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리스마스 밤
"야. 마셔 나 오늘 완전 기분 좋아. 다들 오늘 잘 생각들 말아라."
우진이 잔뜩 취해 혀가 꼬인 소리로 외치자. 인영이 그런 우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뭐가 그렇게 좋은데. 자기 지금 엄청나게 취했어. 그만 마셔야 한다고."
우진이 인영을 자신 쪽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뭐가 좋으냐고. 음. 첫째는 우리 자기가 옆에 있어서 좋고. 둘째는 저 자식들이 드디어 임자를 만나서 행복하게 보여서 좋고. 그리고 오늘은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밤이니까."
그러면서 우진과 인영이 서로를 바라보며 웃자. 준호가 연수에게 몸을 기울이고는 귓속에 속삭였다.
"저 자식 취했다. 우리 술 그만 먹고 산책하러 가자."
그때 우진이 어느새 들었는지 준호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 튈 생각 마라. 오늘은 우리 여섯 명 죽을 때까지 마실 거니까. 아. 우리 정수는 임산부니까 빼고."
그러면서 우진이 준호의 비어 있는 술잔에 술을 따르자 준호가 못 말린다는 듯 씩 웃고는 술잔에 술을 빠르게 비우고는 다시 우진의 잔에 술을 따랐다.
술자리는 어느덧 새벽을 향하고 있었다. 이미 인영과 우진 준호와 준혁은 술이 어느 정도 취해 있었다. 연수는 약간 졸리는지 하품과 수시로 졸린 눈을 비비고 있었다. 그런 연수 옆에 앉아 있던 정수가 연수에게 가까이 다가와 말했다.
"왜? 졸려?"
연수가 여전히 눈을 비비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일 하고와서 피곤하기도 하겠다. 그럼. 먼저 들어가서 자."
"나도 그러고 싶어."
정수가 모르겠다는 듯 연수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고 싶으면 들어가면 되잖아."
"그게…. 팀장님이 안된대. 나 졸린다고 먼저 잔다니까. 꼭 자기랑 같이 들어가야 한다고 손잡고 안 놔줘."
"뭐?"
정수가 연수의 시선을 따라 움직이자 그곳에는 연수가 도망가기라도 할까 봐 연수의 손에 깍지를 꽉 끼고 있는 준호의 손이 보였다. 정수가 피식 웃으며 준호의 등을 아프게 내리쳤다. 준호가 술잔에 입을 대려다 정수를 바라보며 물었다.
"왜?"
"애 손 좀 놔줘. 애가 아주 졸려 죽는구먼. 먼저 방에 들어가라 해."
준호가 웃으며 연수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많이 졸려?"
연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준호가 잠시 연수를 바라보다 그제야 손을 놓아주었다. 그리고는 씩 웃으며 자신의 무릎을 툭툭 치며 말했다.
"자."
"지금 팀장님 무릎을 베고 여기서 누우라는 거예요?"
"응. 술자리 마치면 내가 안고 들어갈게. 뭐해. 얼른 누워."
정수가 두 사람을 바라보다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연수를 잡아 일으켰다. 준호가 연수의 다른 쪽 손목을 붙들고 정수에게 말했다.
"왜?"
"왜긴. 연수랑 잠깐 산책하고 오려고 내가 보니까 방에 들어가서 자는 건 그른 거 같고 맑은 공기라도 쐬고 오려고 왜? 그것도 안 돼."
준호가 웃으며 연수의 손을 놓아주었다. 그리고는 정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연수 피곤하니까 너무 멀리 가지 말고 펜션 앞에 의자에 앉아서 놀아. 알았지. 그리고 우리 연수 감기 걸리니까 따뜻하게 입혀서 나가고."
정수가 잔뜩 표정을 구기고는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준호에게 말했다.
"나도 따뜻하게 입고 나가도 될까요?"
"뭐. 그러던지."
준호가 피식 웃으며 정수에게 말하고는 다시 술자리로 몸을 돌렸다. 정수가 어이없다는듯 연수를 바라보며 웃었다.
* * * * * *
"아. 역시 시골이다. 벌써 공기부터가 다르다. 그지."
연수가 웃으며 정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 춥기는 한데. 기분은 참 상쾌하고 좋다. 근데 언니는 감기 걸릴까 봐 걱정이다. 언니는 약도 못 먹잖아."
"괜찮아. 이 정도는 그리고 저기 술 냄새로 가득한 방 공기가 더 안 좋거든."
연수가 피식 웃으며 정수의 배를 쓰다듬었다. 정수가 그런 연수를 지긋이 바라보며 말했다.
"요즘. 너 엄청나게 편해 보이는 거 아냐?"
"내가?"
"그래. 그냥 아주 얼굴에 나 지금 아무 걱정 없어요 하고 쓰여있다니까."
"그런가."
"연수야."
"응."
연수가 대답하며 정수를 바라보았다. 정수가 잠시 연수를 바라보다 말했다.
"팀장님이랑 행복하지."
연수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정수가 연수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연수의 손을 끌어당겨 천천히 쓰다듬으며 말했다.
"다행이다. 언니가 이제 진짜 편한 마음으로 시집갈 수 있을 거 같다. 우리 연수 쓸쓸하지 않은 거 봐서 언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 팀장님 안고 막 뽀뽀해 주고 싶다니까."
연수가 피식 웃자. 정수도 따라 웃으며 말했다.
"연수야."
"응. 왜?"
"팀장님이랑 결혼할 거지?"
"응."
정수가 웃으며 연수의 등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그럼. 저 늙은이 적당히 애태우고 결혼해."
"어?"
"얼마 전에 준혁 오빠랑 준호 오빠 술 먹은 적 있었거든. 근데 그때 온통 너랑 결혼하고 싶다는 이야기 뿐이었단다. 너랑 결혼하고 싶어서 준호 오빠 병나겠다고 준혁 오빠 웃으면서 걱정 하더라."
연수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정수도 따라 웃으며 연수의 등을 토닥였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준호의 등장으로 다시 술 냄새 가득한 펜션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 * * * * *
준호는 시끄러운 벨 소리에 잠시 눈을 뜨고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찾아 바라보았다. 자신의 벨 소리가 아닌 걸 확인한 준호는 다시 침대에 누워 버리고는 옆자리에 누워있는 연수를 끌어당겨 껴안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하지만 잠시 후 준호는 기어이 몸을 일으켜야 했다.
아까부터 시끄럽게 울리던 벨 소리는 아직도 끊이지 않고 울리고 있었다. 준호는 힘들게 몸을 일으켜 벨 소리가 나고 있는 연수의 코트에서 연수의 휴대전화를 꺼내 보았다.
휴대전화 화면에는 강주인 이라고 쓰여 있었다. 준호는 잠시 연수를 깨울까 했지만 곤히 자는 연수를 굳이 깨우고 싶지 않아 무음 처리를 하고는 다시 침대로 돌아와 누웠다.
그제야 편안하게 잠이 들려던 준호는 또다시 들리는 휴대전화에 짜증스럽게 이불을 젖히고는 몸을 일으켰다. 이번에는 자신의 휴대전화였다. 준호는 휴대전화에 떠 있는 이름을 확인하고는 화가 잔뜩 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신지 너 지금 몇 신지 알고 전화하는 거야? 너 자꾸 이러면 남자친구..."
"팀장님."
준호는 힘없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는 신지애게 더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너. 술 먹었어? 목소리가 왜 그래?"
"팀장님. 지금 강원도예요? 연수가 오늘 강원도 간다고 하던데."
"그래. 근데 무슨 일 있어?
"연수는요?"
"지금 자고 있어."
갑자기 휴대전화 안에서 신지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놀란 준호가 잠들어 있는 연수를 바라보다 빠르게 방을 빠져나와 신지에게 다급하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회사에 무슨 일 난 거야? 연수가 뭐 실수했어?"
"팀장님. 연수 어떻게 해요?"
신지의 흐느끼는 소리에 준호의 뭔지 모르는 불안감도 커지고 있었다.
"울지만 말고 말해봐. 무슨 일이냐고. 무슨 일이야. 신지야."
"팀장님."
"그래."
"연수 이모님이 돌아가셨어요."
"뭐? 너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어젯밤부터 갑자기 안 좋아지셨는데 아까 두 시간 전에 그만..."
준호는 휴대전화를 든 채 마른침만 넘기고 있었다. 준호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울먹이는 신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팀장님."
"어. 그래. 우리 바로 출발할게. 어느 병원이야?"
"대한병원이요."
"그래. 알았다. 알려줘서 고맙다. 나중에 다시 통화하자."
"네."
준호는 끊어진 휴대전화를 잠시 내려다보다가 손을들어 자신의 이마를 지긋이 누르고는 한숨을 크게 쉬고는 방문을 열고 들어가 연수에게 가까이 다가가 연수를 조심스럽게 흔들어 깨웠다.
"연수야. 연수야."
연수는 잠이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연수야. 잠시 일어나봐."
"응. 왜요?
"우리 지금 서울 가야 할 거 같다."
연수가 그제야 고개를 들어 준호를 바라보며 물었다.
"서울? 지금요?"
"응."
"팀장님…. 왜 그래요? 무슨 안 좋은 일 있어요?
준호가 연수의 얼굴을 바라보지 못하고 결국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연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준호에게 다시 물었다.
"팀장님."
준호가 다시 고개를 들어 연수를 잠시 바라보다 힘없는 목소리로 연수에게 말했다.
"연수야…. 이모님이 돌아가셨어."
연수가 준호를 바라보다 입술을 꽉 깨물며 말했다.
"팀…. 팀장님 무슨 장난을 이렇게 해요."
잠시 힘들게 연수를 바라보던 준호가 연수의 어깨에 손을 올려 연수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연수야. 어서 옷 입어. 지금 서울 올라가야 해."
하지만 연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침대에 앉아 허망한 표정으로 다급하게 움직이는 준호만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