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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눈
준호는 시끄럽게 울려대는 벨 소리에 조금씩 잠이 깨기 시작했다. 준호는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침대 옆 작은 탁자에 놓여있는 휴대전화를 들었다. 우진이 였다.
[여보세요.]
[목소리가 왜 이래? 이 자식 너 아직도 자냐?]
[왜?]
[왜라니. 어제 비장한 얼굴로 집에 가더니 성공했나 전화해봤다 잘했냐? 성공했냐고 인마.]
[성공?]
준호는 잠시 멍했던 머리가 맑아지자 그제야 고개를 확 돌려 자신의 옆자리를 확인했다. 옆에 있어야 할 연수가 보이지 않았다. 준호는 작은 탁자의 시계를 들어 시간을 확인하고는 잘못 본 듯 눈을 크게 떠 다시 한 번 시간을 확인하고는 순식간에 침대에서 일어섰다.
시간은 이미 연수의 시험이 끝나기 30분 전이 였다. 준호는 생각할 틈도 없이 우진이 무언가 열심히 말하고 있는 휴대전화를 내팽개치듯 침대에 던지고는 빠르게 욕실로 향해 뛰었다.
* * * * * * * *
"미안하다. 우리 아들이 아파서 나만 찾나 봐. 다음에 만나서 화끈하게 놀자. 오늘 다들 수고했어."
"그래. 언니. 얼른 가봐. 오늘 연수도 약속 있다니까 날짜 잡아서 다시 보자. 언니도 수고했어."
연수가 시험을 마치고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막 걸음을 땔 떼였다. 정문 앞에서 준호가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연수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연수야. 저기 저 사람 네 남자친구 아냐?"
"응.."
"그래. 그럼 여기서 헤어져야겠네. 전화하고. 나간다."
"어. 언니 잘 가."
연수가 준호에게 다가가자 통화를 하고 있던 준호가 차 안으로 들어가라는 손짓을 하며 조수석 문을 열었다. 연수가 차에 타자 준호도 빠르게 운전석에 몸을 실었다.
[어. 형]
[연수 씨. 시험 끝났어.]
준호가 연수를 바라보며 살짝 웃으며 말했다.
[응. 이제 끝났어.]
[지금 출발할 거지.]
[응. 지금 출발할게. 이따봐.]
[그래. 조심해 서와]
준호는 전화를 끊고 연수를 바라보며 미안한 듯 말했다.
"깨우지 않고 왜 혼자 갔어?"
"너…. 무 열심히 자고 있어서 미안하더라고요. 그리고 버스 타면 두 정거장인데 뭐하러 깨워요. 근데 형님이세요."
준호가 차를 출발시키며 말했다.
"어. 형수가 너 많이 보고 싶어 한다고 빨리 오란다."
연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창밖을 바라보다 문득 생각난 듯 피식 웃으며 준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근데. 이제 안 아파요?"
준호가 무슨 소리냐는 듯 웃으며 연수를 바라보다 갑자기 생각난 듯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왜 안 아파 허벅지가 아직도 욱신욱신 쑤시는구만 너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그렇게 무릎 공격을 날릴 수가 있냐? 너 조금만 더 안쪽에 무릎 공격 날렸으면 나 하마터면 남자 구실도 못 할뻔했다."
연수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술 잔뜩 취해서 어제 팀장님 술 냄새 엄청나게 심했다고요."
준호가 연수를 살짝 째려보며 말했다.
"그래도. 취한 사람한테 무릎 공격을 그렇게 심하게 날리다니. 얼마나 심하게 멍들었는지 네가 봐도 아마 깜짝 놀라 뒤로 자빠질 거다. "
연수가 웃으며 입을 삐죽이고는 말했다.
"근데 아프다고 하더니 금방 잠들던데요. 아팠던 거 맞아요?"
"술 취했었잖아. 술 깨고 아침에 얼마나 아팠는지 알아?"
연수가 웃으며 말했다.
"미안해요."
준호가 연수의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말했다.
"괜찮아. 나도 아침에 너 못 데려다 줬잖아."
연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득 생각난 듯 손바닥을 맞부딪쳤다.
"아. 이 말하는 거 또 잊을 뻔 했다."
"뭔데?"
"저기 팀장님 우리 허락받은 거 아직 두 분한테는 말하지 말자고요."
"왜?"
" 그게…. 두분한테 좀 미안해서요."
잠시 말이 없던 준호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준호가 다시 연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근데. 연수야 형은 알고 있어."
"팀장님이 말했어요. 그럼 언…. 언니도 알아요?"
"아니. 아직 오늘 형이 우리 있는 데서 말한다고 했거든 근데 생각해 보니까 네 말이 맞는 거 같다. 이따 도착해서 바로 형한테 형수한테는 아직 알리지 말라고 해야겠다."
연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준호가 연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곤 연수의 볼에 빠르게 입을 맞추고는 떨어졌다.
"예쁘다. 우리 연수."
* * * * * * * *
두 사람은 곧 양평에 도착했다. 곧 네사람은 서로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했다. 잠시후 준상이 무거운 짐을 나를 게 있다며 준호와 잠시 자리를 비웠다. 카페 안에 남은 두 사람은 날로 앞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혜경의 제안으로 두 사람은 바람을 쐬기 위해 잠시 밖으로 나왔다.
카페 밖 벤치에 앉아 연수를 바라보던 혜경이 웃으며 연수에게 말했다.
"연수 씨 많이 예뻐졌어요. 우리 도련님이 진짜 잘하나 보네."
연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혜경이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연수의 이름을 조용히 불렀다.
"연수 씨."
"네."
"축하해요."
연수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혜경을 바라보았다. 혜경은 웃으며 연수에게 말했다.
"두 사람 어머님이 허락받았다면서요."
"아..그게...네."
혜경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연수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뭐야. 연수 씨 나한테 지금 미안해하는 거야?"
연수가 대답이 없자 혜경이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지 마요. 난 그거 안 순간 연수 씨 조금 질투하고 시기했거든. 나 나쁜 짓 했는데 연수 씨가 그러면 내가 연수 씨 한테 매우 미안하잖아. 나 알고 있는 거 준상 씨도 몰라 연수 씨."
연수가 고개를 들어 혜경을 바라보았다. 혜경이 쓸쓸한 눈빛으로 여전히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도련님이 준상 씨한테 보낸 문자를 봤어.."
두 사람은 잠시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잠시 후 혜경이 속삭이듯 연수를 불렀다.
"연수 씨."
"네."
"난 이제 어머님 허락받는 걸 포기해야 할 거 같아."
"언니.."
"병원에서 말이야 연수씨. 나. 이제 아기를 완전히 가질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망가졌대. 준상 씨랑 예쁜 아기 안고 가서 허락받고 싶었는데 이제 안된데. 모두 무리한 짓이라고 의사까지도 말렸는데. 결국 이렇게 돼버렸네."
연수는 혜경의 작은 흐느낌에 혜경을 바라보지도 못하고 입술만 깨물 수밖에 없었다.
"연수 씨. 내가 얼마나 못된 여잔 줄 알아…. 내가 말이야 준상 씨랑 어머님을 떼어놓았어. 내가 욕심에 두 사람을 만나지 못하게 했어..연수씨."
연수가 혜경의 떨리는 손을 붙잡았다. 연수의 손위로 혜경의 눈물이 떨어졌다.
"어머님…. 여기 오신 적 있었어. 연수씨..여기 카페 처음 문 연 날 준상 씨는 그날 바빠서 보지 못 했지만 난 봤어. 멀리서 여기를 보시면서 우시는걸…. 근데 내가. 못본척 했어. 결국, 내가 두 사람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막아버렸어. 무서워서 너무 무서워서. 어머님이 준상 씨 만나면 준상 씨가 날 떠나게 될까 봐 다시 어머니를 보면 혹시 준상 씨가 흔들릴까 봐.. 그래서 어머님 보란 듯 더 행복한 척 열심히 웃었어…. 그리고 아기를 낳으면 될 거라고 그래서 어머님께 예쁜 아기 안겨드리면 우리 두 사람 받아주실 거라고 근데…. 이제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임신을 할 수가 없데.."
연수가 흐느끼는 혜경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떨리는 손을 잡아주는 것 뿐이었다. 혜경의 울음이 조금씩 줄어들고 잠시 후 혜경이 고개를 들어 연수를 바라보았다.
"미안해. 연수씨. 미안해. 근데 누군가한테 이야기하고 싶었어. 누가 들어줬으면 했어. 그게 연수 씨라 미안해. 그냥 내 한풀이라고 그렇게 생각해 줘."
"네. 그럴게요."
연수의 웃는 얼굴에 혜경이 마주 보며 작게 미소를 짓고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눈이 올 거 같더니 결국 오지 않네. 눈 오는 거 보고 싶었는데…."
* * * * * * *
두 사람이 서울로 올라가던길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어. 눈이다."
"눈이 좋아. 아직 애구나. 근데 어쩌냐 나는 우울해진다. 눈이 더 오기 전에 서울에 도착해야 하는데. 걱정이네."
그러나 조금씩 내리던 진눈깨비는 어느새 함박눈이 되었다. 연수는 내리는 흰 눈을 보며 혜경이 보고 싶다던 눈 을보고 조금은 편해지기를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