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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황청심환
"빨리 말 안 해? 이게 뭔지? 이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말하라고."
"팀장님 지금 오해 하는 거 같은데. 그거 내 거 아니에요. 그거 돌려줘요."
연수가 준호에게서 수첩과 사진을 빼앗으려 손을 뻗자 준호는 연수의 손이 닫지 않을 정도로 높이 들어올렸다. 연수는 까치발까지 들어도 손에 닫지 않자 준호를 노려보았다.
"나 진짜 팀장님한테 화낼 거예요. 돌려줘요. 얼른."
"그러니까 설명하라고 네 것도 아닌데 왜 이게 네 손에 있는지. 네가 저 새끼한테 왜 준 건지. 네가 저 새끼랑 단둘이 왜 만나고 있는지."
연수가 아직도 멍한 눈으로 준호를 바라보고 있는 준혁을 바라보다 준호에게 말했다.
"나중에 설명 할게요. 그거 돌려주세요. 중요한 거란 말에요."
"중요해?"
"네. 주세요."
준호가 사진을 연수에게 내밀었다. 연수가 사진을 잡으러 손을 뻗자 그 순간 준호는 사진을 무참히 구겨서 바닥에 던져 버렸다.
"팀장님."
연수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준호를 부르며 사진을 주우려 허리를 숙이려 할 때였다. 준호가 연수의 팔을 끌어당겨 자신을 보게 했다.
"최연수. 너 "
두 사람을 바라보던 준혁이 피식 웃어버렸다. 준호는 굳어진 얼굴로 준혁을 보았다.
준혁이 무참히 구겨진 사진을 집어 들고 펼치고 있었다. 사진을 꼼꼼히 펼친 후 몸을 일으킨 준혁은 준호에게 손을 내밀고선 말했다.
"내놔. 그리고 아무 상관 없는애 잡지 마. 그거 나랑 정수 꺼야."
"뭐?"
"정수 아이 가졌다고 내 아이."
준호가 우느라 코를 훌쩍이고 있는 연수를 바라보았다. 연수가 빨개진 눈으로 준호를 흘겨보며 소리쳤다.
"내 것 아니라고 했잖아요. 사진 구겨진 거 어떡할 거예요."
준호가 아무 대답도 못 하고 있자. 준혁이 준호의 손에서 수첩을 뺏어 들고 연수에게 말했다.
"지금 정수 있는데 알 수 있을까?"
"네. 나랑 같이 가요 데려다줄게요."
"그래. 고맙다."
연수가 멀뚱히 서 있는 준호를 보며 말했다.
"뭐해요? 차 어딨어요? 준혁 오빠 데려다주게 팀장님이 운전해야 할 거 아니에요."
"그. 그래."
* * * * * * *
세 사람은 인숙의 집에 도착했다. 연수는 정수에게 전화를 해 집 앞으로 나오도록 했다. 멀리서 정수가 나오는 걸 확인한 두 사람은 차를 출발시켰다.
연수는 정수에게 문자 하나를 보냈다.
[언니! 나 오늘 팀장님 만날 거야. 내일 회사에서 봐.]
단둘이 남게 된 순간부터 연수의 눈치를 보던 준호가 조용히 연수에게 말했다.
"연수야. 어디로 갈까?"
"어디긴. 어디예요. 팀장님 집이지."
"왜?"
"왜긴요. 준혁 오빠 부모님이랑 사는데 둘이 이야기할 장소가 있어야 할 것 아니에요. 내가 피해줘야 집에서 이야기할 거 아니에요."
"아. 난 네가 나 엄청나게 손봐 주려고 우리 집 가는 줄 알았지."
"팀장님. 진짜 이상해요?"
"왜?"
"나 처음에도 임신했다고 오해 하셨잖아요. 기억 안 나요?"
준호가 미안한 듯 연수의 눈치를 보며 웃어 보였다.
"사진 어쩔 거예요? 첫 초음파 사진인데. 책임져요."
"미안."
"이제 준혁 오빠 창피해서 어떻게 보느냐고요. 책임져요."
"진짜 미안."
준호는 그 후로도 아파트에 도착하는 내내 연수에게 혼이 나야 했다. 그리고 며칠 후 준호는 사진을 무참히 구긴 죄로 정수와 준혁에게도 엄청나게 혼이 나야 했다.
* * * * * * *
"밥 먹자. 연수야."
정수가 부르자 연수가 방문을 열고 살며시 나와 정수에게 말했다.
"언니. 나 생각 없는데.."
"너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 했잖아. 임산부가 힘들게 차렸더니 얼른 안 와 네 조카한테 다 이른다."
연수가 마지못해 식탁에 앉았다. 연수가 숟가락을 들다가 다시 놓고는 손목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 버릇 한동안 안 보여서 사라졌나 했더니. 너 많이 긴장되는구나."
연수가 힘없이 웃어 보였다. 한때 연수가 회사에 적응할 시기에 너무 과하게 긴장하면 손목이 저린 증상이 생겼었다. 한동안 뚜렷하게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는데 오늘 이 증상이 다시 나타났다.
정수가 연수의 옆자리에 앉아 연수의 손목을 잡고 마사지를 하기 시작했다.
"편하게 생각해. 팀장님. 부모님 좋은 분이실 거야. 긴장 하지 말고 그냥 편하게 팀장님이랑 밥 먹는다 생각하라고. 너 평상시에 하는거처럼만 하면 아무 문제 없어. 내가 장담하는데 너한테 부모님들 완전히 반할걸. 그러니까 연수야. 너무 걱정하지 마."
연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을 마사지하던 정수가 힘들까 연수가 정수의 손에서 손목을 빼냈다.
"이제 괜찮아?"
"조금 나아졌어. 언니 배고프겠다. 얼른 밥 먹자."
"그래."
다시 식탁에 앉은 두 사람은 밥을 먹기 시작했다. 정수는 숟가락을 잡은 미세하게 떨리는 연수의 손을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 * * * * *
연수는 마지막 옷매무새를 다듬고 정수를 바라보았다. 정수가 옷의 먼지를 털어주며 작은 병 하나를 내밀었다.
"뭐야?"
"우황청심환. 긴장할 때 먹는 거래. 이따 집에 도착해서 안 되겠으면 먹고 들어가."
"응."
"이따. 전화해. 기다릴게. 긴장 풀고. 알았지."
"응."
연수는 밖으로 나와 차 앞에 서 있는 준호를 보며 아무렇지 않은 척 웃어 보였다. 차가 출발한 순간부터 연수가 팔을 주무르던 게 신경 쓰였던 준호가 말했다.
"어디 불편해?"
"아뇨. 긴장 했나 봐요."
"우리 당찬 연수양이 긴장 할 때도 있네."
준호가 웃으며 연수의 손을 잡았다.
"긴장 하지 마. 내가 있잖아."
연수가 입을 삐죽이며 준호에게 말했다.
"팀장님 때문에 더 긴장되는 거라고요."
"나 때문에. 왜?"
"나랑 어제 통화한 거 잊으면 안 돼요."
준호가 웃으며 연수에게 말했다.
"그럼 누구 명령인데. 부모님 앞에서 네 편 들지 마라. 너 대신 대답하지 마라. 그리고 신체접촉 금지."
연수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연수가 귀여웠는지 준호가 연수의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차는 어느덧 준호의 집 앞에 도착했다. 결국, 연수는 정수가 준 청심환을 먹어야 했다.
두 사람은 손을 잡고 나란히 집 앞에 섰다. 준호가 초인종을 누르자 안에서 굵은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저희 왔어요."
대문이 띵 소리와 함께 열렸다. 동시에 연수의 팔과 다리가 저리기 시작했다. 연수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준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