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결혼하고 싶은 남자-100화 (100/128)

────────────────────────────────────

속상한 마음

"어이. 한준호. 여기."

준호는 준혁과 우진이 앉아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우진이 새 잔에 술을 따르며 준호에게 말했다.

"요즘 왜 이렇게 바쁘냐? 얼굴 보기가 대통령 보는 것보다 더 힘들다."

"어. 요즘 좀 그러네."

"너. 연수 만날 시간은 있냐? 너 조심해라! 그렇게 바쁘다고 연수 우리처럼 팽개쳐 놓으면 어린애인 다른 놈이 채간다."

준호가 웃으며 우진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걱정 마라. 너희는 안 봐도 우리 연수는 꼬박꼬박 보고 있으니까."

준혁이 마늘 하나를 집어 준호에게 던지며 핀잔을 주며 웃었다.

"자랑이다. 이 새끼."

준혁이 던진 마늘을 집어 들다가 막 생각난 듯 준호가 준혁에게 물었다.

"참. 너. 금요일에 정수네 집 간다며 너 완전히 긴장되겠다."

우진이 준호에게 가까이 다가와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야. 안 그래도 지금 저 자식 그 이야기만 하면 얼굴 허예져 가지고 한숨만 쉰다. 그러길래 조심하지. 왜 사고는 쳐서. 애 없이 당당하게 인사드렸으면 얼마나 좋으냐."

준혁이 힘없이 술잔에 술을 단숨에 마셔 버리고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러게 말이다."

"너무 걱정하지 마. 연수한테 들으니까 좋은 분들 이란다. 연수가 그렇게 말했으면 진짜 좋은 분들 인 거야. 너무 걱정 말고 내려가서 실수나 하고 오지 마. 알았냐?"

"안 그래도 정수랑 나 연수가 같이 간다고 생각만 해도 완전 든든 하다니까. 정수가 그러는데 아버지가 연수한테 좀 약하시대. 때릴 거 같다. 그러면 연수 뒤에 얼른 숨으면 된다더라."

준혁이 웃으며 우진이 따라주는 술을 받을 때였다. 준호가 들고 있던 잔을 내려놓으며 준혁에게 물었다.

"연수도 간다고?"

준혁이 준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 연수가 말 안했냐? 안 그래도 연수 남자친구 생겼다니까 아버님 어머님이 너도 꼭 같이 데리고 내려오라고 했다더라. 근데 너 바빠서 못 간다고. 그래서 다음에 같이 내려가고 이번에는 연수 혼자 가는 걸로 그렇게 알고 계신다고 하더라. 그래서 난 너랑 말 다 끝내고 나온 말인지 알았지."

"어. 나 듣지도 못했어."

우진이 준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연수 고 녀석이 좀 착하냐. 너 바쁘니까 아예 말도 안 꺼냈나 보다. 연수 말대로 너 지금 바쁘니까 다음에 단둘이 같이 내려가면 되겠네. 근데 정수네 집이랑 연수는 친한가 보다."

준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 정수 말로는 어른들이 정수보다 더 좋아한대. 그 집 막내딸처럼 대해 주시나 봐. 명절 때랑 항상 연수가 정수네 집에서 보내곤 했대."

준혁이 막 생각난 듯 준호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나 이거 정수한테 들은 건데. 너 혹시 연수한테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준호가 준혁에게 빨리 말하라는 듯 물었다.

"뭔데?"

"글쎄. 그 똘똘한 녀석이 다단계에 들어갔던 적이 있단다. 알고 있었냐?"

준호와 우진이 동시에 준혁에게 물었다.

"다단계?"

"어. 엄청나게 심하게 빠져서 거의 회사도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었대. 근데 정수네 아버지랑 오빠가 쳐들어가서 꺼내 왔었다고 하더라. 그때 생각하면 아직도 정수는 온몸이 달달 떨린단다. 그때 연수가 너무 빠져서 연수 진짜 잘못될까 봐 조마조마 했대."

우진이 술을 마시며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고 녀석이 그런 면이 있었구먼."

"뭐. 정수말 들어보니까. 그쪽에서 가족처럼 잘해주니까 사회 막 나온 연수가 빠질 만 했더라고."

"하긴 연수한테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그래도 정수가 있어서 천만다행이다. 안 그러냐?"

우진이 무언가 고민에 빠진 듯 멍하게 앉아있는 준호를 툭 치며 말했다. 준호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뒤늦게 대답을 했다.

"어…. 그렇치."

술자리가 어느 정도 무르익을 때쯤 준혁은 취기가 도는지 탁자에 머리를 기대어 버렸다. 그런 준혁을 바라보며 우진이 웃으며 준호의 빈 잔에 술을 따랐다.

"준혁이 보니까 나도 처음 결혼허락 받을 때 생각난다."

준호가 웃으며 술잔을 들었다.

"전날 떨린다고 우리 집에도 못 들어가게 하고 날 리도 아니었었지"

"그러니까 저 녀석 지금 머릿속이 이런저런 생각들로 복잡할 거다. 그래도 어차피 한번은 겪어야 하는 일이니까 여튼 나는 기분은 좋다. 준혁이도 결혼하고 우리 바람둥이도 야무진 여자친구 만나서 이제 정신 차려서 날만 잡으면 되고..."

준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술잔을 들었다. 그런 우진이 준호를 찬찬히 바라보다 술잔을 비우며 말했다.

"뭐냐? 연수냐?"

"무슨 소리야?"

"너. 지금 머릿속 엄청나게 복잡해 보이는 이유가 연수냐고?"

준호가 피식 웃으며 우진에게 말했다.

"귀신같은 새끼."

"뭔데? 연수가 혹시 이제 세대 차이 난다고 널 슬슬 멀리하기 시작했냐?"

"술이나 먹어라."

"그러니까 얼른 결혼하고 도장을 찍으라고. 제일 걱정했던 부모님도 좋아하시는데 왜 아직도 진도가 안 나가냐?"

"나도 나가고 싶다."

"연수가 문제냐?"

우진이 준호의 잔에 술을 따라주며 준호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 자식 말이야. 나한테 원하는 게 없다. 연수는 우진아..나한테 투정한 번 부린 적도 단 한 번도 없다. 내가 뭐하자면 다 해주면서 정작 자기가 하고 싶은 건 말을 안 해. 제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도 잘 안 해주는 거 같고. 나는 연수 힘들었던 거 같이 이야기하고 같이 나누고 싶은데 다 들을 준비가 돼 있는데 그리고 이야기해주길 기다리고 있는데 말이야. 연수는 언제나 혼자 항상 감당하려고 해. 나는 그게 싫다. 우진아."

준호는 잠시 술잔을 매만지며 말했다.

"남들이 들으면 미친놈이라고 하겠지만 이번 일도 그래. 나는 연수가 말하면 다 들어줄 수 있는데 정수네 가는 게 뭐가 어렵다고 아무리 바빠도 연수 부탁이라면 다 때려치우고라도 갈 수 있는데. 말을 안 해. 이번처럼. 물론 나를 배려해서 그런 건 알겠는데. 가끔 꼭 선을 긋는 거 같아서 속상할 때가 있다. 나는 이제 더는 보여줄 것도 없구만. 나는 보여주기 싫은 구질구질한 나도 다 보여 줬는데..."

우진이 미소를 지으며 준호에게 말했다.

"남들이 들으면 착한 여자 친구 만나서 배부른 소리 한다고 욕한다."

준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피식 웃어버렸다. 우진이 준호의 술잔을 채우며 말했다.

"연수 상황이 그랬잖아. 주변 상황이 연수는 풍요롭지 못했잖아.

어쩌면 연수가 선을 긋는 게 아니라 못하는걸 수도 있어. 그러니까 네가 지금처럼 옆에서 믿음을 주면서 연수한테 시간을줘 .."

"알아. 다 아는데 우진아. 가끔 속상한 건 어쩔 수 없더라. 우진아. 나는 연수가 온전히 나한테 기댔으면 좋겠어. 그리고 이건 내 욕심인데 얼른 연수랑 가족이 돼서 연수가 오직 나만 의지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우진이 준호의 잔에 술을 따랐다. 준호는 잔에 담긴 술을 단숨에 마셔 버렸다. 속상한 마음을 쓸어내리듯 그렇게 새벽이 될 때까지 준호는 여러 잔의 술을 단숨에 비워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