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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인
[네. 오늘까지 휴가 냈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근데 그렇게 오래 자리 비워도 되는 거야?]
[네. 연말이라 한가해요. 밀린 휴가도 있고요.]
[그럼 다행이지만. 근데 연수는 어떠니?]
[잘 견디고 있어요.]
[정말 우리 안 가봐도 괜찮겠어. 연수가 자꾸 걸려서 말이야. 지금이라도 ..]
[우리 가족들 보면 연수 더 힘들 거예요. 끝나고 전화 드릴게요.]
[그래. 알았다. 연수 잘 다독여주고. 전화해 주렴.]
[네. 너무 걱정 마세요.]
준호는 끊어진 휴대전화를 바라보며 한숨을 크게 쉬고는 잠시 마른세수를 한 후 벤치에서 일어서려 할 때였다. 준호의 눈앞에 캔커피가 불쑥 나타났다.
준호는 놀란 눈으로 고개를 들자 준호의 눈앞에 피곤한 얼굴로 희미하게 웃으며 캔커피를 들고 있는 주인이 서 있었다.
준호가 미소 지으며 캔커피를 받아들자 주인이 털썩 준호의 옆에 앉아 자신의 몫인 음료를 집어 들고는 캔 뚜껑을 땄다. 하지만 생각처럼 캔 뚜껑이 따지지 않는지 잔뜩 찌푸린 얼굴로 캔 음료를 준호에게 내밀었다.
준호가 피식 웃으며 간단히 캔 뚜껑을 따서 다시 내밀자 주인이 음료수를 마시고는 잠시 준호를 바라보았다. 준호가 웃으며 주인에게 물었다.
"언니한테도 캔 뚜껑 따줘요?"
"음. 아직 따준 적 없는 거 같은데."
"그럼 이제부터 자주 해줘요. 형부 방금 아주 멋있었어요. 캔 뚜껑 따준 사람 중에서 제일 멋있었어요."
"그래. 그럼 앞으로 자주 해줘야겠네."
주인이 피식 웃고는 자신의 캔을 빙글빙글 돌리며 말했다.
"형부 감사해요."
준호가 주인을 바라보았다. 주인이 팔로 준호를 툭 치더니 씩 웃으며 말했다.
"언니랑 같이 와주신 거. 제 아버지 대신 일 처리 다 해주신 거. 장례식 비용 계산까지 요."
준호가 웃으며 음료수를 마시자. 주인이 말했다.
"죄송해요. 형부."
"응? 뭐가?"
"저 장례식장 비용 내주신 거 지금은 지금 마신 음료수로 대신해야 하거든요. 안 그래도 생각보다 큰돈이어서 걱정하고 있었는데…."
"괜찮아. 그런 걱정하지 마. 너한테 받으려고 한 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마."
"감사해요. 근데 나중에 제가 돈 많이 벌면 이 은혜 10배로 불려서 갚아 드릴게요."
준호가 귀엽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언니가 중학생이라고 하던데."
"네. 중2요."
"힘들겠네."
"네. 진짜 힘들어요. 근데 전 잘 견디고 있어요. 학교에서는 성적 우수 장학생이고 아르바이트 할 때는 어린 녀석이 참 꼼꼼하다는 이야기도 들어요."
"그래. 안 그래도 똘똘하게 보여."
준호가 소리를 내 웃고는 음료수를 마시자 주인이 고개를 숙여 자신의 신발을 잠시 바라보다 다시 고개를 들어 언제부터 가지고 있었는지 하얀 봉투를 쑥 내밀었다.
"이게 뭐야?"
"엄마가 언니한테 주는 거요. 언니가 엄마 용돈이랑 병원비 보낸 거 하나도 안 쓰고 고스란히 그대로 모은 통장이랑 마지막 편지요."
"근데 왜? 이걸 나한테 주는 거야? 언니한테 주면 되잖아."
"연수 언니는 안 받을 거니까요. 언니한테 주면 저한테 도로 주고 도망갈 언니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말고 나중에 형부가 언니 주세요."
"하지만…."
주인이 봉투를 준호의 손에 쥐여주며 말했다.
"그냥 받으세요. 나 이거 잊어 버릴까 봐 가지고 있는 거 엄청나게 부담돼요. 그리고 전 이제 전달했으니까 임무완료 나는 이제 몰라요."
준호가 당황한 얼굴로 주인을 바라보자 주인이 준호를 찬찬히 쳐다보다 말했다.
"형부 바람 피지 마요. 바람 피다 언니 힘들게 하지 말라고요. 그리고 폭력도 쓰지 말고요"
준호가 무슨 소리냐는 듯 주인을 바라보자 주인이 입을 삐죽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진짜 다 마음에 드는데 그 얼굴이 마음에 안 든단 말예요."
"뭐? 누구? 나? 내 얼굴이 마음에 안 든다는 거야? "
"네?"
"어디가? 나 어디 나가서 빠지는 얼굴 아니거든."
준호가 잔뜩 찌푸린 얼굴로 말하자 주인이 소리를 내 웃다가 준호에게 말했다.
"그게 문제라는 거예요. 우리 아버지도 어디 나가서 빠지는 얼굴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바람을 피고 집에서는 엄마 무지하게 때렸어요. 그래서 엄마랑 같이 있다는 이유로 고아윈으로 다시 돌아가기 전까지 연수 언니도 많이 맞았었대요."
준호가 놀란 눈으로 주인을 바라보았다.
"뭐?"
주인이 다시 미소를 지으며 준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바람 피지 말고 폭력 쓰지 말고 많이 사랑해주고 잘해 주라고요. 형부."
준호가 아무 말 없이 주인을 바라보자 주인이 한숨을 크게 쉬고는 말했다.
"그리고 언니는 여기까지만 있었으면 좋겠어요. 엄마가 화장 하시는 거 언니는 안 봤으면 좋겠다고요. 그러니까 형부가 지금 데리고 가세요."
"그게 무슨 말이야?"
"연수 언니 지금 잘 참고 있지만, 화장 하는 거 보면 못 참고 울 게 뻔하니까요. 근데 그거 나도 보기 싫지만, 엄마가 더 보기 힘들 거예요. 그리고 엄마가 부탁하셨어요. 언니가 힘들 거라고 그러니까 지금 언니 데리고 가세요…. 부탁드려요. 형부."
주인이 살짝 눈물을 닦으며 아무렇지 않게 다시 미소 지어 보였다. 준호는 그런 주인을 보며 안타까운 듯 고개를 숙이고는 아무런 행동도 어떠한 말도 할 수가 없었다.
* * * * * *
"언니 이제 가."
"뭐?"
"언니. 할 만큼 했으니까 인제 그만 가라고."
"무슨 소리야. 너 왜 그래?"
"인제 그만 여기까지가 언니가 할 일이라고. 더는 여기서 언니 할 일이 없다고."
"주인아."
연수가 힘겹게 몸을 일으켜 주인의 팔을 잡았다. 주인이 밝은 척 웃어 보이며 연수에게 말했다.
"그리고 나 여기 마무리되면 아빠 따라서 광주 할머니 집 갈 거야. 그러니까 연락하기 힘들 거야."
"주…. 주인아."
주인을 부르는 연수의 얼굴에 핏기가 점점 사라지자 준호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연수의 팔은 붙잡았다.
"언니 내 꿈 알지 나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가 돼서 언니 앞에 보란 듯이 나타날 테니까 내 걱정은 절대 하지마. 응. 알았지. 우리 서로 열심히 살다가 나중에…. 아주 나중에 웃으면서 보자. 언니 알았지."
연수가 고개를 저으며 입술을 떨며 주인의 잡고 있는 팔을 더욱더 힘주어 붙잡았다.
"안돼…. 말도 안 된다고. 주인아. 이모부가…. 어떤."
주인이 무슨 말인지 안다는 듯 연수의 말을 자르고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괜찮다니까. 밉고 싫어도 아빠잖아. 내 하나뿐인 아빠 그리고 아빠가 나까지 때리진 않잖아.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언니 나 이제 가야 해. 아빠한테는 잘 이야기할게 따로 인사하지 말고 어차피 좋은 소리도 못 들을 거. . "
연수가 스르르 주인의 앞에 주저앉아 버리자 주인이 잠시 연수를 바라보다 이를 악물고는 고개를 들어 준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형부. 감사해요. 그리고 언니 잘 부탁해요."
주인은 연수를 돌아보지도 않고 빠르게 문을 열고 나갔다. 준호가 연수를 바라보다 주인이 나간 곳으로 급하게 뛰쳐 나갔다.
"주인아."
급하게 걸어가던 주인이 준호의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이미 주인의 얼굴은 눈물과 콧물 범벅이 되어있었다. 주인이 소매로 얼굴을 닦으며 말했다.
"왜요? 언니한테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준호가 고개를 흔들며 뒷주머니에서 자신의 명함을 꺼내 주인의 손에 쥐여 주었다.
"전화해. 언니한테는 말 안 할 테니까 그러니까 수시로 안부 전해줘. 응."
주인이 잠시 명함을 바라보다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고는 인사를 하고는 뒤돌아 걸어갔다. 준호는 주인이 눈에 보이지 않자 그제야 뒤돌아 연수가 있는 곳으로 다시 빠르게 걸어갔다.
연수는 주인이 떠나가고 시간이 한참이 흘렀지만, 아직도 아까 그 자세 그대로 쪼그려 앉아있었다. 울지도 않고 그저 멍하니 자신의 발등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준호는 그런 연수에게 다가가 조용히 연수의 이름을 불렀다.
"연수야."
연수가 힘없이 고개를 들어 준호를 바라보았다. 준호가 연수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연수가 잠시 준호를 바라보다 다시 고개를 숙였다. 준호가 그런 연수를 잠시 바라보다 조용히 다시 연수를 불렀다.
"연수야."
준호는 아무 반응도 없는 연수에게 아까 주인에게 받은 봉투를 내밀었다. 연수가 고개를 들어 준호를 바라보았다.
"이모님이 너한테 남기신 거래."
연수가 봉투를 만질 생각도 못 하고 바라만 보자 준호가 쓱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연수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나.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올게."
준호는 밖으로 나와 문을 닫고 잠시 벽에 기대어 섰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잠시 후 연수의 소리 내 우는 울음소리가 준호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