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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대신..
"이 정도 썼으면 정신 좀 차렸으려나."
지하 주차장을 걸으며 혜자가 연수를 바라보며 물었다. 연수가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연수를 바라보던 혜자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냐. 아직 정신 못 차렸을 거 같다. 우리 마지막으로 마트나 한 바퀴 돌까?"
연수가 웃으며 대답이 없자. 혜자가 얼굴을 한껏 찡그리며 물었다.
"너. 설마 여기서 발 빼려는 거 아니지?"
"네?"
"같이 했으니까. 죽어도 같이 죽어야지. 나 내 아들이지만 나 준호 엄청나게 무섭다. 같이 갈 거지 마트?"
연수가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죽어도 꼭 같이 죽을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혜자가 웃으며 운전석에 올랐다. 곧 연수가 차에 타자 혜자의 차는 지하 주차장을 빠르게 빠져나왔다.
* * * * * *
두 사람은 카트에 이것저것을 담으며 마트를 천천히 돌고 있었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해줄게."
"지금 딱히 생각 나는 게 없어요."
혜자가 물건들을 살피며 연수에게 물었다.
"그럼 제일 좋아하는 게 뭐야?"
"된장찌개랑 호박 볶음이요."
"된장찌개랑 호박 볶음? 입맛이 너무 어르신이네. 왜 그런 게 좋아. 네 나이 때는 대부분 스파게티 피자 아니니?"
혜자가 웃으며 연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곧 연수가 웃으며 대답했다.
"엄마가 마지막 해주신 음식이거든요. 그래서 엄마보고 싶을 때 마다 먹다 보니까 이젠 진짜 된장찌개랑 호박 볶음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돼버렸어요."
혜자는 잠시 웃고 있는 연수를 바라보다 다시 카트를 밀었다. 그리곤 아무 말 없이 된장찌개 재료를 카트에 넣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곧 카트가 가득 차서야 멈춰 섰다.
"자. 이만하면 저녁 거하게 먹겠다. 이제 집으로 가볼까?".
"네."
두 사람은 카트를 천천히 밀고 계산대로 향해 다가갔다.
* * * * * *
"어머니 저 뭐 할까요?"
손을 씻고 온 연수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혜자에게 물었다.
" 거기에 앉아있어. 재료 다듬어야 하니까."
"네."
그러다 혜자가 곧 생각난 듯 연수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 맞다. 연수야. 너 준호한테 여기 있다고 연락했니?"
"아니요."
"그럼 어서 전화 먼저 하고 와. 바쁘면 할 수 없지만 잠깐이라도 짬내서 저녁만 먹고 가라 해. 나도 아버지한테 일찍 들어오라고 전화해야겠다."
연수가 대답하고는 전화를 걸기 위해 거실로 나왔다. 곧 준호의 목소리가 휴대전화 너머로 들려왔다.
[뭐야. 너 쉬는 날인데 뭐하느라 이제야 전화해. 지금 어디야?]
[집이요. 근데 팀장님.]
[응. 왜?]
[오늘도 아주 바쁘죠? ]
[최연수 또 그런다. 아무리 바빠도 네가 부르면 언제든 달려간다니까. 왜? 지금 막 내가 보고 싶어진 거야? 갈까? ]
[네. 얼른 오세요. 팀장님 엄청나게 보고 싶어요.]
[너. 누구야? 우리 연수 맞아?]
[네. 팀장님 연수 맞아요. 근데 진짜 올 거예요? 올 수 있어요?]
[사실 나 지금 끝나서 주차장 앞이야. 너 보러 갈려고 지금 막 전화 하려던 참이었는데 네가 먼저 한 거야.]
[잘됐다. 그럼 얼른 집으로 오세요.]
[응. 알았어. 저녁 먹지 말고 기다려.]
[네. 근데 팀장님 우리 집 말고 다른 집으로 오세요.]
[어디? 너 지금 어딘데?]
[평창동 집이요.]
[평..우리 집?]
[네. 어머니가 맛있는 거 엄청나게 많이 하신대요.]
[연수야. 너 혼자 괜찮아?]
[뭐가요?]
[나 없이 불편하지 않느냐고.]
[당연하죠.]
[그래. 알았어. 조금만 기다려 바로 갈게.]
[조심해서 천천히 오세요.]
[그래. 알았어.]
준호는 전화를 끊고는 아직도 기계에 매달려 끙끙대고 있는 팀원들을 잠시 바라보았다. 이내 준호는 팀원들에게 다가갔다.
[그만하고 퇴근하자.]
[네?]
팀원들이 의아한 듯 준호를 바라보았다.
[안 되는 거 낑낑대면 뭐하냐? 차라리 집에나 가자.]
[진짜로요?]
[속고만 살았냐? 어서 퇴근 준비들 해.]
팀원들의 야호 소리에 준호는 다급하게 말아 올렸던 소맷단을 풀어 내렸다. 코트와 가방을 집어들고 준호는 팀원들의 인사도 제대로 받지 않고 사무실을 급하게 빠져나왔다.
* * * * * *
퇴근 시간이라 준호는 평소보다 30분이나 늦게 도착했다. 준호는 주차를 시키고 급하게 초인종을 눌렀다. 안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저예요."
삑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준호는 잽싸게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로 가족들이 보이지 않자 준호는 소리가 나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음식을 나르고 상을 차리던 동욱과 연수가 준호를 발견하고는 동시에 말했다.
"왔니."
"팀장님. 오셨어요."
어리둥절한 준호가 연수를 바라보았다. 연수가 웃으며 준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팀장님 손 안 씻었죠. 얼른 손 씻고 오세요. 진짜 맛있는 거 많아요."
"그래 알았어."
욕실로 가는 준호는 뭔지 모를 행복감에 그리고 해맑게 웃어주던 연수가 너무 예뻐서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준호와 동욱이 거실로 나오고 그 뒤로 연수와 혜자가 후식을 들고 나왔다. 연수가 준호의 옆에 앉자 준호가 손을 뻗어 연수의 손을 잡았다. 연수가 웃으며 준호를 잠시 바라보았다.
네 사람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잠시 웃고 떠들었다. 그러다 혜자가 웃으며 조용히 연수를 불렀다.
"연수야."
"네."
"준호한테 들었는데..같이 사는 언니가 시집간다고."
"네."
"그럼 이사를 해야 하는 거지?."
"아니요. 계약 기간이 아직 남아서 언니가 그때까지 집을 그냥 두기로 해서요..."
"연수야."
"네."
"이사해."
"네?"
"계약 기간 남았다고 거기 혼자 있기도 불편하잖아. 안 그래."
"네. 그래서 저도 지금 천천히 알아보고 다니고 있어요."
"집이 있는데 뭐하러 힘들게 알아보고 다니는데?"
"네?"
"준호 집 말이야. 준호가 지금 사는 아파트로 들어가라고."
연수가 놀라 두 배로 커진 눈으로 말했다.
"어머니."
"물건도 하나 살 필요 없다. 다산지도 얼마 안 되고 저 녀석이 또 쓰질 않아서 다 새것이야."
"어머니.그..그건 아닌 거 같아요."
"왜 아닌 거 같아? 준호만 괜찮으면 되잖아."
"그. 그게 그럼 팀장님은 어디서 살아요?"
"별 걱정을 다 한다. 연수야. 여기가 준호 집이란다. 한준호 너 아파트 연수한테 넘기고 집으로 들어와. 왜? 불만 있어?."
혜자가 바라보자 ㅍ준호가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알겠습니다."
혜자가 당황한 얼굴로 앉아있는 연수에게 말했다.
"연수야."
"네."
"내가 걱정돼서 그래. 준호한테 들으니까 골목도 많고 밤에 퇴근 할 때는 동네가 어둡다며 방범도 허술하고."
"아니에요. 그 정도는 아닌데.."
"연수야. 네가 성인인 건 알겠는데. 그래도 어른들이 말하면 네 하고 듣는 거야. 준호가 널 집으로 데려온 순간부터 우리가 너희 부모님 대신이야. 그러니까 우리말 듣고 이사해 알았지. 그리고 준호는 연수 빨리 아파트 들어갈수 있게 네 짐은 일요일까지 빼고 알았니."
"네."
연수가 당황한 얼굴로 뭐가 그렇게 좋은지 웃으며 대답하는 준호를 바라보다 한숨을 크게 쉬고는 고개를 숙여 버렸다. 혜자가 그런 연수를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다가 말했다.
"자. 내일 출근들 해야 하니까 각자 흩어지자."
혜자의 말에 동욱이 일어서고 연수와 준호도 일어나 두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차 저 앞에 있어. 가자."
준호가 연수의 손을 잡고 걸으려 했지만 연수가 버티고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왜?"
"팀장님 짓이죠?"
"뭐가?"
연수가 준호에게 가까이 다가와 말했다.
"한의원도. 집도다."
준호가 연수의 눈을 피하며 마른침을 삼키며 말했다.
"무…. 무슨 소린지 도통...."
그때였다. 연수가 준호에게 와락 안겨왔다. 그리고는 준호의 가슴에 얼굴을 박고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팀장님."
준호가 미소를 지으며 연수를 꼭 안아주었다. 그리곤 연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내가 고마워…. 연수야 내가 더 고마워."
준호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연수가 흘리는 눈물과 콧물로 준호의 셔츠가 빠르게 젖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