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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
준호는 연수의집 앞 놀이터 벤치에 털썩 앉았다. 연수가 오는 게 한눈에 보이는 곳이었다. 손을 들어 마른세수를 하던 준호는 이제 약하게 상처가 남은 왼손을 바라보았다.
준호는 왼손이 다쳐서 치료를 해주며 가깝게 다가와 주었던 연수가 자신에게 마음을 열어준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건 자신의 오해였다는걸 깨달은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연수에게 자신은 같이 일하는 주임들 아니 그것보다는 조금 더 친한 오빠 정도 였다. 준호는 자신이 오해했던 그때를 생각하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준호는 다시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술을 마셔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오려고 하는 것인지 밤의 찬 기운이 느껴진 준호는 벤치에 몸을 깊게 묻었다.
몇 시간이 흐른 후에야 이어폰을 꽂고 걸어오는 연수가 준호의 눈에 들어왔다. 같이 있어야 할 정수가 보이지 않은걸 보니 오늘도 준혁이를 만나러 갔나보다. 얼마 전에 준혁이 커플 반지를 했다며 말해주던 생각이 났다.
준호는 연수의 모습이 사라지자 핸드폰을 들어 연수에게 전화를 했다.
[네. 팀장님.]
[어디야?]
[이제 집에 왔어요.]
[그럼 나 잠깐 볼 수 있을까?]
[네. 안 그래도 팀장님 저한테 받을것도 있잖아요.]
[그럼 집 앞인데 나올래?]
[지금 집 앞에 계세요? 그럼 조금만 기다리세요.]
가벼운 차림의 연수가 쇼핑백을 들고 준호에게 다가왔다. 쇼핑백을 받아든 준호가 연수를 바라보며 물었다.
" 오늘도 그냥 이것만 주고 들어갈 거야?"
" 팀장님 술 냄새 나는 거 보니까 집에 가셔야 겠는데요."
준호가 웃으며 연수에게 말했다.
"괜찮아. 많이 안 마셨어. 시간 괜찮으면 네가 좋아하던 떡볶이 먹으러 갈래?"
"네. 좋아요."
준호와 연수는 근처 떡볶이집으로 나란히 걸어갔다. 준호는 자꾸만 연수의 손을 잡고 싶어서 자기도 모르게 자꾸만 연수의 손을 잡으려는 손을 주머니에 찔러넣고 걸었다.
떡볶이를 먹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걷고 있었다. 연수의 집에 다다랐을 때 준호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연수를 불렀다.
"연수야?"
"네?"
"나. 너한테 진짜 안된다는 거 아는데…."
연수가 다음 말을 기다리며 준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 너 욕심 내면 안 되는 거지."
연수가 대답도 하지 않고 준호를 바라보자 준호가 피식 웃으며 체념한 듯 말했다.
"그래. 안 되는 거 아는데 그냥 포기가 안 돼서 물어본 거야. 당연히 날 받아들일 수 없는 거 알아. 나같이 더러운 새끼가 너한테 가당키나 하니. 내가 생각해도 난 미친 새끼야."
"팀장님."
"내 인생 후회한적 한번도 없는데 말이야. 연수 너 너 때문에 지랄 맞게 산 내 인생 지금은 미치게 후회하고 있다. 이렇게 널 만나는 걸 미리 알았다면 그, 딴 식으로 살지 않았을 텐데…. 진짜 나 재수가 없는 새끼야. 연수야."
연수가 흔들리는 준호의 손을 잡았다. 준호가 간절한 눈빛으로 연수를 보며 말했다.
"근데 말이야. 연수야. 이런 나 네가 잡아주면 안 될까? 내가 정말 잘할게. 네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갈게. 나 좀 봐주면 안 되겠니. 연수야. 부탁이야. 나. 좀 잡아주라."
준호가 연수를 꽉 끌어안았다. 한동안 연수를 안고 있던 준호가 연수를 놓아 주며 말했다.
"나 월요일에 일본으로 출장 가 연수야. 한 달 정도 걸릴 거 같다. 연수야. 나 돌아오는 한 달 후에 여기 다시 올께 그때 내 간절함에 대한 대답 들을 수 있을까?"
연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그럴게요."
"그래. 고맙다."
준호가 웃으며 손을 올려 연수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다 다시 내려놓았다.
"늦었다. 얼른 들어가."
"네. 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
연수가 뒤 돌아가려 할 때 준호가 연수를 돌려세웠다.
"연수야. 한 달 후에 내가 원하는 답 꼭 들었으면 좋겠다."
연수는 다시 한 번 준호에게 인사를 하고 빌라로 들어왔다. 창문 사이로 아직도 그곳에 있는 준호가 벽에 기대 연수네 집을 바라보고 있는 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