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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가 필요한 날.
"....아니야."
진웅이 작은 소리로 속삭이는 연수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다시 물었다.
"뭐라고."
"새끼 아니라고. 팀장님 내 앞에서 그렇게 부르지 마."
진웅이 잔뜩 찡그린 얼굴로 연수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최연수. 나 지금 너한테 고백 한 거라고. 근데 대답이 고작 그 자식 욕하지 말라는 소리야? 내 마음은 안중에도 없니? 내가 너한테 단 한 번도 남자인 적이 없느냐고?"
연수가 어깨에서 진웅의 손을 끌어내리며 벤치에 앉았다.
"남자라. 한번도 네가 남자로 안 보였다면 거짓말이지. 나도 잠시 잠깐 진웅이 네가 남자로 보인 적이 있었어.
근데 그 감정은 아주 잠시 잠깐 이였어. 내 사춘기가 떠나면서 같이 날아갈 만큼. 넌. 말이야 그 뒤로 내 완벽한 가족이고 친구였어.
내가 고아라고 왕따 당할 때 날 위로해 준건 오빠 같은 진웅이 너였고. 진로 고민을 할 때 같이 들어준 건 친구 진웅이 였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내 밥걱정 몸 걱정해 준건 아빠 같은 진웅이였어. 그래서 네 고백은 들은 지금 내 마음은 가족을 두 번 잃은 기분이야. 아주 절망적이라고. 울고 싶은 만큼."
진웅이 허탈한 듯 연수의 옆에 따라 앉았다. 한동안 머리를 감싸고 웅크리고 있던 진웅이 연수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다.
"이런 기분 너무 싫다."
진웅이 머리를 쓸어 올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한동안 답답한 듯 한숨을 크게 쉬고는 연수에게서 등을 보이고 섰다.
"어차피 네 대답 알고 있었어. 멍청한 내가 너무 늦게 고백한 내 잘못이니까. 근데 연수야 내가 여기서 포기할 거라고 생각하지 마.
내가 너한테 고백을 한순간 우리는 예전으로 돌아가기 힘들어. 그래서 어차피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다면 강하게 나갈 거야. 지금 네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 근데 부탁 하나 하자. 그냥 무작정 밀어낼 생각만 하지 마. 날 다시 봐줘."
"아니 넌 내 지금 기분 반도 이해하지 못해. 나는 지금 내 몸에 살이 떨어져 나간 기분이야."
진웅이 울 거 같은 표정으로 앉아있는 연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미안하다. 너무 늦어서. 근데 나도 쉽게 결정한 거 아냐. 힘들게 해서 진짜 미안하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웅이 먼저 침묵을 깼다.
"가자. 데려다줄게."
연수가 일어나 진웅의 뒤를 따라 걸었다. 두 사람이 탄 차는 침묵 속에서 연수의 집 앞에 도착했다.
"고맙다. 진웅아."
"전화할게."
연수가 대답을 하지 않자. 진웅이 연수를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전화해도 안 받겠다는 뜻이냐?"
"니 마음이 변함없다면."
"단칼에 자르지 말라고 부탁했지."
"나. 이제 내릴게.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최연수."
연수는 빠르게 차 문을 열고 나갔다. 진웅이 뒤따라 내리며 연수의 이름을 불렀다.
"연수야."
연수가 뒤를 돌아 진웅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진웅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잘자. 오늘은 더는 너 힘들게 하면 안될 거 같다. 여기서 내 꿈 꿔 하면 미친놈이겠지 근데 오늘 내 꿈 꿔라. 내 생각 좀 하고 자라고."
진웅은 손을 흔들며 차에 타고는 바로 차를 출발시켰다. 연수는 진웅의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았다.
준호는 차 안에서 눈앞에 상황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아버지 어머니와 식사를 하며 연수의 이야기를 하고 오는 길이었다. 아까부터 연수에게 계속 전화를 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준호는 답답한 마음에 무작정 연수의 집 앞으로 차를 몰았다. 준호는 진웅의 차가 떠나도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차가 사라질 때 까지 바라보는 연수를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바라보고 있었다.
연수가 뒤를 돌아 집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준호도 차의 시동을 걸었다. 한참을 달리던 준호의 차가 편의점에 멈춰 섰다. 준호는 편의점에 들어가 담배를 샀다.
몇 년 전에 끊은 담배가 지금은 절실하게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