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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령
준호는 사무실에서 새 프로젝트로 인한 회의가 길어지고 있었다. 그때 회의실 문이 노크도 없이 열렸다. 문앞에는 준호를 노려보며 혜진이 서 있었다.
누군가 혜진의 이름을 불렀다.
"장 대리님. 무슨 일 있으세요?"
혜진은 사원의 말도 들리지 않는 듯 준호만을 노려보며 말했다.
"왜. 나야?"
준호가 대답도 없이 펜 뚜껑을 닫고 의자에 몸을 기대고 혜진을 보며 말했다.
"무슨 일입니까? 장대리. 지금 회의 중인 거 안보입니까?"
"왜 나야? 왜 내가 중국에 가야 하냐고? 왜 내가 갑자기 중국으로 발령이 났는지 설명을 해주라고."
회의에 모여있던 팀원들은 일어서지도 못하고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사태파악을 하고 있었다.
"장대리 어디 아픕니까? 장대리가 중국에 가는걸. 내가 왜 설명을 해야 합니까? 설명을 듣고 싶으면 장대리 팀장한테 들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당신이잖아. 당신이 뒤에서 결정하게 만든 거잖아."
준호는 탁자를 무섭게 내리쳤다.
"이게 도대체 무슨 짓입니까? 지금 내가 뭐 때문에 이런 소리를 듣고 있어야 합니까? 안과장 지금 3팀 팀장 이쪽으로 당장 오라고 하세요."
"네."
잠시 후에 3팀 팀장이 회의실로 빠르게 뛰어왔다.
"혜진 씨 왜 이래?"
혜진이 자신 팀장의 손을 뿌리치며 준호에게 말했다.
"지금 나한테 복수 하는 거야? 내가 당신 괴롭혀서 이러는 거냐고?"
준호는 팔짱을 끼고 3팀 팀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강 팀장님.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 하나요? 장대리가 중국에 가는 게 저랑 관계가 있나요?"
"아니야. 장 대리가 너무 흥분해서 미안해 한 팀장. 가자 장대리 가서 나랑 이야기해."
혜진이 주저앉으며 울먹이는 소리로 말했다.
"내가 그렇게 싫은 거야? 나를 멀리 보낼 만큼 내가 그렇게 꼴도 보기 싫을 만큼 싫으냐고? 우리 한때 좋았잖아. 다시 그때로 돌아가자는 게 그렇게 잘못된 생각이냐고."
준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혜진에게 걸어갔다. 가만히 혜진을 바라보던 준호가 팀원들이 있는것도 잊은 듯 혜진에게 말했다.
"장혜진 씨 우리가 헤어진 건 4년 전 입니다. 그리고 내 옆에는 다른 사람도 있습니다. 언제까지 과거에서 못 벗어나고 이렇게 지낼 겁니까?"
준호는 아직도 주저앉아 있는 혜진을 지나쳐 사무실을 나가려다 뒤를 돌아 다시 한 번 혜진을 보며 말했다.
"아…. 그리고 잊은듯해서 다시 한 번 말하는 건데 4년 전 우리가 헤어진 계기는 당신의 부정한 행동으로 인한 거였습니다. 그래도 중국발령이면 훌륭한 조건 아닙니까? 가서 몸 건강히 지내세요."
* * * * * *
다음날 회사에는 새로운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한 팀장을 좋아해서 4년 동안 쫓아다닌 스토커 제품 개발부 3팀의 장혜진 대리의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구내식당에 앉아 한참 밥을 먹던 연수네 팀 사람들도 혜진의 소문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 대리가 팀장을 못 잊고 결혼하려다 차였네! 뭐 그런 소문을 냈다는 거야?"
"그랬대."
"와. 그 여자 진짜 무섭다."
"그 여자가 집에도 무단침입하고 맨날 집 앞에 서 있고 그랬대."
"진짜."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팀장이 만나는 그 여자친구 한테가서 헤어지라고 말까지 했데요."
"어머. 어머. 웬일이니. 진짜 영화다. 팀장님 진짜 힘들었겠다."
정수는 아무렇지 않은 듯 밥을 먹고 있는 연수를 바라보다 식판을 수저로 툭툭 쳤다.
"아…. 이 아주머니들 밥을 먹어 밥. 무서운 스토커 이야기는 끝. 얼른 밥 먹고 후식이나 먹으러 가자."
"야. 너는 밥도 다 먹기 전에 후식을 찾냐?"
"아. 몰라 요즘 살 오르려나 자꾸 뭐가 땅겨."
"너..너혹시 .."
"됐거든. 아 이 아주머니들 얼른 밥이나 먹어."
그 순간 모두 놀란 듯 입이 벌어지는 일이 생겼다.
연수의 머리 위로 남자의 슈트와 식판에 있던 음식찌꺼기들이 동시에 머리 위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