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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의 마음에 들어가다.
준호는 퇴근 후 자신의 문앞에 서 있는 혜진을 보고 집의 비밀번호를 누를 생각도 하지 않고 화가 난 듯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도 여기에 볼일이 남았어?"
"비밀번호 바꿨네."
"바꾼다고 했잖아."
혜진이 싱긋 웃으며 준호의 팔을 잡았다.
"우선 들어가서 이야기해. 자기랑 나랑 이렇게 쉽게 끝낼 사이 아니잖아."
준호는 이마를 찌푸리며 팔을 억지로 빼내며 혜진에게 말했다.
"우리가 무슨 사이였던가?"
"자기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이야기로 풀자.."
"강혜진 여기서 그만해 니가 자꾸 이렇게 질척일수록 동료로도 지낼 수 없어 ."
"그동안 내가 준호씨한테 아무것도 아니었던 거야. 그런 거냐고?"
"이런 뭔가 오해를 한 거 같은데 우리는 서로 계약한 거 아니었나."
"그건..."
"난 분명히 이 관계는 오래 못 간다고 이야기했어 너도 좋다고 했고. 내가 싫증이 나면 너랑 언제든지 안녕하기로. 잊었어."
"그건. 그때는 .."
"그때는 뭐."
"나. 준호씨 사랑해."
혜진이 준호에 팔에 매달리며 울기 시작했다. 준호는 가소롭단 표정으로 혜진을 바라보며 화가 난 듯 말했다.
"내가 언제까지 속아줄 거라 생각했어. 성민이랑 짜고 그날 너랑 나 호텔에 들어간 거 나 다 알아. 그러니까 그만해. 더이상 내 입에서 더러운 이야기 나오기 전에."
혜진이 놀란 듯 준호를 바라보았다. 혜진이 손이 준호의 팔에서 스르르 힘없이 내려가자. 준호는 비밀번호를 누르기 위해 한 발짝 움직였다. 그리고 비밀번호를 누르려다 문득 생각난 듯 등 뒤에 있는 혜진에게 말했다.
"아..그리고 성민이 그 개자식 너 좋아한다던데 너 그거 알고있냐... 다시는 내 눈앞에 보이지 마라. 회사에서도 되도록 부딪치지 말고."
준호는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혜진은 고개를 떨구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 * * * * * * *
준호의 차는 건널목 앞에 초록색 신호를 받아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 혜진을 만난 껄끄러운 기분이 남아있던 준호는 음악이라도 들으려 손을 뻗었다 그러다 준호의 눈에 건너목을 지나는 연수를 발견했다. 준호는 음악을 틀려던 생각도 잊고 몸을 다시 바로 세웠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하얀 원피스를 나풀거리며 준호의 차 앞을 연수가 지나쳐갔다. 한동안 연수를 눈으로 쫓던 준호는 뒤차의 클랙슨 소리에 차를 출발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