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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명
"나와. 집 앞이야."
잠시 후 정수 앞으로 연수가 힘이 빠진 모습으로 걸어왔다. 정수가 웃으며 연수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야. 머리까지 짧으니까 꼭 엄마한테 엄청나게 혼난 중학생 같다."
"엄청나게 혼내줄 엄마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정수가 연수의 등을 소리가 나게 치며 말했다.
"이것이 교육 잘 받고 와서 왜 코를 빼고 있어. 밥은 먹었어?"
"응."
"먹긴 뭘 먹어. 딱 봐도 나 안 먹었어요 등에 쓰여 있구먼."
"난 생각 없어. 언니 배고프겠다. 뭐 먹고 갈까?"
"혼자 뭔 재미로 먹냐. 우리의 친구 파전과 막걸리나 먹으러 가자."
둘은 집 근처에 단골가게로 들어갔다.
정수는 아까부터 파전에서 해물만 쏙쏙 뽑아내고 있는 연수의 젓가락을 자신의 젓가락으로 쳤다.
"야. 네가 해물을 그렇게 골라내면 난 진짜 파만 들어있는 파전을 먹어야 하잖아. 그만 파내라."
"응."
연수는 그렇게 해물을 파내는 걸 중단 하더니 이번엔 막걸릿잔에 막걸리를 젓가락으로 휘휘 젖기 시작했다. 그런 연수를 바라보다 정수가 말했다.
"등 빌려주리."
"어?"
"그렇게 힘들어?"
연수가 놀란 듯 정수에게 물었다.
"뭘?"
"팀장님."
"알고…. 있었어?"
"그래. 네가 말할 때 까지 기다리려고 했는데 네 하는 꼬락서니가 영 또 입 다물 거 같아서 먼저 말하는 거야."
"알고 있었구나."
"친구였데."
연수가 정수를 바라보자 정수는 막걸리를 한 모금 마시고는 계속 이야기를 했다.
"대학 때 우진 오빠, 준혁 오빠, 팀장님 그리고 상민이란 친구 이렇게 넷이서 친한 사이였데. 근데 혜진이란 그 여자가 상민이란 친구랑 팀장님을 놓고 저울질했었데. 결국, 팀장님한테 넘어갔나 보더라고. 근데 문제는 팀장님을 만나면서 그 상민이란 친구도 계속 만나고 있었나 봐.
팀장님이 직접 둘이 호텔에 들어가는 것도 봤데. 그래서 끝내려고 했는데 그 상민이란 친구가 팀장님을 찾아와서 그 여자 버리지 말라고 애원했단다. 상민이란 친구가 그 여자 많이 좋아 했나 봐. 팀장님한테 보내줄 만큼.
그래서 팀장님 그 여자 버리지도 못하고 지금까지 끌고 왔나 보더라고. 자세한 건 나도 모르지만, 그 여자 때문에 팀장님도 친구도 잃고 마음고생도 많이 했나 보더라고."
연수는 한참을 탁자만 바라보다 막걸리 한잔을 단숨에 비워 버렸다. 그리곤 체념한 듯 말했다.
"그랬구나. 근데 언니 이유가 뭐든 깨끗하게 정리하지 못하고 온 거는 맞잖아. 그 여자 팀장님 많이 좋아하는 거 같더라고. 내가 진짜 미안할 만큼. 힘들어하고 있었어."
"그래서 이렇게 끝낼 거야?"
연수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 * *
연수와 정수는 아무 말 없이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집 앞 놀이터를 지날 때 였다. 멈춰있던 차에 차 문이 열리고 준호가 나왔다. 어두운 골목길 올라가는 길에 세워져 있던 차는 준호의 차였다.
준호는 연수를 발견하고는 연수의 팔을 붙잡았다. 준호에게서 술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최연수 네 말만 하고 가면 그게 끝이야?"
연수는 준호에게서 팔을 빼내려 애써 봤지만 준호는 더욱더 힘을 강하게 주었다.
"말해? 내 변명을 들어보지도 않고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따라와 이야기 해줄게 다 이야기 한다고."
준호가 연수의 팔을 잡아당기며 차에 태우려 했다. 정수가 달려와 두 사람을 겨우 떼어냈다.
"연수 너 집에 들어가 얼른."
연수가 정수의 말대로 빠르게 뛰어서 집으로 들어가자. 준호가 소리를 지르며 연수를 불렀다.
"최연수 이리 안 와. 당장 나와. 최연수."
"팀장님. 이런다고 해결되는 거 아니에요. 우선 진정하세요?"
정수는 준호를 간신히 차에 쑤셔 넣고 준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준호는 의자에 앉아 연수의 이름만 부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