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상사굴
고요한 어둠 속, 오감이 열리며 물소리는 잦아들고 사르르사르르 수십 개의 발을 물결치듯 움직이며 돌 틈을 기어오르는 생명의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온다.
가부좌를 틀어 앉은 묵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사 년 만에 다시 동굴에 갇히게 된 감회가 새롭다.
‘다시는 들어올 일 없을 줄 알았는데….’
일곱 살 여름, 묵은 처음으로 이 동굴에 갇혔다.
다섯 살 나이에 천명의 손에 맡겨져야 했던 묵은 낯선 할아버지와의 생활이 외롭기만 했다.
파벽을 자유로이 오르내릴 나이가 되자 묵은 토끼 한 마리를 잡아 허리춤에 끼워 넣었다.
‘집에 도착하면 예쁜 집도 만들어 주고 맛난 풀잎도 가득 따다 주어야지.’
파벽을 뛰어올라 집에 도착했을 때, 토끼의 몸은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죽이려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 죽었구나.”
“저는. 저는 그저 동무가 필요하였을 뿐입니다.”
“토끼는?”
“예?”
“토끼도 너와 같은 마음이었느냔 말이다.”
“그, 그것이. 저는.”
“아니, 아니다. 네가 아니다.”
“…….”
“너의 욕심에 죽어 간 가여운 이 생명이 네게 동무가 되어 주겠다 했더냐.”
묵은 아무런 답을 하지 못했다.
천명은 대답을 기다리는 대신 파벽 중앙에 작은 틈이 벌어져 생긴 동굴로 묵을 데려갔다.
“상사굴이라 한다. 서로를 기다린다는 의미이니 네가 무엇을 알아야 할지 깨우침을 기다리거라.”
“할아버지! 할아버지이이!”
일곱 살 묵은 천명을 부르며 밤새 울었다.
“할아버지! 꺼내 주셔요! 무서워요! 묵은 무섭습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천명은 나타나지 않았고 어린 묵은 울다 지쳐 잠이 들었다.
“토끼도 이렇게 무서웠을까…. 내게 잡혀 죽어 가면서 이렇게 무서웠겠지.”
울기를 멈춘 묵은 조용한 소리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상생의 주문은 어둠 속에 갇혀 버린 묵에게 평안과 안식을 가져다주었다. 동굴에 갇힌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수물 수래 가우평야 토우 토래 가우평이 사우명이 가우사라.”
묵은 답을 얻었다. 그가 놓쳐 버린 것이 무엇인지. 또한 늘 온유하기만 했던 천명이 그토록 노하였던 이유도.
두려움이 물러가니 미안함이 가득하여 어린 묵은 눈물이 났다. 그 눈물이 마르기 전에 입구를 메웠던 돌이 사라지고 빛과 함께 천명이 나타났다.
“무엇을 보았느냐.”
“살갗으로 파고드는 두려움, 아무리 소리쳐도 벗어날 수 없는 절망을 보았습니다.”
“무엇을 들었느냐.”
“가슴이 저릿저릿한 서러움과 깊은 수렁 같은 슬픔 그리고 원망….”
“깨달음은 만났느냐.”
“흐윽, 흑흑흑. 토끼에게 지울 수 없는 죄를 지었으니 어찌하면 좋을까요.”
“갚아야지. 살아가며 갚아도, 갚아도 다 갚지 못하면 다음 생을 이어 갚으려무나.”
그 일이 있은 지 사 년, 묵은 지금 같은 주문을 외우고 있다. 묵은 성장하였고 더 이상 천명을 ‘할아버지’라 부르지 않는다.
살생 외에는 크게 화내는 일이 없는 천명이 상사굴에 집어넣은 것을 보면 단단히 화가 난 것이 분명하다.
“사사로이 도술을 행하여 노인의 업보를 유예하였으니 그들의 윤회가 틀어진 것은 물론, 또 다른 운명들까지 일그러트리게 될 것이다.”
여울이 아니었다면 그런 일을 벌이지도 않았을 테지만 또한 그 때문에 더욱 엄한 벌을 내렸을 천명의 마음을 이해할 만큼 묵은 성장했다.
묵은 뜻하지 않은 곳에 자라나 낯선 영혼을 담고 살아야 할 나무에게 미처 못다 한 마음을 전했다.
“수물 수래 가우평야 토우 토래 가우평이 사우명이 가우사라.”
물은 물로 돌아가고 흙은 흙으로 돌아가니 죽음은 삶으로 거듭나리라.
‘죽음은 삶으로 거듭나리라.’
되뇌는 묵의 주변으로 자욱한 연무처럼 피 내음이 내려앉는다. 서릿발 같은 한기가 가시처럼 묵의 가슴으로 박혀 들었다.
“하아…. 거듭나리라.”
하얗게 피어오르는 입김.
‘변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
사삭, 사라삭. 가시덩굴처럼 동굴 벽을 타고 오른 한기가 얼음 꽃으로 피어났다.
‘아무리 거듭나도 죽음의 공포는 참으로 가혹하다. 삼천 년을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아….’
통째로 뜯어진 채 검붉은 피로 엉겨 붙은 심장.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처음이 아니니까.
“보지 않겠다. 듣지 않을 것이다….”
소리의 파장이 아닌 공기의 울림이다. 그 울림은 점점 선명하게 묵의 귓가로 내려앉았다.
“네 안에 화염처럼 타오르는 분노가 보이지 않는가? 아니면 얼음처럼 박혀 드는 원한이 들리지 않는가.”
공기의 울림이 변할 때마다 쥐어짜는 통증은 불기운처럼 번져 가슴을 태우고 식도로 치솟아 오른다.
“크억, 쿨럭.”
검붉은 피를 덩어리째 뱉어 낸 묵이 어둠 속에 움직이는 심장의 형상을 노려봤다. 핏덩이 같은 모습은 환영이며 거짓이다. 하나 그 실체는 피 철갑을 두른 장수의 모습이며 분명하게 살아 있는 역사였다.
“크크크, 고통스러운가.”
빠드득. 묵은 이를 악물었다. 요즘 들어 다시 시작된 악몽은 더욱 참혹했다.
사부님의 환약이 더 이상 효험이 없는 걸까?
‘어쩌면 평생을 완치되지 않는 병일지도.’
“병이라. 흐흐흐, 나는…. 너의 시작이며 너의 마지막이다.”
“시•끄•러•워•, 커억.”
가슴이 뚫리고 팔다리가 뜯겨 나가는 통증에 묵이 또다시 피를 토했다. 머리가 없거나 혹은 팔다리가 잘린 모습으로 나타나는 악몽은 끊어지지 않는 윤회의 굴레보다 더욱 질기게 그에게로 엉겨 붙었다.
“도선 나부랭이 뒤에 숨어 얼마나 버티리라 생각하는 것인가. 망각의 환약 따위 네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도대체, 내게, 내게 무슨 원한이 있어 이리도 괴롭히는 거지?”
부모와 생이별을 하고 천명에게로 왔건만, 묵은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망령은 더욱더 흉측한 몰골로 강력한 통증을 동반하여 나타났다.
“내게서 벗어나고 싶은가.”
벗어나고 싶다. 그에게 벗어나기 위해 이 벼랑 끝까지 도망쳤던 것이 아닌가.
“…찾아.”
“무, 무엇을 찾으란.”
“찢겨진 내 육신을 찾아. 진실이 깨어날 것이다.”
“왜 내가 너 따위 잡귀의 한을 풀어 줘야 해!”
“크크크크, 왜일까.”
숨 막히는 통증으로 묵은 차가운 돌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심장을 쥐어짜는 고통이 또다시 식도를 타고 오르자 삼켜 내지 못한 묵이 울컥 피를 토했다.
“너의 삶이 나의 죽음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크억, 싫, 다면.”
“절벽에서 그 계집아이.”
묵의 머릿속으로 사납게 달려들던 여울이 떠올랐다. 묵은 입술을 축이며 숨을 들이켰다.
“손을 놓았다 하여 죽인 것은 아니지.”
“흐흐흐, 토끼도 네가 죽인 것이 아니지. 네 허리춤에 묶인 끈이 숨통을 조인 것이니. 그렇지 않은가.”
공포에 질린 여울이 파벽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비명을 지르며 깨어나는 여울을 보면서도 묵은 그녀의 손을 놓은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분명히 경고했어. 다가서지 말라고, 멀리 도망가라고.’
손은 놓았으나 기절한 그녀를 정상 가까이 데려다 놓은 것 또한 묵이었다.
“내 몸을 찾아. 잃어버린 머리와 몸, 팔과 다리. 찢겨진 모든 조각들을 찾아.”
울컥대던 심장이 붉은빛을 잃고 투명하게 변해 간다. 흐트러지는 망령의 울림이 묵의 고막을 긁어 내렸다.
“거절하면 아이는 죽는다.”
망령이 사라지자 고통도 피 내음도 사라져 버렸다.
묵은 입술을 훔치며 벽에 기대어 앉았다. 손에 흥건했던 핏자국조차 흔적 없이 사라졌다.
‘모두가 허상이었던가.’
하지만 심장은 통증을 기억하며 거칠게 뛰고 있다. 묵은 가슴에 품고 있던 가죽신을 움켜쥐었다.
“여울….”
***
오래된 서책을 붙잡고 앉은 여울은 몸을 배배 꼬며 책장을 넘겼다. 그림이 잔뜩 그려진 책에는 한 줄씩 글자라 불리는 지렁이들이 누워 있다.
“혼돈의 소용돌이 속에 원시천존이 탄생하니 비로소 모든 사물은 이름과 실체를 얻게 되었다.”
눈에 힘을 바짝 주고 노려보려니 꼬물꼬물 움직이는 듯 착각이 인다.
“대라천 천존의 기운에서 상제와 마왕이 파생되고 수많은 천인들이 생겨나 인계의 왕제를 낳았다?”
여울이 나무 책상에 이마를 박는다.
쿵.
머리가 바글거려 아픈 줄도 모르겠다.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개족보를 가진 여울에게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하늘나라 족보는 어렵기만 했다.
‘아…. 좀 쓸 만한 것들을 가르쳐 주면 좋으련만.’
영산에 온 지 벌써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글을 가르쳐 준다던 천명은 여울에게 하늘나라 신들의 이름과 계명을 외우게 했다.
“천선 낭랑?”
그나마 천선의 그림이 나오니 아주 잠시 눈이 반짝였다.
“동악대제의 딸로 인간의 출생과 혼인을 관장하는 여신이다.”
천존의 마음을 움직여 인요대전을 끝내지만 천존은 그녀에게 인계의 계몽이란 커다란 숙제를 내렸다.
“아, 그래서 인간 세상에 내려와 있는 거였구나. 어우, 낭랑님 따라갔으면 진짜 선녀가 되어 있는 건데!”
오전 내내 천신들과 천계를 설명하는 사부님은 아는 것은 많으나 그것들을 풀어내는 재주는 없는 듯.
여울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오라버니처럼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해 주면 좋으련만.’
해는 이미 서쪽으로 기울어 가고 있었다.
“오라버니는 무얼 하고 있을까?”
조금은 가까워졌나 싶었던 묵과 헤어진 지 꼭 보름.
불같이 화염을 토할 줄 알았던 천명의 노여움은 서늘하며 고요했다. 천명은 묵을 폭포 반대쪽에 있는 굴속에 가두고 입구를 막아 버렸다.
그녀가 고집을 부려 그리되었다 아무리 설명을 하여도 소용없었다. 천명의 침묵은 포악한 개수에게 두들겨 맞을 때보다 더한 공포로 여울을 얼려 버렸으니.
살쾡이 같던 여울은 더없이 순한 집고양이가 되어 오늘도 종이에 적힌 지렁이들과 씨름 중이다.
“하아…. 하루 종일 책상에 붙어 앉아 있으려니 좀 쑤셔 죽겠네.”
한숨을 푹푹 내쉬던 여울의 시선이 볕이 잘 드는 책상 끝에 밀어 두었던 바가지로 향했다. 몸을 일으킨 여울이 책상에 엎드려 바가지를 덮은 천을 들춘다.
“넌 좋겠다. 공부 안 해도 밥 주는 내가 있어서.”
시뻘건 게 새까만 눈도 막에 감싸여 꼬물거리던 게 엊그제 같은데.
“반야, 반야야.”
새까만 눈을 깜박이는 반야는 여울을 향해 입을 쩍쩍 벌렸다. 척추를 따라 잿빛이 돌긴 하지만 나무 빗처럼 삐죽빼죽한 날개에 쭈글쭈글한 얼굴이 영 못난이다.
“정말 새가 맞기는 한 걸까?”
목 밑으로 소낭이 빵빵한데도 더 달라 까만 부리를 쫙 벌려 샛노란 입 안을 속속들이 보여 준다. 문득 사부님의 돌을 삼켰던 송이가 떠올랐다.
잘 있나 몰라. 아무거나 집어 먹고 배앓이를 하진 않으려나?
삐이, 삐삐삐, 삐이이이.
“아침 줬잖아. 그러다간 배가 터진다고.”
입 안에 먹이를 넣으라 여울을 부르는 반야의 소리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더 크면 여울만큼이나 목청이 좋아질 듯싶다. 아이고, 예쁜 것.
“다 읽어 보았느냐.”
“히익!”
소리도 없이 들어선 천명의 음성에 잽싸게 바가지에 천을 덮은 여울이 책을 든다.
“예, 사부님.”
“외워 보거라.”
“대라천 천존께서 인계에 계율을 내리니 첫째는 부모에게 불효하지 말 것. 둘째는 생명을 다치게 하지 말 것.”
쫑알쫑알 계율을 외던 여울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사부님, 이것은 참으로 이해가 아니 갑니다.”
“무엇이 말이냐.”
“일곱째 해와 달, 별 아래서 벗지 말 것.”
“그것이 어찌 이해가 아니 가누?”
맞은편에 앉은 천명이 긴 수염을 쓸어내리자 여울이 미간을 찌푸렸다.
“해와 달, 별 아래 옷 벗을 일이 무엇이 있답니까.”
“아…. 그것은….”
말을 잃은 천명이 떨떠름하게 여울을 바라보더니 이내 헛기침을 한다.
“흠흠, 일곱 번째 계율은 아직 네가 이해하기엔 어려움이 많으니 나중에 가르쳐 주마.”
표정이 영 이상한 것이 여울은 일곱 번째 계율에 대단한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의구심이 든다.
“해 아래 옷을 벗는 거야 물질하느라 그런 것이니 저도 이해합니다. 단지 달과 별 아래 옷 벗을 일이 무엇이 있는지만 가르쳐 주시면 되는데요.”
“옳지. 더운 여름에는 다들 개울에서 멱을 감지.”
“달이 뜨면 밤인데, 잠 안 자고 옷 벗을 일이 뭐가 있을까요?”
한번 물면 놓지 않는 것도 거지들의 특성, 개중에서도 여울은 으뜸가는 거지였다.
“별과 달빛 아래서는 벗고 무얼 하나요?”
아무리 심호흡을 하여 봐도 얼굴이 달아오른다. 운우지정을 논하자 달려드는 이가 백원후 하나일 줄 알았는데, 이리 난감할 때가. 흠, 흠흠.
“아! 알겠습니다!”
손뼉을 치며 자랑스레 올려다보는 여울과 눈이 마주친 천명은 등줄기가 서늘하다.
무, 무어라?
“큭큭, 제가 말입니다. 여우 주막에서 때 아닌 목욕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날도 달밤이었으나 지붕이 있으니 달과 별 아래는 아니지요. 하여 가만 생각해 보니 밖에서 벗고 씻지 말라는….”
“옳거니! 영특하도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천명은 읽은 것을 써 보라 시킬 마음이 싹 가셔 버렸다.
“참으로 기특하다. 그것을 깨우치다니.”
“아이, 사부님도 참….”
“공부를 하며 고심하였을 너의 마음이 참으로 기특하니, 오늘은 그만하고 편한 시간 보내도록 하여라.”
“니예?”
“배움이라는 것이 끝이 없으니, 한꺼번에 욕심을 부리면 탈이 나는 법이지, 흠흠.”
잠깐만 졸아도 어김없이 벼락을 치던 사부님이 황급히 일어나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사부님의 자리에는 지팡이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지팡이도 두고 어딜 저리 급히 가시지?’
생각도 잠시.
“우아아아앗! 신난다!”
먹고 자고 싸는 시간 빼고 열흘 내리 책상에 붙어 있던 여울은 뜻밖의 자유가 감격스럽다. 그 감격을 주체할 수가 없어 밖으로 뛰어나온 그녀는 넓지도 않은 마당을 가로질러 다섯 바퀴나 뛰었다.
“하아, 하아.”
우물 위로 훌쩍 뛰어오른 여울이 팔을 뻗어 소나무 가지에 매달렸다. 그네처럼 이리저리 몸을 흔들던 여울은 아이들과 영주 땅을 누비며 내달리던 추억에 코끝이 시큰해진다. 아이들이 보고 싶었다.
‘먹쇠, 칠석이, 분례, 돌석이, 개똥이, 순이, 송이…. 다들 잘 지내고 있겠지?’
글을 배우고 싶은 마음이 없는 이유도 소식을 전하고픈 이들이 모두 까막눈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글을 읽을 수 있다면 멀리멀리 소식 전할 수 있을 텐데.
“으라차차!”
몸을 흔들어 그 반동으로 높이 뛰어오른 여울이 지는 해를 향해 폴짝 뛰어내렸다.
“사부님! 사부니임!”
그리 넓지도 않은 마당과 집을 뒤지며 사부님을 불러 보았지만 그 어디에도 천명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책상 옆에 놓인 지팡이가 없어진 것을 보니.
‘출타하셨구나!’
보름 내내 어미 닭처럼 곁을 지켰던 사부님이 외출하신 것이 분명하다. 소나무에서 솔잎을 한가득 꺾어 품에 넣은 여울이 폭포 반대쪽으로 파벽 계단을 내려갔다. 바다 새의 둥지처럼 파벽 한가운데 입구가 막힌 동굴 속에 묵이 있다.
‘잘 지내고 있을까?’
아슬아슬하게 계단을 벗어나 바위들을 움켜쥐곤 커다란 돌에 막힌 입구 앞에 내려섰다.
“오라버니, 묵 오라버니.”
“여울?”
안에서 묵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오라버니 괜찮아?”
“괜찮아.”
“깜깜한데 안 무서워?”
“풋, 무서울 것도 많다.”
“솔잎 좀 가져왔어.”
여울이 솔잎을 한 움큼 집어 바닥의 돌 틈으로 밀어 넣어 주자 묵이 웃는다.
“한 보름 굶어도 안 죽어.”
“보름이나 된 건 어찌 알았대?”
“너도 곧 알게 될 거야.”
굶는 것에 이골이 난 여울이지만 사나흘 지나면 분간이 안 가는데, 묵의 목소리는 기운차기만 하다.
“오라버니는 힘도 센데. 이 정도 바위도 못 치워?”
“바위를 밀고 나가면 사부님은 태산을 가져다 눌러 놓으실 분이야.”
“에이, 설마 그렇게까지 하시려고.”
“잘못을 했으니 벌을 받아야지.”
“그래도 너무해.”
“책임을 지지 못할 행동은 손잡이 없는 칼과도 같아 모든 이들에게 상처를 주게 되는 법이지.”
묵의 음성을 들으며 돌에 걸터앉아 있으니 아찔한 파벽도 그다지 무섭지 않았다. 꼬물거리는 발가락 사이로 스치는 바람이 간지럽다. 여름이 오고 있었다.
“넌 어때? 공부 잘돼?”
“엄마, 아빠 이름도 모르는데 천신들 이름은 알아서 뭐에 쓴대?”
“후후후, 그것 먼저 배워야 요괴들도 배우지.”
“요괴도 족보가 있나?”
“세상에 근본 없이 생겨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그런가?”
“천신이야 평생에 마주칠 일이 없겠지만, 요괴나 악귀는 출현 빈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어.”
“응.”
“그 습성과 약점을 파악해야 제거하지. 그래서 배워야 하는 거야.”
“어려워.”
세상이 만들어진 이야기와 창조신에 대한 이야기를 물으니 묵이 손오공 이야기를 해 주었던 것처럼 쉽게 풀어 말해 주었다.
“정말? 그럼 천신도 마왕도 요괴도 모두 인간하고 같은 데서 나온 거네.”
“그러니까 생명은 모두 똑같이 소중한 거야.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쉽게 상하게 해선 안 돼.”
“오라버니는 나무 패서 가난한 사람 도와주잖아. 그럼 나무는?”
“병든 나무나 오래 살지 못할 나무들을 고르는 거야. 나무에게 허락받고 인사하고.”
“어떻게 인사를 해?”
여울의 물음에 동굴 안에서 평온한 목소리가 노래처럼 들려온다.
“수물 수래 가우평야 토우 토래 가우평이 사우명이 가우사라.”
“무슨 뜻이야?”
“물은 물로 돌아가고 흙은 흙으로 돌아가니 죽음은 삶으로 거듭나리라.”
여울이 묵을 따라 주문을 외웠다. 자꾸만 따라 하다 보니 마음이 평안해지는 음률이 입 안을 맴돈다. 죽어 가는 모든 것들이 끝이 아니라 다시 태어난다 하니 죽음도 이별도 슬프지 않을 것 같다.
“멋진데? 저번에는 안 했잖아.”
“응, 깜박 잊었어. 그래서 벌 받고 있잖아.”
“큭, 죄목이 갈수록 늘어나는구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았다. 작은 틈으로 볕이 잦아드니 묵은 저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시간이 너무나도 빨리 사라져 버린다.
“여울아, 이제 그만 가 봐.”
“더 있고 싶은데.”
“너 여기 온 것도 사부님 이미 아실걸?”
‘사부님’이란 말에 여울이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울아!”
“응?”
부르는 소리에 돌아서니 돌 틈에서 가죽신 한 짝이 쑥 튀어나왔다. 그리고 연이어 또 한 짝이 밀려 나온다. 신발보다 그것을 내미는 손이 너무나도 창백하여 여울은 마음이 아프다.
“굴속에서 신발 만들었어? 도술로?”
“도술로 신발을 만들면 열흘은 더 갇혀 있어야 할걸?”
“그럼 어디서 난 거야?”
“지난번에 마을에서.”
내내 가슴에 품고 있었던 것처럼 신발에서 그의 온기가 느껴졌다.
“됐다니까…. 고집도.”
“가져가. 여기는 날카로운 돌이 많아 발바닥 찢어져.”
신발 전해 줄 새도 없이 굴에 갇혀 버린 묵이 안쓰러워 여울은 더 이상 토 달지 않고 신발을 신었다.
“발에 꼭 맞아. 고마워.”
“얼른 가.”
“또 올게.”
“오지 마. 자꾸 다니러 오면 구금 시간만 길어진다고.”
“몰래 오면 되지! 흥!”
혀를 빼물고 후다닥 파벽을 기어올라 계단을 달렸지만 계단 끝에는 저승사자처럼 천명이 서 있었다.
“사, 부님.”
천명의 시선이 신발을 신은 그녀의 발끝으로 향하니 여울은 조용히 숨을 들이켰다.
“아…. 묵 오라버니가. 잘 있나 걱정이 되어서 갔는데.”
호통을 치려나 했더니만, 뜻밖에도 천명이 인자하게 웃음 짓는다.
“그래. 묵은 잘 있더냐.”
“아…. 예.”
웃으며 돌아서는 천명을 따라 여울이 발걸음을 옮겼다. 살았나 싶어 숨을 내어 쉬는데.
“내일쯤 올라오라 하려 했더니, 오늘 네가 내 명을 어기고 묵을 만나러 갔으니 닷새는 더 두어야겠구나.”
“예에? 사부님! 오라버니가 부른 것이 아니라 제가 기어 내려간 것인데, 어찌 오라버니를 벌하십니까.”
“모든 행동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 이리될 것을 알고도 묵은 너를 돌려보내지 않았으니 기한을 늘리는 것은 합당하다.”
“그럼 저도 벌을 받아야지요.”
억울한 마음에 여울이 발을 동동 구르자 천명이 돌아서며 웃었다.
“마음 주는 모든 것들이 족쇄가 될 거라 하지 않았더냐. 동굴에 갇힌 묵의 시간이 네게도 충분한 벌이 되었으리라 생각하는데. 아니 그러하냐.”
여울은 머리 위로 돌덩이가 떨어져 내린 듯 멍해졌다.
‘저렇게 사악한 면이 있을 줄이야. 아우의 잘못으로 형을 벌하면 아우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겠는가. 망할!’
여울은 볼을 잔뜩 부풀린 채 천명을 따라 집으로 들어섰다. 그가 내미는 주먹밥도 마다한 채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우니 서러워서 가슴이 따끔거린다.
천명에 대한 원망이 파도처럼 밀려와 이를 갈고 누워 있으려니 어둠 저편으로 부드러운 음성이 들려왔다.
“억울하냐.”
“예.”
“잘못한 것은 없고?”
“…….”
“묵은 글공부해야 할 널 데리고 산을 내려갔다.”
“하지만 제가 억지로 따라간 건데요.”
“돌려보낼 수 있었으나 같이 있고픈 마음에 널 데려간 게지. 오늘 너를 잡아 두었던 것처럼.”
“끄으응.”
인정하고 싶지 않아 앓는 소리만 나온다.
“나무를 하며 나무와 마음을 나누지 아니 하였고, 사람들 앞에서 장사치에게 망신을 주었다.”
“장사치는 나쁜 사람이었습니다. 게다가 불쌍한 이를 도운 것이 아닙니까.”
“선악의 심판은 너희의 몫이 아니니. 그것을 심판하려는 마음을 교만이라 부른다. 또한 불쌍한 이를 도왔다고는 하나 떠도는 객귀를 수목령으로 묶어 윤회 자체를 비틀어 놓았으니 과연 정당하다 할 수 있더냐.”
“하아…. 어떻게 모두 아셨습니까.”
“낮에는 해가 보고 바람이 들으며, 밤에는 달과 별이 보고 있으니 세상에 비밀이란 없구나.”
“계단 중간으로 결계를 연 것은 바람이 알려 주었나요?”
“허허허, 결계가 열리면 공기의 흐름이 바뀌니 그렇다 할 수 있겠지.”
“그럼 묵 오라버니는 알고도 그리했다는 거네요.”
그러고 보니 아까도 다시 오지 말라 했었다. 벌받을 것을 알고도 여울의 말을 들어 주었던 묵을 생각하니 미안함으로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사나운 살쾡이인 줄 알았더니 털갈이도 안 한 새끼 여우를 데려왔나, 허허허.”
안 그래도 속상해 죽겠는데 천명의 웃음소리에 가슴으로 천불이 인다.
“사부님, 어찌 그리 말씀하셔요.”
“바위 같던 묵이 해를 보는 꽃처럼 너를 향해 서니 하는 말이다.”
결국은 묵이 그녀 때문에 벌을 받고 있다는 소리 아닌가. 이젠 화도 나지 않았다. 그저 미안할 뿐.
‘못살게 굴 것처럼 으름장을 놓더니만 무슨 정이 들어 그리 감싸 주었을까?’
여울은 천명의 침상을 바라보며 누웠다.
“제가 아닌 다른 아이를 데려왔어도 좋은 오라버니가 되어 줬겠죠?”
“허허허, 과연 그러했을까. 나도 알고 싶구나.”
끄응, 아무튼 노인네. 여울의 가슴을 들쑤셔 놓는 데는 재주가 특출하다.
“사부님.”
“…….”
“생각해 보았는데, 다른 아이였다면 그리 어여뻐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왜 그리 생각하느냐.”
“그냥, 뭐랄까. 오라버니가 해를 보는 꽃처럼 저를 향한다 하셨잖아요. 저도 그냥 멍하니 있다 보면 어느새 오라버니를 쳐다보고 있거든요. 꽤나 특별한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천명의 침상 쪽에서는 아무런 답이 없다.
“사부님?”
“부모와 자식, 형제간의 피로 이어진 혈연을 하늘이 내린 것이라 하여 천륜이라 한다. 한쪽이 죽어야 끊어지는 천륜조차 넘어서는 인연이 있다 들었다. 하늘도 죽음도 갈라놓지 못하는, 억겁을 다시 태어나서라도 끌어안아야 하는 그런 인연 말이다.”
“천륜조차 넘어서는 인연.”
***
어둠에 잠겨 있던 묵은 섬뜩한 느낌에 눈을 떴다. 지난 보름 동안 내내 그를 찾아왔던 두려움은 아무런 울림도 없이 피 내음만을 짙게 뿜어내고 있었다.
피할 수 없었기에 눈덩이처럼 불어났던 두려움.
“어째서 오늘은 말이 없지?”
답은 없었으나 분명 이 안에 있다. 역겨운 피 내음이 그 증거였다. 시각보다 더욱 강력한 기억, 속삭임이 들려오기 전 가라앉는 자욱한 피 냄새였다. 악몽은 오랜 벗처럼 조용히 그의 곁에 자리했다.
묵은 처음으로 악몽의 실체를 마주하기 시작했다. 익숙한 두려움은 악몽의 시작과 근원에 대해 생각이란 것을 하게 만들었다.
‘사부님이 영산을 떠난 뒤 다시 시작된 악몽. 여울이 오고…. 나는 파벽에서 떨어지는 그녀를 보았다.’
한동안 사라졌던 악몽은 왜 다시 시작된 것일까?
묵의 명상은 더 깊은 과거로 빠져들어 갔다.
다섯 살, 병석에 누워 있던 묵은 다음 해 생일을 넘기지 못하리라는 늙은 노인의 말에 의해 부모님과 생이별을 해야 했다. 노인은 영산의 천명에게로 묵을 데려왔다.
“북두성군께서 어찌 걸음 하셨습니까.”
“염마장에 없던 아이가 생겨나 걸음 하였더니, 그 어미가 삼키지 말아야 할 것을 삼켰더이다.”
삼키지 말아야 할 것. 무엇이었을까.
“염화를 봉인하려면 천신들을 불러 내려야 하는데.”
“아이의 가슴을 갈라 염화를 꺼내려 하십니까. 그것은 살생입니다.”
몸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묵은 투명한 생령이 되어 두 노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미의 욕심으로 만들어진 적이 없는 아이일세. 그저 염화를 담은 궤에 지나지 않아.”
“그러나 살아 있지요.”
“참으로 난감하이. 아이의 몸에 이대로 가두어 두자니 몸이 버티지 못하고 터져 나갈 게고. 살아 있는 몸을 가르자니 이 또한 계율에 어긋나니…. 남두성군은 그대에게 맡기는 것이 좋을 듯하다 하여 데려왔소.”
두 노인의 대화에 눈을 뜬 묵이 천명의 옷자락을 꼭 움켜쥐었다.
작은 움직임은 아이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허허허, 살겠다 하는군요.”
작고 여린 손을 꼭 붙잡아 주었던 천명, 그 손이 주었던 따뜻함이 여전히 묵의 손안에 맴돈다. 따뜻한 열기가 가슴으로 퍼지자 감겼던 묵의 눈꺼풀이 서서히 열렸다.
“…무병이 아니었던 거야.”
다섯 살, 어린 묵은 가슴이 타는 듯 온몸에 열꽃이 돋고 하얗게 눈을 뒤집었다. 앙상하게 메마른 몸은 뼈를 드러냈으며 피부는 온통 수포로 뒤덮여 두꺼비 등과도 같았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드는 고열과 발작으로 괴로움을 이기지 못한 묵의 몸에는 손톱자국이 가득했다.
발열을 막기 위해 천명은 환약을 만들어 주었다.
“망각의 환약 따위는 도움이 되지 않아.”
두려움은 그에게 말했다. 환약은 망각이라고.
처음 천명에게 왔을 때는 하루에 한 알, 반년 뒤에는 열흘에 한 알. 이제는 일 년에 한 알로 줄어 병이 나아 가는 것이라 생각하였는데.
“아니었구나. 잊는다 하여 묻히는 것이 아니었어.”
귀신에 씌어 무병을 앓는 것이라. 그래서 악몽에 시달렸던 것이라 생각하였는데. 명상을 통해 묵은 잊고자 하였던 기억 속에 놓쳐 버린 조각들을 복구해 냈다.
‘죽었어야 했던 내가 살아난 것, 북두성군이란 자에 의해 천명에게 보내진 것과 여울을 만났을 때 느껴졌던 지독한 자괴감…. 무엇일까. 무엇을 놓치고 있는 것일까.’
묵이 알아낼 수 있는 진실은 이내 한계에 부딪혔다.
‘무언가 더 있다. 분명하게 가려진 무언가가 있어.’
중요한 단서가 되어 줄 다섯 살 이전의 기억은 혼돈 그 자체였다. 자욱한 안개 속을 헤매듯 막막하기만 하다. 무언가 알 수 없는 강한 힘이 꼭 움켜쥐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봉인되어 있는 것인가….’
묵은 다시 눈을 감았다. 수많은 기억의 파편들이 여기저기 그의 마음을 헤집고 다녔으나 깊게 호흡하며 숨을 단전까지 끌어 내렸다.
“이봐, 아직 여기에 있는 거야?”
답이 없음에도 묵은 멈추지 않았다.
“원하는 것을 들어주겠어. 조각난 네 몸을 찾아 주지. 하지만 조건이 있어.”
답은 없었지만 묵은 그를 둘러싼 피 내음이 짙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등줄기로 섬뜩하게 소름이 돋아 올랐지만 묵은 깊게 더욱 깊게 숨을 들이켰다.
“그녀에게 손대면 안 돼. 그리했다간 네 몸을 찾는 족족 갈가리 찢어 불태워 버릴 거야.”
피 내음이 더욱 짙어졌다. 삽시간에 한기가 찾아들고 심장을 조이는 통증이 전신으로 퍼져 간다.
“하으읏, 하아, 더 이상 나타나지도 말고. 하아, 하아.”
그의 분노가 절실히 느껴졌으나 더 이상 두려움은 없었다. 깨달음, 죽음에 가까운 고통을 줄 순 있어도 두려움은 묵을 죽일 수 없다. 그리할 것이었다면 지금까지 살아 있지 못했을 테니까.
“으윽, 약속해. 어서, 거래는 하아, 하아. 오늘뿐이다.”
구렁이처럼 감겨들어 숨통을 조이던 고통은 몸으로 뻗어 나가 뼈마디를 끊어 내듯 더욱 심해졌다.
“아니면. 하윽, 망할 염화를. 하아, 하아. 담아 줄 새 주인을 찾든가.”
‘염화’라는 말에 통증은 증폭되어 극에 달했다. 견디지 못한 묵의 몸이 옆으로 기울었다. 차가운 돌바닥에 쓰러진 묵의 손가락과 발가락이 휘어지며 온몸의 혈관이 역류하듯 열꽃이 터지기 시작했다.
“좋… 아. 그리하지.”
묵의 고통을 즐기듯 어둠의 울림이 들려왔다.
“하지만 네가 그녀를 죽이는 것조차 내가 막아 주리라 기대하진 마.”
무슨 말을 하는 걸까. 그녀를 죽이려 하다니.
애써 고개를 저으려 안간힘 쓰던 묵은 통증을 이겨 내지 못하고 시커멓게 닥쳐온 어둠 속에 의식을 잃고 말았다.
***
동이 트면 묵의 벌이 끝날 거란 말에 밤잠을 설친 여울은 눈을 뜨자마자 파벽의 계단을 향해 달려 나갔다.
“오라버니이이이!”
계단 끝에 올라선 묵의 모습에 팔을 뻗고 달려가던 여울이 화들짝 멈춰 섰다. 붉게 떠오르는 해를 등진 묵의 뒤로 거대한 그림자를 만드는 사내.
‘사, 사람이 아니야.’
여덟 척의 귀신은 무소의 뿔이 달린 투구에 갑옷을 두르고 있었다. 커다란 창을 쥔 손은 뜨는 해를 그대로 투영하여 붉게 타오르는 듯하다.
‘아, 아침인데. 왜, 왜 저런 것이 보이지?’
여울은 입술을 깨물었다.
‘망할! 왜 저따위 게 오라버니에게 붙어 있는 거야. 동굴에서 붙어 왔나?’
다른 이도 아닌 묵에게 붙은 악귀, 여울은 도망가지도 못하고 백정에게 끌려가는 송아지처럼 힘겨운 걸음을 뗐다.
“오, 오라버니.”
어색하게 다가서는 여울에게로 걸음을 옮기던 묵이 겁에 질린 그녀의 표정에 멈춰 섰다. 여울의 눈은 묵의 시선보다 훨씬 위쪽을 향해 있었다.
‘여울아?’
천천히 돌아선 그의 눈에 갑옷 아래 보호대를 찬 다리가 보였다. 고개를 드니 묵의 두려움은 피 철갑을 두른 처참한 모습이 아닌 이제 막 전장으로 떠나는 무장의 모습을 하고 있다. 온전하게 팔다리가 붙어 있는 것을 처음 보는지라 묵은 저도 모르게 넋을 잃고 올려다보았다.
“나타나지 말라 했잖아.”
이상한 일이었다. 담대하게 서 있던 그의 입가에 알 수 없는 미소가 감돈다. 투구에 가려 두 눈은 보이지 않았으나 고개 숙인 그의 시선은 분명하게 여울을 향해 있었다. 무장의 얼굴로 반짝이는 무언가가 볼을 타고 내려와 턱으로 맺혀 떨어진다.
눈, 물?
“오라버니?”
묵에게로 향한 여울의 눈동자는 그의 뒤에 선 존재를 알고 있는 듯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가자. 사부님이 기다리셔.”
“먼저 가. 금방 갈게.”
“어…. 그럴래?”
대답과 달리 선뜻 돌아서지 않는 여울이 망설인다. 울고 있는 것 같은데, 소도 때려잡게 생겨 가지고 생긴 것과 달리 불쌍하기까지 하다.
도대체 저런 울보 귀신은 어디서 달고 온 거야.
여울의 눈동자가 또다시 슬금슬금 묵의 뒤로 향한다.
“령….”
멍하니 그를 바라보는 여울의 눈동자에 말간 눈물이 맺혀 들었다. 가슴으로 칼바람이 분다.
‘왜 이렇게 슬프지. 왜 이렇게 가슴이 아프지?’
그녀에게 손을 뻗는 귀신에게 홀린 듯 여울은 저도 모르게 손을 들었다.
“손대지 마.”
빠드득. 이를 악다문 묵이 그들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서슬 퍼런 묵의 시선에 살기가 피어올랐다.
“너는 나와 거래를 했어. 그러니 사•라•져•.”
마치 묵의 것이 아닌 듯 지독하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귀신의 형체가 천천히 부서져 내렸다. 찬란한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이슬처럼 그렇게 사라졌다.
대단하다. 말 한마디에 귀신이 사라지다니.
귀신이 사라진 자리를 멍하니 쳐다보던 여울이 그녀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살기등등하던 아까와 달리 걱정이 가득 담긴 묵의 눈동자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
“여울아?”
“왜?”
와락. 여울을 끌어안은 묵의 심장이 어찌나 거세게 들고 뛰는지 여울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오라버니.”
두려움의 실체가 온전하게 모습을 드러낸 것이 처음인지라 묵은 품에 안은 여울을 놓을 수가 없었다. 하필이면 그녀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이유가 뭐란 말인가!
“괜찮아. 아무 일도 없어. 아무것도 못 본 거야.”
“아…. 응.”
“이제 다시는.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거야.”
왜 저리 사납게 구는 걸까?
잊고 지냈던 묵의 공격성에 여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거래라는 건 또 뭘까? 원래가 도깨비나 요괴나 귀신 같은 이들하고는 약조 같은 것 하면 안 되는데.’
귀신이 사라지고 나니 여울은 심란하기 짝이 없다.
사부님한테 일러야 하나? 아니야. 말 한마디로 귀신도 물리치는 묵 오라버니인데, 설마 무슨 일이 생기려고. 흐음…. 그래, 일단은!
‘모르는 척하자!’
여울은 그녀를 잡아당기는 묵을 따라 쫄래쫄래 집으로 향했다. 묵에게 손 잡혀 가며 여울이 슬그머니 뒤돌아본다. 귀신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지만 이상하게도 가슴이 저릿하다.
***
하루 종일 책과 씨름하던 여울이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자 조용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침상에 가서 자려무나.”
“하아아아, 아닙니다. 조금 더 보고 자렵니다.”
고집을 피우더니만 일각도 되지 않아 여울은 침까지 흘려 가며 책상에 엎어졌다.
“쯔쯔쯔, 고집도 쇠심줄이라.”
여울을 안아 드니 ‘대라천 천존’이란 글자가 떡하니 이마에 찍혀 있다.
“껄껄껄, 이마에 천존을 새겼으니 장수할 상이로다.”
천명은 그녀를 안아 침상에 눕혔다. 머리맡에 반야가 든 바가지를 놓아 준 천명은 비어 있는 묵의 침상을 바라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환한 달빛 아래 천명이 집을 나서니 묵이 여울을 위해 소나무에 매어 놓은 그네에 앉아 있다.
“잠이 오지 않는 게냐.”
손에 놓인 환약을 바라보는 묵은 깊은 생각에 잠겨 답이 없다.
“취하지 않을 것을 어찌 내어 달라 했을까?”
“삼켜야 할까요? 그리되면 한 반년은 아무 일 없는 듯 편히 지낼 수 있겠지요?”
천명에게 환약을 내어 달라 청하였지만 묵은 선뜻 삼킬 수가 없어 망설인다.
“생각이 많습니다.”
“하나 충분하지 않았던 게지.”
“충분하여 넘친 듯싶습니다.”
“네가 묻고 싶은 것이 있는 게로구나.”
“제 몸을 고달프게 했던 실체를 마주하였습니다. 피하려 해도 피해지지가 않으니 선택이 아닌 숙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고요한 묵의 음성에 천명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처참한 형체만 보다가 오늘에서야 제대로 된 모습을 보았습니다. 꽤나 장대한 몸을 가진 무장 같은데…. 그에게서 너무나 지독한 원망과 분노가 느껴졌습니다.”
“명상을 통해서도 보이지 않더냐.”
“무언가 강한 힘에 묶인 것처럼, 희미합니다.”
“그래, 그랬구나.”
“이곳에 오기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듣고 싶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것 아니더냐.”
“다섯 살 이전의 기억이 너무나 어지럽습니다.”
천명의 가슴이 무겁게 내려앉는다.
어디서부터 무슨 이야기를 해 주어야 할까.
“부모님의 얼굴은 기억하느냐.”
“열병이 심했던 탓에 그 또한 희미합니다.”
“그래, 그럴 테지.”
“이야기해 주시렵니까.”
“대륙의 동쪽 끝에 지국이라는 나라가 있다.”
천명은 순순하게 입을 열었다. 손자에게 옛이야기를 하듯 따뜻한 목소리였다.
“태사 현각에게는 어린 나이에 가시버시를 맺은 유진이라는 아내가 있는데, 십 년이 넘도록 후사가 없었다.”
포기할 수 없었던 유진은 용하다는 무녀를 찾기에 이르렀다.
“무녀는 동자삼을 캐어 먹으면 아들을 얻으리라 예언하였다지.”
“동자삼이라면 천 년 묵은 산삼이 인간의 아이로 변이한 식물 요괴가 아닙니까.”
“근본이 선하여 요괴라기보다는 정괴에 가까우니 지식이 얕았던 무녀는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을 게다.”
무녀의 무지함조차 어찌 보면 운명이었던가.
“믿음은 때론 거짓보다 더 위험한 진실의 적이 되는 법.”
순간 묵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섬광이 있었다.
“아이의 어미가 삼키지 말아야 할 것을 삼켰더이다.”
묵은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설마….
“삼키지 말아야 할 것. 그녀가 삼킨 것은 단순한 동자삼이 아니었습니다. 아닙니까.”
서늘해진 묵의 물음에 천명이 조용히 그를 응시했다.
“명상이 생각보다 깊었구나.”
“염화를 삼킨 것입니까.”
어찌 염화까지 알아내었을까.
북두성군이 남두성군과 의논하여 묵을 데려왔을 땐 이미 모든 기억이 봉인된 상태였다.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던 천명에게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졌다.
“기억 속에…. 염화가 있더냐.”
염화를 읽어 냈다면 전생의 기억을 묶어 둔 봉인에 균열이 생겼다는 것인데.
“염화의 주인이 그리 말하더이다. 저의 삶은 그의 죽음에서 시작되었노라고.”
“그래, 그랬구나. 맞다. 네 어미가 성산을 뒤져 찾아낸 것은 염화라 하는 것이었다.”
“염화란 마계에서 지옥을 일컬을 때 쓰는 말이 아닙니까.”
“세차게 타오르는 화염과도 같은 격렬한 감정, 긴 세월 응집된 분노와 원망을 천계에서는 염화라 명명한다.”
“하면….”
“태무신 야차의 심장이다.”
묵은 그가 읽었던 서책을 떠올렸다.
천 년 전 인요대전에서 패하여 대라선과 여섯 신장에 의해 사지가 찢겨 봉인되었다는 태무신 야차.
“봉인되었던 야차의 심장을 삼킨 유진은 그렇게 십 년을 기다렸던 아들을 얻어 묵이라 이름 지었다.”
태어난 지 천 일째 되는 날, 작은 몸뚱이는 염화를 이겨 내지 못하고 전신에 열꽃을 피웠다. 병상에 누워 옅은 숨을 부여잡고 묵은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끝끝내 아들을 포기할 수 없었던 부부는 피눈물을 흘리며 다섯 살 묵을 북두성군에게 내주었다.
“하면. 저는…. 저는 야차입니까. 아니면 현각의 아들 묵입니까.”
명상을 통하여 많은 것을 알았으나 아직 전생의 뿌리는 찾지 못했다. 혼란스러워하는 묵의 모습에 천명은 긴 한숨을 내어 쉰다.
“너는…. 스스로도 원하지 않았던 태무신의 환생이며, 더없는 사랑 속에 태어난 현각의 아들이다.”
지독하게 사랑했던 여인을 잃은 사내가 윤회의 굴레를 파괴하고 스스로 태무신이 되었다.
‘삼천 년의 원망과 분노를 과연 이생에서 풀어낼 수 있을까.’
연인을 잃은 슬픔, 그 연인을 죽게 하였던 이들에 대한 원망, 그리고 지켜 내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분노를 잊지 않기 위해 환생마저 포기하고 야차가 된 사내.
그리고 봉인되었던 그의 심장을 삼켜 묵을 낳은 유진.
지독한 집착으로 삼천 년을 쌓아 온 원망과 분노의 결정체로 태어난 묵의 선택은 무엇이 될 것인가.
“사부님, 세상을 투명하게 바라보고 마음을 다스리면 망나니의 칼 또한 인간을 이롭게 하는 활검이 되리라 하셨던 말씀 기억하십니까.”
묵이 고개를 들어 천명을 응시했다.
“제 가슴에 담고 있는 이 염화 또한 사람을 살리는 불이 될 수 있겠지요?”
“인간의 가슴에는 누구나 불이 있단다. 그 불이 앞길을 밝히는 횃불이 될지. 분노와 원망으로 네 몸을, 아니 세상을 태워 버릴 재앙이 될지는 스스로의 선택이다.”
“선택. 그 책임 또한 오로지 저 홀로 짊어져야 할 몫이겠군요.”
‘어느새 이리도 자랐단 말인가.’
묵을 향한 천명의 시선에는 더없는 믿음과 애정이 묵직하게 담겨 있었다.
다스리거라. 참고 인내하거라.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슬퍼하거라. 하여 삶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죽어 가는 모든 것들을 아쉬워하는 애틋함으로 원망과 분노를 녹여 다오.
“사부님….”
그 불꽃이 가슴에 담은 이들에게 상처가 된다면.
거센 화염이 사랑하는 모든 것을 태우게 된다면.
그리된다면 스스로를 산화하는 길을 택하리라.
죽음보다 더한 고통일지라도 망설이지 않으리라.
“환약은 돌려 드리겠습니다.”
묵은 망설임을 천명의 손에 올려놓았다.
“제게는 이제 필요 없을 듯합니다.”
“그래, 그리하자꾸나.”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만약, 제가 사부님의 옷자락을 잡지 않았다면 전 죽을 운명이었겠지요?”
늘 공정하여 담백한 천명은 답이 없었지만 묵은 알 수 있었다. 오늘의 선택은 묵의 삶을 지켜 준 천명이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감사합니다.”
천명의 주름진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 들었다.
“곤하여 보이니 그만 자리에 들거라.”
천명은 묵을 홀로 두고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천륜도 넘어서는 인연. 하늘도 죽음도 그들을 가르지 못하리라.’
집으로 향하는 천명의 마음이 한없이 무겁다.
‘부탁한다. 야차 이전에 율국의 호국선이라 불리던 한 사내의 깊고 따뜻한 마음을 돌려주려무나.’
달빛조차 사그라지는 것이 그들의 대화를 듣는 월천녀 또한 시름이 깊어지나 보다.
‘재앙을 깨우는 자 억겁의 대가를 치르리라.’
재앙을 막을 수만 있다면….
죽고 또 죽어도 다시 태어나 그의 벗이 되리라.
묵이 겪는 혼란은 천명이 열두 살 나이에 겪은 것과 같았다. 다섯 살이 넘어서면서 늘 악몽과 통증에 시달렸다. 얼마나 사무친 죽음을 맞이하였는지.
죽고 또 죽으면서 그는 깨어나고 또 깨어났다.
혼란이 정점에 이르기 시작하면서 천명은 그의 생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생의 생을 거듭하며 그의 역사는 완벽한 과거를 재건하였고 그 기록은 낡은 사찰의 머릿돌 아래 묻혀 새로이 태어날 천명에게 발견되었다.
“처참한 죽음을 맞을지라도 나는 다시 태어날 것이다.”
원망과 분노로 들끓는 야차를 삼천 년 전 아름다웠던 벗으로 돌려놓을 수만 있다면, 천명은 억겁이 아닌 모든 생을 거듭하여 대가를 치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