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정한 경쟁자
준호가 잘 알고 있는 불고기 전골집에서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온 준호는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말했다.
"연수 너 근무 들어가야 하잖아. 데려다줄게."
"네. 그럼 웅이먼저 택시 잡아 주고요."
준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택시를 타는 곳으로 걸어가려 할 때 진웅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최연수."
진웅은 연수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오늘은 택시 타고 혼자 가라.".
연수가 무슨 뜻인지 몰라 진웅을 바라보자 진웅이 연수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준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 한준호 씨랑 술 한잔 하고 싶어서 그래. 그러니까 오늘은 택시 잡아줄게 너 혼자 가라고. 괜찮으시면 저랑 술 한잔 하시죠."
연수가 준호를 바라보자. 준호가 연수를 보며 살짝 미소 지으며 진웅에게 말했다.
"그럴까? 안 그래도 나도 우리 연수랑 가족 같은 너랑 한잔하고 싶었는데. 잘됐군."
연수는 택시를 타기 전 진웅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너. 팀장님 내일 출근 해야 하니까 적당히 마셔라. 알았지."
"신경 꺼라. 내가 마시는데 네가 왜 신경을 써 어서 타기나 해."
연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준호를 보았다.
"팀장님 웅이한테 넘어가지 마세요. 웅이 저 녀석 필름 끊길 때까지 마신단 말예요. 조심하세요."
"그래. 어서 타. 도착하면 전화하고."
"네. 전화할게요."
연수를 택시에 태워 보내고 준호는 진웅에게 물었다.
"어디로 갈래? 가고 싶은데 있으면 말해?"
"뭐. 저는 술만 있으면 다 좋아요. 저기 괜찮을 거 같네요."
준호는 웅이 시선이 머무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포장마차가 있었다. 준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키가 비슷한 두 남자는 나란히 포장마차를 향해 걸어갔다.
"연수가 한준호 씨한테 주변 이야기 다 했다고 하던데. 그래도 연수가 좋다니 감사하네요."
"그건 네가 감사할 일은 아닌 거 같은데. 너랑 연수는 친구인데 나한테 그런 말까지 할 필요는 없는 거 같거든."
진웅이 웃으며 준호를 바라보았다.
"연수 이야기만 들었을 때는 걱정 많이 했는데 제가 걱정한 만큼 나쁜 사람은 아닌 거 같아서 다행이네요."
"좋게 봐주니 고맙군."
둘은 한동안 주거니 받거니 아무 말도 없이 술만 먹고 있었다. 진웅이 술잔을 내려놓으며 준호에게 물었다.
"연수랑 어디까지 생각하시는 건데요. 혹시 결혼까지 생각하는 건 아니죠?"
"왜. 아니야. 당연한 거지. 나 연수랑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어. 왜 무슨 문제 있어.?"
진웅이 웃으며 술잔을 단숨에 비웠다.
"그건 안 되겠네요.."
준호가 말없이 진웅을 바라보았다. 진웅이 비워진 준호의 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제가 연수 노리고 있었거든요. 벌써 5년 넘었는데 근데 갑자기 한준호 씨가 나타나셨네요. 아주 당황스러운 상황이죠."
"그럼 이제 포기해야지. 연수 옆에 내가 있는 거 알았으니 말이야."
"에이. 그럼 섭섭하죠. 혼자 바라본 것도 서러운데 고백은 해봐야죠."
"그게 무슨 소용인가 싶은데. 연수는 친구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거 같은데."
"그렇죠. 그래서 말예요. 이제부터 연수한테 남자로 다가가려고 하거든요. 후회 없도록."
"그걸 나한테 이야기하는 이유는 뭐야."
"분발하시라고요. 그리고 공정한 경쟁을 위해서요."
"경쟁이라?…. 근데 이거 미안해서 어쩌지 내가 볼 땐 연수 마음 가져오기는 너무 늦은 거 같은데…. 그냥 공부나 열심히 하는 게 어때?"
"저 걱정해 주시는 건 감사드려요. 근데 너무 장담하진 마세요. 저랑 연수는 한준호 씨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오랜 시간을 같이 보냈거든요. 그래서 전 연수 더 포기할 수 없고요."
진웅이 준호를 똑바로 바라보자 준호역시 진웅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준호는 자신의 앞에 어린애라고만 단순히 생각했던 진웅이 지금은 준호의 앞을 막고서 있는 커다란 돌덩어리 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뒤로 두 사람 앞에 셀 수 없이 많은 빈 술병이 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