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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나다.
"여보."
동욱이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혜자에게 다가가 간신히 버티고 있는 혜자를 붙잡았다. 잠시 혜자는 눈을 감고는 숨을 고르고 있었다. 입술을 꽉 깨물고 있던 혜자가 고개를 들어 준호를 바라보았다.
"언제? 언제 그랬다니."
"어젯밤에 형이 자고 있을 때 였대요. 그래서 형이 발견한 건 오늘 아침 이고요."
혜자가 다시 비틀거리자 준호와 동욱이 혜자를 붙잡아 소파에 안치자. 혜자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는 떨리는 몸을 간신히 진정시키고 있었다.
연수가 혜자의 옆으로 다가가 울먹이는 얼굴로 혜자의 손을 조심스럽게 붙잡았다.
"어머니. 형수님 시간이 없을지도 모른대요. 형수님이 어머니 목소리 많이 듣고 싶어 하실 거예요."
혜자가 고개를 들어 잠시 눈물 가득한 눈으로 연수를 바라보았다. 혜자는 곧 결심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갈아입기 위해 방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동욱이 힘없이 따라 들어갔다.
* * * * * *
병원으로 달리던 준호의 차 안에는 침묵만이 흐르고 있었다. 준호의 차가 병원 주차장에 멈추고 혜자와 동욱은 연수를 따라 중환자실을 향해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세 사람은 곧 중환자실 의자에 홀로 쓸쓸하게 앉아있는 준상을 발견했다. 그 모습에 혜자는 지금까지 간신히 참고 있던 눈물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혜자가 천천히 준상이 앞으로 걸어갔다. 준상이 고개를 들어 잠시 놀란 듯 혜자를 보았다.
"어머니."
혜자는 준상의 지친 듯 처참한 몰골에 꾹꾹 참아내고 있던 울음을 터트리며 준상을 때리며 오열을 하기 시작했다.
"이게…. 부모 버리고 부모 가슴에 피멍 들게 하고 간 결과야."
준상도 혜자의 주먹을 고스란히 받으며 고개를 숙이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죄송해요."
"부모 죽이고 갔으면 잘 살아야지 나 보란 듯이 잘 살아야지. 이 꼴이 뭐니? 이 거지 같은 상황이 뭐냐고. 둘이 서로 떨어지면 죽을 거 같이 하더니 왜 약을 먹어. 왜? "
혜자가 쓰러지듯 바닥에 주저앉아 흐느끼자 준호가 다가와 혜자를 일으키며 연수를 바라보았다.
"연수야. 어머니 좀."
연수와 준호가 오열하는 혜자를 보호자 대기실로 데리고 사라지자. 힘없이 어깨를 떨구고 흐느끼고 있는 준상을 바라보며 동욱이 깊은 한숨을 쉬며 의자에 털썩 주저 앉아 버렸다.
* * * * * *
혜자가 오열을 멈추고 허망한 눈으로 벽에 걸려있는 그림을 바라보며 작은 소리로 속삭이듯 말하기 시작했다.
"준상이 저 녀석 그림을 썩 잘 그렸어. 상도 많이 받았었지…. 그런데 어느 날 혜경이가 운전하던 차를 타고 가다 사고가 났어. 그때 혜경이 다리가 저렇게 됐지. 근데 준상이는 다른 데는 다 멀쩡한데 제일 중요한 손이 작살이 났어. 더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됐다는 거야.
나랑 준상이 아빠는 어떻게든 손 살려보겠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었지. 그래서 결국 미국에서 그런 손을 살린 사람이 있다는 소리를 듣게 된 거야. 그래서 수술 시기까지 잡았는데…. 그런데 준상이 저 녀석이 안 간다는 거야.
혜경이 두고 저 혼자 살겠다고 갈 수 없다는 거야. 그래서 내가 혜경이를 찾아갔어. 제발 수술이라도 할 수 있게 설득해 달라고. 잠시만 준상이 떠날 수 있게 도와달라고. 근데 혜경이가 오히려 부탁하더구나. 준상이랑 떨어트리지 말아 달라고. 준상이 없으면 하루도 살 수 없다고 그날밤에 준상이가 집을 나갔어.
아픈 혜경이 찾아가서 모진 소리 했다고. 그리고 얼마후에 두 사람이 나란히 찾아 왔더구나. 결혼한다고. 근데 그때 웃으며 어머니라고 부르는 혜경이가 참 밉더구나. 아니 화가 났어. 내 아들 손 저렇게 만들어놓고 웃으며 어머니 하는 혜경이 용서가 안 되더구나. 그래서…. 그래서 반대했는데 잘살고 있겠지. 잘살고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꾹 참고 살고 있었는데…. 왜 저렇게 저기에 누워있는 건지..."
연수가 혜자의 떨리는 팔을 붙잡자. 혜자는 손수건에 얼굴을 묻고 다시 소리를 내 울기 시작했다.
연수는 소파 구석에 힘들게 잠들어 있는 혜자에게 코트를 벗어 덮어주고는 살며시 보호자실 문을 열고 나왔다. 연수는 시계를 확인하고는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지금 집에 들러 간단히 준비하면 회사에 늦지 않게 새벽 출근을 할 수 있을 거 같다.
막 병원문을 열고 나올 때였다. 병원으로 들어오던 준호와 연수가 병원문 앞에서 마주쳤다. 준호가 피곤한 얼굴로 놀란 듯 물었다.
"어디가?"
"집에요. 출근준비 하려고요."
그제야 깨달은 듯 준호가 시계를 확인했다.
"어. 이런 미안하다. 데려다줄게."
"아니에요. 택시 타면 금방이라니까요. 어머니 이제야 잠드셨어요. 혹시 모르니까 팀장님 어서 올라가 봐요. 이따 전화할게요."
준호가 연수의 목에 팔을 감고는 연수의 팔을 자신의 허리에 감았다.
"나 지금도 미안해서 미치겠거든. 그러니깐 여기서 더 미안하게 만들지 말지."
"네?"
"네가 여기서 혼자 가버리면 나 미안해서 너 어떻게 보라고. 어서 가자 나. 집에도 데려다주고 회사도 데려다줄 거니까 암말 하지 마."
연수가 살며시 웃으며 준호에게 끌려가다시피 따라갔다. 문득 준호가 연수의 얇은 옷차림을 보고는 발걸음을 멈추고 서서 연수에게 물었다.
"코트 놓고 왔어?"
"아니요."
"그럼. 코트 없이 어제 급하게 온 거야? 이 추운 날?"
"아니요. 어머니 덮을 이불이 없어서 덮어 드리고 나왔어요."
준호가 자신의 코트를 벗어 연수의 어깨에 걸쳐주며 말했다.
"넌 어떻게 매일 이렇게 사람 벅차게 만드냐. 사람 감동 먹이는 것도 재주다."
연수가 무언가 말하려 하자. 준호가 연수를 꽉 끌어안으며 말했다.
"어쩌자고 너 같이 예쁜 녀석이 나한테 왔는지. 나 착한 일 한 것도 없는데. 하늘에 계신 분이 나 진짜 예쁘게 보셨나 봐. 나한테 너 떨어트려 준거 보면 연수야. 진짜 사랑한다. 이렇게 보고 있어도 계속 계속 보고 싶을 만큼."
준호가 잠시 연수를 바라보다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 때였다. 연수가 준호의 얼굴을 밀어내며 말했다.
"팀장님."
"어."
"나. 미안해서 데려다준다면서요. 근데 나 늦었거든요. 자꾸 이렇게 시간 보내다. 이번엔 진짜 나한테 미안한 일 생긴다고요 회사 늦으면 팀장님 많이 미안해야 할 텐데 괜찮겠어요."
"안 되지. 내가 꼭 시간 맞춰서 데려다줄게. 나만 믿으라고."
준호가 소리를 내 웃으며 연수의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연수의 손을 잡고 주차장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 * * * * * *
연수가 퇴근을 하고 막 도시락집을 지날 때였다. 연수는 주머니에 휴대전화를 꺼내 준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연수야.]
[팀장님. 어머니. 아버지 식사 하셨어요.]
[어. 아니. 드시라고 말씀드렸는데 안 가시네.]
[네. 알겠어요. 팀장님이랑 형님도 당연히 안 먹었죠.]
[응. 아직.]
[알겠어요.]
[연수야.]
[네.]
[어제도 한숨도 못자고 회사에서 힘들게 일까지 했잖아. 오늘은 집에 가서 쉬어. 여기 오지 말고. 응. 알았지.]
[팀장님. 혹시 나 귀찮아요?]
[너.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런 말 아닌 거 알잖아.]
[그럼 자꾸 오지 말란 말 말아요. 나 엄청나게 섭섭 하다고요.]
휴대폰 안에서 준호의 웃는 소리가 들리더니 멀리서 동욱이 준호를 부르는 소리가 휴대전화 안에서 들려왔다.
[연수야. 잠깐만. 다시 전화할게.]
[네.]
연수는 전화를 끊고 도시락집에 들어가 주문을 하기 위해 메뉴판을 살피고 있었다. 곧 연수의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연수는 메뉴판에 눈을 두고는 무심하게 전화를 받았다.
[네. 여보세요.]
[연수야.]
연수는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준호의 목소리에 메뉴판에서 고개를 들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팀장님. 왜? 무슨 일 있어요?]
[형수가….]
[네. 형수가 왜요? ]
[형수가 깨어났어. 연수야. 형수가 눈을 떴다고.]
연수는 잠시 놀라서 멍하니 서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도시락집을 뛰쳐나왔다. 아까부터 펑펑 내리던 눈은 아직도 끝없이 내리고 있었다. 연수는 잠시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눈물이 나오는 걸 간신히 참았다. 그리고 혜경이 그렇게 보고 싶던 눈을 볼 수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