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호
준호는 피곤한 얼굴로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뚜벅뚜벅 걸어가 현관비밀번호를 눌렀다. 비밀번호 해제 음이 들리자 문을 열고 들어간 준호는 이마를 찌푸렸다.
코를 찌르는 지독한 향수 냄새가 가뜩이나 피곤한 준호의 머리를 더 아프게 만들었다.
"피곤하지 오늘 준호씨가 좋아하는 두부전골 끓였어. 먼저 씻을래?"
아직도 자신의 목에 매달려 있는 혜진을 억지로 떼어내며 준호가 말했다.
"너 지금 사무실에 있어야 할 시간 아니야?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준호씨 며칠 동안 잠도 못 자고 일했잖아. 맛있는 밥 해주려고 왔지."
준호는 계속 달라붙는 혜진을 떼어내며 말했다.
"알았어. 나 좀 씻고 옷 좀 갈아입고 나올게. 나중에 이야기하자."
혜진이 준호의 팔에 자신의 팔을 감싸며 애교 섞인 얼굴로 말했다.
"내가 씻어줄까?"
"장난하지 마. 나 지금 너랑 실랑이할 힘도 없어."
혜진이 입을 삐죽이며 팔을 놓아주자 준호는 얼른 욕실로 들어가 물을 틀고 혜진의 향수 냄새를 씻어내 버렸다.
준호가 나오자 혜진이 다시 한번 데워진 전골을 식탁에 내려놓으며 준호를 불렀다.
"어서 와. 준호씨 배고프지."
준호가 이마를 찌푸리며 식탁에 앉았다.
"얼른 먹어."
준호는 입맛도 없었지만 ,혜진의 독한 향수 냄새 때문에 음식 맛도 느낄 수가 없을 정도였다. 혜진이 턱을 괴고 준호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나. 오늘 자고 갈께."
"됐어. 집에 가."
"싫어. 자고 갈 거야. 우리 오랜만에 단둘이 있는 거잖아."
준호는 숟가락을 식탁에 내려놓으며 혜진에게 말했다.
"집 비밀번호 바꿀 거야. 그러니까 더는 내 집에 오지 마."
"왜 그러는데. 피곤해서 그런 거면.."
"그만 끝내자."
"준호씨..갑자기 왜 그러는데?"
"갑자기 아냐 생각 많이 했어."
"우리 좋았잖아. 서로에게 불만 없었잖아. 그런데 왜 이러는데?"
"아니. 난 우리가 만나면서 좋아던 적 그리 많은 거 같지 않은데."
"그. 그럼...왜 .지금까지 날 만났는데?"
혜진이 울먹이자. 준호가 피곤한 듯 이마를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말했다.
"너 내가 어떤 놈인지 알고 시작했잖아. 난 오는 여자 안 잡고 가는 여자 안 붙잡아. 어차피 여자는 나한테 중요한 존재가 아니니까."
혜진이 당황한 듯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준호가 식탁에서 일어나 혜진에게 말했다.
"이만하면 설명 충분히 된 거 같은데. 일어나 데려다줄게."
혜진이 일어나며 준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 준호씨 포기 안 해 아니 못 해 오늘은 그냥 갈게 하지만 여기서 끝난 거라 생각하지 마. 준호씨."
준호가 대답 없이 혜진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그냥 택시 타고 갈게 나오지 마."
"그러던지."
혜진은 나가기 전 원망 섞인 얼굴로 준호를 바라보았다. 혜진이 나가자 준호는 빠르게 비밀번호를 교체했다. 식탁으로 다가간 준호는 두부 전골을 바라보다 냄비를 들어 올려 향수 냄새가 강한 전골을 싱크대에 부어버렸다.
냉장고에서 맥주캔을 꺼낸 준호는 이제야 편한 듯 소파에 앉아 눈을 감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