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결혼하고 싶은 남자-104화 (104/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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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의 마음

"놀이터 근처에 내 차 주차 돼 있어. 잠깐 차에 가 있어."

준호는 연수에게 차 키를 내밀며 말했다. 연수가 차 키를 바라만 볼 뿐 잡을 생각을 하지 않자. 준호는 직접 연수의 손에 차 키를 놓아 주었다. 연수는 소파에 앉아 훌쩍이는 정수를 울 거 같은 눈으로 잠시 바라보다 고개를 떨구고는 힘없이 뒤돌아섰다.

준호는 연수의 힘없는 뒷모습이 자꾸만 신경이 쓰여 문앞까지 따라 나왔다.

"정수 달래고 준혁이 오는 것만 보고 차로 바로 갈게. 딴 데 갈 생각 말고 알았지."

연수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준호는 연수가 계단을 내려가기 전 다시 한 번 연수를 붙잡았다.

"절대 다른 데 가지 말고. 차로 곧장 가 알았지."

연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준호는 잡고 있던 연수의 손을 놓아주었다. 준호는 집 안으로 들어가기 전 준혁에게 전화를 해 집으로 올 수가 있는지 물었다. 다행히 준혁의 올 수 있다는 대답을 들은 준호는 그제야 정수가 있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탁자에 물 한잔을 놓으며 준호가 정수의 앞에 앉았다.

"둘이 무슨 일이야?"

정수가 휴지로 눈물과 콧물을 동시에 닦으며 코맹맹이 소리로 대답했다.

"저 계집애. 진짜 나쁜 계집애야."

"정수야."

"나만 지금까지 미친년처럼 내 가족 내 동생이라고 생각했어. 저 계집애는 나 결혼하고 이 집에서 나가면 영영 끝이라고 생각하는 거였다고."

준호가 말없이 정수를 바라보았다. 정수가 코를 훌쩍이며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나 회사 그만두고 몇일후부터 애가 회사 끝나고 자꾸 늦는 거야. 근데 팀장님도 바빠서 자주 못 보는데 말이야. 그래서 어디서 맨날 늦느냐고 물었는데 자꾸 시험 때문에 스터디 핑계를 대더라고."

정수가 잠시 눈물을 닦으며 준호가 가져온 냉수를 들이켰다.

"그때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얼마 전에 못 가져온 물건도 있고 사람들도 자꾸 얼굴 좀 보자고 해서 잠깐 회사를 갔는데. 연수를 아는 친구 하나가 자기네 동네 부동산에서 연수를 봤다는 거야. 그날 연수한테 물었더니 그제야 이야기하더라고 나 결혼하면 돈 들어가는데도 많은데 이 집에 묶어놓을 필요 있느냐고. 집도 정리하라는 거야."

잠시 숨을 고르던 정수가 코를 휴지로 닦으며 준호에게 물었다.

"이게 말이 되는 거야? 어. 저 계집애 나 지금까지 그냥 아는 회사 언니로 생각한 거야. 아니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그날 생각이 나는지 정수가 다시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한참을 쏟아내던 정수가 조금씩 진정이 되는지 다시 코맹맹이 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날 연수 나한테 엄청나게 맞았어. 그런 소리 다시 한 번 하면 진짜 안 본다고까지 했는데……. 그래서 마음 놨는데…. 요즘 공부에 회사 일에 힘들었는지 입술도 터지고 얼굴도 안 좋아 보여서 내가 결혼식 준비 때문에 연수한테 관심을 못써준 게 미안하더라고 그래서 오늘은 맛있는 것 좀 해먹이려고 한복만 맞추고 일찍 들어왔는데…. 나도 모르게 잠들어 버렸거든 집안에 불이 안켜져 있으니까 내가 없는 줄 알았나 봐.

연수가 통화를 하더라고. 근데 그게 누구랑 통화한건지 알아? 세상에 부동산 사람이더라고. 누구랑 통화한건지 무슨 말이냐고 물었더니. 뭐라고 하는지 알아. 반지하에 월세로 집 얻었데. 여기 들어간 자기 돈 급한 거 아니니까 미리 안 줘도 되니까 신경을 쓰지 말래. 이게 날 조금이라도 언니로 생각한 애가 하는 소리가 맞느냐고 팀장님."

정수는 또다시 엉엉 울기 시작했다. 준호는 울고 있는 정수를 달랠 생각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우는 정수만 바라보고 있었다. 정수가 울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준호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곧 준혁이 도착해 우는 정수를 달래는 걸 확인한 준호는 집을 나와 차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차에 가까워질수록 준호의 가슴에 돌덩이 하나가 들어간 거 처럼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차에 도착한 준호는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아무렇지 않은 척 조수석에 가까이 다가갔지만 차 안에 있어야 할 연수의 모습 대신 연수의 가방만이 덩그러니 의자에 놓여있었다.

준호는 빠르게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연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연수는 놀이터 안에서 쪼그리고 앉아 바닥에 낙서하고 있었다.

준호가 조용히 다가가 자신의 코트를 벗어 연수에게 덮어 주고는 연수 앞에 자신도 쪼그려 앉았다.

"왜 이러고 있어? 날씨 엄청나게 춥구만. 차에서 히터 틀고 앉아있지."

연수가 대답 대신 고개를 더 숙여버렸다.

"우리 기분도 안 좋은데 네가 좋아하는 동동주에 파전 먹으러 갈래?"

연수가 고개를 숙인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럼 뭐 해줄까?"

연수가 대답이 없이 바닥에 계속 낙서만 하고 있자. 준호가 다시 연수에게 물었다.

"너 혹시 내가 갔으면 좋겠어? 나 없이 너 혼자 있고 싶은 거야?"

연수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준호에게도 들린 듯 말듯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준호는 피식 웃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는 짧은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좋아. 그럼 고개 들고 얼굴 보여줘 너 나한테 네 얼굴 보여준 게 벌써 언젠지는 알아? 오늘 너 찾아서 이렇게 왔는데 얼굴은 보고 가야 하지 않겠어. 그러니까 얼굴 보여줘. 그럼 생각해 볼게."

그제야 연수가 고개를 들어 준호를 보았다. 미소 짖고 있던 준호의 얼굴이 점점 딱딱하게 굳어지고 있었다. 자신이 못 본 동안 도데체 혼자서 얼마나 고생하고 다녔는지 얼굴이 반쪽이 돼 있었다. 더군다나 입술까지 터져 딱지가 커다랗게 입술 가장자리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준호는 연수의 팔을 덥석 잡아 일으켰다. 연수가 당황한 얼굴로 준호에게 말했다.

"혼자 있게 해 준다면서요?"

"내가 언제? 나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생각해 본다고 했지. 너 혼자 있게 해준다고 한 적은 없어."

준호가 연수의 팔을 억지로 끌어당겼다. 연수가 끌려가지 않으려는 듯 힘을 주며 말했다.

"안 해요. 팀장님. 저 지금 진짜 팀장님하고 같이 있고 싶지 않아요."

"왜? 왜 나랑 있기 싫은데?"

연수가 잠시 생각하다 망설이듯 대답했다.

"창피해요. 팀장님한테 보이는 지금 이 상황이 내 모습이 창피해요."

준호는 자신도 모르게 딱딱하게 굳어진 얼굴로 연수에게 말했다.

"창피? 지금 창피하다고 한 거야. 도데체 너한테 나는 뭐니? 너한테 내가 그냥 지나가는 하찮은 동네 사람 정도 인 거야? 아니면 어떻게 창피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느냐고. "

연수는 아무 말도 못하고 준호만 바라보고 있었다.

"최연수. 사람이 힘들고 지칠 때는 사랑하는 사람한테 위로받고 그 사람 품에서 실컷 울고 싶은 게 당연한 거 아냐? 근데 너는 뭐야? 창피하니까 나를 피하고 싶다고? 연수야.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서 말이야. 네가 대답 좀 해주라. 너한테 내가 어떤 존재인지. 네가 날 사랑은 하는지. 속 시원히 말 좀 해보라고."

연수가 빨개진 눈으로 준호를 바라보았다.

"죄송해요. 근데 나 진짜 이런 모습 팀장님한테 보여주는 거 진짜 싫어요.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이런 생각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는데 팀장님을 만나고 자꾸만 내 현실이 보여요. 그래서 내가 팀장님 앞에만 서면 자꾸만 작아져요. 팀장님하고 같은 크기로 좋아하고 싶은데…. 그래서 팀장님한테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데…. 왜 자꾸만 이런 일이 생기는지 나도 나도 진짜 힘들다고요."

"그래서…. 그래서 이렇게 안 좋은 모습 보여줄 때마다 나한테 계속 도망칠 거야? 연수야. 내가 네 옆에 있는 이유는 네 완벽한 모습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야. 내가 있는 이유는 네가 힘들 때 네가 아플 때 네가 괴로울 때 네 옆에서 안아주고 위로해주고 보듬어 주라고 있는 거라고. 그러니까 이용해. 나는 연수야. 네 이야기 다 들어주고 안아줄 준비가 돼 있어. 그러니까 언제나 너만 바라보고 있는 나한테 제발 기대라고."

준호는 잠시 연수를 바라보다 잡고 있던 연수의 손을 잡아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 연수의 작은 몸이 힘없이 준호의 품에 안겨왔다. 준호는 연수의 작은 몸이 안쓰러워 더 꽉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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