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혜자와 연수
"안녕하세요."
"아이고. 어서 와요. 반가워요."
동욱이 인자하게 웃으며 연수를 반겨 주었다. 준호가 혜자가 보이지 않자 동욱에게 물었다.
"어머니는요?"
"지금 주방에서 연수 씨 온다고 이것저것 장만 하느라 혼자 바쁘다. 도와준다고 해도 내가 있으면 귀찮다고 나까지 쫓아내더라. 잠깐 기다려. 엄마 데리고 나올게."
동욱이 웃으며 주방으로 향했다. 곧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동욱의 뒤로 혜자가 걸어 나왔다.
"안녕하세요. 최연수 입니다."
"어서 와요. 배고프죠. 곧 준비되니까 앉아서 기다려요."
혜자는 곧 주방으로 빠르게 들어갔다. 그 뒤를 동욱이 따라 들어가자 준호는 연수의 손을 잡고 거실 소파로 이끌었다. 연수는 준호를 따라가지 않고 메고 있던 백을 준호에게 건네 주었다.
"왜?"
"팀장님은 앉아 있어요. 따라오지 말고. 알았죠."
준호가 멍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연수가 주방으로 사라지는걸 눈으로 좇고 있었다.
주방으로 들어온 연수는 블라우스 소매를 올리고 수저통을 들고 있던 동욱에게 말했다.
"아버님. 제가 할게요."
"아이고. 아니야. 손님한테 이런 거 시키면 쓰나. 가서 앉아 있어요."
"아니에요. 주세요. "
연수가 웃으며 동욱에게 손을 내밀자 동욱은 난처한 얼굴로 수저통을 내밀었다. 곧 연수가 수저를 놓기 시작했다. 동욱은 한발 물러나 거실로 나가지도 못하고 연수와 혜자를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수저와 젓가락을 다 놓은 연수는 접시에 음식을 담고 있는 혜자에게 다가갔다.
"어머니. 뭐 좀 도와 드릴까요?"
"가서 앉아 있어요. 옷에 묻겠어요."
"어머니. 말씀 낮추세요. 그리고 옷에 묻으면 닦아내면 되죠. 어머니 요즘 세제 진짜 좋아요. 안 지워지는 게 없다니까요. 제가 좀 얌전하지 못해서 많이 묻히고 다녀서 잘 알아요."
연수가 웃으며 혜자의 손에 들려있던 쟁반을 자신이 들고서는 식탁에 차리기 시작했다. 혜자는 연수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다시 음식을 담기 시작했다.
동욱은 두 사람을 지켜보다 그제야 살며시 미소 지으며 주방을 나왔다. 동욱을 발견한 준호는 소파에서 일어나 다급하게 물었다.
"연수는요?"
동욱이 소파에 앉자 준호도 따라 앉았다. 동욱이 미소 지으며 준호에게 말했다.
"아가씨가 밝구나. 걱정하지 말아라. 잘하고 있으니까."
준호가 그제야 마음을 놓은 듯 소파에 깊게 앉았다.
잠시 후 네 사람은 식사를 시작했다. 밥을 먹는 동안 동욱의 질문에 연수가 대답하고 잠시 대화가 이어지다 끊어지길 반복하며 그렇게 식사가 끝났다.
연수와 혜자가 과일과 커피를 거실로 들고 나왔다. 혜자가 과일을 깎아 접시에 내려 놓자 준호가 냉큼 포크에 찍어 연수에게 내밀었다. 연수가 당황해서 받지 않자. 준호가 웃으며 연수의 손에 포크를 쥐여주며 말했다.
"먹어."
연수가 그러지 말라며 준호의 발을 자신의 발로 툭 쳤다. 그때였다. 커피를 마시며 혜자가 연수에게 말했다.
"괜찮아. 먹어요. 준호 저놈 원래부터 우리 잘 안 챙겼어요."
준호가 웃으며 포크에 과일을 찍어 이번엔 혜자에게 내밀었다.
"오늘 고생 하셨어요. 드세요. 어머니."
혜자가 피식 웃으며 포크를 건네받았다.
그 뒤로 네 사람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동욱이 꺼낸 준호의 어릴 적 웃기는 이야기로 신나게 웃기도 했다. 시간이 한참이 지나고 혜자가 연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연수 씨. 준호에게 들었는데 부모님이 안 계시다고..."
"네."
"지금 그럼 연락이 되는 친척이 한 분도 안 계신 거예요."
잠시 연수가 망설이자. 준호가 혜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머니. 그건 나중...."
하지만 준호는 더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연수가 준호의 말을 자르고 혜자에게 대답했다.
"아니요. 가끔 연락하는 이모님이 계세요. 자주는 못 하지만."
"자주 왕래가 없나 보네요."
"네."
혜자가 알았다는듯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 후로도 네 사람의 이런저런 대화가 또다시 이어지고 어느덧 시간이 아홉 시가 가까운 시간이 되었다. 준호가 일어서며 동욱과 혜자에게 말했다.
"인제 그만 가볼게요."
동욱이 고개를 끄덕이며 준호를 따라 일어섰다.
"그래.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구나."
"잠깐."
혜자가 다급하게 말하며 주방으로 빠르게 뛰어갔다. 잠시 후 양손에 쇼핑백을 들고 나왔다.
"어머니. 아직도 냉장고에 음식 많아요. 음식 떨어지면 그때 가지러 올게요."
"너 주는 거 아니다."
"네?"
"네 것 아니라고 연수 씨 거라고."
혜자가 여전히 무뚝뚝한 얼굴로 쇼핑백을 연수에게 쥐여 주었다.
"친한 언니랑 산다며 냉장고에 변변한 반찬도 없을 거 같아서. 아까 보니까 갈비랑 나물 좋아 하는 거 같아서 몇 개 싸봤어요. 맛은 없지만, 같이 사는 언니랑 먹어요."
"아...네..감사 합니다. 어머니."
동욱이 놀란 눈으로 서 있는 준호의 등을 툭 치며 말했다.
"어서 가봐. 연수 씨 피곤하겠다."
그리고 동욱은 연수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오늘 연수 씨 고생했어요."
"아. 아니예요."
두 사람을 대문까지 배웅하고 준호의 차가 떠나자 그제야 동욱과 혜자는 집으로 들어왔다.
동욱이 주방을 치우는 혜자를 도우며 말했다.
"아이가 참 밝아서 좋더라고."
"밝으면 뭐해요. 삐쩍 말라서 손목에 살이 하나도 없더구먼. 밥은 먹고 다니는건지. 그리고 나이도 어리면서 어른 같아. 한창 어리광부릴 나이고만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서. 준호보다 더 어른 같았다니까요."
동욱이 손을 멈추고 웃으며 아직도 투덜거리는 혜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그 아이 또 보고 싶은데. 당신은 어때?"
"당신이 언제부터 나한테 물어봤다고."
혜자가 모아놓은 그릇을 싱크대에 담그며 말했다.
"애가 험한 일 겪었던 애치고는 참 밝아서 좋았어요."
* * * * * * * *
연수는 무거운지도 모르고 쇼핑백을 안고 앉아있었다.
준호가 운전을 하면서 자유로운 한 손으로 쇼핑백 하나를 집어 들었다.
"무거워. 이리 줘. 뒷좌석에 놓게."
연수가 다시 쇼핑백을 빼앗아 무릎에 올려놓았다.
"싫어요. 어머니가 주신 거잖아요. 도착할 때 까지 가지고 있을 거예요. 하나도 안 무거워요."
연수는 차가 집 앞에 도착할 때 까지 정말로 쇼핑백을 내려놓지 않았다. 쇼핑백이 보물이라도 되는듯 계속 안고 쓰다듬었다. 그런 연수를 보며 준호 역시 차가 집에 도착 할 때까지 입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