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 늙은이 연수
"어때 잘 나올 거 같아?"
준호는 기계의 안쪽을 살피고 일어나 접어두었던 소매를 풀어내라며 물었다.
"어때 잘 나올 거 같아?"
"작업 해봐야 알겠지만, 이번에는 잘 될 거 같은데요."
"마지막 부속 교체한 거 꼼꼼히 확인하고."
"네."
준호는 시계를 확인하고는 기계의 안쪽을 살피고 있는 안과장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수고했어. 우선 저녁 먹고 내일 2팀으로 내려갈 수 있게 마무리하자고."
"네."
"나는 약속 있어서 밖에서 먹고 올 테니까. 먼저들 가서 먹고 오라고."
준호의 말에 팀원들이 사라지고 홀로 사무실로 돌아온 준호는 책상에 놓여있던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곧 휴대전화 안에서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아버지.]
[그래. 무슨 일이냐?.]
[오늘 집에 일찍 들어오시나 해서요.]
[별일 없다만. 왜?]
[집에서 말씀 드릴게요.]
[왜? 무슨 일이야? 혹시 연수 일이야?]
[뵙고 말씀 들일께요. 저 지금 출발해요. 아버지.]
[그래. 알았다. 이따 보자꾸나.]
준호는 코트를 입은 후 차 키를 집어 들고 빠르게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 * * * * * *
"연수야. 안가? 옷도 안 갈아입고 뭐 하고 있어?"
연수는 근무가 끝나고 작업복을 갈아입을 생각도 안 하고 탈의실 의자에 앉아 휴대전화를 보며 입술만 깨물고 있었다.
"어. 이제 갈아입어야지."
"너. 무슨 일 있어?"
"아냐. 언니들 먼저 가. 나 나중에 나갈게."
"그래. 그럼 내일 보자."
"어. 내일 봐."
연수는 사람들이 사라진 텅 빈 탈의실에 앉아 드디어 결심한 듯 휴대전화에 있는 정수의 번호를 눌렀다. 몇 번에 신호음에 드디어 정수의 딱딱한 목소리가 들렸다.
"왜?"
"어디야? 준혁 오빠랑 같이 있어?"
"네가 무슨 상관인데. 네가 나 언제부터 신경을 썼다고."
"언니."
"자꾸 왜 불러 할 말 있으면 어서 하고 끊어. 우리 사이에 할 말도 없겠지만."
"언니. 나 배고픈데 우리 밥 먹을래. 아까 너무 바빠서 점심도 못 먹었어."
잠시 조용하던 휴대전화에서 곧 정수의 화가 난 목소리가 들렸다.
"뭐. 대단한 일 한다고 밥도 못 먹고 일하는데."
"그러니까. 나. 지금 엄청나게 배고픈데. 나 언니 없으면 아무리 배고파도 귀찮으면 안 먹는 거."
"지금 어딘데?"
"회사."
"끝난 지가 언젠데 뭐 한다고 아직 회사에 있어. 기다려 내가 지금 출발할게. 20분정도 지나서 천천히 나와. 날씨 추운데 괜히 미리 나와서 감기 걸리지 말고 알았냐."
"어. 알았어."
* * * * *
보글보글 맛있게 끓어오르는 찌개를 앞에 두고도 정수와 연수 누구도 숟가락을 들지 못하고 있었다. 보다 못한 정수가 연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말했다.
"먹어. 배고프다며."
"어."
정수에 말에 연수가 숟가락을 들어 찌개를 맛봤다.
"맛있다. 언니도 먹어봐."
그제야. 숟가락을 들었던 정수가 연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 집 취소한다고 전화했어?"
연수가 정수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자 정수가 답답한 듯 다시 물었다.
"취소했냐고. 최연수"
"아직."
정수가 딱 소리가 나게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너..진짜 이럴래. 사람을 어디까지 화나게..."
"할게."
"뭐?"
"취소한다고…. 전화할게."
정수는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흘리는 연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계집애 왜 울어? 그 집 취소하는 게 억울해서 우냐?"
"아…니. 미안해서…. 너무 미안해서…. 언니한테도 팀장님한테도 다 미안해서."
정수는 자신도 울음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고 연수에게 말했다.
"그만 울어 밥 먹어. 배고프다며."
두 사람은 말없이 천천히 밥을 먹기 시작했다. 연수가 먹는 모습을 바라보던 정수가 자신의 밥을 반 정도 퍼서 연수의 그릇에 놓아 주며 말했다.
"너 부족하잖아. 아빠가 너한테 처음 반한 이유가 두 그릇씩 비우는 너의 식성 때문이었잖아. 기억나냐?"
연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최연수. 이번일 아빠·엄마한테 말하면 두 분도 마음 엄청나게 아프실 거다. 두 분한테 너 막내딸인 거 알지. 너 시집갈 때 부모님 자리에 앉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야. 물론 네가 싫을진 모르지만."
"그런 말이 어딨어. 나는 감사하지. 두 분이 그렇게 생각해 주시는 게 너무너무 감사하지."
"연수야."
"응"
"나는 네가 진짜로 마음에 걸려."
"어디 멀리 떠나는 사람 같잖아."
정수가 피식 웃으며 연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얼마나 언니의 걱정거리면 이러겠냐."
"미안해."
"연수야. 너 이제 고작 23살이야. 너 그거 알아. 가끔 너 30대 아니 50대 같은 거 사전 수전 다 겪은 애 늙은이 같다고. 네 주위에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고. 왜 그렇게 아등바등 혼자서 해결하려고 하는데. 연수야...
"알아. 언니가 무슨 말 하는지. 언니한테 3년이 넘게 혼나고 욕먹었는데 내가 모를까 봐."
"알면 좀 고치자. 나. 이제 팀장님이 불쌍해진다. 너는 잘 모르겠지만 너 가끔 네 옆에 있는 사람 무능력하게 만드는 거 알고 있기는 하냐. 그거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 참 슬픈 일이다."
연수가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조용히 끄덕였다.
"연수야. 나 요즘 팀장님한테 아주 고맙다. 네 옆에 있어 줘서 말이야. 그러니까 팀장님 슬프게 만들지 마. 응. 알았느냐고."
연수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수가 그런 연수를 바라보며 한숨을 크게 쉬며 말했다.
"어서 먹어. 다 먹고 우리 파전이나 먹으러 가자."
* * * * * * *
"웬일이니? 퇴근하고 온 거야?"
혜자가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있는 준호를 맞이하며 물었다.
"아니요. 다시 들어가 봐야 해요."
"근데 무슨 일로 왔어?"
"집에서 저녁도 먹고 어머니 아버지한테 들일 말씀도 있고 해서요."
혜자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준호에게 물었다.
"무슨 일 있는 거야?"
"아니에요. 큰일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지 곧 들어오신다고 했으니까 아버지까지 오시면 말씀드릴게요."
"그래. 알았다. 우선 배고플 테니까 저녁부터 준비해야겠다."
혜자가 주방으로 사라지고 잠시 후 동욱이 퇴근하고 들어오자 세 사람은 식탁에 앉았다.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맛있게 밥을 먹는 준호와 달리 혜자와 동욱은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준호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