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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
"너. 잘 기억하고 있지. 우리 연습 삼아서 한번 해보자. 자 아빠가 나를 때리려고 달려온다. 그럼 너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운동화 끈을 묶고 있던 연수가 심각한 얼굴로 정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빠의 바짓가랑이를 온 힘을 다해 붙잡고 엉엉 울면서 외친다. 아버지 참으세요."
"오케이."
이제야 마음이 놓이는 듯 정수가 박수까지 쳐가며 연수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너. 알지 언니는 누가 지켜야 한다고. 준혁 오빠 아니 누구?"
연수가 주먹을 불끈 쥐며 한쪽 팔을 올리며 소리쳤다.
" 나. 최연수."
정수가 감동을 한 듯 연수를 꽉 안았다.
"역시 자식 힘들게 밥해 먹인 보람이 있었어. 자. 가자. 연수야 우리 지옥을 향해 달려보자."
연수가 피식 웃으며 정수에게 말했다.
"남들이 보면 어디 죽으러 가는 줄 알겠네."
"연수야. 네가 몰라서 그런다. 나는 지금 죽는 거 보다. 더 무섭다."
두 사람이 나오자 준혁이 역시 잔뜩 긴장한 얼굴로 두 사람의 짐은 받아 들었다. 준혁이 짐을 넣기위해 트렁크를 열 때였다. 연수가 이상한 듯 준혁을 불렀다.
"준혁 오빠."
"어. 왜?"
"이 차 팀장님 차 같은데?."
"어. 맞아."
"왜 오빠 차 놔두고 팀장님 차 타고 가요?"
준혁이 트렁크에 짐을 싣고는 문을 닫은 후 말했다.
"연수야. 이 오빠가 너무 떨려서 운전을 못 하겠더라고 그래서 준호 차 좀 빌렸지."
"그게 무슨 말이야?. 떨려서 운전 못 하겠다면서 오빠 차는 안되고 팀장님 차는 운전할 수 있다는 거예요?"
준혁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연수에게 말했다.
"연수야…. 그건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 안 그러냐? 내 것은 안되고 준호 것은 운전할 수 있게."
"그럼 누가 운전해요?"
"누군 누구야. 네 남자친구지."
연수는 깜짝 놀라 목소리가 들렸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까는 분명 보지 못했던 준호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차 키를 손가락에 끼워 빙글빙글 돌리고 있었다. 연수가 아무 말도 못하고 바라만 보고 있자 준호가 다가와 연수의 볼을 손가락으로 튕겼다.
"뭘 그렇게 넋 놓고 바라보냐. 사람 부끄럽게 왜? 생각지도 못한 내가 있으니까 그렇게 좋아?"
"아..네..근데..팀장님 지금 회사에 있어야 하지 않아요? 요즘 제품 개발부 앉아있을 시간도 없이 바쁘다던데."
"누가?"
"김 대리님이요."
"음. 맞아. 요즘 제품 개발부가 좀 바쁘긴 바쁘지."
"그러니까 바쁜 팀장님이 왜 여기있냐구요?"
준호가 연수에게 다가와 연수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차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나는 입으로 일하거든."
"입이요?"
"그래 김 대리는 나의 지시를 받아서 일하느라 몸이 바쁜 거고. 나는 입으로 지시를 내리느라 바쁘지. 몸은 현장에 있어야 하지만 입은 편리한 핸드폰이라는게 있어서 어느 곳이든 시간 상관없이 아무 때나 지시할 수 있거든 그래서 난 이 자리에 있어도 되는 거지."
잠시 생각하는 듯 대답이 없던 연수가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지금 나 팀장님이 순간 자기 자랑한 거 같은데. 맞아요?"
준호가 웃으며 연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역시 똑똑한 우리 연수."
"치. 그럼 앞으로 팀장님 고생했다고 입에다 위로해 주면 되겠네요."
준호가 잠시 바라보다 곧 웃으며 연수를 가까이 끌어당겨 안았다.
"어떻게 위로해 줄건대? 나 오늘 휴가 쓰려고 어젯밤까지 고생하고 왔는데 위로 좀 해주지."
자신에게 장난스럽게 웃으며 가까워지는 준호의 얼굴을 당황스럽게 바라보던 연수가 차 뒷좌석에서 웃으며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정수와 준혁을 힐끗 보고는 결심한 듯 점점 더 다가오는 준호의 입술에 손을 올렸다. 준호가 순간 움직임을 멈추자 연수가 준호의 입술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말했다.
"고생했다. 팀장님 입술아."
연수가 귀까지 빨개진 얼굴로 준호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말했다.
"됐죠. 이…. 이제 위로했으니까. 얼굴 좀 치워 주세요. 팀장님은 모르겠지만 뒷자석에 앉은 두 사람이 창문 밖으로 목까지 빼고는 우리 쳐다보고 있거든요."
준호가 피식 웃으며 연수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렸다. 그리곤 연수를 바라보며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크게 웃기 시작했다. 보다 못한 연수가 차까지 끌고 가는 동안에도 준호의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 * * * * *
준호의 차가 고속도로를 막힘 없이 달릴 때였다. 준호는 조수석에 앉아 잠든 연수를 미소 지으며 바라보았다. 이미 뒷좌석에 있던 정수와 준혁까지 모두 잠이 들고 준호 혼자만이 홀로 운전하고 있었다.
연수는 다음 달 시험이라며 앉자마자 책에 얼굴을 파묻더니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졸린 듯 눈을 비비고 자세를 이리 움직이고 저리 움직이더니 자라는 준호의 말에도 고개를 흔들며 끝까지 버티더니 결국 어느 순간 고개를 떨어트리기 시작했다.
준호도 피곤한 듯 눈을 잠시 마사지 하고는 잠든 연수의 손을 잡아 끌어당겼다. 그리곤 연수의 손을 자신의 입술에 가져다 대보았다. 연수의 보드라운 손의 느낌이 입술에 고스란히 느껴졌다.
준호는 피식 웃고는 연수의 손을 내리고는 자신의 손안에 들어오는 연수의 손을 이리저리 주무르다 깍지를 꼈다. 준호는 연수가 깨어나 연수가 잡은손을 빼내려 하자 손을 잡고 있어야 잠이 오지 않는다는 핑계로 잡은 손을 놓아 쥐지 않았다. 연수의 손은 시골에 도착해서야 겨우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 * * * *
시골에 도착한 정수는 연수를 앞장세우고 시골집으로 들어갔다.
"엄마. 아빠 저희 왔어요."
연수의 목소리에 방문이 열리고 경자가 반가운 얼굴로 뛰어 내려와 연수의 손과 정수의 손을 동시에 잡으며 말했다.
"어머나. 우리 새끼들 왔어? "
정수의 손을 쓰다듬으며 경자가 울먹이며 말했다.
"우리 아가 혼자 고생 많았어. 몸은 어때? 괜찮아?"
"어. 괜찮아."
울먹이는 정수를 바라보다 눈물을 훔치며 경자가 이번엔 연수의 손은 쓰다듬었다.
"우리 연수는 어째 올 때마다 살이 빠지는 거야? 밥 안 챙겨 먹고 다닌 거야? 이게 뭐야? 삐쩍 말라서."
세 사람의 모습을 잠시 흐뭇하게 바라보던 준호와 준혁은 잠시 후 호랑이같이 큰 남자 목소리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왔으면 들어오지 뭐 하고 있는 거야. 서울에서 오느라고 밥도 안 먹었겠구먼 당신은 얼른 가서 상 좀 보고 정수랑 연수는 손님 모시고 방으로 어서 들어와."
준호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준혁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