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결혼하고 싶은 남자-124화 (124/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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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첩장

"음.. 미팅 내용은 이게 끝이고. 저기 혹시 퇴근 후에 약속 없으신 분들 괜찮으면 나랑 밥같이 먹고 가요 "

"왜? 무슨 일 있어? "

"아니. 그냥 요즘 다들 바쁜데 언니들한테 내가 너무 신경을 못 쓴 거 같아서. 맛난 거 사주려고 그러지."

"먹고 싶은 거 다 사주는 거야."

연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팀원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말했다.

"오예. 오늘 목에 기름칠 좀 해보자. 야 누가 회사 앞에 소고기집에 예약 좀 해라 오늘 우리 리더님 한번 정말 벗겨 먹어보자."

"오케이. 내가 예약할게. 연수야. 오늘 돈 많이 뽑아놔라."

연수가 사무실을 신나게 떠들며 나가는 팀원들을 웃으며 바라보았다. 연수도 곧 과장님과의 미팅을 위해 서류를 챙겨 사무실을 나왔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 어느덧 퇴근시간이 다가왔다. 마무리 작업을 하던 연수에게 신지가 다가와 어깨에 손을 올리며 연수의 귀에 작은 소리로 속삭이듯 이야기했다.

"언니들한테 이야기했어? 오늘 한다며 근데 어째 조용하다."

"아직 이따 퇴근하고 밥 먹으면서 하려고."

"그래. 언니들 팀장님인 거 알면 완전히 기겁할 거다. 아니. 네가 한 달 후에 결혼하는 게 더 충격인가?"

연수가 웃으며 신지의 팔을 끌어내리며 말했다.

"나는 네가 지금 이 시간에 회사에 있다는 게 놀랍다. 뭔 일이야? 맨날 지각이더니."

그제야 신지가 생각난 듯 손뼉을 치며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연수에게 내밀었다.

"여기가 지희랑 나랑 최종 결정한 데야. 네가 보고 셋 중에 마음에 드는 웨딩드레스로 골라. 아님 세 군데 쇼핑몰 중에서 더 보고 네 맘에 드는 거 있으면 말해. 그걸로 대여할게."

"응. 고마워."

"이제 얼마 안 남아서 빨리해야 해 내일모레까지 결정해라. 아. 그리고 거기보니까 웨딩드레스 대여하면 티아라. 뭐 그런 악세사리는 그쪽에서 드레스랑 마춰서 보내준대. 그럼 우리는 따로 부케만 준비하면 될 거 같아."

연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나 때문에 고생하네."

"야. 이게 무슨 고생이냐. 우리는 너 축의금 더 해야겠다고 말하고 있다."

""됐어. 저번에도 말했지만 나는 이렇게 신경 써주는 것만으로도 너무 미안하고 고맙거든. 그러니까 그런 말 다시 하지 마라."

"알았다. 알았어. 얼른 마무리나 해. 언니들 기다리겠다."

그제야 연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자리에 앉아 서류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 * * * * *

"우리 이만 여기 마무리하고 2차 가자. 다들 괜찮지."

"어디로 갈까? "

연수가 팀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들고 있던 젓가락을 살며시 내려놓으며 말했다.

"저기. 언니들."

연수의 목소리에 팀원들의 모든 시선이 연수에게 향했다.

"언니들. . "

"왜? 너 아까부터 이상하다. 무슨 일이야? 혹시 너 고깃값 많이 나올까 봐 그래. 이 자식 걱정 마. 우리 모은 회비로 먹기로 했으니까 걱정 마."

"그게 아니라."

"너 왜 그래? 혹시 회사에서 사람 짜른다디?"

"아니."

"그럼. 왜 그래. 너 혹시 그만두는 거야?"

"아니."

"그럼 뭐야? 얼른 말 안 해 이러다 늙은이들 지쳐 죽겠다."

연수가 가방에서 하얀 봉투를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누군가 봉투를 집어 들고 안의 물건을 꺼나 펼쳤다.

여기저기서 궁금한 팀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야?"

"그거 청첩장 아냐?"

처음으로 봉투를 보았던 팀원이 놀란 얼굴로 연수를 바라보았다. 이미 청첩장은 여러 사람의 손을 옮겨 다니고 있었다.

"혹시 여기 나와있는 최연수가 너를 말하는 건 아니지"

연수가 대답 없이 웃기만 하자 놀란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너냐?"

연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이게 무.. 무슨 일이야. 그러니까 한 달 후 3월 5일 12시에 네가... 최연수 네가 결혼을 한다는 거야?"

연수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야. 이런 경우가 어디있냐? 연애한다는 이야기는 단 한마디도 없더니 결혼한다고 청첩장을 주는 건 그것도 한 달 후에 야. 최연수 이게 말이 되는 거냐? "

연수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이게. 지금 반성한다고.."

그때였다. 누군가 연수를 큰 목소리로 불렀다. 모두의 시선이 연수에서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옮겨갔다.

"야. 최연수. .여기. .여기 청첩장에 적어있는 신랑 이름 한준호가 혹시. .혹시 말이야 내가 생각하고 있는 그 사람이냐? "

답답한 듯 옆에 앉아있던 팀원이 청잡장을 빼앗아 보며 말했다.

"한준호. .한준호. .어 이거 익숙한 이름인데. .한준호.. 연수야 설마 이 사람 제품개발부 한 팀장이냐? 에이 아니지."

모두의 놀란 시선이 다시 연수에게 돌아왔다. 연수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팀원들은 놀란 눈이 더 커지고 자리에 앉아있는 모든 사람들이 벌어진 입을 다물지도 못한 채 잠시 침묵이 흘렀다. 팀원 중 누군가 물 한 컵을 벌컥벌컥 들이켠 후 말했다.

"우리가 호랑이를 키우고 있었어. 야. 어떻게 이렇게 아무도 모르게 연애를 하고 있었냐. 최연수 너 오늘 어떻게 된 건지 다 불어라. 알았냐."

"응. 알았어."

연수가 대답하자. 여기저기서 많은 질문이 한참이나 쏟아져 나왔다. 잠시 후 어느 정도 만족했는지 팀원들과 연수는 2차를 위해 술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연수가 자리에 앉으려 하자 팀원 중 누군가 말했다.

"잠깐."

연수가 놀란 얼굴로 말했다.

"왜?"

"팀장님한테 전화해."

"왜? 그리고 팀장님 일하는 중인데."

"야. 최연수 이렇게 일 저질러놓고 여기서 쉽게 끝날 거라 생각했냐. 얼른 전화해. 오늘 우리를 속인 한 팀장이랑 너를 무참히 밟아주겠어."

팀원들의 웃는 소리와 얼른 전화하라는 장난스러운 협박에 연수는 마지못해 준호의 번호를 눌렀다. 그때였다. 연수 옆에 앉아있던 팀원이 연수의 전화를 빼앗아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스피커폰 버튼을 눌렀다. 잠시 후 준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수는 핸드폰을 빼앗으려 했지만 끝내 뺏앗지 못하고 안절부절 자리에 앉아있어야만 했다.

[어. 연수야.]

팀원들이 준호의 밝은 목소리에 입을 막고는 낄낄 거리며 웃었다. 휴대폰을 가지고 있던 팀원이 웃음을 멈추고 휴대폰을 들어 준호에게 말했다.

[어. 연수야. 팀장님. 우릴 아주 깜쪽같이 속였어요.]

잠시 휴대폰 안에서 침묵이 흐르다 무슨 상황인지 눈치챈 듯 준호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팀장님. 지금 웃음이 나와요. 우리는 지금 다들 놀라서 기절 직전이거든요.]

준호가 웃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그래도 우리 연수가 다른 사람들보다 언니들한테는 꼭 먼저 알려 한다고 ...]

[아. 됐고. 팀장님. 지금 여기로 얼른 뛰어와요.]

[지금 말입니까? ]

[네. 만약에 지금 안 오면 연수 평생 안 보여 줄 거니까 그렇게 아세요. ]

준호의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팀장님 지금 여기 상황이 파악이 안되시나 본데 지금 연수 언니들 속인 죄로 우리가 반 죽여놨거든요. 팀장님. 안 오시면 연수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

준호가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연수 살려만 주세요. 제가 원하시는 어떤 일이라도 다 하겠습니다.]

[좋아요. 그 자세 아주 마음에 들었어요. 그럼 지금 당장 회사 앞 또아리 술집으로 오세요. 그리고 우리는 마음이 그다지 넓은 편이 아니라서 그리 오래 못 기다립니다. 그럼 지금부터 시간 잽니다. 그럼 출발]

그 말과 함께 팀원이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연수는 불안한 얼굴로 팀원들을 보았지만 팀원들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술을 마시며 웃고 즐기기에 바빴다.

준호가 술집에 도착한 건 정확히 20분 후였다. 준호는 뛰어왔는지 심하게 흐트러진 모습으로 술집 안으로 들어왔다.

준호는 숨 돌릴 틈도 없이 앉자마자 팀원들의 술잔을 받아야 했다. 이 날 연수와 준호는 팀원들이 시키는 모든 것을 해야 했다.

그리고 다음날 연수는 출근을 해서 퇴근할 때까지 축하 인사를 받아야 했다. 이미 연수가 말하지 않아도 준호와 연수의 결혼 소식은 누군가 올렸는지 회사 사원들이 사용하는 인터넷 사원들의 소식란에도 올라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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