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결혼하고 싶은 남자-120화 (12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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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포즈

내일 다시 한번 샘플 찍어보고 이상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전부 다시 분해해 보자. 그리고 처음부터 다시..."

준호는 팀원과 기계 설계도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며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중 멀리서 급하게 뛰어오는 지희를 보고는 자신의 시계를 확인하고는 피식 웃었다. 이미 지희의 출근 시간은 10분만 지나면 지각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팀원에서 도면을 접어 건네고는 준호가 말했다.

"먼저 올라가 나 잠시 들를 데가 있어."

"네. 팀장님."

엘리베이터가 닫히고 준호는 뛰어오고 있는 지희의 앞으로 불쑥 다가갔다. 지희는 급하게 뛰다 갑자기 튀어나온 정체에 기겁을 하고 놀라고 말았다.

"아이고야.. 깜짝이야.... 어. 팀장님."

준호가 팔짱을 끼고는 웃으며 지희에게 말했다.

"어쭈. 지금이 몇 신데 이제야 출근이야. 우리 연수는? 연수 집에 잘 들어갔어. 뭣들 하느라 연수 핸드폰이 꺼져 있는 거야?"

지희가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는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아이고. 내가 누구 때문에 지각했는데. 이게 다 팀장님 애인 때문이거든요."

"연수? 연수가 왜?"

"아주.. 내가 지금 연수가 부른 노래 때문에 머릿속이 아주 얼얼해 죽겠다고요. 신지까지 합세해서 둘이 술 취해서 똑같은 노래 100번은 더 부른 거 같다니까. 아. 그건 그거고 나 진짜 더 늦으면 완전히 지각이에요. 그럼 수고 .."

준호는 급하게 뛰어가려는 지희의 팔을 붙잡았다. 지희가 잔뜩 화가 난 듯 준호에게 말했다.

"아. 왜요? 나 늦었다니까요."

"인마. 연수 핸드폰 안된다니까. 연수 어디 있는지는 알려 줘야지. "

"아. 우리 집에서 좀 걸어가다 보면 힐링 노래방이라고 나와요 거기 3번 방에 있을 거야. 신지도같이 있으니까 못 찾겠으면 전화하고요. 근데 둘 다 술 취해서 전화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나 진짜 이제 가볼게요."

"그래. 수고해."

준호는 핸드폰을 꺼내 빠르게 신지의 번호로 통화를 시도하며 마침 자신의 앞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 * * * * *

노래방 3번 방 앞에 선 준호는 웃고 말았다. 문을 열기 전 노래방 안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신지와 연수는 음정 박자도 완전히 무시하고 어깨에 서로의 팔을 올리고는 악을 쓰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노래방 문을 열자 상황은 더욱더 처참했다.

두 사람의 악쓰는 소리에 준호는 귀가 아플 정도였고 맥주캔을 또 얼마나 마셨는지 셀 수가 없을 정도였다. 여기서 살아 정상적으로 출근한 지희가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준호는 가방을 의자에 내려놓고는 조용히 앉아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지겨운가요. 힘든가요. 숨이 턱까지 찼나요.

할 수 없죠 어차피 시작해 버린 것을.

쏟아지는 햇살 속에 입이 바싹 말라와도.

할 수 없죠. 창피하게 멈춰 설 수 없으니.

단 한가지 약속은 틀림없이 끝이 있다는 것.

끝난 뒤에 지겨울 만큼 오랫동안 쉴 수 있다는걸."

노래가 멈추고 간주가 나오자 신지가 연수를 바라보았다. 서로 눈이 마주치자 둘은 갑자기 무엇이 재미있는지 소리 내 웃기 시작했다. 그러다 신지가 기우뚱대더니 잠시 흔들거리던 두 사람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준호가 놀라 다가가려 일어섰지만 다시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여 주저앉아 다시 소리 내 웃기 시작했다. 웃음은 점점 커지고 둘은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신나게 웃기 시작했다. 그러다 반주가 아예 끝나자 신지가 비틀 거리며 일어나 조심스럽게 노래방 기계에 숫자 버튼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다 버튼을 하나하나 천천히 누르자 아까 두 사람이 부르던 반주가 다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노래방 화면에는 SES 달리기란 제목이 크게 나타났다. 사라졌다.

신지가 비틀거리며 연수에게 다가가 연수의 팔을 붙잡아 일으키자 아직까지 배까지 잡으며 웃고 있던 연수가 신지에게 이끌려 일어나자 두 사람은 다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음정. 박자는 완전히 무시한 채.

"지겨운가요. 힘든가요..."

준호는 피식 웃어버렸다. 그리고 아까 지희가 말한 100번 들었던 노래가 이 노래인가 보다 생각하며. 자신도 이 노래를 계속 듣고 있을까 아님 저 둘을 떼어놓을까를 놓고 곰곰이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준호의 고민은 노래가 3번이 반복되고 나서야 끝이 났다. 노래를 부르던 신지가 목이 마른 듯 비틀거리며 테이블로 다가와 맥주 캔을 집어 들고는 마시려다 준호와 눈을 마주쳤다. 잠시 눈을 껌벅이며 팔짱을 끼고 앉아 웃고 있는 준호를 살피던 신지가 약간은 놀란 듯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이상하다. 아까 저기에 내 친구 지희가 앉아 있었는데... 야. 연수야. 야. 연수야. 우리 친구 지희가 사라졌어. 지희가 사라지고 어떤 아저씨가 앉아 있는데.. 그런데 내가 저 아저씨 언제 봤더라..연수야.. 내가 저 아저씨 언제 봤더라."

그러면서 신지가 손을 뒤로뻩어 연수의 옷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비틀 거리며 노래를 부르던 연수가 바닥으로 쿵 하며 넘어지고 말았다.

놀란 준호가 연수에게 다가가 연수를 일으켜 세워 의자에 앉히자. 연수가 고맙다며 인사를 하고는 준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준호를 바라보며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어. 나도 이 아저씨 본적 있는데.. 어디서 봤더라..."

준호가 이를 악물고 자꾸만 쓰러지는 연수의 자세를 바로잡아주며 말했다.

"아쭈. 너 죽을래. 아. 저. 씨. 너 이따 집에 가서 보자."

그때였다. 준호의 뒤에서 준호를 오싹하게 만드는 충격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준호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신지가 노래방 테이블 밑에서 노래방 바닥에 주저앉아 오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오랫동안... 준호는 급 피로해진 얼굴로 다시 연수를 바라보았다. 연수는 이미 소파에 꼬꾸라져 잠들어 있었다. 그것도 마이크를 누가 가져갈까 봐 두 손에 꼭 쥔 채.

* * * * *

준호는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해 차의 시동을 끄고는 잠시 한숨을 쉬고는 몸을 돌려 뒷좌석을 바라보았다. 뒷좌석에는 연수가 잠들어 있었다.

차에서 내려 문을 연 준호가 잠시 연수를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연수를 흔들며 연수의 이름을 불렀다.

"연수야... 연수야. 최연수."

준호의 목소리에 연수의 눈썹이 조금씩 움직이더니 연수가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정신 들어?"

"팀장님?"

"그래. 팀장님이다. 어때 정신 들어 걸어서 갈수 있겠어?"

연수가 머리가 아픈지 인상을 쓰면서 반쯤 뜬 눈을 도로 감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 그럼 업혀. 여기서 더 있다가 너 감기 걸리겠다."

연수를 업은 준호가 가뿐하게 일어나 주차장을 빠져나와 자신의 아파트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연수가 준호에게 둘렀던 팔로 준호의 목을 더 꽉 끌어안고는 준호의 등에 푹 안기자. 준호가 살며시 미소 지으며 말했다.

"어째. 비싼 약을 먹여도 살이 안 찌냐? 처음 업어줄 때랑 무게가 똑같으면 어쩌자는 거야? 역시 어머니가 최고 한의원이라고 하는 걸 믿는 게 아니었어. 어머니 친구분이 하는 곳이라고 할 때 의심해봤어야 했는데..."

연수가 대답 대신 준호의 목에 얼굴을 묻었다. 연수의 따뜻한 숨결이 준호에게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왜? 머리 아파? 약국에 들렀다 갈까?"

연수가 대답 대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준호가 연수를 다시 고쳐 업으며 말했다.

"그래. 그럼 집으로 가자."

그 후 두 사람은 서로 아무 말 없이 아파트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잠시 후 연수가 준호의 등에 얼굴을 묻은 채 조용히 말했다.

"팀장님."

"응. 왜?"

"팀장님. 나 가슴 작은데 그래도 좋아요?"

"응. 난 가슴 작은 최연수가 좋아."

"나는 가끔 사람들한테 고집도 더럽게 세다는 말도 들어요."

"나는 고집 센 최연수가 좋더라."

"나는 팀장님 반겨줄 친척도 하나도 없는데 그래도 좋아요?"

"응. 그래도 좋아."

"나는 팀장님을 반겨줄 엄마도 아빠도 안 계신데 그래도 좋아요?"

"응. 그래도 엄청 좋아."

"팀장님. 나는 아이들을 많이 낳을 거예요."

"오늘부터 보약은 네가 아니라 내가 먹어야겠는데."

"팀장님 나는 그래서 마당이 넓은 집을 살 수 있는 사람이 내 이상형이었어요. 팀장님 그런 집 나 사줄 수 있어요?"

"당연하지. 내가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코피 흘려가면서 일해서 언젠가는 꼭 마당 넓은 집 꼭 사줄게."

"팀장님. 나보다 빨리 죽으면 안 돼요. 오래오래 건강하게 내 옆에 있어줘요."

"그래. 그럴게."

"나는 팀장님이 좋아요."

"내가 너보다 더 널 좋아하거든."

"팀장님."

"응?"

"우리 부모님 만나러 갈래요?"

"당연하지. 미안하다 내가 먼저 생각했어야 했는데. 그래 가자. 부모님께...."

"우리 결혼 허락받으러 가요."

준호는 연수의 말에 가던 걸음을 멈추고 자신이 잘못 들은 듯 머릿속으로 연수의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따라 했다. 그리곤 곧 다시 아파트를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움직였다.

"그래. 가자. 내일 당장 허락받으러 가자. 연수야."

아무 말 없이 걷던 두 사람 어깨에 하얀 눈이 내려앉았다. 준호는 내리는 눈을 바라보았다. 눈이 이렇게 아름답게 보이는 건 태어나 처음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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