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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탱이
연수가 입술을 깨물며 아까부터 아무 말 없이 앞만 보며 운전을 하는 준호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한참 동안 침묵 속에 입술만 깨물던 연수가 조용히 준호를 불렀다.
"팀장님."
기다려도 준호의 대답이 없자 연수가 속삭이듯 다시 한 번 준호를 불렀다.
"팀장님."
잠시 침묵이 흐르다 준호가 시선은 여전히 앞을 보며 연수에게 말했다.
"최연수한테는 내가 아직도 팀장님인가 보네."
연수가 이제야 준호가 대답을 하지 않은 이유를 깨닫고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죄송해요. "
그때 연수의 핸드폰이 가방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연수가 전화를 받지 않자 준호가 연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죄송 할 거 없어 전화나 받아."
연수가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 발신자를 확인하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정수 언니.]
[어. 지금 어디야? 팀장님 올라왔다며. 같이있어 ? ]
[응. 오빠랑 지금 같이 있어. ]
[오…. 호 드디어 오늘이야.]
정수의 웃는 소리에 연수가 빨개진 얼굴로 준호를 살며시 바라봤지만 준호는 여전히 무뚝뚝한 얼굴로 앞만 보며 운전을 하고 있었다.
[어…. 뭐 근데 왜?]
[아니 오빠들이 팀장님 전화 안 받는다고 너한테 해보라고 해서 여기로 오라고 하네! 술먹자는 거지.]
[아. 그게….]
[괜찮으면 연수야. 이리로 잠깐 넘어와.]
[그게….오빠한테 잠깐 물어보고..]
연수가 핸드폰을 손으로 가리고 준호에게 말했다.
"혹시 이후에 따로 약속 있으세요."
"왜 ?"
"정수 언니가 오빠들이랑 있는 쪽으로 오라는데 뭐라고 대답할까요."
그때 준호의 대답을 기다리던 연수의 손에서 준호가 핸드폰을 빼앗아 들었다.
"우리 안가니까 기다리지 마. 너희나 재미있게 놀아."
준호는 휴대전화기의 전원을 끄고 연수에게 다시 넘겨 주며 연수에게 말했다.
"우리 할 이야기가 많은 거 같은데. 안 그래. 최연수." 연수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 * * *
연수가 쭈뼛거리며 소파에 앉아서 냉장고의 문을 열고 있는 준호를 바라보았다.
"알다시피 내가 집에 없어서 냉장고가 비었다. 내려가서 음료수라도 사와야겠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
"아니요."
"그럼 내가 알아서 사올게. 씻고 있어."
"네."
연수는 지갑을 챙겨 들고 현관으로 나서는 준호를 급하게 불렀다.
"팀장님."
준호가 뒤를 돌아 연수를 바라보았다.
"오늘 죄송해요. 제 생각이 짧았어요. 반지도 애들이 빼자고 해도 빼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리고 호칭도 고칠게요. 갑자기 빠르게 고칠 수는 없지만, 열심히 노력할게요. 오늘 정말 미안해요. 팀장님. 아니 오빠."
준호가 한참을 연수를 바라보다 부드럽게 웃으며 연수에게 다가왔다. 준호는 연수를 꽉 끌어안았다.
"아냐. 나도 잘한 거 없는 놈이잖아. 그냥 속상했어. 다른 남자 눈에 네가 예뻐 보이는 게 속상하고. 네 손가락에 우리 반지가 없던 것도 속상했고. 내가 더 미안해. 연수야 내 속상한 마음에 네 말은 듣지도 않고 화내서."
두 사람은 준호가 사온 맥주와 안주를 풀어놓고 영화를 보고 있었다. 연수가 문득 생각난 듯 준호에게 물었다.
"근데 어떻게 된 거예요 ?"
"뭐가 ?"
"어떻게 된 거냐고요 ? 일이 많아서 바쁘다더니 ."
"빨리도 물어본다. 최연수 누가 낚아채 버릴까 봐. 잡으러 왔지. 지금 보니까 오지 않았으면 큰일이 날 뻔 했어."
연수가 입을 삐죽이며 웃었다. 그러자 준호가 연수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나머지 손으로 연수의 코를 틀어쥐었다.
"웃지 마. 너 때문에 내가 아주 피가 마른다. 조만간 수혈받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무슨 걱정이에요. 우리 둘 다 O형인데 피 부족하면 언제든지 연락해요. 내가 오빠 있는 데로 언제든 달려 갈게요."
"그래 아주 든든하다. 세상에 무서울 게 하나도 없네"
연수가 웃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준호가 손가락으로 연수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내가 잊은 게 있었어. 내가 세상에 무서울 게 하나도 없다고 했던 말 취소할게. 내가 단 하나 무서운 게 있는 걸 까먹었네. "
준호가 웃으며 연수의 뒷목을 잡아 자신의 얼굴 쪽으로 끌어당겼다.
"최연수 한준호를 꼼짝 못 하게 하는 가르칠 거 많은 곰탱이 네가 세상에서 나는 제일 무서워."
준호가 한동안 연수를 바라보다 피식 웃어버렸다.
"눈 감아 곰탱아. 이 오빠가 너한테 키스하려고 하는데 그렇게 똘망똘망 눈을 뜨고 있으면 부담스럽잖아."
연수가 빠르게 눈을 감았다. 연수를 자신 쪽으로 조금 더 잡아당긴 준호가 자신의 입술을 조심스럽게 연수의 입술에 부딪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