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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
연수는 세탁소에서 찾아온 슈트를 바라보며 한숨만 쉬고 있었다. 정수가 외출 준비를 마치고 연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니 한숨 소리에 좁은 우리 집 천장 내려앉겠다. 그만 좀 한숨 쉬어라."
연수가 탁자에 턱을 괴고 한숨을 크게 쉬었다.
"아. 얼른 일어나. 준혁 씨 기다려."
"안 간다니까. 이제 막 사랑이 불같이 타오르는 커플 사이에 끼어서 참기름 냄새 맡게 생겼어."
"그냥 따라 나와. 밥 사준다잖아. 비싼 거 먹으러 가자."
"나도 비싼 밥 먹을 돈 있거든요."
"하여튼 고집은. 그럼 애들 끝날 때 까지 뭐 할 건데?"
연수가 손가락으로 세탁소에서 찾아온 슈트를 가리키며 말했다.
"한 팀장님 만나야지. 저걸 언제까지 가지고 있을 수 없잖아."
"만나기로 결정했으면서 근데 왜 한숨이야?"
"만나면 팀장님한테 흔들릴까 봐."
"야. 사실 니가 아니라고 우기고 다녀도 눈치 빠삭한 사람들은 네가 한 팀장 애인이라고 알고 있던데 흔들리면 그냥 흔들려 머리 아프게 고민 그만하고."
연수가 정수를 바라보며 입을 삐죽이자 정수가 팔짱을 끼며 연수에게 말했다.
"보니까 팀장님 너 때문에 주변 정리 다 한 거 같은데 팀장님 좋으면 그냥 넘어가. 너 지금 라인 언니들이 네가 하도 아니라고 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너 사실 시집 못 가게 생겼어. 멋진 한 팀장의 애인이라고 소문나서 너 좋다고 돌진하는 사람도 없을걸. 이제 최연수도 끝인가요?"
"엄청나게 재미있나 봐."
"그럼. 나이 어리다는 이유로 나보다 낳은 얼굴도 몸매도 아닌 네가 수많은 남자의 돌진을 받을 때 내 속이 얼마나 쓰렸는지 알아. 근데 이제 너도 끝이야. 누구 때문에 한팀장. 때문에 으하하."
정수가 장난스럽게 배꼽 잡으며 웃자. 연수는 고개를 흔들며 정수에게 말했다.
"얼른 나가봐야 하는 거 아냐? 준혁 오빠 기다리다 도로 가겠다."
"아. 맞다. 이따 전화할게."
정수가 급하게 뛰어나가고 조용해진 집안에 혼자 남은 연수는 핸드폰을 들어 이번엔 전화를 걸까. 문자를 보낼까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 * * *
한참 후에 문자로 결정한 연수는 준호에게 문자를 보냈다.
[팀장님. 저 최연수 입니다. 혹시 오늘 퇴근 하시고 시간 있으세요?]
[시간 많아. 지금도 나갈 수 있어. 지금 만날래?]
[아니요. 퇴근하고 팀장님 집 쪽에서 제가 갈게요.]
[아냐. 오늘 너 쉬는 날 이잖아. 내가 데리러 갈게. 집이야?]
잠깐 고민하던 연수는 곧 답장을 보냈다.
[네.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그래. 집 앞에서 전화할게. 문자 보내줘서 고맙다. 연수야.]
준호는 문자를 보고 또 보고 몇 번이나 반복해서 봤는지 주고받은 문자를 외울 정도였다. 예의를 지켜 딱딱하게 보낸 문자를 바라보며 서운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문자를 연수가 보내준 것만도 너무나 행복해서 두근두근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토록 기다리던 퇴근 시간이 다가왔다. 준호는 팀원들에게 급하게 인사를 한 후 빠르게 회사를 나와 연수의 집으로 차를 몰았다.
연수의 집에 도착한 준호는 떨리는 마음으로 연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착했어 연수야. 집 앞이야."
"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나갈게요."
준호는 차에서 나와 연수가 나올 빌라의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에 반소매 티에 짧은 반바지를 입은 연수가 까만 종이가방을 들고 나왔다.
보기만 해도 좋은 연수가 자신의 앞으로 걸어와 인사를 했다.
"오셨어요."
"어. 그래."
"이것 때문에 보자고 말씀드렸어요. 세탁소에 맡기느라 너무 늦게 드려서 죄송해요."
준호가 웃으며 쇼핑백을 열어 보았다. 안에는 준호가 잊고 있던 슈트가 얌전하게 접어 있었다.
"아니야. 내가 만든 일인데 내가 더 미안하지."
준호가 쇼핑백을 닫고는 연수에게 웃으며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연수의 다음 말에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럼 안녕히 가세요. 그럼 저는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준호는 등을 돌리는 연수를 급하게 불렀다.
"최연수."
"네."
"너. 볼일 이란 게 이거였어?"
"네."
준호는 당황했지만, 다시 침착하게 연수를 보며 말했다.
"밥…. 밥은 먹었어? 저녁 시간인데 밥 아직 안 먹었지? 밥 먹으러 가자."
"죄송해요. 약속이 있어서요. 그럼 운전 조심해서 가세요. 팀장님."
다시 인사를 하는 연수의 앞으로 준호가 뚜벅뚜벅 걸어가 연수의 코앞에 바짝 다가갔다. 그리고는 쇼핑백을 연수에게 다시 안겨주었다.
"이거 필요 없어. 네가 지금 내가 많이 불편한 거 같은데. 그래 알았어. 네 마음 풀어질 때까지 기다릴게. 마음 풀어질 때 나랑 밥 먹을 수 있을 때 그때 다시 줘 연락하면 언제든지 가지러 올게."
연수는 자동차 문을 열고 한참을 자신을 바라보다 차에 올라 떠나는 준호의 차를 바라보았다. 준호의 힘없던 눈빛이 연수를 자꾸만 마음아프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