입니까?”  “‘나도 남자고, 나도 눈 있습니다’라고 했던 말 말이에요. 그 말은 나란 여자는 눈을 씻고 봐도 매력이라곤 코딱지만큼도 없다는 말이에요?”  “밥 먹는데 코딱지라니 더럽게…….”  “나란 여자는 매력이 없다, 그 말이냐고요!”    여운이 몰아붙였다.  몰아붙여 대니 대답은 해야겠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앞에서 이미 강력하게 매력이 없다는 쪽의 발언을 했기에 물릴 수는 없고 어쩌겠는가.    “내 취향은 아니란 뜻입니다.”    취향과 매력은 다른 말이긴 했지만 같은 말이기도 했다. 취향에 맞지 않으니 매력이 없다는 말도 되는 거니까.    “차마루 씨 취향의 여잔 어떤 여잔데요?”    여운이 슬슬 약이 오르는 것을 느끼며 물었다.    “키 크고 비쩍 마른 여자 말고 정반대로 아담하고 통통한 여자 취향입니다.”    마루가 대답했다. 그런데 말해 놓고 보니 마루 자신도 웃겼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아담하고 통통한 여자가 취향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키 크고 비쩍 마른 여자가 취향인 적도 없었지만.    “키 크고 비쩍 마른…… 나란 여잔 말고 정반대로 아담하고 통통한 여자.”  “그렇죠.”  “허! 아담하고 통통한 여자 잘 찾아보세요.”    약 오른 여운이 비아냥거리자 마루가 입술을 실룩였다.    “허! 잘 찾아볼 테니까 내 걱정은 말고 착각도 하지 말고 흑심도 품지 말아요.”  “착각? 흑심? 허! 걱정 꽉 붙들어 매세요. 나 역시 광발, 턱발은 절대 사절이니까.”    여운이 너야말로 김칫국 마시고 착각하지 말라는 듯 받아쳤다.    “광발, 턱발?”  “광대 발달, 턱 발달. 각지고 용맹한 얼굴 질색이거든요. 내 취향은 새초롬한 꽃미남이거든요.”    여운이 양껏 빈정거리자 마루의 입가에 비웃음이 걸렸다.    “부디 새초롬한 꽃미남도 그쪽이 취향이어야 할 텐데 말입니다.”    이번엔 마루가 양껏 빈정거렸고 여운과 마루는 서로 약이 올라 눈싸움을 시작했다.  절대 깜빡이지 않고 더욱 길고 못된 눈으로 노려보기를 하고 있는데 마루의 한쪽 눈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눈에 너무 힘을 많이 준 탓인지 몇 초 지나지도 않았는데 눈동자가 따끔거리며 피곤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여운은 꿈쩍도 하지 않고 눈동자가 튀어나올 듯 더욱 부릅떴다.    ‘독한 것! 절대 질 수 없어.’  ‘흥. 항복하시지.’  ‘웃기지 마!’    급기야 마루는 눈에 핏줄이 엉키며 벌겋게 충혈되면서 얼굴까지 실룩거리기 시작했다.    ‘으윽……. 내 눈알…….’  ‘항복하라고!’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던 여운의 입가에 승리의 미소가 걸리던 그때 마루는 바늘에 찔리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눈을 감고 말았다.    주먹을 불끈 쥐고 승리를 자축한 여운은 의기양양하게 수저를 내려놓고 일어났다.    “밥값 낼까요? 후불로?”  “됐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여운은 일부러 약 올리듯 상냥하게 인사하고 한 발엔 운동화, 한 발엔 장화를 신었다.    “신발 찾으면 장화 바로 반납할게요.”    짝짝이 신발을 신고 툇마루에서 내려서던 여운이 생각난 듯 마루를 쳐다봤다.    “혹시…… 마당이나 이 근처에서 휴대전화 떨어진 거 못 봤어요?”  “못 봤습니다.”  “창고 앞에서 떨어뜨렸나…….”    마당을 지나 대문으로 향하던 여운은 개집 안에서 운동화를 잘근잘근 씹고 있는 메주를 노려봤다.    “저 개시키가 내 신발을 아주 작살을 냈네.”    여운이 짜증 난 얼굴로 메주를 노려보다가 대문을 열고 나가 버렸다.  여운이 나간 후 메주의 개집으로 다가온 마루가 신나게 여운의 신발을 물어뜯고 있는 메주를 흐뭇한 얼굴로 쓰다듬었다.    “잘했어. 남김없이 알뜰하게 물어뜯어.”    메주를 만져 주다가 저만치 담벼락 너머로 창고로 걸어가고 있는 여운이 보이자 마루의 얼굴에 더욱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메주야, 잠시 후에 한바탕 난리가 날 거니까 짖을 준비 해.”    여운의 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자 마루는 메주 앞에 몸을 낮추고 앉아 다시 메주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비명 소리가 울리면 짖는 거야. 알았지?”    예뻐 죽겠다는 듯이 메주를 쓰다듬던 마루는 메주가 씹고 있는 것이 신발이 아니라 휴대전화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이 휴대전화…….”    마루는 메주가 할짝할짝 핥고 있는 것이 여운이 떨어뜨린 휴대전화라는 것을 즉시 알아차렸다.    “잘했어. 정말 영특해!”    마루가 메주를 칭찬한 후 휴대전화를 집으려는데 메주가 손가락도 까딱하지 말라는 듯 갑자기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대기 시작했다.    “이 자식이 주인도 못 알아보고.”    마루는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메주를 쳐다보다가 주머니에서 개 껌을 꺼내 메주를 유혹하기 시작했다.    “씹고 싶지? 말해. 씹고 싶지?”    메주는 눈앞에서 뱅글뱅글 돌며 춤을 추는 개 껌을 보자마자 코를 벌렁거리며 즉각 반응했다.    “주세요, 해 봐. 주세요, 해야지.”    마루는 메주를 상대로 쓸데없는 짓을 하며 놀리다가 메주의 입에 개 껌을 물려 주는 동시에 다른 손으로 재빨리 휴대전화를 잡아챘다.  휴대전화를 손에 넣은 마루는 재빨리 전원을 켰지만 배터리가 다 됐는지 전원이 켜지지 않았다.    “충전이 필요하군.”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은 마루가 갑자기 손가락으로 하나부터 열까지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메주야, 짖을 준비 해라.”    일곱, 여덟, 아홉, 열.  그때였다. 여운이 간 창고 쪽에서 격렬한 고함 소리, 아니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메주, 짖어.”    마루가 메주에게 명령했지만 메주는 침을 질질 흘리며 개 껌만을 씹어 댈 뿐 반응이 없었다.    “아, 진짜 똥개 시키.”    마루가 뭐 저런 똥개가 다 있냐는 얼굴로 메주를 노려보는데 또다시 돼지 멱따는 듯한 여운의 격한 비명 소리와 고함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루는 손가락으로 하나부터 열까지 다시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열.    “또 무슨 일입니까!”    마루가 오로지 입으로만 놀라는 척하며 소리쳐 물었다.    “슬슬 출동할까?”    마루가 익살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느릿느릿 대문으로 향했다.    *    여운은 귀신이 곡할 노릇에 아연실색한 얼굴로 창고 앞에 서 있었다.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어젯밤까지 멀쩡하게 창고 앞에 쌓여 있던 이삿짐들이 하룻밤 사이에 감쪽같이 아주 깨끗하게 사라지고 없었다.  이럴 수는 없었다.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이럴 수는 없었다.  기획 부동산 놈들한테 전 재산 1억 천백만 원을 털린 것도 기가 막혀 딱 돌아가실 일이었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이삿짐마저 깡그리 다 도둑맞은 것이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세상에 박복해도 어떻게 이렇게까지 지지리 박복할 수 있을까.  여운이 넋이 나가다 못해 공중 부양 할 듯 붕 뜬 얼굴로 창고 앞에 서 있는데 마루가 뛰어왔다.    “무슨 일입니까?”  “없어졌어요.”  “뭐가요?”    마루가 절대 모르는 일이라는 듯한 얼굴로 물었다.    “내 짐요. 어제 싣고 왔던 이삿짐요. 여기 쌓아 뒀던 내 짐들이 사라졌어요. 도둑맞았다구요.”    여운이 짐이 쌓여 있던 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삿짐이 사라져요? 도둑맞았다고요?”  “분명히 여기 쌓아 뒀어요. 내가 산 집인 줄 알았던 집은 다른 사람 집이고, 이 창고가 내 집이라고 해서…… 이삿짐센터 아저씨들이 짐을 맡기려면 돈을 더 내라 하는데 돈이 없어서 사정사정하다가 씨도 안 먹혀서 여기 내려놨단 말이에요. 어젯밤에 분명히 여기 있었단 말이에요. 내가 담요를 뒤집어쓰고 도깨비 때문에……. 내 냉장고……. 세탁기……. 내 장롱…….”    여운이 횡설수설 정신 나간 사람처럼 떠들었다.    “창고 안에 있는 것 아닙니까?”    마루가 창고 안을 들여다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당연히 없을 수밖에 없었다. 새벽 3시. 소리 소문 없이 나타난 다섯 명의 장정들이 30분 만에 여운의 짐을 싣고 홀연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내 책상……. 내 화장대……. 내 전자레인지……. 내 가스레인지……. 꿈에 그리던 내 집을 산 기념으로 보름 밤낮을 검색해서 최저가로 10원 단위까지 따져서 정말 최에에에저가로 산 건데…….”    다리에 힘이 풀려 풀썩 주저앉은 여운의 목소리가 울먹울먹 흔들리기 시작했다.    “완전 새건데……. 한번 써 보지도 못한 건데……. 내 생애 처음으로 산 양문 냉장곤데……. 내 이불……. 내 침대……. 내 서랍장……. 내 빤쓰……. 내 브라자……. 이사 와서 개시하려고 푹푹 삶아 빨아서 다림질까지 해 뒀는데…….”    다른 것도 아니고 여운이 빤스와 브라자 타령까지 해 대자 마루가 뜨악한 얼굴로 쳐다봤다. 마루가 쳐다보든 말든 도둑맞은 살림들이 아까워서 여운의 가슴은 무너지고 있었다.    “내 책!”    여운이 벌떡 일어났다.    “점심까지 굶어 가며 사 모은 책인데……. 찾아야 돼요. 다른 건 못 찾아도 내 책은 꼭 찾아야 해요. 빤스도 찾아야 하고 브라자도……. 책은 꼭 찾아야 해요.”    여운이 발을 동동 구르며 길가로 뛰어나가자 마루가 재빨리 쫓아가서 여운을 붙잡았다.    “어디 가요?”  “도둑 잡아야죠.”  “도둑이 누군 줄 알고 잡아요?”  “혹시…… 이장님 아닐까요? 어제 내가 허리 꺾었다고 열 받아서 일부러 어디 숨겨 놓은 것 아닐까요?”  “이장님이 혼자 무슨 수로 혼자 그 많은 짐을 숨겼겠습니까? 사람 그렇게 막 의심하는 거 아니에요.”  “그럼 누구지……. 하여튼 도둑을 잡아야 해요. 다른 건 몰라도 꼭 찾을 게 있어요.”    여운이 마루의 손을 털어 내려는데 마루가 놓아주지 않았다.    “일단 진정하고 차근차근 생각해 봅시다.”  “뭘 차근차근 생각해요? 이삿짐을 도둑맞았고, 난 도둑을 잡아야 해요. 아! 경찰! 신고해야겠어요.”    주머니를 뒤적거리던 여운이 낯을 찌푸렸다.    “휴대전화……. 휴대전화부터 찾아야겠다.”    여운이 다시 창고 쪽으로 뛰어 들어가 잡초 사이를 뒤지기 시작했다.    “여기 떨어뜨린 거 확실해요?”  “여기밖에 없어요. 어젯밤에 여기서 형택이하고 통화했거든요.”  “형택이 누굽니까?”    마루가 물었지만 여운의 귀에는 들리지도 않았다.  마루는 여운을 도와 같이 휴대전화를 찾는 척했지만 휴대전화가 잡초 사이에 있을 리 없었다. 여운의 휴대전화는 마루의 주머니 속에 고이 잠들어 있었으니까 말이다.  샅샅이 뒤졌지만 휴대전화가 끝내 나타나지 않자 여운은 기가 팍 꺾인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서 제일 가까운 경찰서 어디 있어요?”  “읍내에 나가야 해요. 읍내에 파출소 있어요.”  “전화번호 알아요?”  “이장님이 아실 겁니다.”  “결국 이장님한테 가야겠네요.”    여운이 또다시 꺼질 듯 한숨을 내쉬고 길가로 나갔다.  길에 서서 망설이던 여운이 힐끗 마루를 쳐다봤다.    “저기요……, 안 바쁘면 같이 좀 가 주실래요, 이장님 댁에?”    여운이 살짝궁 애교스러운 얼굴로 부탁했다. 하지만 씨도 먹히지 않았다.    “바쁩니다.”    마루가 단칼에 거절했다.    “그러지 말고 진짜, 정말, 겁나 바쁜 거 아니면 같이 좀 가 주세요.”    여운이 이번엔 애교에 비음까지 섞어 부탁했다.    “진짜 바쁩니다. 겁나 바빠요.”    마루가 또다시 딱 잘라 거절했다.    “그럼 겁나 바빠도 같이 가 주세요. 혼자 가기 좀 뭣하니까.”  “왜 혼자 못 갑니까? 밤도 아니고 낮인데.”    마루의 눈치 없는 소리에 여운이 째려보다가 얼른 표정을 바꿨다.    “같이 좀 가 주세요……. 지은 죄가 있어서…… 혼자 이장님 만나기가 좀 거시기 하거든요. 부탁할게요…….”    여운이 찌질해 보일 만큼 낮은 자세로 부탁하자 바늘도 안 들어갈 것처럼 굴던 마루의 태도가 조금 바뀌었다.    “아, 진짜 겁나 바쁜데…….”  “적선하는 셈 치고 같이 가 줘요.”    여운이 불쌍한 얼굴로 사정하자 마루는 내키지 않지만 큰 인심 썼다는 듯 여운을 따라 이장의 집으로 갔다.  하지만 이장을 만났음에도 별 뾰족한 수는 없었다.  이장은 어젯밤 여운의 무식한 경락 마사지 후유증으로 허리 상태가 나빠져 완전히 오리처럼 뒤뚱거리며 걷고 있었다. 그래서 이삿짐을 도둑맞았다는 여운의 말에 놀라거나 걱정하기는커녕 오히려 고소해했다.  여운에게 맺힌 것이 많은 이장이 해 준 것은 딱 하나였다. 파출소 전화번호를 알려 준 것. 그것도 여운이 불쌍해서가 아니라 마루의 얼굴을 봐서 양껏 거드름을 피운 후에야 알려 준 것이다. 치사하고 분했지만 별수 없었다.  이장에게서 겨우 얻어 낸 파출소 전화번호를 들고 쫓겨나듯 이장의 집에서 나오던 마루와 여운은 마침 이장의 집 앞을 지나가던 이정민과 마주쳤다.  이정민. 마루에게는 요주의 인물.  이정민은 올 초 마을로 이주해 온 완전 ‘바른 생활 사나이’ 이미지를 가진 귀공자 스타일의 예술가였다. 상류층 자제처럼 깨끗하고 새초롬해서 절대 시골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를 가졌지만 가공할 정도의 친화력으로 마을 어르신들에게 절대적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 조각가였다.  마루는 정민과 가볍게 눈인사만 하고 지나칠 생각이었다. 하지만 정민이 특유의 귀공자스러운 미소를 건네며 친절하게 말을 걸어 오는 바람에 가볍게 눈인사만하고 지나치려 했던 마루는 어쩔 수 없이 정민과 몇 마디 주고받아야 했다.    “오랜만입니다.”  “예, 그러네요.”    정민이 악수하자는 듯 손을 내밀었고 마루는 거부감을 감추고 정민의 손을 맞잡았다.    “여자 친굽니까? 아니면 소리 소문 없이 벌써 결혼한 거예요?”    정민이 벌써 저만치 먼저 걸어가고 있는 여운을 바라보며 물었다.    여운은 이장의 집에서 나올 때부터 다른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얼굴로 정민을 아예 없는 사람 취급 하며 지나쳐 버렸다. 하지만 정민은 자신을 못 본 척하는 여운을 굳이 바라보고 있었고, 마루는 그런 여운과 정민의 행동을 면밀하게 살펴보고 있는 중이었다.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마루가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는 투로 말하며 약간 찡그린 얼굴로 여운을 쳐다봤다.    “이 마을 분은 아닌 것 같아서 마루 씨 여자 친구가 놀러 온 건가 했더니…….”    정민이 여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마루는 벌써 한참이나 멀어진 여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정민의 얼굴을 예의주시했다. 여운을 바라보는 눈빛이 어쩐지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민이 예사롭지 않은 눈길로 여운을 바라봤다. 마루는 그런 정민을 예사롭지 않은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혼자 씩씩하게 걸어가던 여운이 그제야 곁에 마루가 없다는 것을 눈치채고 획 돌아보더니 마을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목청껏 마루를 불러 젖혔다.    “차마루 씨!”    여운의 공기 반 소리 반 기개 넘치는 부름에 정민의 입가에 야릇한 미소가 어렸다가 사라지는 것을 마루는 놓치지 않았다.    “다음에 뵙죠.”  “언제 술 한잔합시다.”  “그러죠.”    마루는 이정민과는 술을 마실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정민과 헤어져 여운에게 다가왔다.    “급해 죽겠는데 무슨 인사를 그렇게 오래 해요?”  “마을 사람이 인사하는데 그럼 개무시합니까?”    마루가 버럭버럭하자 여운이 입을 비죽이며 한풀 꺾였다.    “그거야…… 그러네요. 하여튼 빨리 휴대폰 좀 빌려줘요.”    마루가 못마땅한 얼굴로 잠금 패턴을 푼 다음 휴대전화를 건네자 여운이 즉시 파출소에 도난 신고를 했다. 빨리 와 달라고, 빨리 와 달라는 부탁을 서른 번쯤 한 후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그토록 빨리 와 달라고 노래를 불렀건만 두 시간이 지난 뒤에야 젊고 착실하고 매우 모범적으로 보이는 준수한 외모의 순경 이연우가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났다.  연우와 여운이 만나던 바로 그 순간.  하나, 둘, 셋!  3초. 정확하게 3초 만에 연우는 사랑에 빠져 버렸다. 그만 첫눈에 반해 버린 것이다.  연우는 망치로 뒤통수를 한 대, 아니 서너 대를 연거푸 세게 얻어맞은 듯 얼떨떨한 표정으로 여운을 바라봤다.  여운을 바라보는 연우의 두 눈동자에서는 마치 폭죽이 터지듯 무수한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심장은 가슴을 쪼개고 튀어나올 듯 격하게 뛰어 대고 아찔한 현기증마저 느껴졌다. 여운 곁에서 귀찮아 죽겠다는 얼굴로 서 있는 마루는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안녕하세요.”    연우가 밀랍 인형처럼 정지 상태에서 넋이 나간 얼굴로 쳐다보기만 하자 여운이 먼저 인사를 했다.  여운이 인사를 하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연우가 발그레 상기된 얼굴로 정중하게 인사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더. 이연우라고 합니더.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더. 마이 기다리싰지예?”    경상도 말투로 어찌나 정중하고 깍듯하게 인사하는지 기다리다 학 모가지 될 뻔했다고 푸념할 수도 없었다.    “이삿짐 도둑맞은 것 때문에 오신 것 맞죠?”  “예, 맞습니더. 맞습니더……. 맞습니더.”    연우는 쓸데없이 맞는다는 말을 세 번이나 반복했다. 하지만 자신이 같은 말을 세 번이나 반복했다는 것도 모른 채 하염없이 여운을 바라봤다.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요…….”    여운은 연우가 술 마신 사람처럼, 아니 약 먹은 사람처럼 멍하게 구는데도 불구하고 준수한 순경 연우를 붙잡고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설명을 시작했다. 어제 기획 부동산에 낚여서 귀신 나올 것 같은 창고를 사느라 전 재산을 다 털린 것을 시작으로 이삿짐마저 깡그리 다 도둑맞았다는 것까지. 설명이 아니라 신세 한탄이었다.  이연우는 차마루와 달랐다. 달라도 너무 달랐다.  여운이 신세를 한탄하는 동안 차마루처럼 먼 산 불구경하는 듯 무관심하지 않았다. 쉬지 않고 떠드는 여운을 시끄러워하거나 귀찮아하지도 않았다. 여운의 곁에서 수첩에 꼼꼼하게 메모를 하면서 끝까지 신중하게 들어 주었다. 눈이 마주치면 괜스레 수줍음을 타면서도 열심히 들어 주고, 열심히 눈을 맞춰 주었다. 눈을 너무 열심히 맞춰서 약간 부담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정말 모범적이고 준수한, 칭찬받아 마땅한 순경의 자세를 취하는 연우가 너무나 고마워서 감동받을 정도였다.

“내가 한 얘기 알아들으신 거죠?”    속된 말로 진짜 뽕 맞은 것 같은 눈으로 하염없이 바라보는 연우의 시선 때문에 여운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알아들었습니더. 완저이 잘 알아들었습니더. 그르니까 저 아래 있는 선생님 댁을 구입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까 기획 부동산에 사기를 당했 뿠다 그 말씀이지요?”    연우가 신중한 표정으로 수첩에 메모한 내용을 훑어보며 물었다.    “예, 맞아요. 예술가라 하더라구요.”  “그란데 남편분은 안 계십니까?”  “남편요? 아뇨, 없어요. 미혼이에요. 내가…… 유부녀로 보이세요?”    여운이 조금 서운하고 삐친 듯이 묻자 연우가 양손을 크게 흔들었다.    “아입니더. 아입니더! 그란 게 아이고 선생님 댁을 구입하려고 하셨다길래 당연히 결혼하셨을 줄 알았습니더.”  “틀림없이 싱글이에요.”  “아이고, 진짜 큰 실례를 했습니더. 죄송합니더.”    사과를 하는 연우의 얼굴에 기쁨의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괜찮아요. 그나저나 도둑을 잡을 수 있을까요?”  “아, 그기 그르니까 어제 이사를 왔는데 알고 보니 사기였고, 어짤 수 없이 이 창고 앞에 이삿짐을 다 내리놨는데 밤사이 싹 다 읎어지 뿠다는 말씀이시죠?”  “예, 맞아요.”  “그라모 어젯밤에는 어디서 주무셨습니까?”  “차마루 씨 댁에서요.”    여운의 대답에 연우가 약간 경계하는 표정으로 마루를 쳐다봤다.  마루는 여전히 시끄럽고 귀찮다는 얼굴로 먼 산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라모 차마루 씨 댁에서 주무시고 나와 보니까 그때가 12시쯤이고 이삿짐이 감쪽같이 사라지 삤고……. 아 참. 내가 다른 현장에 있다가 곧바로 이쪽으로 오게 돼서 정확하게 전달받지 못했습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기여운이에요. 기씨예요. 기여운.”    여운의 대답에 연우가 갑자기 또다시 뽕 맞은 눈으로 여운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뭐라고 설명하기 참 묘한 눈길이었다. 정말 뽕 맞은 눈이라고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는……. 정말 좋게 말하자면…… 눈동자가 심하게 반짝반짝한다고 할까. 눈동자가 반짝거릴 뿐 아니라 마치 오랜 세월 찾아 헤맨 영혼의 짝을 찾은 듯 감격과 감동의 그것이 묻어 나온다고 할까?    ‘혹시…… 약쟁이예요?’    여운은 그렇게 묻고 싶은 걸 꾹 참았다.    “왜, 왜 그렇게 보세요?”    연우의 눈길에 당황한 여운이 얼굴을 붉히며 묻자 연우 역시 살짝 얼굴을 붉혔다.    “그기……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이름이 참 예쁘시네예. 얼굴만큼이나…….”    연우가 고백하듯 수줍은 표정으로 말하는 순간 주야장천 먼 산을 바라보던 마루가 고개를 돌려 연우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뭐? 얼굴만큼이나? 저 얼굴이 예쁘다고?’    마루는 즉각 알아차렸다. 모범적이고 순진하고 숙맥인 순경 이연우가 시끄럽고, 팔자 세고, 쌍욕 엄청 잘하는 억세 빠진 서울 여자 기여운에게 반해 버렸다는 것을.  그래서 노려봤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한편으론 이연우가 너무 안돼 보여서.  기여운 같은 여자한테 반하는 남자가 있다는 것이 너무 어처구니없었다. 또 절대 반해서는 안 되는 여자한테 반한 것이 너무 안돼서 큰 소리로 외치고 싶었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하지만 이연우는 마루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빠른 속도로 기여운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얼굴만큼이나…… 예쁘다구요?”    여운이 긴 속눈썹이 휘날리도록 눈을 깜빡거리며 부끄럼을 타자 연우는 그런 여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기여운……. 진짜 예쁘네예. 예쁘다는 말 많이 들으싰지예?”  “아웅, 아니에요.”    여운이 코 먹은 소리를 내며 교태를 부리자 마루는 느끼한 마가린을 한 국자 삼킨 얼굴로 여운을 노려봤다.    “예쁘다는 사람도 조금은 있고, 놀림도 많이 당하고 그랬어요.”  “놀림을 당했다꼬요? 누가 와 놀맀답니까?”  “생긴 것하고 이름하고 전혀 안 어울린다고……. 어딜 봐서 귀엽냐구요.”    여운이 귀엽게 속상한 척하자 연우가 불쾌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안 어울리긴요. 완저이 완벽하게 어울리는데. 이름만큼이나 얼굴도……. 진짜 이름도 예쁘고 얼굴도 예쁘시네예.”    연우가 누가 봐도 진심인 표정으로 누가 들어도 진심인 목소리로 말했다.  다만, 마루만 도저히 믿어지지 않고 절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노려보고 있었다.    “정말요?”    여운이 부끄러운 듯 손으로 얼굴을 더듬자 연우는 그 모습마저도 너무나 사랑스럽다는 듯 황홀함에 사로잡힌 눈길로 바라봤다.    “이 상황에 이런 말 진짜 웃기지만…… 저한테 예쁘다고 하셔서 답례로 하는 말도 절대 아니구요……. 이연우 순경님도 정말 잘생기셨네요. 순경 하기 아까울 정도로 꽃미남이세요.”    여운의 말에 연우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며 입가에 행복한 미소가 함지박만 하게 걸렸다.    “내가요? 아이고, 꽃미남은요. 허허허허…….”  “정말 꽃미남이세요.”  “고맙습니더, 좋게 봐 주셔서. 그러고 보니 이름도 비슷하네예. 이연우, 기여운…….”  “어머, 그러네요. 연우……. 여운…….”    마루는 같잖다는 눈으로 뜨겁게 노려보고 있었다, 연우와 여운이 코만큼도 안 비슷한 이름을 비슷하다고 우기는 꼬락서니를. 뜨거운 맥반석 위에서 구워지고 있는 오징어처럼 몸을 비틀며 썸 타는 꼬락서니를.    “사건 조사 안 합니까?”    손발이 오글거려 도저히 더는 들어 줄 수가 없게 된 마루가 퉁명스럽게 끼어들자 여운과 연우가 이 사이에 낀 고춧가루처럼 불청객 취급 하는 눈으로 마루를 쳐다봤다.    “그라모…… 이삿짐을 도난당하거나 수상한 사람을 본 목격자는 없는 거지예?”    연우는 곧장 여운에게 다시 집중했고, 여운 역시 연우에게 집중하며 도난 사건 파헤치기를 재개했다.    “그렇죠. 나도 못 봤고 차마루 씨도 이장님도 못 봤어요. 다른 마을 분들은 아직 만나 보지 못했구요. 새벽에 홀랑 들고 튄 것 같아요.”  “맞습니더. 새벽에 들고 튀었을 확률이 높습니더.”  “잡을 수 있을까요? 꼭 잡아야 해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찾아야 하는 물건이 있거든요.”  “바로 탐문 수사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더. 그거는 그렇고, 기획 부동산 쪽은 신고를 하싰습니까?”  “아직요. 서울에 올라가서 신고해야 하는데 못 갔어요, 아직.”  “서울에 가신다꼬요? ……언제 가십니까?”    여운이 서울에 가야 한다는 말에 연우가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오늘 가야 하는데…… 사기꾼도 잡아야 하고 도둑놈도 잡아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여운이 한숨을 푹 내쉬자 연우는 여운이 내쉰 한숨을 두 손으로 고이 받아서 가슴에 품고 싶은 표정으로 안타깝게 바라봤다.    “오늘 서울에 가시면…… 언제 내려오십니까?”  “글쎄……, 내 이삿짐 훔쳐 간 도둑 잡았다고 하면 그때 내려와야겠죠?”  “파출소에 가셔서 도난당한 물건의 품목도 자세히 기록해야 하고…… 서울에 가시면 조사 상황이나 진행 상황에 대해 알려 드리는 것도 아무래도 더딜 끼고…… 연락하는 것도 글코 절도범을 잡았을 때 바로바로 움직이는 것도 글코…….”    연우가 난처한 얼굴로 말하자 여운이 걱정스럽게 연우를 쳐다봤다.  마루는 연우의 수작에 저절로 터져 나오려는 콧방귀를 가까스로 참았다.  도둑맞은 품목 기록하는 건 20분이면 끝. 조사 상황이나 진행 상황을 알려 주는 것도 전화로 얼마든지 가능했다. 절도범을 잡았을 때도 마찬가지다. 기여운의 이삿짐을 훔쳐 간 놈이 틀림없다면 유치장에 잡아다 놓고 그때 여운을 부르면 그만이었다. 여운이 하루 이틀 늦게 내려온다고 해서 크게 문제될 것도 없었다. 물론 여운의 이삿짐을 훔쳐 간 도둑을 이연우가 잡을 확률은 완벽하게 제로였지만 말이다.  하여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우가 조사가 어쩌고, 진행 상황이 어쩌고 하며 기여운의 상경을 되도록 막으려는 이유는 이연우가 기여운에게 반했기 때문이라고 마루는 확신했다.    ‘불쌍한 놈.’    반할 여자가 따로 있지, 기여운 같은 여자에게 훅 가다니.  놀고 앉았네 하는 얼굴로 이연우와 기여운을 노려보던 마루는 호박이 넝쿨째 데굴데굴 굴러들어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차피 마루는 여운을 붙잡아 놓아야 했다. 방생 불가라는 명령이 떨어졌기 때문에 무슨 수를 써서든 여운을 이 마을에 계속 붙잡아 둬야 했다. 그래서 남의 집에서 폭격기 날아다니듯 코를 골아 젖히며 대낮까지 퍼질러 잔 여운에게 점심까지 챙겨 준 것이다.  마루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눈 낮은 불쌍한 이연우가 대신 해 준다고 생각하며 눈꼴시었지만 꾹 참고 연우의 편을 들어주기로 결심했다.    “서울로 꼭 올라가셔야 한다면…… 연락처 좀 주실랍니까?”  “네. 휴대전화 번호 알려 드릴게요.”    연우에게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 주던 여운이 낯을 찡그렸다.    “그런데…… 어제 이 창고에서 휴대전화를 잃어버렸어요.”  “휴대전화도 잃어버리셨어요?”  “네. 어젯밤에 이장님 때문에…… 어쩌다가 휴대전화를 흘렸는데 못 찾았어요. 서울 올라가면 같은 번호로 개통해서 연락드릴게요. 순경님 전화번호 주실래요?”  “예, 예.”    연우가 재빨리 자신의 번호를 메모해 여운에게 건넸다.    “내 번호 줄게요. 기여운 씨한테 연락할 일 있으면 내 번호로 전화해요.”    마루가 불쑥 나서자 여운과 연우가 동시에 마루를 쳐다봤다.    “차마루 씨 번호는 왜요?”    그렇게 물은 사람은 연우가 아니라 여운이었다.    “이삿짐 도둑맞은 장소가 우리 집에서 제일 가깝고…… 웬만하면 며칠 진행 상황을 지켜본 후에 서울로 가지 그래요?”    마루의 말에 여운은 곤란한 표정을, 연우는 동의하는 표정을 지었다.    “파출소에 가서 도난 물품도 기록해야 하고 할 일이 많아 보이는데. 그게 서로 편하지 않겠습니까?”    마루가 연우에게 묻자 연우가 적극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 번호 일단 받아 둬요.”    마루의 말에 연우가 자신의 휴대전화에 마루의 번호를 재빨리 입력한 후 여운을 바라봤다.    “내 생각에도, 아무래도 며칠은 계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더.”  “하지만…….”    여운이 난감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마땅히 지낼 곳이 없어요……. 읍내에 여관이나 숙박 시설이 있나요? 좀 싼 데로……. 여긴 연고도 없고……, 사기꾼한테 전 재산을 털려서 돈도 없고…….”    여운이 흘낏 마루를 쳐다봤다.    “차마루 씨한테 실례를 많이 해서 더 부탁할 수도 없고요…….”  “아무래도 여자분이 낯선 곳에서 신세 지는 게 많이 불편하시겠지요. 그라모 내가 며칠 지낼 만한 곳을 알아보겠습니더. 정 갈 데 없으마 내 집에 계셔도 되고요.”  “순경님 댁에요?”    여운이 깜짝 놀라며 되물었고, 마루도 놀란 얼굴로 연우를 쳐다봤다.    “순경님…… 결혼 안 하셨어요?”    여운의 물음에 연우가 강렬한 눈으로 여운을 바라봤다.    “미혼입니더. 틀림없이 미혼입니더. 모태 솔롭니다, 완저이.”    연우가 강렬한 눈빛을 발사하며 모태 솔로가 커다란 자랑거리라도 되는 듯 강력하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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