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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웅 고백하다.
연수와 준호는 한강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선선한 가을밤을 느끼고 있었다.
"아. 참. 오늘 웅이한테 전화가 왔는데 한국에 다시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후원해 주시는 아저씨 일 좀 도와준다고요. 웅이가 팀장님 안부도 묻던데요. 기특하죠?"
"그러네."
"웅이 나오면 같이 또 봐요. 팀장님."
준호가 연수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러자."
연수가 기분이 좋은 듯 준호의 어깨에 기대고는 눈을 감았다.
"아. 좋다. 그죠. 바람이 시원한 것도 좋고 팀장님이랑 같이 있어서 더 좋고."
준호가 연수의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말했다.
"연수야?"
"네?"
"진웅이가 너한테 남자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
"왜요?"
"그냥 궁금해서 남자인 내가 봐도 진웅이 참 괜찮은 녀석이던데 여자인 네가 단 한 번도 남자로 안 봤다고 하길래."
"팀장님. 웅이는요 나한테 가족이고 친구예요. 가족을 남자로 보는 게 어딨어요."
"만약에. 만약에 말이야. 어느 날 진웅이가 남자. 여자 하자고 한다면 어떻게 할 거야?"
연수가 먼 곳을 바라보며 힘없는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건 나한테 손가락 하나가 잘려나가는 기분이 들 거 같아요. 내 유일한 가족 중 하나를 잃어버리는 거잖아요.
팀장님이 가족 중 제일 좋아하는 형을 나한테 소개해줬듯이 나도 그런 맘으로 우리 웅이 보여드린 거예요. 근데 만약 팀장님 혹시 우리 사이 오해하고 있다면 정말 정말 실망이에요."
준호가 웃으며 연수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리며 말했다.
"그런 거 아니거든."
준호는 연수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연수의 이런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간절히 바랐다.
* * * * *
연수는 회사 앞에서 손을 흔들고 서 있는 진웅이 에게 달려갔다.
"어우. 미안해 빨리 나온다고 나왔는데 오래 기다렸지."
"아니야. 오래 기다려서 다리는 안 아픈데 배가 고프다. 밥 먹으러 가자."
"그래. 오늘은 내가 미안하니까 맛있는 거 사줄게."
"그럼 비싼 거 먹어야지."
진웅이 연수를 데리고 자신의 차로 걸어갔다.
"진웅아. 버스 타는 데는 저쪽이야?"
"그래. 난 오늘 차 가져 왔는데."
"차?"
연수는 진웅이 하얀색 차 조수석 문을 여는 걸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타."
"너. 차 샀어?"
"아니. 친구 꺼 빌렸어."
"친구? 친구 누구. 네 친구 내 친구 다 똑같은 친군데 이런 거 빌려줄 사람이 있었어. 누구?"
"외국에서 만난 친구야. 얼른 타. 나 배고파."
연수가 차에 타자 곧 차는 출발했다.
"조심해. 빌린 거라 불안하다."
"그런 걱정하지 마. 빌린 만한 놈한테 빌린 거니까."
연수가 진웅을 바라보다 갑자기 생각난 듯 말했다.
"어때. 아저씨 일은 할만해?"
"응. 그럭저럭 하고 있어."
"언제 아저씨랑 밥 먹자. 나는 아저씨 아빠같이 참 좋더라."
"응. 아저씨도 너 싹싹하고 예쁘데. 내가 너 같은 애를 만났으면 좋겠단다 ."
"뭐 나 정도면 괜찮은 정도가 아니지 너한테는 넘치고도 남지."
진웅이 웃으며 토하는 시늉을 하자. 연수가 웃으며 진웅의 팔을 살짝 꼬집었다. 둘이 웃고 떠드는 사이 진웅의 차는 풍경 좋은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 * * * *
레스토랑에 들어온 연수는 메뉴판을 바라보며 조용한 목소리로 속삭이듯 진웅에게 말했다.
"이 자식 내가 아무리 비싼 거 사준다 했다고 쳐도 여기는 너무 하잖아."
"너한테 돈 내라고 안 해 걱정 말고 먹기나 해."
"뭐?"
"내가 낸다고 걱정하지 마."
"그래도 너무 비싸잖아."
두 사람은 식사를 마치고 후식을 먹고 있었다. 연수가 뭔가 불만인듯한 표정으로 진웅에게 말했다.
"나는 이래서 고급 레스토랑이 싫어. 먹은 거 같지도 않은데 비싸기만 하고. 나는 싸고 맛있는 라면이 훨씬 좋다."
"나는 이게 더 좋거든."
연수가 입을 삐죽이자. 진웅이 연수에게 말했다.
"나가자. 여기 뒤에 산책하기 좋은 코스가 있데."
"그래. 나가자."
레스토랑을 나온 진웅과 연수는 산책로를 걷기 시작했다.
"음. 참 좋다. 나중에 우리 팀장님이랑 한번 와야겠다. 웅이너도 말만 해 끼고 싶으면 데리고 와줄게."
진웅이 웃으며 연수를 바라보았다. 연수가 앞장서고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던 두 사람 중 진웅이 먼저 연수를 불렀다.
"연수야?"
"어. 왜?"
"나는 너한테 뭐냐?"
연수가 진웅을 웃음 가득한 얼굴로 바라보며 말했다.
"너는 내 오빠고 아빠고. 엄마고 언니고. 그리고 친구고."
"나는 그거 싫다 연수야."
연수가 진웅을 바라보며 입가에 있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웅아."
"나는 너 처음 볼 때부터 나한테 너는 여자였다고. 그리고 당연히 내 여자 될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당연한 거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른 새끼가 생길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하고 있었어.
너 나한테 여자야 연수야. 이 맘 변하지 않아. 그러니까 나한테 와라."
연수는 입을 꼭 다문 채 굳은 얼굴로 진웅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