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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게 마음먹기.
"안 되겠다. 다른 거 입어보자."
연수가 입을 내밀며 정수와 신지에게 말했다.
"벌써 몇 번째야? 그냥 대충 골라."
신지가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연수에게 말했다.
"안된다니까. 넌 내일 그 바람돌이가 놀랄 만큼 어른스러우면서도 뭔가 매력적이면서 여신 같은 그런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정수가 웃으며 신지에게 말했다.
"너 드라마 좀 그만 끊어라. 그냥 두 번째 거로 하라니까 내가 볼 때는 연수한테 제일 잘 어울리는 거 같은데. 그리고 너 지금 연수 얼굴 보이냐 너 지금 한마디만 더하면 바람 돌이 죽기 전에 네가 먼저 죽게 생겼어."
신지가 연수를 에게 큰소리로 외쳤다.
"나도 두 번째 콜."
세 사람은 드디어 만장일치로 두 번째에 입어본 하얀색 미디 길이의 플레어 원피스로 결정을 지었다.
"내일 그냥 넘어가면 안 된다. 너 살 뺀다고 권투 배웠잖아. 한방 크게 먹이라고."
신지가 권투하는 폼을 보이며 이야기하자 연수가 심각한 얼굴로 신지에게 말했다.
"그럼 글러브를 챙겨가야 하나?"
정수가 두 사람의 진지한 대화를 바라보다 웃으며 두 사람에게 말했다.
"워…. 워... 진정해 꼬맹이들. 내일 바람돌이를 죽이러 가는 게 아니라고 진정하고 밥이나 먹으셔들."
연수는 신지와 정수의 대화도 듣지 못하고 진짜 글러브를 챙길까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언니?"
"왜?"
"제 진짜로 글러브 챙기는 거 아니겠지."
"아니 챙기고도 남을 얼굴인데."
정수와 신지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샐러드를 휘저으며 뭔가 갑자기 심각해진 연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 * * *
정수는 구두를 신으며 연수를 불렀다.
"연수야. 얼른 가자. 준혁씨 도착했대."
정수는 방에서 뭘 하는지 대답 없는 연수를 한 번 더 불렀지만 역시 대답이 없자 신었던 구두를 벗고 연수의 방의 문을 열었다. 연수가 예쁘게 꾸민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 권투 글러브를 끼고 있었다.
"너. 뭐해? 얼른 가자고."
"어. 어. 미안."
연수가 글러브를 빼자 정수가 말했다.
"그거 진짜 들고갈 거 아니지?"
"응. 마음을 강하게 잡느라 껴본 거야."
"무슨 마음?"
"바보온달 잡으려면 평강공주가 강해야 하거든."
"뭐? 뭐라는 거야?"
연수는 의문스런 표정으로 서 있는 정수를 지나쳐 현관에 있는 자신의 구두를 신고는 아자 를 크게 외치며 현관을 나섰다. 정수는 연수의 뒷모습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자신도 빠르게 현관을 나섰다.
준혁의 차가 출발하고 정수는 거울에 비치는 연수를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연수는 두 손을 무릎에 가지런히 모으고 앉아 입을 꼭 다문 채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정수는 연수를 데리고 가는 게 잘한 일인지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오늘은 상처받는 일 없이 잘 해결됐으면 좋겠는데 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운전하던 준혁이 정수의 걱정을 알았는지 정수의 손을 슬며시 잡아 주었다. 그리고는 정수가 바라보자 입 모양으로 정수에게 잘될 거야 라며 말해주었다. 정수가 고개를 끄덕일 때 였다. 뒤에서 연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 눈 감고 있을게. 나 신경쓰지 말고 하시죠."
정수가 연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뭘?"
"나 때문에 키스하고 싶은 거 참는 거 다 보여. 형부 내가 눈 감고 있을게 빨리하라고요."
준혁과 정수가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래도 장난치는 연수를 보며 두 사람의 무거웠던 마음이 약간은 편해졌다.
연수는 동창회 장소인 바에 들어갔다. 밖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연수는 다시 한 번 주먹을 꽉 쥐었다.
"오늘 네 주먹에 준호 죽는 거냐?"
연수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우진이 웃으며 서 있었다.
"왔네. 힘든 결정이었는데 와줘서 고맙다 ."
연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우진이 대견하다며 연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온달이 저기 있는데. 내가 같이 가줄까?"
"아니요. 저 혼자 갈게요."
연수가 세 사람에게 등을 돌리고 준호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연수를 바라보고 있는 우진에게 정수가 물었다.
"오빠 온달. 평강공주 그게 무슨 말이야?"
"애들은 몰라도 된단다. 근데 너희 오늘 결혼발표 하는 거냐?"
"에…. 오빠 미쳤구나."
세 사람은 함께 웃으며 동시에 연수가 걸어간 자리로 시선을 돌렸다. 걱정스러운 마음과 기대하는 마음을 동시에 느끼면서 아무도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