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결혼하고 싶은 남자-95화 (95/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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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혁과 정수

연수는 신경질적으로 보지도 않은 잡지를 넘기고 있는 정수에게서 잡지를 빼앗아 들었다.

"잡지가 뭔 죄야. 잡지 찢어지겠네."

"최연수."

"왜?"

"테스트기 15개를 썼는데 모두 두 줄이 나왔어. 근데 저 안에 들어가서 선생님이 임신 아닙니다. 할 확률이 있을까?"

연수가 웃으며 잡지를 책꽂이에 꼽으며 말했다.

"없어."

"차가운 계집애. 위로라도 그럴 수 있다. 이야기해주면 안되냐."

그때 정수를 부르는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정수 씨."

두 사람은 간호사를 따라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정수가 검사를 받고 기다리고 있던 연수의 옆에 앉자 환하게 웃으며 의사 선생님이 사진 하나를 두 사람에게 보여 주었다.

"축하합니다. 임신입니다. 아기는 지금 5주네요. 지금 초기 시니까 조심 하시고요. 다음 주에 오시면 아기 심장 소리 들을 수 있으세요. 그럼 조심하시고 다음 주에 뵐게요."

두 사람은 아기 수첩과 초음파 사진을 들고 병원을 나왔다.

* * * * * * *

"연수야."

"어. 왜?"

"나 엄마랑 아빠한테 이야기하면 죽겠지."

"내가 아줌마. 아저씨를 겪어봐서 아는데. 충분히 그러지 않을까 싶다."

"재밌냐? 너 아까부터 너무 재밌어 보인다."

"걱정하지 마. 손주가 배 속에 있는데 죽이시겠어. 아마 평소보다 살살 때리실 거야. 그래도 아프긴 하겠지만."

"야. 너 아주 즐기고 있는 거 같다."

연수가 웃으며 쇼핑백에서 두꺼운 책 하나를 꺼내 정수에게 내밀었다.

"이게 뭐야?"

"임신과 출산 책."

정수가 놀란 듯 책만 바라보고 있자 연수가 정수의 옆에 앉았다.

"내가 언니한테 혹시 해줄 수 있는 게 있나 먼저 봤는데. 내가 딱히 해줄 수 있는 건 없더라. 그냥 옆에서 언니 힘이 나는 말해 주는 거 밖에 없더라고."

정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니 연수를 바라보았다.

"언니. 고마워."

"뭐가?"

"조카 만들어 줘서. 언니가 지금 힘든 거 아는데 나는 아주 좋아. 우리 조카가 어떻게 생겼을지 누구를 더 닮았을지 언제 정도면 이모 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 기대가 너무 된다고."

"됐어. 이 계집애는 누가 보면 네가 언니인 줄 알겠다."

"언니. 언니가 제일 걱정하는 준혁 오빠도 나랑 같은 생각일 거야. 그러니까 우리 너무 걱정하지 말자. 내가 책에서 봤는데 언니의 기분이 아기한테도 똑같이 느껴진대. 그러니까 항상 웃어 그래야 우리 조카도 웃는다고."

"진짜 준혁 오빠 좋아할까?"

연수가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수가 코를 훌쩍이더니 잠시 후 펑펑 울기 시작했다. 잠시 후 정수의 울음소리가 잦아들었다. 연수가 휴지를 건네며 정수에게 물었다

"준혁 오빠 이틀 후면 오는 거지?"

정수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수를 보는 연수도 조금은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정수에게는 내색할 수 없었다. 지금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준혁이 잘 받아주기를 비는 거 뿐이었다.

* * * * * * *

"그래서 오늘도 집에 안 들어가겠다는 거야?"

"어."

"언니. 준혁 오빠한테 나 이제 말할 핑계도 없다고. 언제까지 오빠 피할 건데. 피한다고 이게 피해질 일이야. 만나야 이야기를 ..."

정수가 연수의 말을 중단시켰다.

"연수야."

"왜?"

"미안하다. 너도 금요일에 팀장님 집에 가는 거 때문에 고민이 많을 텐데 나까지 신경을 쓰게 해서."

"언니."

"근데 연수야. 나 못 하겠어. 오빠 얼굴 보기가 너무 무서워 연수야."

"언제까지 무섭다고 오빠 피할 건데. 언니 난 우리 조카가 아빠 없이 크는 거 싫어. 언니가 빨리 준혁 오빠한테 말했으면 좋겠어."

정수의 힘없는 모습에 연수는 한숨만 쉴 수밖에 없었다.

"언니. 가자. 퇴근준비 해야지."

* * * * * *

연수는 터벅터벅 걸으며 오늘도 집 앞에 있을 준혁을 생각하고 있었다. 무슨 말로 오늘은 돌려보내야 하나 연수는 한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저 멀리 집 앞에 준혁이 힘없이 벽에 기대있는 모습이 보였다.

연수의 운동화를 발견한 준혁이 고개를 들었다. 순간 정수를 찾던 눈빛이 힘없이 내려앉았다.

"오늘도 혼자네?"

"어…. 어. 오빠 밥은 먹었어?"

"연수야."

"어. 오빠."

"정수 남자 생겼니?"

"오빠도 참 그걸 농담이라고 하냐. 언니가 요즘 회사에..."

"연수야. 이건 아닌 거 같다. 이렇게 피하는 건 정수답지 않은 거 같다."

"그…. 그렇지."

잠시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준혁이 벽에서 몸을 떼고 연수의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네가 그동안 나 상대해 주느라 고생이 많았다."

"오빠."

"정수한테 새로 만나는 새끼랑 잘 먹고 잘살라고 해. 그리고 나 이제 집에 안 찾아올 테니까 집으로 들어오라고 해."

"오빠 잠…. 잠깐."

연수가 급하게 준혁의 팔을 잡았지만 준혁은 다시 한 번 연수의 머리를 헝클어트리고는 웃으며 말했다.

"나중에 준호랑 밥이나 먹자."

연수는 손을 흔들며 뒤돌아 걸어가는 준혁이 점점 더 멀어지자 무언가 결심한 듯 준혁에게 뛰어갔다. 연수는 간신히 준혁의 옷을 붙잡았다.

"오빠. 잠깐만 나 오빠한테 보여줄 거 있어. 여기서 잠깐 기다려줘. 알았지. 꼭 가지 말고 기다려."

연수는 집으로 달려가 서랍에서 아기 수첩과 초음파 사진을 집어 들었다. 정수에게 잠시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연수는 결심한 듯 다시 준혁을 보기 위해 빠르게 뛰어나갔다.

"오빠. 이…. 이거."

"이게 뭔데?"

연수가 내민 수첩과 사진을 보던 준혁의 표정이 점점 굳어지더니 놀란 눈으로 연수를 보았다.

"이거?"

연수가 작은 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오빠. 언니 아기 가졌어."

그 순간 준혁의 손에서 누군가 수첩과 사진을 빼앗아 들었다.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사진을 보는 준호가 서 있었다.

그리고는 연수를 노려보며 낮게 깔린 목소리로 준호가 말했다.

"두 사람이 이게 지금 뭐 하는 상황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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