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결혼하고 싶은 남자-79화 (79/128)

────────────────────────────────────

책임지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연수는 회의실에 다급하게 들어와 앞에 보이는 자리에 빠르게 앉았다.

"빨리빨리 안 뛰어오나?"

"늦었으니까 오늘 간식은 연수가 쏘는 걸로."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의 박수 소리와 환호성에 연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곧 회의가 시작됐다. 한참 회의에 열중하던 연수가 깜짝 놀라 커진 눈으로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누군가 탁자 밑으로 연수의 허벅지에 손을 턱 하니 올려놓았다. 연수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탁자에 턱을 괴고 회의에 집중하고 있는 준호를 발견했다.

놀란 연수는 누가 볼세라 허벅지에서 준호의 손을 떼어냈다. 하지만 쉽게 떨어져 나간 준호의 손이 이번엔 연수의 손을 탁자 밑으로 끌어내려 깍지를 껴버렸다.

연수는 손을 빼내려 꼬집기까지 하며 노력했지만 결국 포기하고 회의에 집중하기로 했다.

회의가 끝나고 회의실에 불이 들어오자 연수는 손가락을 빼낼 생각을 하지 않는 준호를 당황해서 바라보다 가지고 있던 볼펜으로 준호의 손을 찍어 버렸다.

"아."

준호의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연수의 자리로 쏠렸다. 맨 앞자리에 있던 부장이 준호에게 말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한 팀장."

"아닙니다."

그러면서 준호는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뒤편에 있던 비닐봉지 두 개를 집어서 탁자에 놓았다.

"간식 좀 드시고 하시죠."

모두 준호가 사온 간식을 먹으며 잠시 회의를 멈추고 휴식 시간을 잠시 갖기로 했다.

준호가 자신의 아이스크림과 연수의 아이스크림을 들고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준호가 웃으며 건네는 아이스크림을 빠르게 받아 봉지를 까서 아이스크림을 먹기 시작했다. 눈으로 다른 빈자리를 찾아 자리를 옮기려 몸을 일으킨 연수에게 준호가 말을 걸었다.

"아. 연수씨."

"네.?"

" 저희 이따 기계 몇 시에 사용할 수 있나요?"

"아. 그게요? 라인에 들어가서 일정표를 보고 말씀드려야겠는데요.

준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자 연수는 자리를 옮기는 걸 포기하고 그냥 그 자리에 앉아 버렸다.

연수가 아이스크림에 집중하고 있을 때 제조 총괄부장이 웃으며 준호를 가리키며 말했다.

"어. 한 팀장 왜 또 우리 연수 옆에 앉았어 한 팀장 때문에 우리 연수가 식당에서 봉변을 당했는데 한 팀장 자리 옮겨앉어."

"어 왜 이래 그게 한 팀장 잘못인가 오해한 사람이 잘못이지. 우리 한 팀장 구박하지 말라고."

이번엔 제품 개발부 총괄부장이 웃으며 말했다.

"누구 잘못이든 우리 연수가 피해를 봤잖아. 우리 연수 애인 없는 것도 서러운데 그런 오해나 받고 얼마나 슬펐겠어. 안 그래 연수야."

부장이 웃으며 장난스럽게 연수를 바라보자 연수가 입을 삐죽이며 부장을 노려보았다.

그때 찬구의 목소리가 사람들 사이에서 들려왔다.

"이러다 팀 싸움 되겠는데요. 그러지 마시고 둘 다 솔로인데 소문도 났겠다. 그냥 둘이 합치죠."

그것도 좋겠다며 여기저기서 웃고 떠드는 소리가 회의실에 가득 찼다. 두 사람을 놓고 이미 부장끼리는 그렇게 하자며 서로 악수까지 하고 있었다.

연수는 당황스러운 이 상황에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있었지만 준호는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입이 귀까지 걸려 있었다. 하지만 연수의 회의실 안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제품 개발부 총괄부장의 마지막 말이 회의실에 있던 모든 사람을 함성 짖게 만들었다.

"한 팀장. 이참에 최연수 씨 책임지라고."

준호는 단 일분도 생각하지 않고 모든 사람이 듣도록 크게 대답했다.

"네. 제가 평생 책임지겠습니다."

이미 회의실은 제품 회의를 잊은 지 오래였다. 회의실에 있는 사람들은 연수와 준호를 이미 결혼까지 시키고 있었다. 회의를 마치고 돌아와 무진복을 갈아입고 있던 연수의 핸드폰에서 문자 알림음이 띠링 울렸다.

* * * *

연수는 핸드폰을 열어 준호가 보낸 문자를 보았다. 문자를 보며 연수가 피식 웃어 버렸다. 준호가 보낸 문자는 손등 여기저기에 멍이 들어있는 사진이었다.

[넌. 이제 시집 다 갔다. 어쩔 수 없다. 내가 큰 맘 먹고 받아줄게. 언제든지 나한테 와라.]

연수는 빠르게 답장을 보냈다.

[큰 맘 먹을 필요 없어요. 난 소문 신경 안 써요. 걱정하지 마시고 일이나 하세요.]

[아…. 사나이 가슴에 불만 질러놓고 떠나는 무정한 그대의 이름은 최연수.]

[그럼 수고하세요.]

연수는 웃으며 빠르게 리더룸으로 들어가 회의 때문에 밀린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