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결혼하고 싶은 남자-103화 (103/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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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

"너 도데체 요즘 왜 이렇게 바쁘냐?"

"이제 기말고사잖아. 왜? 준비하는데 힘든 거 있어? 뭐 도와줄까?"

"준비할 게 뭐 있냐. 거의 다 했어."

"냉장고 내가 사줄 거니까 언니 안 바쁠 때 나 끝나고 오면 같이 가서 고르자."

"난 항상 안 바쁘거든. 요즘 네 얼굴 보기가 힘들거든요."

"뭐야? 준혁 오빠가 잘 안 해줘. 왜 아침부터 출근하는 나한테 이러실까?"

"됐어. 계집애야."

연수가 손목시계를 확인하고는 정수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

"나 필요하면 언제든지 이야기해. 바로 달려올게. 오늘 하루도 우리 조카랑 준혁 오빠랑 잘 지내고 이따 봐."

"조심해서 갔다 와. 그리고 저녁에 얼굴 좀 보자. 알았어."

"어. 다녀올게."

정수는 급하게 나가는 연수의 뒷모습이 사라지고 나서야 자신도 외출 준비를 하기 위해 욕실로 들어갔다. 정수가 준혁에 집에 인사를 드리고 난 후 결혼 날짜가 빠르게 결정이 났다. 준혁은 근무시간이 자주 바뀌는 정수가 힘들 거라 판단한 준혁의 끈질긴 설득에 정수는 회사를 끝내 그만둬야 했다.

* * * * *

카페에 문이 열리고 연경이 들어와 연수네 테이블에 앉으며 말했다.

"에이. 더럽게 춥네. 이러다 조만간 눈 내리겠어."

"아우. 눈 내리면 짜증 나는데. 길바닥도 더러워지고."

연수는 읽고 있던 프린트물에서 고개를 들고는 입을 삐죽이며 앞에 앉아 아직도 내리지 않은 눈을 이야기하며 투덜거리고 있는 언니들에게 말했다.

"아. 노친네들 하고 같이 못 놀겠네. 눈이 오면 아. 예쁘다. 낭만적이다. 옛날 추억이 떠오른다. 이게 먼저 아냐? 길바닥에 녹으면 더러워서 싫네 바닥이 미끄러워 운전하기 힘드네. 이게 뭐냐?"

"야. 어리디어린 너나 낭만 찾고 추억 찾아라. 우리처럼 애 둘 셋씩 있어봐라. 낭만이고 추억이고 그거 똥 닦는 휴지로도 안 쓴다."

연수가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언니들 만나면 내 감수성이 밑바닥까지 가라앉아. 책임져. 순수하고 깨끗해야 할 나이에 언니들을 만나 현실을 먼저 알아가는 내가 불쌍하지도 않으냐?"

연경이 웃으며 앞에 놓인 펜을 들어 연수의 머리를 툭 쳤다.

"감수성 좋아하네. 감수성 예민한 년이 붙어 다니기 좋은 이런 날 이 시간에 남자 친구도 안 만나고 아줌마들하고 카페에 앉아서 프린트물이나 나누고 있냐."

"아파."

연경이 웃으며 펜을 내려놓으며 연수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아프라고 때린 거야. 근데. 너."

"뭐?"

"어제 뭐 했어?"

"왜?"

"니 입술 왜 터져있어. 너 어제 남자친구랑 뭐했어? 어제 남자친구랑 너무 정열적인 밤을 보낸 거 아냐?"

옆에 앉아 연경의 말을 듣고 있던 해숙이 연경의 옆구리를 찌르며 말했다

"애 앞에서 못 하는 소리가 없다. 연수 퇴근하면 방 알아보고 다니잖아. 공부도 해야 하고 출근도 하고 방도 알아보러 다니고 저렇게 바쁘니 입술이 안 터지고 배겨."

"아직도 안 구해진 거야?"

"알아보고 있어."

"그러니까 우리가 같이 다녀준다니까."

"됐어. 우리 조카들이랑 형부들이나 잘 챙기셔."

잠시 후 한 사람이 더 합류하고 네 사람은 곧 프린트물을 돌리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30분 정도 시간이 지나고 연수가 시계를 확인하고는 세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밥이라도 먹고 가."

"늦었어."

연수가 미안한 듯 손을 모아 흔들며 말했다.

"미안해. 오늘 하루만 봐주세요. 다음에 내가 맛난 밥 살게."

연수가 코트를 입고 프린트물을 가방에 챙겨 나갈 준비를 마치고 다시 한 번 인사를 하자 연경이 연수를 붙잡았다.

"목도리랑 장갑 안 해?"

"나 그런 거 안 키워. 답답해서."

"자 가져가. 밖에 엄청나게 추워."

"안 해. 답답한 거 딱 질색이야. 나 얼른 가볼게. 언니들 고생하고 일요일에 봐."

"그래. 조심해서 가."

연경은 못내 아쉬운지 자리에 앉으며 혼잣말을 했다.

"계집애. 같이 가준다니까 왜 안된다는 거야. 혼자보다 여럿이 더 낳구먼."

해숙이 연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게 연수 트레이드마크 잖아. 사람들한테 도움 안 받기."

"계집애."

세 사람은 잠시 연수가 나간 카페 문을 바라보다 곧 머리를 맞대고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 * * * *

연수는 가방에서 울리는 휴대전화기를 꺼냈다. 준호인걸 확인한 연수는 사장님께 잠시 양해를 구하고는 통화 버튼을 밀었다.

[네. 팀장님.]

[어디야?]

[나. 지금 공부 중인데요.]

[거기 어딘데? 나 오늘 조금 일찍 끝났는데. 데리러 갈게. 어디야?]

[끝나고 밥 먹을 건데?]

[나도 끼워줘. 내가 밥 살게. 어디야? 나 지금 나갈 거야.]

[다음에 봐요. 팀장님도 피곤한데. 내가 공부 끝나고 전화할게요.]

[그래…. 그럼 내가 집에서 기다릴게 끝나면 전화해. 데리러 갈께. 오늘 너 좋아하는 파전 먹으러 가자.]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아서 시험공부도 해야 하고 정수 언니도 저녁에 이야기 좀 하자하고 팀장님. 우리 다음에 봐요. 나 지금 급하니까 내가 다시 전화할께요.]

연수는 자신을 기다리는 부동산 사장님 때문에 준호의 대답도 듣는 둥 마는 둥 얼른 전화를 끊고 사장님의 설명을 들으며 집 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 * * * *

준호는 끊어진 전화를 보며 전화기가 연수인 듯 힘없는 목소리로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뭐야? 얼굴 본 지 오래돼서 무리해서 시간 뺐더니 괜한 헛수고 했네. 자식이 네 하고 한 번에 대답하는 경우가 없어. 뭐가 그렇게 바쁜지. 그래. 일이나 하자."

준호는 다시 의자에 앉아 서류를 펼쳤지만, 곧 눈에 들어오지 않아 억지로 보고 있던 서류를 책상에 내팽개쳐 버렸다. 그리곤 무언가 화가 난 듯 허공에 대고 혼잣말을 했다.

"아니. 얼굴 못 본 지 이주일이 넘어가는구만. 얼굴 보여달라고 졸라야 되는 거 아냐? 이 녀석 혹시 지금 나 다 잡은 물고기라고 이제 미끼도 안주는 거야? 어쭈. 안 되겠네 최연수."

준호는 급하게 의자에서 일어나 가방과 옷걸이에 걸린 코트를 집어 들고 사무실을 빠르게 나왔다.

* * * * *

날씨가 추워서인지 30분이면 도착했던 연수네 집을 차가 밀려 한 시간은 더 걸려 겨우 도착했다. 근처에 차를 주차 시키고 길을 걸으며 연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팀장님.]

[뭐해?]

[그냥 집에 있어요.]

[벌써 집이야? 공부 끝났어? 늦게 끝날 거 같더니.]

[그냥 일찍 왔어요.]

준호는 조금 이상한 듯 연수에게 물었다.

[근데. 너 목소리가 왜그래? 너 어디 아파?]

[팀장님. 나 지금 전화 받기 좀 그런데 제가 이따 다시 전화 드릴게요 전화를 끊고 연수의 이상한 분위기에 발걸음을 더 빨리 뛰다시피 해서 집 앞에 도착했다. 준호가 막 초인종을 누를 때였다.

문이 벌컥 열리며 눈물을 닦으며 정수가 불쑥 나왔다. 잠시 준호와 눈을 마주친 정수는 고개를 푹 숙이고는 준호를 피해 계단을 내려가려 했다.

준호가 다급하게 정수의 팔을 붙잡았다.

[너. 왜 그래?]

준호는 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려는 정수를 다시 끌고 와 현관문을 열 때였다. 준호의 눈에 현관에서 코트도 벗지 않고 정수처럼 울었는지 코까지 빨개져 있는 연수가 보였다.

준호는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너희 싸운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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