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결혼하고 싶은 남자-35화 (35/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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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빌려주기.

준호가 퇴근 후 아파트에 돌아왔다. 연수는 아직도 자는지 아파트 안은 어두웠다. 준호가 거실에 불을 켠 순간 소파 앞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연수가 보였다.

"너. 불도 안켜고 뭐해? 푹 자라니까 언제 일어났어?"

"지금 막 일어났어요."

연수는 지금 막 머리를 감았는지 머리에 물기가 남아있었다.

"씻었으면 머리 말리지 않고 뭐 하고 있어?"

"이제 말리려고요."

연수가 수건으로 머리를 힘겹게 말리자 준호가 연수에게 다가와 수건을 빼앗아  연수의 머리를 대신 말려주었다. 아무 말 없이 준호의 앞에서 머리를 맡기던 연수가 조용히 속삭였다.

"팀장님. 저 팀장님 신입사원 미워요."

"알아."

"팀장님도 미웠어요. 확인 좀 잘해주지. 한 번만 더 확인해 줬으면 이런 일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원망도 했어요."

"나 같아도 그랬을 거야."

"그런데요. 팀장님 그 사고 치신분 아무 일 없이 그냥 넘어가서 더 화났었어요."

"그래 이해해."

"이상해요. 제 생각에는 책임을 지려면 제일 먼저 한 사람이 받는 게 맞는 거 같은데…. 왜 이런 일이 생길때 마다 우리가 다 받는지 모르겠어요? 물론 우리도 잘못했지만…."

"우리 연수 많이 힘들구나."

"네. 많이 힘들어요."

준호가 머리를 어느 정도 말리고 연수의 고개를 들어 올렸다. 준호는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연수는 울고 있었다.

"그렇게 힘들어."

연수가 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팀장님…. 사실은 사실은 다 핑계였어 팀장님 원망한 것도 신입분 원망한 것도 아냐. 나 때문에. 나 때문에 힘들어요."

연수가 더는 참기 힘들었는지 준호의 셔츠를 붙잡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준호는 연수를 가만히 안고 등을 쓸어줄 수 밖에 없었다.

"나는 팀장님. 진짜 불행한 인간인가 봐. 엄마도 아빠도 오빠도. 이모도 진짜 내가 지키고 싶은 사람들은 죄다 내 옆에서 사라져…. 언니도 꼭 내가 지켜주고 싶었는데…. 언니가 그만둬야 한데요. 나 어떡해요? 언니는 나한테 가족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언니랑 못 헤어질 거 같은데 어떡해요?"

연수는 준호의 품에서 몇 달을 참은 사람처럼 눈물을 쏟아내며 한동안 엉엉 울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연수의 눈물도 점점 줄어들었다.

연수가 코를 훌쩍이며 고개를 들었을 땐 준호의 셔츠가 눈물 콧물로 축축이 젖어 있었다.

준호가 연수의 머리를 정리해 주며 말했다.

"어휴. 최연수 아직 애는 애구나."

연수가 남은 눈물이 남은 듯 소매로 연신 눈물을 닦아냈다.

"연수야. 밥 먹으러 갈래? 맛있는 거 사줄게."

연수가 힘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뭐 해줄까? 뭐 해주면 기분이 나아질래?"

"등 빌려주세요."

"뭐?"

"등이요. 팀장님 등 빌려 달라고요."

연수가 한 손은 코를 닦으며 한 손으로 준호에게 뒤로 돌아앉으라는 표시를 했다. 준호가 뒤를 돌아앉자 연수가 준호에 등에 이마를 기댔다. 연수의 눈물이 준호의 등을 따뜻하게 적셔왔다. 준호는 연수의 잡은 두 손 위에 자신의 손을 겹쳤다.

어느 순간 연수의 손이 스르르 풀렸다. 등 뒤에서 연수가 잠이 든 듯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렸다. 준호가 풀려버린 연수의 손을 꼭 잡았다. 등이 뻐근해지고 아파 왔지만 준호는 이 순간이 마음에 들었다.

"최연수 네가 왜 코알라인지 이제 알았다."

준호는 연수가 좀 더 편하도록 몸을 좀 더 낮춰주었다. 연수의 기분이 나아진다면 이렇게 있는 게 밤새워도 문제 없을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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