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결혼하고 싶은 남자-116화 (116/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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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당

"왜 그랬어. 나는 어떡하라고. 나는 어떻게 살라고…."

준상이 아무 말 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혜경을 눈물 맺힌 눈으로 바라보며 혜경의 이마 위에 흩어진 머리를 정리해주고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니야. 괜찮아. 다시 돌아왔으니까 괜찮아. 이제 다 괜찮아. 혜경아. 다 좋아질 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아무 걱정하지 마."

그때 병실의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며 혜자와 동욱이 들어왔다. 그때까지 준상을 바라보며 눈물만 흘리던 혜경이 두 사람을 발견하고는 무거운 몸을 힘겹게 일으키려고 할 때였다. 동욱이 혜경에게 말했다.

"힘든데. 일어나지 마. 누워있어."

혜경이 동욱의 말에도 준상의 도움을 받아 힘겹게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때였다. 혜자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누워 있으래도."

혜경은 하얗게 들떠있는 입을 꽉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혜자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인 채 눈물만 흘리고 있는 혜경을 바라보다 감정 없는 차가운 목소리로 혜경에게 물었다.

"왜 그랬니?"

그때였다. 준상이 뒤를 돌아 혜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머니..."

하지만 준상은 더는 말할 수 없었다. 동욱이 준상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곤 동욱이 준상의 어깨를 두드리며 끌어당기자 준상은 잠시 혜경을 바라보다 동욱을 따라 병실을 나왔다.

병실에서 나온 준상이 힘없이 의자에 주저앉자 동욱이 준상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시간을 주자꾸나. 그래야 두 사람 다 살 수 있어. 지금이 그 기회야. 그러니 기다리자 꾸나."

혜자는 주먹을 꽉 쥐고 간신히 이를 악물고 참으며 다시 물었다.

"왜 그랬니?"

"죄송해요."

"나한테 이렇게 해서 복수 하는 거니 내가 너 반대한 거 이런 식으로 복수 하는 거냐고?

혜경은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들어 혜자를 바라보며 다급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어머니. 절대 그럴 마음 없었어요. 제가 어떻게 그런 마음 먹어요. 어머니. 절대 아니에요."

혜경이 다급하게 움직이지 않는 몸을 비틀며 소리를 내 흐느끼기 시작했다.

혜자가 빨개진 눈으로 혜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근데. 근데 뭐가 그렇게 힘들어서 이런 무서운 짓을 한 거야. 준 상이만 있으면 된다며 그래서 나한테서 내 아들 뺏어갔으면 죽을힘 다해서 살아야지. 나 배가 아프게 행복하게 살아야지 왜 약을 먹어. 왜 이런 무서운 짓을 했느냐고."

그 순간 심하게 몸부림치던 혜경이 침대에서 툭 하고 떨어졌다. 하지만 혜경은 아픔 따위는 모르는 사람처럼 바닥을 기어와 혜자의 다리를 붙잡고 소리를 내 오열하기 시작했다.

"죄송해요. 용서해 주세요. 제 생각이 짧았어요. 준상 씨 저 때문에 다 포기하고 저렇게 사는 게 저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하루에도 열두 번씩 죽고 싶었어요. 그래도 참고 참았는데…. 제가 끝내 아이 못 갖는다는 소리 듣고 저 몰래 우는 준상 씨를 봤어요. 제가 준상 씨한테 얼마나 끔찍한 짓을 저질렀는지 그때 깨달았어요. 준상 씨랑 저 마지막 희망이었어요. 우리 두 사람 예쁜 아기 안고 어머님 찾아뵐 날만 간절히 바랐는데 그런데.. 어머니 저벌을 받나 봐요. 준상 씨 저렇게 만들어서 벌 받고 있나 봐요. 어머니. 용서해 주세요."

혜경의 울음소리에 혜자도 꾹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혜자는 힘없이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혜경이 그런 혜자의 앞으로 다가와 혜자의 손을 붙잡고 흐느끼며 말했다.

"어머니…. 저 용서 안 하셔도 되요. 저같이 나쁜 년 충분히 벌을 받아야 해요. 근데…. 근데요. 어머니. 준상 씨 준상 씨 만이라도 용서해 주세요. 준상 씨. 어머니 그리워했어요. 어머니 상처 준 거 많이 아파했어요. 어머니 준상씨 용서해 주세요…. 제발."

두 사람의 오열 하며 우는 소리에 준호와 동욱. 준상이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병실은 혜경이 쓰러지며 같이 떨어진 물건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고 혜경의 손에 꼽아있던 링거 바늘이 빠지며 바닥에 엎드려 있는 혜경의 손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혜자는 답답한 듯 가슴을 치며 주저앉아 아이처럼 엉엉 소리를 내 울고 있었다.

* * * * *

한 달 후 오늘은 건강을 어느 정도 회복한 혜경이 퇴원하는 날이었다.

똑똑 노크 소리에 퇴원 준비를 하던 혜자와 혜경이 병실 문을 바라보았다. 곧 문이 열리고 연수가 씩 웃으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혜경이 웃으며 연수를 반겨주었다.

"어. 연수 씨 왔어요."

"네. 오늘 팀장님 대신에 형수님을 집까지 무사히 모시고 가려고 왔어요."

"추우니까 이따 맞춰서 준호 차 타고 오라니까 뭐하러 여기로 와. 네가 할게 뭐 있다고."

연수가 웃으며 혜자의 손에 들려있는 짐을 받아들고는 보란 듯이 혜자를 향해 짐을 흔들어 보였다.

"봐요. 어머니 쓸모 있죠."

"그래. 퍽 쓸모 있다."

혜자가 웃으며 말하고는 다른 짐들을 정리하기 시작하자 연수가 혜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형수님. 지금 밖에 눈 진짜 많이 내려요. 진짜 좋죠. 얼른 나가서 우리 눈 봐요. "

혜경이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좋아요. 정말 얼른 나가서 봐야겠어요."

두 사람을 바라보며 혜자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애들도 아니고 눈 오는 게 뭐가 그리 좋다고. 그리고 연수는 언제까지 형수님이라고 부를 거야."

연수가 혜경을 바라보며 머리를 극적이며 말했다.

"아. 그런가. 하긴 그럼 우리 호칭 고칠까요. 형수님."

혜자가 웃으며 연수의 등을 툭 치며 말하고는 병실을 나섰다.

"또 형수님. 언니라고 해야지."

"아. 맞다. 언니. 근데 언니라고 해도 괜찮으시죠."

"그럼요. 그렇게 불러주면 내가 고맙죠."

"에이. 고맙죠 가 뭐예요. 제가 동생인데. 말 편하게 놓으세요."

"그럴까."

그 순간 혜경이 연수를 향해 손을 쑥 내밀었다. 연수가 웃으며 혜경의 손을 맞잡았다.

"고마워. 연수야. 네가 해 준일 준상 씨 한테 다 들었어. 내가 그 상황이었으면 나는 아마 못했을 거야 너무 고마워."

연수와 혜경이 웃으며 서로를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병실 문을 열고 준상이 들어왔다.

"어. 제수씨 왔어요. 이따 저녁에 준호랑 같이 온다고 하던데."

"언니 보고 싶어서 빨리 왔어요."

혜경과 연수가 동시에 웃자. 준상이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아. 이런 믿었던 제수씨마저 우리 혜경이 편…. 아. 이거 점점 식구들 사이에 내 설 자리 막 줄어들어. 섭섭하네요. 제수씨."

준상의 능청스런 표정에 혜경과 연수가 웃자 준상도 두 사람을 따라 소리를 내 웃었다. 세 사람의 웃음소리를 혜자와 동욱이 병실 밖에서 조용히 듣고 있었다. 혜자가 슬며시 눈에 맺힌 눈물을 닦자. 동욱이 혜자의 어깨에 손을 올려 조용히 토닥여주었다.

* * * * * *

혜경의 퇴원을 축하하기 위해 늦게 퇴근하는 준호를 뺀 가족들이 모였다. 식사를 마친 가족들은 술을 좋아하는 동욱에 의해 술자리를 갖게 되었다. 술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혜자. 준상. 혜경은 슬금슬금 잔을 내려놓았지만, 술을 어느 정도 즐기는 연수와 동욱은 동욱이 아껴 두었던 양주까지 가져오며 두 사람만의 술자리가 되고 말았다. 연수는 양주까지는 어떻게 버틸 수 있었지만, 집에서 담근 3년 된 도라지 술에는 기어이 취하고 말았다.

"자. 우리 연수 한잔 더 해라."

"네. 감사히 받겠습니다."

"야. 우리 연수가 나랑 아주 잘 맞아. 오랜만에 술 동지를 만났어. 자. 우리 연수 건배하자. 우리의 우정을 위하여."

"네. 아버님 우리의 우정을 위하여."

연수가 잔을 비우고 내려놓자 동욱이 술에 취해 붉어진 얼굴로 함박웃음을 지으며 다시 연수의 빈 잔에 술을 따르려 하자 혜자가 동욱의 손에서 술병을 빼앗았다.

"그 정도만 해요. 연수도 취하고 당신도 취했어."

동욱이 반쯤 풀린 눈으로 혜자의 손에서 술병을 다시 빼앗으며 연수를 바라보며 씩 웃으며 말했다.

"우리 며느라 왜 이제야 나타난 거야. 내가 집에 술친구가 없어서 얼마나 외로웠는데 이제 이 아버지가 아주 든든하구나! 천군만마를 얻은 거 같다. 자. 그런 의미에서 한잔 더."

연수도 잔뜩 취한 듯 술잔을 들기는 했지만 이미 손은 허공을 헤매고 있었다.

혜자는 연수의 모습을 바라보다 피식 웃으며 준상을 바라보며 말했다.

"준 상아. 연수 준호방에 눕히고 아버지도 방에 눕혀야겠다. 두 사람 다 완전히 취했다."

"네."

연수의 술에 취한 모습에 한참을 웃고 있던 준상이 혜자의 말에 연수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제수씨 인제 그만 일어나시죠."

연수가 준상의 말에 잠시 비틀거리다 갑자기 옷매무새를 다듬더니 혜자와 동욱을 향해 인사를 하며 말했다.

"어머님. 아버님. 저는 인제 그만 집에 가보겠습니다. 다음에 또 올게요. 안녕히 계세요."

연수의 말에 비틀거리며 간신히 앉아있던 동욱이 대답했다.

"그래. 자주와야 한다."

그 말을 끝으로 동욱이 뒤로 벌러덩 넘어지자 주변을 정리하고 있던 혜자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잘들 한다. 앞으로 큰일 났구나. 이제 술국을 2배로 끓이게 생겼네."

준상이 혜자의 말에 혜경을 바라보며 웃었다. 혜경은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연수를 바라보며 준상에게 말했다.

"준상 씨. 연수 힘들겠다. 어서 방에다 눕혀요."

"어. 그래. "

뒤늦게 도착한 준호는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준상을 바라보며 말했다.

"뭐야. 벌써 다 끝났어. 근데 연수는? 주방에 있어?"

준상이 크게 웃으며 준호에게 말했다.

"주방에 있기는 방에서 주무신다."

"잔다고?"

"그래. 그리고 제수씨 아버지랑 친구 먹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그때 주방에서 혜자가 나오며 준호에게 말했다.

"무슨 소리긴. 우리 집에 주당이 하나 늘었다는 소리지."

혜자의 말에 준상과 혜경이 낄낄거리며 웃자 준호는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자신의 방을 향해 걸어갔다. 준호는 방문을 여는 순간 세 사람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드디어 알게 되었다.

방문을 여는 순간 코를 찌르는 술 냄새와 자신의 침대에 대자로 뻩어자는 연수를 보며 준호는 헉 소리만 내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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