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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난 마누라
[여보세요.]
[일어났어?]
[네. 인제 나갈 준비 하려고요. ]
[밖에 비 엄청나게 많이 내린다. 우산 준비해.]
[네. 알았어요.]
[연수야. 내가 잠깐 시간이 날 거 같은데 데리러 갈까?]
[싫어요. 오지 마요.]
[생각 좀 하고 대답하지. 너무 빠른 거 아냐?]
[요즘 우리 언니들 팀장님이 하도 라인에 많이 내려와서 의심하기 시작 했단 말이야. 그니까 조심해야 한다고요. 언니들은 귀신 이라고요.]
[그럼 어떡해? 그때 말고 너 볼 시간이 없는데. ]
[그러니까 오늘 가서 휴가 써본다니까. 오늘부터 절대 라인에 오지 마요.]
[생각해 볼게.]
[아. 나 인제 나가야해요 . 나중에 봐요. 팀장님]
준호는 꺼진 핸드폰을 한동안 바라보다 주머니에 넣으며 생각했다. 지금 출발하면 한 30분 정도면 도착하겠군. 그때쯤 부장님을 꼬셔서 흡연실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준호는 하고 있었다.
준호는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밖을 보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야. 내가 나이 먹는 것도 서러운데 지 여자친구 출근하는 거 본다고 데리고 오냐?"
"영광인 줄 알아요. 나 아니면 부장님 챙기는 사람 없잖아. 부장님은 여기서 담배 피워서 좋고 나는 연수 봐서 좋고 아주 훌륭하구먼."
"고맙다. 아주 고마워서 절이라도 해야하냐?"
"뭐 너무 고마우면 나중에 밥이나 쏘던지."
"어휴. 저 능글맞은 새끼. 아. 우리 마누라가 네 영원의 반쪽 찾았다고 했더니 배꼽 잡고 웃더라. 얼마나 가나 보자고. 근데 내가 이번엔 심상치 않다고 했더니 밥해준다고 데리고 오라더라 어떤 여자가 널 잡았는지 궁금해 죽겠단다."
"연수한테 물어보고. 우리 연수 불편해하면 안가."
"아…. 이 새끼 진짜 미쳤네."
부장이 담배를 뻑뻑 피우고 있을 때. 정문 근처에 차 한 대가 멈춰 섰다. 준호는 멈춘 차에서 고개를 돌려 연수가 오는 쪽을 보고 있었다.
그때 부장이 준호의 어깨를 팔로 콕콕 찍으며 말했다.
"저기 연수 아니냐?"
준호가 고개를 돌리자. 지금 막 조수석에서 내린 연수가 우산을 펼치고 운전석에 누군가에게 웃어 보이며 빠르게 회사 안으로 들어갔다.
* * * * * * *
준호는 사무실 책상에 앉아 볼펜을 두드리며 아까 보았던 장면을 다시 떠올리고 있었다. 분명 운전석에 있던 건 남자 같았다. 확실하진 않지만…. 그리고 정수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준호의 마음에 가장 걸리는 건 오늘 연수가 입고 온 치마였다.
오늘 연수의 치마는 무릎을 넘어가는 길이었다. 만약 운전하는 사람이 남자였다면 거기까지 생각을 하다. 아무래도 물어보는 게 빠르겠다는 생각에 연수에게 문자를 보냈다.
[도착했어?]
[네. 이제 라인에 들어가려고요.]
[버스 타고 왔어? 비 엄청나게 오는데.]
[아니요. 집 근처에 주임님이 한 분 사시거든요. 오늘 태워주신다 해서 그 차 타고 왔어요.]
존호는 긴장했던 표정이 약간 풀어지며 문자를 빠르게 입력했다.
[단둘이?]
[아니요. 정수 언니랑.]
[아…. 그렇군 그 주임님 결혼했어?]
[아니요. 아직 이요. 저 인제 들어가 볼게요. 휴식 시간에 전화 할게요.]
준호는 수고 하라는 답장을 보낼 생각도 안 하고 결혼하지 않았다는 그 부분 문자에 눈이 정지해 있었다. 그럼 총각 앞에서 그 짧은 치마를 입고 앉아 있었을 연수를 생각하자. 갑자기 화가 나기 시작했다.
치마에 관한 문자를 보내려다 준호는 포기하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다시 집어넣었다. 틀림없이 치마가 짧다는 문자를 보내거나 왜 그 차를 타고 오느냐는 문자를 보낸다면 연수는 아저씨 같다. 세대 차이 난 다 이렇게 생각할 거 같았다.
이런저런 생각에 준호의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했다. 준호는 우선 숨을 한번 크게 쉬고는 진정하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휴게실에서 커피 한잔을 마셨다. 준호는 갑자기 바람난 마누라처럼 연수를 보는 자신이 웃기기도 했다.
자신이 혼자 오해하는 이 시간이 민망하기도 했다. 이따 휴식 시간에 전화한다 했으니 그때 꼭 치마 길이에 대해 말하리라 결심하면서 준호는 휴게실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