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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겨울.
"어서 씻고내려와. 아 그리고 연수도 깨우고 오늘 짐 옮긴다며 얼른 아침 먹고 움직여야지?"
"네. 그럴게요."
준호가 새벽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 혜자가 물 한잔을 건네며 말했다. 준호는 물 한잔을 시원하게 비운 후 혜자가 건내는 또 다른 한잔의 물을 들고 자신의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준호는 이불을 똘똘 말고 아직도 한밤중인 연수에게 다가갔다. 얼굴만 빼꼼히 보이고 몸은 이불에 똘똘 말려있는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어버렸다. 그리고는 준호는 연수의 귀 가까이 다가가 조용히 속삭였다.
"인제 그만 일어나자. 연수야."
자신의 속삭임에 움직임이 없자. 준호는 몸을 일으켜 목을 한번 흠. 흠 가다듬고는 다시 연수에게 가까이 다가가 연수의 귀에 큰 소리로 악 소리를 질렀다.
깜짝 놀라 커다랗게 뜬 눈으로 연수가 벌떡 일어나 눈을 굴리며 현재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잠시 후 준호의 장난을 깨달은 연수는 일어나기가 힘이 드는지 잠시 웃고 있는 준호를 바라보다 다시 침대에 누워버렸다.
준호가 연수를 억지로 일으키며 말했다.
"이제 일어나야 해. 가족들 너랑 같이 밥 먹으려고 다들 기다리고 있어."
연수는 아직도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준호의 말도 이해를 못하는 듯 손을 휘휘 흔들며 다시 침대에 누워버렸다. 준호가 연수가 덮고 있던 이불을 걷어내고는 잔뜩 찌푸린 연수의 얼굴을 즐거운 듯 바라보며 말했다.
"최연수 지금 나가는 게 어제 일 수습하기 편할걸. 나중에 가족들 보면 더 창피하니까 어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금 나가는 게 좋을 텐데."
"어제 일이요?"
"그래. 어제일 시아버지랑 친구 먹은 날."
"친구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연수가 무슨 소리냐는 듯 준호를 바라보자 준호가 준상과 혜자에게 들은 연수가 술에 취해 했던 행동들을 이야기를 해주자 연수의 얼굴이 점점 하얘지기 시작했다.
"팀장님."
"왜?"
"혹시 집에 뒷문 있어요?"
"뒷문? 아니 그런 거 내가 알기로는 없는 걸로 없는데. 왜? 뒷문 있으면 도망가려고."
연수가 잔뜩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자 준호가 소리를 내 웃으며 연수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렸다.
"괜찮아. 어제 일로 밖에 뭐라고 할 사람 없어. 얼른 씻고 와 밥 먹자. 너무 걱정 말고."
연수는 자포자기한 얼굴로 준호에게 이끌려 간신히 침대에서 일어섰다.
* * * * * * *
식탁에는 이미 국을 뜨고 있는 혜자를 빼고는 가족들이 모두 자리에 앉아 있었다. 연수와 준호를 제일 먼저 발견한 준상이 피식 웃으며 말하자 식구들의 시선이 모두 연수에게 향했다.
"어. 아버지 어제 새로 사귄 친구분 나오셨네요."
준상의 놀림에 연수가 고개도 못 들자 준호가 연수를 의자에 안치며 말했다.
"형. 그만해. 우리 연수 자꾸 놀리면 창피해서 아버지랑 친구 먹은 거 취소할지도 몰라."
동욱이 마시던 물잔을 내려놓으며 연수를 바라보며 진심인 듯 진지하게 말했다.
"어. 그럼. 안되지. 몇 년 만에 드디어 생긴 술친군데. 연수야 그러면 안 된다. 어제일 무르기 절대 없다. 알았지."
연수가 슬쩍 고개를 들어 동욱을 바라보며 피식 웃으며 고개를 조심스럽게 끄덕였다. 그제야 안심 이라는 듯 동욱이 연수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며 혜자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내가 전생에 아주 큰 잘못을 했나 보다. 팔자에 이제 며느리 술국까지 끓이게 생겼네."
연수가 혜자를 바라보며 죄송한 듯 슬쩍 웃어 보이자. 혜자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속은 괜찮아?"
"네."
"얼른 먹어. 국 식어."
"네."
연수가 국을 떠 입에 넣는걸 바라보던 혜자가 준호에게 말했다.
"너. 오늘 휴가 낸 거야?"
"네. 그래서 일요일까지 쉬어요."
"연수 따로 움직이지 않게 짐 다 챙겨서 옮겨놔. 진짜 우리 안 도와줘도 되는 거야?"
다시 연수를 바라보며 혜자가 말했다. 연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집에 물건들은 같이 살던 언니가 쓸만한 거 빼고는 다 처분 하기로 했어요. 저는 옷만 챙겨서 나오면 될 거 같아요."
혜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식사를 시작했다.
식사를 마친 연수와 준호는 이사를 위해 가족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집을 나와 차를 타고 연수의 집으로 차를 몰았다.
연수는 현관에 놓여있는 낯익은 여러 개의 신발들을 바라보며 잠시 고개를 갸웃 거리고는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도 한밤중인 듯 조용한 거실을 정수가 깨지 않도록 살금살금 걸어가 자신의 방문을 열 때였다.
"너. 뭐하냐? 뭐 훔치러 온 사람 같다."
연수가 놀라 소리가 들리던 방향으로 몸을 돌리자 주방에서 김 하나를 뜯으며 신지가 서 있었다. 곧 신지의 뒤로 지희가 입에 숟가락을 물고는 손을 흔들며 나타났다. 연수가 여전히 놀란 얼굴로 두 사람에게 물었다.
"너희가 왜 거기서 나와? 회사 안 갔어?"
그때였다. 지희의 뒤로 또 다른 그림자가 불쑥 튀어나왔다.
"나도 있지요."
준혁이였다. 연수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뭐. 뭐야. 다들 왜 거기서 나와?
신지가 손에 묻은 김 가루를 털며 잔뜩 구겨진 얼굴로 말했다.
"이 상황은 네가 전화를 안 받아서 이렇게 된 상황이다. 이것아. 전화는 국 끊여 먹었냐? 이사한다는 년이 전화도 안 받고 사람들을 죄다 기다리게 하고."
"이사 때문에 왔다고?"
"그래. 너 오늘 이사한다며. 그래서 지희랑 도와주려고 차 가지고 왔더니 오빠도 네 이사 도우려고 언니가 차 가지고 오라고 해서 왔다더라. 그래서 우리가 여기에 이렇게 모여있는거 아니냐. 최연수야. 도대체 어디서 뭐 했길래 전화도 안 되고 집에도 안 들어온 거냐?"
연수가 당황한 얼굴로 가방을 뒤져 휴대전화기가 꺼진 걸 확인하고는 미안한 듯 쑥스럽게 웃었다.
"미안…."
지희가 웃으며 연수에게 어서 오라는 듯 손을 까딱이며 말했다.
"됐고. 얼른 와 밥 먹자. 정수 언니가 맛있는 김치찌개 끓였어. 얼른 먹고 이사 준비하자."
그때였다. 현관문이 열리며 준호가 들어오며 연수처럼 놀란 듯 우뚝 서서 모여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 뭐야?
신지가 웃으며 말했다.
"뭐긴 뭐예요. 사람이지. 근데 팀장님도 휴가예요?"
"어. 연수 이사 때문에. 근데 너희도 휴가 낸 거야?"
신지와 지희가 고개를 끄덕이자. 준호가 이번엔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는 준혁에게 물었다.
"너도?"
준혁도 고개를 끄덕이자. 준호가 연수를 바라보며 미소 지으며 말했다.
"우리 연수 인기가 엄청나구나. 이거 아주 부러운데."
연수는 잠시 코끝이 시큰해지는걸 느끼며 준호가 모여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웃으며 장난치는 모습을 바라보며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연수는 생각했다. 올겨울은 작년 겨울처럼 춥지 않다고. 이렇게 따뜻한 겨울은 가족들이 있었던 겨울 말고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따뜻한 겨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