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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들었던 노래
준호는 눈을 뜨고 난 후 한참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뻐근한 몸을 겨우 일으킨 준호는 얼굴을 찡그리며 집을 한번 둘러보고는 발 앞에 여기저기 놓인 맥주캔을 발로 차며 욕실로 들어갔다.
이가 떨리도록 차가운 물을 아무리 맨몸으로 맞아도 정신이 차려지지 않았다. 준호가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욕실로 들어가기 전 거실 어딘가에 널브러져 있던 우진이 냉장고 앞에서 생수를 벌컥벌컥 마시고 있었다.
준호를 발견한 우진이 준호에게 생수한병을 내밀었다. 준호가 생수를 받아들고 소파로가 앉았다.
"집에 안가냐?"
"어떻게 가냐? 친구 녀석이 혼자 있으면 죽을 거 같은 얼굴로 있는데."
준호가 소파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됐어. 안 죽은 거 봤으니까 그만 가라. 제수씨 화낸다."
우진이 준호의 입에 담배를 물려주고 불을 붙여주며 말했다.
"네가 늦게 진실한 사랑에 빠져서 미친놈처럼 허우적거린다고 했더니 너 잘 돌봐주라고 하더라 우리 마누라 예쁘지 않냐?"
"마누라 자랑은 집에 가서 혼자 하고 그만 가봐라 나 좀 쉬고 싶다."
"계속 집에서 틀어박혀 쉬었으면서 또 뭘 쉬어. 너 밥이 술이고 반찬이 담배냐? 어째 집에 해장할 재료가 이렇게 없냐?"
"거기서 개 소리 그만하고 집에 좀 가라. 머리 아프다."
우진이 준호의 싫은 소리에 신경도 쓰지 않고 준호에게 말했다.
"일어나. 해장 좀 하러 가자?"
"잘 가라. 멀리 안 나간다."
준호가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려 할 때 우진이 말했다.
"멍청이."
"뭐?"
"이렇게 힘들 거면서 왜 놔줄 생각만 하냐? 그것도 연수가 싫다고 헤어지는 것도 아니고 제 혼자 결정해서 이 짓을 하고 있느냐고?"
"그만해."
"너 지금 완전히 웃겨 한심하다고. 이 새끼야. "
준호가 소파로 돌아와 힘없이 다시 앉았다. 우진이 화가 난 얼굴로 준호에게 말했다.
"그냥 네 그 머릿속에 들어있는 생각 다 집어치워 왜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는데. 너 이런 새끼 아니잖아."
"그래 이런 새끼 아니었지. 근데. 연수한테는 그게 안 된다."
"도대체 뭐가 문제냐? 뭐가 널 이렇게 힘들게 하느냐고?"
"내가 많이 부족 한데도 연수 욕심 내는 거 그게 문제야. 연수가 나한테 오면 힘들어할게. 뻔하니까.
우진아. 나 부모님께 연수 이야기 했다. 기대 이상으로 반대하시더라. 근데 나는 다 참고 이겨낼 수 있어. 하지만 연수가 단지 내 옆에 있다는 이유로 이 힘든 길에 발을 들여놓게 하고 싶지는 않다.
적어도 그 어린 녀석이 나보다 연수한테 더 잘 어울리니까. 그 자식은 적어도 연수를 힘들게 할 일은 만들 거 같지 않으니까."
"연수가 잘 견뎌줄 수도 있잖아."
"연수 그 작은 몸 안에 상처 많이 안고 있는 아이야. 그래서 더더욱 연수가 힘든 거 못 보겠다. 내가 못하겠다고."
한동안 침묵이 흐르던 집안에 준호가 소파에 걸쳐있던 가디건을 집어 들었다. 우진이 현관을 나서는 준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디 가게?"
"집에 가라. 전화할게."
우진이 준호가 나간 뒤 약간의 뒷정리를 하고 집을 나서려 할 때였다. 자신의 핸드폰 벨 소리가 아닌 다른 벨 소리가 울렸다. 벨 소리를 따라 핸드폰을 집어 든 우진의 얼굴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 * * *
준호는 연수의 집 앞 공원 벤치에 앉아 있었다. 연수는 이미 출근 했을 것이다. 준호는 여기에 와야 비로소 숨이 쉬어질 거 같았다. 그래서 무작정 차를 몰고 이곳으로 왔다.
준호의 귀에는 얼마 전까지 둘이서 함께 듣던 음악이 나오고 있었다. 연수가 좋아한다고 들려주던 이제는 자신이 좋아하는 곡이 된 정엽의 왜 이제야 왔니가 무한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준호의 눈은 연수의 집 창문에 고정된 채 준호의 심장이 타들어 가듯이 담뱃불이 빠르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