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결혼하고 싶은 남자-62화 (6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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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 백 트럭

정수를 침대에 눕히고 연수와 준호는 방을 나왔다.

준호가 연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가자."

연수는 시계를 확인했다. 열한 시가 조금 넘은 시간 이였다.

"지금요?"

" 안 따라 나오겠다는 이야기는 하지 마. 너 때문에 내가 일본에서 코피까지 흘러가면서 일했어."

준호가 연수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현관으로 이끌었다. 연수는 아무 저항도 하지 않고 준호를 따라 걸었다.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두 사람은 걷기만 했다. 연수가 먼저 준호에게 말했다.

"팀장님. 술 많이 드신 거 같은데. 운전도 하고 괜찮은 거예요?"

"어. 한. 두잔 밖에 안 마셨어."

"내가 볼 때마다 술 받고 있던데. 한. 두 잔이 아닌거 같은데. 뭐"

"연수야. 사회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척이라는걸 배운단다."

"척?"

"응. 먹는 척 하면서 버리기."

준호가 웃으면서 연수를 바라보자 연수도 따라 웃었다. 준호가 연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어린양아. 내 친히 모두를 속이는 완벽한 술 버리는 연기를 가르쳐 줄 테니 배우고 싶으면 언제든지 말하거라. 단 수업료가 비싸다는 거."

"치. 나는 술 아까워서라도 그런 거 안 해요."

"역시 최연수야."

준호가 엄지를 척 올리며 웃었다. 준호가 다시 연수의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연수야?"

"네."

"언제 대답해 줄래?"

"팀장님 궁금하라고 끝까지 대답 안 해줄건데요."

준호의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연수는 정말 듣기 좋았다. 덩달아 자신까지 기분이 좋아지는 게 느껴졌다. 준호가 웃던 걸 멈추고 바지 주머니에서 무언가 꺼내 연수의 손에 쥐여주었다.

하얀색 포장지에 돌돌 말려 빨간 리본이 달린 무언가를 연수는 보고 있었다.

"이게 뭐예요?"

"뭘까?"

"여기서 봐도 돼요?"

"응."

연수는 리본을 풀고 포장지를 풀렀다. 포장지 안에서 나온 건 연수가 준호 앞에서 찢었던 통장이었다. 몇 번이나 찢어서 버린 통장은 투명 테이프로 깔끔하게 연결돼있었다.

준호가 바지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카드 하나를 꺼내 연수의 손에 놓아주었다.

"연수야. 나는 이걸 버릴 수도 찢을 수도 없다. 그러니까 니가 포기하고 우리 연애 좀 하자. 여기에 모인 돈으로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여행도 가고. 그렇게 하자. 응. 연수야."

연수는 한동안 통장과 카드를 바라보다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겠네."

"뭐라고?"

준호가 연수의 말을 못들은 듯 다시 물었다.

"팀장님 말처럼 밥 먹고 영화 보고 여행 가려면 돈을 더 모아야 겠다구요. 통장도 재발급받아야 겠어요."

연수가 너무나 조용한 준호를 바라보았다. 준호는 아무 표정 없이 연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연수가 입을 삐죽이며 준호에게 말했다.

"팀장님. 내가 지금 무슨 말 하는지 잘..."

순간 준호가 연수를 꽉 안아버렸다.

"고맙다. 고맙다. 연수야. 일본에서 니 꿈을 매일 꿨어 일을 해도 밥을 먹어도 술을 먹어도 니가 안 떠오르는 시간이 없었어. 미치게 사랑한다."

"근데 왜 전화도 안 하고 문자도 안 했어요. 나 잠깐 팀장님 의심했어요."

"바보야. 그건 니가 싫어할까 봐. 그래서 그런 거지."

"에이. 예쁜 일본 언니랑 바람 폈던 건 아니고."

"이제 나한테 예쁜 건 너 하나뿐이거든 내 눈엔 너 밖에 안 보인다고. 난 이제 너만 찾고 너만 볼 거야."

"진짜?"

준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팀장님이 좋아하는 수지가 비키니를 입고 팀장님 앞에 서 있다면?"

준호가 난감한 얼굴로 연수를 바라보았다.

"뭐야. 팀장님 나만 본다며. 왜? 고민하는데요."

"연수야?"

"네."

"수지라면 딱 1분만 바라볼게."

"뭐래. 아까하고 말이 틀리잖아요."

준호가 웃으며 연수를 번쩍 안고 빙글빙글 돌았다.

"장난이지. 수지가 여러가지 색깔 비키니를 입고 백 트럭 와봐라.  내가 눈 하나 깜박하나 근데 트럭은 아까우니까 수지는 버리고 트럭은 팔아서 우리 맛있는 거 사 먹자."

"아.. 알았어요. 놔.. 놔봐요. 나 아까 먹은 안주가 나오려고 해요."

준호가 연수를 내려놓고 다시 꽉 안았다.

"나 오늘 밤 심장 떨려서 잠 못 자겠다."

그러나 연수는 지금 준호가 자든 못 자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연수는 지금 준호가 안고 도는 바람에 아까 먹은 안주를 확인하기 일보 직전 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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