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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요선각 (3/34)

03. 요선각

청명절을 맞이하여 층층이 오색의 꽃등이 달린 요선각.

아름다운 장원은 삼 층의 목조 건물을 축으로 커다란 연못을 둘러 단층 누각이 즐비했다. 아름다운 꽃들과 수목이 가득하니 화주 향기가 그윽하게 달밤을 물들이고 있었다.

붉은 기둥 위로 청색 기와를 얹은 각 층에는 기이한 모습의 손님들로 왁자지껄했다. 가장 높은 층에는 날개 달린 조선들이, 누각의 끝으로는 난간을 좋아하는 구렁이와 백사의 모습을 한 사선들이, 연못에 떠다니던 물고기 어선들은 이미 취해 배를 뒤집고 누워 버렸다.

요선각의 곳곳에서 요선들이 나물이며 화채며 떡들이 푸짐하게 차려진 상 앞에 마주 앉아 술잔을 부딪쳤다.

모두가 제 편한 자리로 찾아드니 너른 마당의 어두운 구석까지 벌레의 모습을 한 충선들이 우글우글하다.

“이보게, 자네 이야기 들었는가?”

“무슨 이야기?”

회색 쥐의 모습을 한 자선이 멋들어진 닭 벼슬을 단 계선에게 술잔을 들었다.

“야차가 말한 천 년 말이야. 이제 얼마 남지 않았지 않은가. 조만간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일어나지 않겠어?”

“미쳤는가! 봉인된 태무신 이야기를 꺼내다니. 제발 그 입 좀 다물게.”

“반백 년도 못 사는 인간들이야 그 환란을 전부 잊었겠지만, 우리 요선들이야 천 년을 넘어 사니 어디 그러한가.”

핀잔에도 호기심 많은 자선은 입을 다물지 못한다.

“반쪽짜리 인간들의 꼬임에 넘어가 전쟁에 끼어드는 게 아니었어.”

“도선들 말인가.”

“아니면 누구겠나! 이제는 죽어도 천계에는 못 올라가니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우리 요선들이야 어차피 천계보다는 마계에 가까운데.”

“조용히 좀 하라니까! 다른 요선들이 들으면 어쩌려고! 이제 겨우 오백 년을 채워 요선각 초대장을 받았는데. 쫓겨나고 싶은가!”

나무라며 주위를 살피던 계선의 눈동자가 문득 문가로 향했다.

요선각으로 향하는 네 개의 결계 중 광목국으로 통하는 서문이 열렸다. 밝은 빛과 함께 금빛 두루마리를 품에 안은 여인이 나타났다.

“낭랑께서 오셨다.”

“오! 세상에. 천선 낭랑을 다 뵙다니.”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하나같이 자리에서 일어난 요선들이 예를 갖추니 검은 말 머리를 한 용마가 그들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108대 요선각주 용마, 천선 낭랑께 인사 올립니다. 누추한 곳에 걸음 하시니 광영이 따로 없습니다.”

“오동나무 꽃이 피니 무지개를 따라 종달새가 초대장을 물고 왔더군요. 청명절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청명절은 요괴들의 잔치인데, 요선이 되어서도 이리 모여 술잔을 기울이니 부끄럽습니다. 이리 드시지요.”

천선은 요선들의 인사를 받으며 요선각주 용마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한데 용마 님, 어째서 도선들은 보이지 않습니까.”

“같은 반선이라고는 하나 근본이 달라 어울리는 일이 드물었는데, 인요대전 이후로는 더욱 그러합니다.”

“천존께서 승천을 금하신 것 때문이로군요.”

힘을 합쳐 인계를 구했던 반선들의 불화에 천선의 얼굴로 씁쓸함이 찾아든다.

그 모습에 어쩔 줄 모르던 용마가 갑작스레 생각난 듯 발굽을 부딪쳤다.

“아, 좀 전에 늙은 도선 하나를 보았는데, 찾아오라 이를까요?”

“아닙니다. 저는 요선들과 인사를 나누다 자리할 것이니 각주께서는 다른 일을 보시지요.”

아쉬운 듯 용마가 자리를 뜨자 기다렸다는 듯 그녀의 주위로 요선들이 몰려들었다. 인사를 나누던 천선이 작은 누각 앞에 조용히 서 있는 백발의 도선 앞에 멈춰 섰다. 천선의 눈이 반가움으로 반짝인다.

“천명 선생님!”

요선들 사이에 홀로 인간의 모습으로 서 있는 늙은 도선이 그녀를 향해 허리를 숙인다.

“영산의 천명, 동악대제의 따님이신 천선 낭랑께 인사 올립니다.”

“아니 오실까 염려하였는데, 이리 뵙게 되어 참으로 반갑습니다.”

천명이 누각으로 안내하자 그녀가 계단에 올랐다. 걸음걸음마다 발밑에서 모여 있던 구름이 일어나 투명한 장막을 펼쳤다. 그들을 지켜보던 요선들의 눈과 귀를 차단하여 비로소 사방이 조용해진다.

“오신산이 아닌 요선각에서 뵙자 하여 송구합니다.”

“낭랑께서 부르시는데 지옥인들 아니 가겠습니까.”

“제가 아니라 그 아이가 가는 곳이라 하셔야지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천선이 자리에 앉았다.

천명이 하얀 수염을 쓸어내리며 청명주를 건넸다.

“근 사십 년 만에 산을 내려와 세상을 돌아보니 마셔 보지도 않은 술 생각이 납니다. 허허허.”

“입에 대지 않는 술이 생각나시다니 무엇을 보신 겁니까.”

“앞으로 닥쳐올 수많은 죽음을 보았습니다. 낭랑께서 걸음 하신 것도 그 때문이 아닙니까.”

술잔을 받은 천선이 조용히 천명을 응시했다.

“오는 길에, 그 아이를 보았습니다.”

“저도 오는 길에 잠시 보았습니다.”

“어떻던가요?”

“지금이야 들개처럼 지내지만, 곧 지혜로운 여인으로 자라날 겁니다.”

천명의 답에 천선이 고개를 젓는다.

“제가 원하는 답이 아닙니다.”

“흐음, 청설모처럼 민첩하고 여우처럼 영특하더이다.”

“그 또한 답이 아닙니다.”

“허허허, 낭랑께서 원하시는 답은 무엇입니까.”

답을 기다리던 천명은 그녀의 침묵에 고개를 저었다.

“가 보지 않은 길, 그 끝에 무엇이 있으리라 답을 구하시는 겁니까.”

“천명….”

“곧 깨어나게 될 야차의 심장을. 그 아이가 파괴하게 될 거라 듣고 싶으신 겁니까.”

천선이 무릎 위에 내려놓았던 두루마리를 쓰다듬었다.

“그 아이…. 온갖 요괴들이 모여들 겝니다. 선생께서 감당할 수 없으시다면 봉인하여 데려가려 합니다.”

“낭랑의 뜻이 정녕 그러하십니까.”

“또다시 환란이 일어나면, 그때에는 제 힘으로도 어찌할 수 없으리라 천존께서 경고하셨습니다.”

인계에 내려와 그들을 가르치고 깨우치려 노력하였다. 그러나 하루살이 같은 짧은 삶을 살아가는 인간들은 거듭된 환생으로 지난 기억을 잃고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아무리 경계하라 가르쳐도 밑 빠진 독처럼 인간들은 망각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본능과도 같은 탐욕을 다스리지 못하니 결국에는 고뇌와 번민에 휩싸였다. 그토록 사랑하였던 인계는 야차의 예언처럼 인요대전이 벌어지기 전보다 더 흉포해져 갔다.

그렇게 환란의 역사는 되풀이되어 가고 있었다.

“하여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 염려되어 무엇으로 자라날지도 모를 싹을 자르겠다, 결정하신 겁니까.”

천명을 응시하던 천선이 술잔을 들어 천천히 비운다.

“낭랑님, 적은 벗보다 더욱 가까이 두라 하였습니다.”

“불과 물을 같이 두어 어찌하시려는 겁니까.”

“허허허, 관심은 벗을 만들지만, 무관심은 적을 만든다 하니. 뒤집어 생각해 보면 관심이 적도 벗으로 만들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면….”

“반선들이 인요대전에 개입한 것은 근본을 버리지 못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인계의 소멸은 단순한 멸족이 아니라 천계와 마계의 경계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두 세계의 전쟁을 암시하는 천명의 말에 천선의 손이 떨려 왔다. 염라대왕의 기세는 옥황상제를 넘어선 지 오래, 마계에서 그의 존재는 옥황상제의 위에 선 대라천 천존과도 같은 것이었다.

천선은 고개를 저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염라대왕은 천신으로 우리와 같은 일족입니다.”

“우리와 같은 일족이라. 마계는 하루하루가 번민과 욕망으로 들끓는 곳입니다. 하늘이 열린 그때부터 마계에서 살아온 대왕이 태초의 모습 그대로인 천계의 천신들과 같다 하겠습니까.”

천명의 물음에 천선은 숨을 들이켰다.

어찌 같다 할까. 그녀조차 인계에 내려온 후론 염려와 근심에 번민하며 예전의 빛을 잃어 가는데….

“맑은 눈과 강인한 심장을 가진 아이입니다. 그녀를 꼭 닮았습니다.”

“어•찌• 하려 하십니까.”

“햇살 품은 잎새에 붉은 단풍이 들듯 햇살이 되고 비가 되어 바람처럼 지켜보려 합니다.”

“지켜본다?”

“예. 야차의 심장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깃든 분노와 절망조차 따듯하게 감싸 안을 수 있도록. 온전하게 녹여 낼 수 있도록 지켜보고 싶습니다.”

“그 아이가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십니까.”

걱정스러운 천선의 물음에 천명의 주름진 눈이 부드러이 웃음 지었다.

“아이의 선택에 달렸겠지요. 오늘 아이가 나타나지 않으면 그때에 봉인하여 데려가셔도 늦지 않을 겁니다.”

천선의 장막 너머로 천명의 시선이 광목국으로 열린 요선각의 서쪽 결계로 향했다.

천선의 빛을 따라왔으니 길은 정해졌다. 다만 아이는 그 길을 갈 것인지 스스로 선택해야 했다. 천명에게서 결계의 열쇠를 훔쳐 갔던 것처럼.

“낭랑의 뒤로 서조와 영노가 들어왔으니 아이는 두려움의 실체를 마주하였을 겁니다.”

“예전에도 망설임 없이 문을 열어 저와 마주하였다지요. 과연 두려움을 넘어 이곳에 모습을 드러낼까요?”

그들이 나타나지 않는 아이를 기다리는 사이 얼큰하게 취한 요선들이 요괴였던 때의 모습으로 돌아가 여기저기 풍악을 울리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여울은 아직도 달리는 중이다. 아무리 달려도 불빛은 가까워지지 않았고 제자리 뛰기라도 하는 양 숨만 차오른다. 꿈인가 생각하는 순간 품 안에서 들썩이던 주머니가 공중으로 툭 튀어 올랐다.

“어라! 야!”

반사적으로 손을 뻗은 여울이 주머니를 낚아채니 매듭이 풀리며 딸각거리던 돌들이 쏟아져 나왔다.

불화살처럼 어둠을 밝히며 날아간 열한 개의 돌이 원형을 그리며 빙글빙글 돌더니만 달처럼 환해졌다.

“어, 어어, 어어어어어!”

갑작스레 멈춰 설 수 없었던 여울은 달리던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환한 빛 속으로 뛰어들었다. 온몸으로 가시가 박혀 드는 듯 통증이 인다.

“아 따, 따, 따가워! 빌어먹을!”

온몸을 문질러 대던 여울의 귀에 섬뜩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인간이다. 인간이 들어왔어.”

“도선치곤 너무 작은데? 기가 막힌 냄새가 나는군.”

“맛있는 냄새야.”

“인간의 아이가 여긴 어떻게 들어왔지?”

수군, 수군수군.

술병을 든 새가 말을 하고 비단 잉어가 하늘을 난다.

물고기가 하늘을 날아?

‘이런! 우라질!’

‘요선각’이란 이름부터 재수 없다 했는데 역시나 온통 요괴 천지다. 여울의 발밑에서 그림자처럼 몰려 있던 무언가가 삽시간에 흩어졌다.

슉, 슉슉. 슈슈슈슈슛.

자세히 보니 벌레들이 하나같이 고개를 들고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설마 저 수십 개의 손, 아니 발? 날 가리키고 있는 건가?’

입을 떡 벌린 채 돌아서니 그녀가 들어왔던 통로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돌아가기에도. 장님 노릇도…. 너무 늦, 었, 다!

여기저기 수군거리던 요선들이 여울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요선들로 득실거리는 정원 한가운데 선 여울은 식은땀이 삐질삐질 흐른다.

‘호랑이, 구렁이, 잉어, 벌레, 올빼미. 저건 뭐….’

기괴한 형상들을 살피며 눈알을 굴리려니 현기증이 일었다.

그들 사이로 말 머리를 한 이가 여울에게로 다가왔다.

“요선각의 주인 용마, 어린 도선께 인사 올립니다.”

“아…. 어어, 어…. 어아.”

입 안이 바싹바싹 마르니 말은 나오지 않고 식은땀만 쉼 없이 흐른다.

“아직 요선각에 초대될 때는 아닌 듯한데, 어찌 걸음 하게 되신 건지. 초대장을 볼 수 있을까요?”

“나, 나, 나나나, 나.”

“흐음…. 말을 못하시나? 아무리 보아도 어린 도선께는 도력이 느껴지지 않으니, 참으로 요상합니다.”

인간처럼 옷을 입고 두 발로 서 있는 말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나.

할미 귀신의 버선발이 어깨를 밟는 듯 등짝이 뻐근해져 왔다.

“말을 못하나 봐.”

“선기도, 요기도 없는데. 귀신도 인간도 아닌….”

“그러게, 맛있는 냄새가 나. 흐응흐응.”

난색을 띠는 용마의 뒤로 그녀를 둘러싼 요선들이 쑥덕이기 시작하자 여울은 초조해졌다.

“다음에 만나면 널 삼켜 버릴 거야.”

영노의 말을 떠올린 여울이 눈알을 굴렸다.

‘꼼짝없이 잡아먹히게 생겼구나!’

살길을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여울의 눈에 저 멀리 낯익은 이들이 보였다.

작은 누각 위에 서 있는 늙은 도선과 아름다운 여인.

‘살려 줘요. 제발 저 좀 구해 주세요.’

애틋한 표정으로 눈길을 쏘아 보냈으나 늙은 도선은 하얀 수염을 쓸어내리며 허리춤을 두드린다.

빌어먹을!

“마, 아아. 비이이이. 머어어. 우, 우우우.”

망할! 빌어먹을! 우라질! 대찬 욕설도 입에서 쪼그라드니 오금이 저렸다.

돌처럼 굳어 버린 여울을 둘러싼 무리들 사이에서 영노가 머리를 쑥 치켜들었다.

“어라, 꼬마!”

휙! 고개 돌린 여울의 눈이 자색 홍채와 마주치는 순간.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천둥처럼 터져 나온 여울의 우렁찬 고함에 그녀를 둘러싼 요선들이 기겁을 하며 나자빠졌다. 사방으로 공백이 생기니 바들바들 떨던 여울이 말문을 텄다.

“나! 나는! 개개천! 의여울입니다.”

꾹꾹 내리누르던 공포를 터트리고 나니 숨통이 트인 듯 가슴이 시원하다.

“흠흠, 개개천에서 오신 의여울 님이셨군요.”

화살보다 빠르고 호랑이보다 용맹한 용마, 어린아이의 고함 소리에 물러섰던 것이 머쓱했던지 괜스레 옷깃을 쓸어내린다. 저도 몰래 곤두선 갈퀴를 가라앉히며 용마가 씩씩거리는 여울에게 다가섰다.

“낯선 지명인데, 개개천은 어디에 있는 곳입니까.”

커다란 콧구멍을 벌름거리는 용마를 보며 여울이 용기를 내어 이마로 흐르는 땀을 닦아 냈다.

“개개천이 아니라 개천입니다.”

에라, 모르겠다.

마치 천계에서 내려온 천녀라도 되는 양 여울은 씩씩하게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영주 개천에서 온 여울입니다.”

웅성웅성. 개천의 아이들처럼 모여든 요선들이 여울의 이름을 속살거린다. 요선들 속에서 그녀를 노려보고 있던 영노의 쪽 째진 입술이 달싹였다.

‘거봐, 너 장님 아니잖아.’

‘그래서 뭐! 이래 뒈지나 저래 뒈지나!’

요괴도 하나둘 정도 마주쳐야 무섭지. 떼거지로 모여 있으니 그놈이 그놈이다.

“아, 개천에서 오신 여울 님. 한데, 여긴 어쩐 일로….”

어쩐 일? 여기 왜 왔지?

용마의 물음에 여울은 또다시 데굴데굴 눈알을 굴렸다.

그래! 하얀 그림자!

이곳에 온 이유가 생각난 여울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상황을 보아하니 요괴들이 잔치를 벌이는 듯한데, 초대장도 없이 하얀 그림자를 따라왔다 하면?

아무리 머리를 굴려 보아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사실대로 이야기하면 한입에 잡아먹힐지도 몰라.’

슬그머니 올려다보니 답을 기다리며 미소 짓는 용마의 하얀 이빨이 대문짝만 하게 보인다. 저 이빨은 분명 그녀의 팔다리를 도토리묵처럼 잘라 낼 것이다.

“그, 그것이. 제가, 아까….”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자니 멀리 누각에서 흥미롭게 쳐다보고 있는 늙은 도선이 눈에 들어왔다. 여울을 이곳으로 끌어들인 아름다운 여인과 나란히 서 있다.

망할! 재수도 쌍으로 없다.

“주인에게 돌려줄 물건이 있어 왔습니다.”

“돌려줄 물건? 누구에게 말입니까?”

이미 제자리로 돌아와 있는 돌들이 담긴 붉은 주머니를 손안에 놀리며 흔들었다.

“저기 저분이 분명 잃어버린 물건이 있을 겁니다.”

여울은 누각 위로 지팡이를 짚고 선 노인을 가리켰다.

“아! 천명 선생을 찾아오셨군요. 이리 오시지요.”

용마가 비단 소매를 펄럭이며 팔을 뻗으니 우글우글 몰려 있던 요선들이 물러서며 길을 텄다. 그의 뒤를 따라 걷는 여울은 허리에 힘을 주고 어깨를 폈다.

‘그래! 여기서 뒈지라고 죽어라 달리게 한 건 아닐 거야.’

용마의 뒤를 따라 걷는 여울은 호기심 가득한 요선들의 시선에 힘을 빡 주고 눈알을 부라렸다.

‘요괴나 사람이나 똑같아. 약해 보이면 먹히는 거야.’

누각의 계단 끝에 노인과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용마가 천명을 올려다보며 아이의 방문을 고했다.

“천명 선생님. 이 아이가 돌려줄 물건이 있다 하는데, 아시는 아이입니까.”

“모르는 아이입니다.”

쿠궁! 또다시 외면하는 천명의 무덤덤한 표정에 여울은 벼락을 맞은 듯 그를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설 여울이 아니다.

“저를 알지는 못하지만 무언가 잃어버리셨다는 것은 아시지 않습니까.”

“그러고 보니 귀한 옥돌을 잃어버렸네. 껄껄껄껄.”

망할 노인네. 옥돌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이게 진짜 옥돌이었으면 요괴 소굴이 아니라 개천에서 애들하고 닭이나 뜯고 있었다!

“옥돌이든 공깃돌이든 아무튼 가져왔으니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도둑질이든 동냥질이든 모름지기 치고 빠져야 할 때를 알아야 성공한다.

붉은 비단 주머니를 용마의 손에 쥐여 준 여울이 강단 있게 돌아섰다. 그런데.

“이보게. 옥돌이 숫자가 비네.”

순간 번개같이 돌아선 여울이 계단을 뛰어 올랐다.

“모자라요? 그럴 리가 없는데! 몇 개나요?”

두 눈이 토끼만큼이나 커진 여울의 모습에 천명이 붉은 주머니를 뒤집어 돌을 꺼냈다.

“열두 개가 있어야 하는데. 열한 개뿐이로구나.”

천명의 말에 믿을 수 없다는 듯 여울은 손을 내밀어 돌을 받아 들었다. 너른 나무 마루에 쪼그리고 앉아 바닥에 돌들을 내려놓고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다섯… 열. 그리고 하나.”

“내 말이 맞지 않느냐. 하나가 빈다.”

천명의 말에 여울은 다시 돌을 세기 시작했다. 손가락으로 하나씩 오른쪽으로 돌을 가르며 세고 또 왼쪽으로 밀어내며 센다. 역시나 열 개와 남은 것은 한 개.

‘빌어먹을! 원래가 몇 개인지 모르니 정말 하나가 없어진 게 맞는지 알 수가 없잖아!’

영락없이 도둑으로 몰릴 상황이었다.

“비싸고 귀한 옥돌이 없어졌으니 어쩐다?”

천명은 난처해하는 여울의 모습에 슬그머니 웃음 지으며 돌아섰다. 그의 뒤에 서 있던 천선이 다시 돌을 헤아리는 여울을 내려다보며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천명은 그녀를 향해 언령을 울렸다.

‘어찌하시렵니까.’

‘후후후, 아이가 민첩하고 영리하며 단단해 보입니다.’

‘그렇지요? 낭랑님이 보시기에도 그리 보이십니까?’

‘예, 요선들에게 둘러싸여 어찌하려나 하였더니, 후후후, 요기에 눌리지 않는 당찬 모습을 보니 인간의 아이라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참으로 놀랍습니다.’

‘허허허허.’

‘예전에도 담대하여 아름다웠습니다. 하늘은 어찌 그리도 잔인한지 제게 묻더군요. 환생을 거듭하여도 본성은 변하지 않는 것인지….’

‘제가 거두어 가도 되겠습니까.’

‘한데 돌은 어디에 숨기신 겁니까.’

‘제가 숨긴 것이 아닙니다. 아이가 거짓말을 하는 것도 아닌 듯하니 찾아보아야겠지요.’

‘그럼 온전하지 않은 열쇠로 결계를 열었단 말입니까.’

‘네. 그러합니다. 열두 개를 모두 가지고 있었다면 편히 들어섰겠지요.’

‘후후후, 대단합니다.’

조용히 미소 짓던 천선이 여전히 돌을 세고 있는 여울의 곁을 지나 계단을 내려섰다.

‘거참, 이상하네…. 하나가 어디로 간 거지? 아이들 앞에서 돌을 내려놓고….’

여울의 생각들이 들려오니 웃음이 나오는 천선이었다.

돌을 세는 척하고 있지만, 여울은 시간을 벌며 지난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아이들이 돌을 만지다가. 입에…. 입! 망할! 송이야!’

소리 없는 비명에 걸음을 멈춰 선 천선이 여울에게로 돌아섰다. 아쉬움 가득한 천선의 가슴에는 풀리지 않는 물음이 있었다.

“아이야, 나와 함께 가겠느냐.”

뜬금없이 함께 가자 청하는 여인의 모습에 여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와 함께 간다면 천명 선생은 잃어버린 돌을 괘념치 않을 것이야.”

천선을 바라보던 여울의 시선이 천명에게로 향하니 그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어떠하냐. 나와 함께 가겠느냐?”

영특한 여울이었으나 여덟 살의 세상은 그리 넓지 않다.

그녀가 아는 아름다운 여인들은 모두 기방에 모여 있다.

‘망할 돌멩이 하나에 기루에 팔려 가야 하나?’

걸인촌 아이들 중에 종종 기루로 팔려 가는 여자아이들이 있었으나 퇴기의 삶이 어떠한지 알기에 여울은 고개를 저었다.

여울의 생각을 읽은 천선은 그마저도 웃음이 나왔다.

“나는 인간의 출생과 혼인을 관장하는 천선 낭랑이란다. 네가 나와 함께 간다면 넌 관음의 제자가 되어 부모 없는 아이들을 보살피는 선녀로 살게 될 거야.”

선녀?

여울은 고민에 빠졌다.

‘큰사람을 만나면 묶여 있던 운명이 풀린다더니 선녀가 된다는 소리였나?’

의심 많은 여울이기에 ‘선녀’라는 말을 그대로 믿을 수가 없었다. 또 선녀라 해도 이대로 아무런 말도 없이 그녀를 따라나섰다가는 개천의 아이들이 매질에 죽어 나갈 것이다.

“하면 제 동무들도 함께 갈 수 있을까요?”

천선이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저는 갈 수 없습니다. 지켜 줘야 할 아이들이 있거든요.”

“정녕 그리하려느냐.”

평생 개천에서 벗어나지 못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내 씩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쉬운 듯 여울을 바라보던 천선이 어려운 걸음을 뗐다.

‘까짓것, 묶여 있는 운명 따위 대차게 치고 나가 주마!’

북문으로 걸음 하는 천선의 등 뒤로 결의에 찬 울림이 전해졌다. 천선은 자꾸만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어 터트리고 말았다.

“후후후, 호호호호호.”

“낭랑님, 어찌 그리 웃으십니까.”

“매번 거절을 당하니 처량하여 그렇습니다.”

“그러합니까.”

천선을 따라 다문국으로 통하는 북문 앞에 선 천명이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평안한 길 되십시오.”

“아이를 잘 부탁합니다.”

“예.”

“지금은 이리 돌아가지만, 아이를 봉인하고자 하는 제 결심은 아직도 변함이 없습니다.”

“예.”

“이 낭랑은 산을 무너뜨려 홍수를 덮으려 하는데 선생께서는 물길을 터서 회유하려 하는군요. 재앙을 막고자 하는 뜻은 같으나 그 방법이 다르니 지금으로서는 어느 누가 옳다 할 수 없겠습니다.”

“인계의 멸망을 막아 낸 것은 반선들의 단합도, 처절했던 인간들의 저항도 아니었습니다. 자애로운 천선께서 몸을 태워 흘린 눈물이지요. 저 아이도 그리 자라날 것입니다.”

세상을 적실 눈물이 될 아이라.

“하나 인간의 아이란 나무와도 같아서 어찌 자랄지 알 수 없으니. 아이가 다른 길을 걷게 된다면 그때에는 주저 없이 데려갈 것입니다.”

“그리하시지요.”

“그때에는 아이의 의사는 묻지 않으렵니다.”

“후후후, 그리하십시오.”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는 천명을 바라보던 천선이 조용히 웃음 지었다.

“밤공기가 너무나 좋습니다. 후후후.”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천계에서는 한 번도 이리 소리 내어 웃은 적이 없었다.

인계에 내려와 번민의 늪에 빠졌다 하나 희로애락 또한 그리 나쁘지 않구나.

더없이 평안한 표정으로 사라지는 천선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천명 또한 흐뭇한 마음으로 돌아섰다.

누각으로 돌아와 보니 여전히 돌을 헤아리고 있을 줄 알았던 여울은 단정하게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 어찌 되었느냐.”

“열한 개입니다. 나머지 하나는 집에 두고 왔습니다.”

없어진 줄도 모르고 토끼 눈이 되어 돌을 세더니만 이제는 집에 두고 왔다?

아까와 달리 덤덤한 여울의 표정에 천명이 수염을 쓸어내렸다.

“그래? 집이 어디지?”

“개천입니다.”

“어허, 개천은 영주의 강 이름인데 어찌 그곳에 산다 하느냐. 네가 물귀신이라도 된단 말이더냐.”

천명의 말에 여울은 울컥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 산도깨비 같은 노인네가 누구보고 귀신이래? 지금 나를 가지고 들었다 놨다 공깃돌 놀이를 하자는 것인가.’

아니야. 참아야 해. 돌을 헤아리며 여울이 찾았던 것은 돌의 행방만이 아니었다. 망할 요괴 소굴에 어떻게 들어왔는지 알 수 없기에 나가는 길 또한 알 수 없다.

돌을 세는 동안 천선과 사라졌던 천명은 홀로 돌아왔고 어딘가에 문이 있을 것 같기는 한데. 순식간에 사라졌던 입구를 떠올리면 출구 또한 일반적인 문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

“어찌 대답이 없느냐. 눈을 뜨고 자는 게냐. 집이 어디인지 물었다.”

“개천이라 하였습니다.”

“어허, 그래도!”

짐짓 노기를 띠는 천명의 목소리에도 여울은 넉살 좋게 웃음 지었다. 지금 여울에게 천명은 이 요괴 소굴에서 그녀를 건져 줄 유일한 동아줄이었다.

“비렁뱅이도 사람입니다. 비록 사람답게 살지 못하나 귀신은 아니니 저를 개천으로 데려다주세요.”

오호라, 이 천명을 방패 삼아 요선각을 빠져나가시겠다.

여울의 속내를 꿰뚫은 천명은 그 영특함이 기특하여 다그치기를 관두고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가자. 내 너를 집으로 데려다줄 것이니.”

후다닥 따라나서는 여울을 보고 있자니 천명은 웃음이 나왔다.

요선들의 술자리를 지나 정원을 가로지른 천명은 광목국으로 통하는 서문으로 향했다. 왁자지껄한 소리들이 멀어지며 사방으로 어둠이 내려앉았다.

문득, 앞서 걷던 천명이 멈춰 섰다.

“이보게, 배웅은 필요 없을 듯한데….”

“쉭쉭. 그 아이는 내가 이미 찍어 둔 아이인데 말이오.”

언제부터 따라왔는지 어둠 속에 영노의 자색 눈동자가 반짝였다.

“허허허, 오백여 년 시간을 이 아이 하나 삼켜 헛되이 버리려 하는가.”

“용이 된다 한들 천계에 들지도 못하는데…. 쉭쉭. 도는 닦아 무엇하겠소.”

“하면, 이 아이를 취하고 다시 요괴로 돌아가려 하는가. 퇴마사들에게 쫓기고 결국에는 도륙을 당하겠군.”

천명의 곁으로 다가선 여울이 그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땀이 배어 나온다.

‘망할 뱀이 끝끝내 날 삼키려 하는구나.’

영노를 향한 천명의 시선은 여울을 대할 때와 다름없어 온화하여 다정하다.

요괴를 보며 어찌 저런 표정을 지을까.

“아이를 데려가려면 나와 피를 보아야 할 텐데. 그리할 텐가.”

잔잔한 물결과도 같은 목소리였으나 어느새 천명의 몸을 감싸며 피어오르는 기운에 영노의 홍채가 번득인다.

‘반선에 오른 지 백 년도 안 되는 인간이 어찌 이리 깊고 푸른 선기를 지녔단 말인가.’

입맛을 다시는 영노는 인간의 아이를 포기하기가 쉽지 않다.

한참이나 망설이던 영노가 하늘 높이 치켜세웠던 머리를 슬그머니 내렸다.

“쉭쉭, 쉭. 오늘은 청명절이니 피를 보기에 옳지 않아. 쉭쉭, 다음을 기약하지.”

말은 그리하였으나 영노는 여전히 그들의 뒤를 따르고 있다. 쉭쉭거리는 소리에 등골이 오싹해졌지만 천명 때문인지 여울은 한층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직도 따라와요.”

“미련이라 하는 것이다.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마음의 짐이 되어 병을 만들기도 한단다.”

조용히 천명의 뒤를 따르던 여울은 그와 함께 더욱 짙은 어둠 속으로 들어섰다.

한 걸음, 두 걸음. 쉭쉭거리던 영노의 숨소리가 멀어지는가 싶더니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다섯 걸음, 공기의 흐름이 바뀌며 바람을 타고 익숙한 물 내음이 진동을 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아래 달빛을 드리운 개천은 낮의 모습과 달리 고요하여 아름답다.

“우와…. 분명 반촌에 있는 골목길로 들어섰는데.”

“결계라 하는 것이다. 가고자 하는 곳으로 문을 만들어 열기도 하고 지키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방패가 되기도 하지.”

여울은 새삼 감탄스러운 눈으로 천명을 쳐다봤다. 요괴들 틈에서 거리낌 없이 있던 모습도, 정원을 걷다가 순식간에 개천으로 이동한 것도 그렇고. 옷도 휙휙 바뀌는 것이 정말 도선이 맞나 보다.

“그래, 여기가 맞는 게냐.”

“예. 저기 저곳에 삽니다.”

여울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에는 돌다리 아래 불가에 모여 앉은 아이들이 보였다.

“돌이 처음부터 열두 개였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만약 하나가 빈다면 제 아우가 가지고 있을 겁니다.”

포도대장 주머니를 털었어도 이리 걱정스럽지는 않을 텐데. 하필이면 도술을 부리는 도선이라니. 그를 속였다가는 큰 화를 당할 것이다.

“한데,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라?”

“돌은 내일, 아니 모레나 되어야 돌려 드릴 수 있습니다.”

“요괴 소굴에서 빼내 주었더니 이제 와서 돌을 돌려주지 않겠다?”

당장에라도 도술을 부려 그녀를 다시 요괴 소굴로 데려갈까 여울이 다급히 말했다.

“돌려 드리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기다려 달라 하는 겁니다.”

“어째서 기다려야 하지?”

여울은 난전의 골목길에서 입을 오물거리던 송이를 떠올렸다. 늘 배고파하는 송이는 먹쇠보다 먹성이 좋아 흙이며 돌이며 못 먹는 것이 없다.

“그 돌이 제 아우의 배 속에 있을 듯합니다.”

“그럼 배를 갈라 꺼내야겠구나.”

앞장서는 천명의 앞에 넙죽 엎드린 여울이 다급히 외쳤다.

“어르신! 어르신! 송이는 이제 다섯 살 된 아이입니다. 배가 고파 돌을 삼킨 것이니 적어도 사나흘 안에는 반드시 똥으로 나올 겁니다.”

사나흘, 충분히 먹지 못하는 거지 아이들이 변을 보는 시간임을 아는 천명은 여울을 놀리기를 그만두었다.

“제가! 제가. 많이 먹여서 빨리 가져다 드릴게요. 나리!”

요선들 앞에서도 기죽지 않던 여울이었다. 아우의 배를 가르겠다니 이리 엎드려 머리를 땅에 대는 모습에 천명의 표정이 한층 더 부드러워졌다.

“여울이라 하였느냐.”

“예, 나리.”

“그만 일어나거라.”

“배를 가르지 않겠다 약조하여 주세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똑 부러진 것이 보면 볼수록 마음을 흔드는구나.

‘불과 물을 함께 안고 가야 하니. 벗어날 수 없는 업보로다.’

하늘을 향해 있던 천명의 시선이 여울에게 돌아섰다.

“돌은 필요 없으니 나와 함께 가겠느냐.”

“아우의 배를 가르지 않겠다 약조하여 주십시오.”

“껄껄껄껄, 돌이 필요 없다 하는데 아이의 배는 갈라서 무엇할까?”

여전히 바닥에 엎드린 여울은 고개를 들지 못한다.

“내 너를 키워 크게 쓰려 함이니 결국엔 네 동무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나와 함께 영산으로 가겠느냐 물었다.”

‘동무들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어쩌면 도둑질보다 더 좋은 기술을 배울 수 있을지도 몰라. 어쩌지?

순간, 보름달을 등진 천명의 모습은 더없이 크고 장대했다.

‘하얀 그림자. 큰사람. 묶여 있던 운명.’

큰사람…. 큰사람. 큰사람!

번개가 뇌리를 후려친 듯 여울의 입술이 벌어졌다.

“운•명•이 풀려난다.”

“껄껄껄! 세상에 노력 없이 얻어지는 것은 늙음밖에 없으니 운명은 네가 스스로 풀어 나가야 할 숙제. 그 숙제를 풀어 갈 기술을 내가 가르쳐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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