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한상상
"그러니까요. 남자친구가 그 세 생길 줄 알았나요. 아. 진짜 아깝다 내 30만 원."
"야. 이 자식아 너 벌 받은 거야. 연수 씨 30만 원에 친구한테 홀라당 팔아넘기려고 한 거. 알았냐. 이제 알았음. 조용히 반성하고 밥이나 먹어라."
"그런 거 아니거든요. 그 자식 직업도 탄탄하고 성격도 괜찮아서 연수 씨 해주려고 한 거거든요."
"어련하시겠냐. 그럼 30만 원은 안 갚아도 된다고 들떠있었던 건 뭐냐?"
"그거야. 그건 친구가 고마운 마음에 굳이 안 받는다고 하니까.."
"됐거든..밥이나 먹어라. 확 연수 씨한테 30만 원에 팔려갈 뻔 했다고 말하기 전에.."
"어우..과장님."
아까부터 김대리와 안과장의 대화를 듣고 있던 임부장이 굳어진 얼굴로 밥을 먹고 있는 준호를 슬쩍 바라보며 안과장에게 물었다.
"뭐야? 최연수 씨가 내가 아는 제조 2팀 리더 그 최연수 씨를 말하는 거야?"
밥을 먹고 있던 안과장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근데 김대리가 왜 연수 씨를 30만 원에 누구한테 팔아먹으려고 했는데?"
안과장이 웃으며 임부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부장님. 저 자식이요. 자기 친구한테 최연수 씨 소개해주고 빌린 돈 30만 원 안 갚으려고 했대요."
이야기를 듣던 김대리가 수저를 내려놓으며 얼굴 가득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에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부장님이 오해하시잖아요. 부장님 그게 아니라요. 회사 끝나고 밖에서 친구랑 지나가다 연수 씨를 만났거든요. 근데 그 녀석이 연수 씨 맘에 든다고 소개해 달라고 소개만 해주면 빌린 돈 안 갚아도 된다고 해서 그래서 그런 건데 근데 다 끝났어요."
임부장이 다시 한 번 준호를 살피고는 물었다.
"왜?"
"애인 있대요. 아니 한 달 전쯤에 장난으로 물어봤을 때는 없다고 했는데 왜 하필 이 시점에서 애인이 생길 건 뭐냐고요. 에이 어떤 놈인지 길가다. 돌에나 확 걸려 넘어져라."
안과장이 웃으며 말했다.
"야. 그건 너무 심한 저주 아니냐? 그러다 회사 사람이면 어쩌려고 그러냐? 듣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회사 사람 아니래요."
임부장이 잔뜩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아니래?"
"네. 회사 사람이냐고 물었더니 아니래요."
임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아직도 안타까운 얼굴로 입을 삐죽이고 있는 김 대리에게 말했다.
"김대리 벌 받은 거 맞네. 어서 밥 든든히 먹어라. 그래야 열심히 일해서 김대리 친구한테 30만 원 갚지."
김대리는 수저를 물고는 불쌍한 얼굴로 임 부장에게 말했다.
"부장님."
* * * * * * *
"왜 따라와요. 담배 피우러 안가?"
"야. 내가 어떻게 가냐? 너 걱정돼서 못 가지."
준호가 아까부터 싱글벙글 웃으며 자신의 뒤를 쫓아오는 임부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됐어요. 나 아무렇지도 않거든."
"그렇겠지."
임부장은 짜증스럽게 커피를 마시고 있는 준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근데…. 연수 애인이 너 맞는 거냐?"
임부장은 자신을 째려보고 있는 준호의 눈을 피하며 말했다.
"아니 남자친구가 있는 건 맞는데 회사 사람은 아니라잖아. 연수 애인 너 확실한 거 맞지. 아니 나는 네가 걱정돼서."
"나. 맞거든요. 쓸데없는 걱정하지 마시고 커피나 마시지."
"그러니까 어서 밝히라고 이 자식아. 언제까지 몰래 연애 할 건데?"
준호가 말없이 커피만 마시자 임부장이 웃으며 말했다.
"왜? 연수가 밝히는 거 싫다고 하냐? 하긴 부담되기는 할거다. 그래도 너 안 밝히면 아까처럼 연수한테 들러붙은 놈들 계속 봐야 하는데 괜찮으냐? 조만간 남자사원 들어온다더라. 아마 연수랑 비슷한 나이지. 준호야. 긴장 좀 타야 할 거다. 내 여자 남의 여자 되는 순간 한순간이다. 더군다나 연수가 말이야. 뭐 특별하게 이쁘다거나 그런 건 아닌데 애가 귀염성이라고 해야 하나 여하튼 뭔가 사람을 한 번 더 돌아보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단 말이야. 너 근데 그거 알고있냐? 연수의 그 매력이 예쁜 얼굴 가진 여자보다 더 무섭다. "
"그만하지."
"그러니까 이 자식아, 당당하게 내 여자라고 말하고 사귀라고 아니면 얼른 도장을 찍던지."
한참을 멍하니 있던 준호가 시계를 확인하더니 손에 있던 종이컵을 구기며 말했다.
"점심시간 얼마 안 남았어요. 나 먼저 가볼게. 천천히 마시고 오시죠."
임부장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무참히 구겨진 종이컵을 휴지통에 처박아 버리고 휴게실을 나가는 준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살며시 웃으며 작게 속삭였다.
"이제 슬슬 국수 좀 먹으려나?"
* * * * * *
"안녕하세요."
"어. 팀장님이다. 팀장님 얼굴 까먹겠다. 자주 좀 내려오세요."
"네. 그런데 리더분은 안 보이시네요."
준호는 크리닝 룸에 연수가 보이지 않자 여사원에게 웃으며 물었다
"아. 연수요. 룸에 가보세요. 룸에 있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준호는 웃으며 인사를 하곤 리더 룸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룸 안에는 고개를 숙이고 스케쥴을 확인하고 있는 연수 뿐이었다. 준호는 연수에게 다가가 주먹을 쑥 내밀었다.
연수가 놀란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곧 준호를 발견한 연수가 반갑게 준호를 반겨주었다.
"어. 웬일이에요. 아까 전화로 오늘 바빠서 못 내려오니까 보고 싶어도 참으라더니."
"시간이 잠깐 나서 네가 나 정말 보고 싶어 할 거 같아서 왔지."
연수가 웃으며 자신 앞에 있는 준호의 주먹을 가리키며 말했다.
"근데 이건 뭐예요?"
"손펴봐."
연수가 손을 펴자 연수의 손 위에 립밤 떨어졌다. 연수가 잠시 립밤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자 준호가 연수의 앞에 앉으며 기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왜? 감동 먹었어. 나 완전히 멋있지. 네 남자친구가 이런 사람 이라고 이렇게 세심하고 자상한 남자친구 봤어? 이거 자주 발라 겨울이라 입술 건조해서 너 자꾸 터지잖아."
연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머니에 립밤을 넣었다. 그런 연수를 바라보던 준호가 말했다.
"뭐야? 이 반응은?"
"네?"
"너 이거 내가 몇 시간 동안 인터넷에서 찾은 줄 알아. 겨우 좋다는거 알아내서 이 추운 날 백화점까지 가서 사 왔더니. 이 힘 빠지는 반응은 뭐냐고."
"아…. 그게 "
연수는 준호를 잠시 바라보더니 주머니에 손을 넣어 다섯 개의 립밤을 꺼내놓았다. 연수가 꺼내놓은 립밤 중에는 준호가 산 상표의 립밤도 보였다.
"이게 뭐야?"
"세심하고 다정한 사람들이 준 거예요. 근데…. 내가 진짜 입술이 불쌍해 보이기는 한가 봐요. 보는 사람마다 주던데요."
준호가 연수가 꺼내놓은 립밤을 바라보다 다섯 개의 립밤을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어 그게 왜 거기로 들어가요?"
"내 것만 써. 이건 내가 가져가서 다른 입술 불쌍한 사람들한테 나눠 줄 테니까. 물론 남자만."
연수가 웃으며 다시 고개를 숙이고 스케쥴에 눈을 돌렸다. 준호는 은근슬쩍 연수의 앞에 있는 의자를 빼고는 앉았다.
"팀장님. 안가요? 안 바빠?"
"바빠. 너 오늘 회사 끝나고 뭐하나 궁금해서."
"끝나고 집에 가야죠."
"그럼 우리 집으로 가."
"왜요?"
"왜라니. 너 때문에 집 뺏겨서 짐 정리 해야 하는데 나 바쁘잖아. 옷장에서 옷만 정리하면 되니까 네가 해줘."
"팀장님 지금 하나도 안 바빠 보이는데요."
"바쁘거든 이따 끝나고 곧장 집으로 갈 테니까 우선 네가 먼저 천천히 정리해놔 그럼 내가 가서 정리 못 한 나머지 같이하면 되잖아."
"옷장에 있는 것만 정리하면 되는 거죠."
"어. 상자랑 다 가져다 놨으니까 계절별로 그냥 담아두면 될 거야. 아. 그리고 지금 입는 건 가방 따로 꺼내놨으니까 거기다 속옷이랑은 넣어두면 되고."
"속옷도요?"
"응. 몇 벌 남겨두고 정리해야지."
"그…. 그건 팀장님이 와서 해요."
"왜?"
"속옷은 좀..."
"응큼하긴.."
"뭐..뭐가 응큼해요."
"그래 알았어. 근데 연수야 너 옷 정리 하다가 내 속옷 발견하고 막 놀라면 안 된다. 그거 보고 막 내 상상하면 안 된다고."
"그런 거 안 하거든요."
"그래. 믿어보마. 그럼 이따 집에서 보자. 근데 진짜 걱정된다."
"뭐가요?"
"나 야한 속옷 엄청나게 많은데.. 네가 그거 붙들고 안 한다고는 하지만 너도 모르게 막 야한 상상 할까 봐."
"됐거든요."
준호는 웃으며 연수의 빨개진 얼굴을 보며 연수가 귀엽다는 듯 연수의 볼을 툭 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연수에게 손을 흔들고 빠르게 리더 룸을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