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개천의 아이들
귀신도 살려 낸다는 박 의원 집은 명의를 찾아든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대문이 열릴 때마다 마당 안을 힐끔거리는 아이가 하나 있었으니.
머리는 까치집이요, 사람인지 까마귀인지 꼬질꼬질하게 해어진 옷은 앙상한 팔다리 가리기도 버겁다.
“예, 예. 나으리. 우리 주인어른이야, 이 영주 땅에서는 모르는 자가 없는 명의 아니십니까.”
안에서 사람 소리가 들리자 아이는 후다닥 문기둥 옆으로 물러섰다. 화려한 비단옷을 걸친 귀족을 따라 대문을 나선 종복이 물 먹는 닭처럼 머리를 조아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이의 시선이 귀족을 태운 말에게로 향했다. 토실토실 잘 먹어 후덕한 말 궁둥이가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멀어진다.
“참으로 복받은 궁둥이네. 사람에게 절도 받고.”
화들짝 고개 든 종복이 아이를 발견하곤 눈살을 찌푸렸다.
“에잉? 너 아직도 안 갔냐?”
“약을 줘야 갈 것 아니오.”
야무진 대꾸와 함께 아이가 한 걸음 다가서니 종복이 코를 움켜쥐며 물러선다.
“아이코, 냄새야. 이게 무슨 똥내야.”
아이를 피해 대문으로 들어서는 손님들의 찌푸린 시선에 종복은 손사래를 쳤다.
“거참, 약을 맡겨 놓은 것도 아니고, 번번이 돈도 없이 와서는 무슨 강짜인지. 쯔쯔쯔.”
“그래서 입 닫고 기다리고 있는 것 아니오!”
돌아서는 종복의 혼잣말에 부아가 났는지 아이의 목소리에 날이 섰다.
“약도 동냥질해야 하는 거지새끼라 이렇게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데 왜 여태 약을 안 주오!”
한 예닐곱쯤 되었을까? 빌어먹는 주제에 꼬마 녀석 기세가 사뭇 당당하다.
“만들고 있다. 그러니 기다려. 저리, 저쪽 구석에 가서 기다리라고. 아이코, 냄새에 죽겠네.”
“동트기 전에 와서 벌써 해가 중천이오! 혹 의원 어른께 말도 아니 전한 것 아니오?”
“말은 전했다마는. 거참, 주인께서 워낙에 바쁜지라.”
어물쩍 말꼬리를 늘이는 종복의 모습에 아이의 맨발이 성난 토끼처럼 쿵쿵쿵 흙바닥을 굴렀다.
“계집 둘, 사내 여덟. 사내 아홉, 계집 하나. 아이 하나, 사내 여덟, 노인 하나! 열 명씩 세 번이 넘게 이 문턱을 밟았는데.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 거요!”
아이는 제가 셀 수 있는 숫자 열까지 세 번을 반복하며, 문 안으로 들어간 손님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아이의 영특함에 종복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알았다. 알았어. 내 가서 주인 나리께 다시 한번 독촉할 것이니 얌전하게 기다리거라. 응?”
“얌전히 기다릴 테니 개천의 여울이가 애꾸눈 개수의 처 풍년이 약을 가지러 왔다 분명하게 일러 주오.”
“알았다. 알았다니!”
여울은 꽁무니를 빼려는 종복의 옷자락을 옴팡지게 움켜쥐고는 다시 일렀다.
“열 명 나오기 전에 아니 가져다주면. 내 오늘 동냥질 때려치우고 개천 동기들 불러다 이 집 문짝이며 담벼락 빙빙 둘러 똥칠이나 할까 하니 그리 아오!”
“거참, 알았다니까 그러네!”
병이라도 옮을까 걱정이 되는지 종복은 손을 털어 가며 꽁무니를 뺀다.
늘 겪는 일이지만 여울은 저도 모르게 손을 바지에 문지른다.
개천의 다리 밑에는 거지들이 모여 살고 있다. 팔다리가 없거나 장님, 벙어리 등 온전치 못한 이들도 있고 병에 걸린 이들도 있었다.
더럽고 흉한 몰골로 떼 지어 다니며 동냥질하는 거지들은 비위가 상하면 위협도 서슴지 않았다.
역병을 옮긴다거나 아이들을 잡아먹는다는 둥의 기담이 목에 낀 때처럼 더해지니 사람들은 거지들을 더욱 경계하여 기피했다.
협박이 제대로 먹혔는지, 문 안으로 뛰어들었던 종복이 금세 약봉지를 들고 나왔다.
“옜다! 냉큼 가지고 가거라!”
약봉지를 받아 든 여울은 패악을 부리던 아까와 달리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얼른 가! 에잇, 염병할 것들. 카아악, 퉷!”
쏟아지는 욕설에도 여울의 입술은 기분 좋게 말려 올라가 있다. 약을 구걸하러 왔고 약을 받았으니 되었다. 그까짓 욕지거리쯤이야.
‘어서 약을 전해 주고 아이들에게 가야지!’
여울은 새까만 콧등을 문지르며 신나게 내달렸다. 오가는 사람들을 요리조리 피하며 날다람쥐처럼 잽싸게 달리던 여울이 큰 사거리 앞에서 멈춰 섰다.
‘흐음…. 어디로 간다?’
청명절인지라 큰길은 귀족들의 가마나 수레가 가득 차 있었다. 골목길로 돌아가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살곶이다리로 질러가자니 영 내키지가 않는다.
‘미치광이 노파가 또 달려들면 어쩌지?’
다리에서 점을 치며 살아가는 장님 노파를 생각하니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갑작스레 웃어 대거나 통곡을 하며 춤을 추는 등 그녀의 행동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게다가 볼 때마다 이상한 소리를 해 대며 쫓아오는 통에 세상 무서울 것이 없는 여울도 노파를 피해 다니기 바쁘다.
“에라, 모르겠다! 가자!”
여울은 살곶이다리를 향해 내달렸다. 앞만 보고 달리던 그녀의 시선이 멀리 백발의 노인에게로 화살처럼 꽂혀 들었다. 순백 비단에 푸른 복대를 두르고 넓은 갓을 쓰고 있는 그에게서 부유한 후광이 비친다.
‘돈이다!’
어, 어어. 지팡이를 짚고 걷는 노인의 걸음이 빠른 것인지, 여울이 날고 있는 것인지.
그와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으아아아앗!”
비단 옷자락이 바람에 펄럭이는가 싶더니 빛과 같은 속도로 노인이 몸을 틀었다.
얼라리! 피하셨어? 하지만 이대로 놓칠 수는 없지!
능숙하게 그녀를 피하는 노인의 오른 어깨 쪽으로 몸을 튼 여울이 그의 어깨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계산보다는 약한 충격이었으나 날쌔게 몸을 굴려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아이코야! 나 죽네! 아야야! 개천의 여울이 죽네!”
어깨를 움켜잡고 죽는 시늉을 하며 흙바닥에 나뒹굴었다. 노인의 허리춤에서 빼낸 주머니를 잽싸게 품 안에 집어넣은 여울은 옆구리 차인 개처럼 낑낑거렸다.
“아이고, 아이고, 아파라! 흐응, 아응.”
“괜찮은 것이냐. 어디 좀 보자.”
너무나 다정한 목소리에 여울은 질끈 감았던 눈을 게슴츠레 뜨고는 노인을 올려다보았다.
‘어•라•?’
다 낡아 군데군데 기워진 쥐색의 삼베옷에 갈대를 엮은 싸구려 삿갓을 쓴 노인이 여울을 안쓰러이 내려다보고 있다.
부자 영감은 어디로 갔지?
“일어나 보거라. 어디를 다쳤는지 보아야겠구나.”
노인의 말에 여울은 송아지처럼 두 눈만 끔벅거렸다. 쥐색 도복은 푸른 비단 복대가 아닌 노끈으로 묶여 있다.
거참, 이상하다. 푸른 복대 속의 주머니를 낚을 때 손에 닿았던 비단의 감촉이 아직도 여실한데.
“괘, 괜찮습니다.”
여울은 걱정하는 노인의 손길을 뿌리쳤다.
“괜찮습니다. 정말 괜찮아요. 그럼, 저는 가 볼게요.”
잽싸게 몸을 털고 일어난 여울이 주머니를 훔친 것이 들킬세라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다섯 보도 가지 못하고 멈춰 서고 말았다.
‘가난한 도선이 밥 사 먹을 돈도 없는 것 아닐까?’
살며시 돌아보니 없다. 값비싼 비단옷을 입은 노인도, 가난한 떠돌이 노도선도 없다.
‘그 짧은 새에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여울은 숨겨 두었던 노인의 주머니를 꺼내 들었다. 붉은 비단 주머니 안에 잘그락거리는 동전의 느낌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말하는 것을 보면 사람인데, 어디로 간 거지? 이상하네. 요괴도 귀신도 아닌 게 분명한데…. 뭘까?”
주머니를 품에 넣은 여울이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멀리 살곶이다리가 보이자 장님 노파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매번 똑같은 노랫가락은 나날이 흉포해져 가는 세상만큼이나 음산하기 짝이 없는 귀곡성이다.
궁핍한 아비는 어린 자식을 팔아 인을 버리고,
자식은 늙은 노모를 버려 효가 자취를 감춘다.
폭정으로 궁핍한 아비가 어린 여식을 기루에 팔았고, 장성한 아들은 늙은 노모를 산에 버렸으며, 시기와 다툼으로 친우 간에 살인도 서슴지 않았다.
신하가 주군의 가슴에 칼을 꽂아 충이 꺾이니.
노파의 노래는 현 왕이 전 왕을 죽이고 왕위에 오르기 훨씬 전부터 시작되어 예언처럼 이루어지고 있었다. 부자가 가난한 이를 종으로 부려 먹는 세상은 살인과 간음, 도둑질이 난무했다.
도를 잃은 인계에 재와 화만이.
갑작스레 노랫소리가 뚝 끊겼다.
‘설마 아니겠지….’
살금살금 자벌레처럼 숨죽여 걷던 여울도 덩달아 걸음을 멈춰 섰다.
‘아니야. 아닐 거야.’
살그머니 고개를 돌리는 찰나, 다리 난간 위에 앉아 있던 노파의 머리가 끼기긱.
비정상적으로 뒤틀린 노파의 머리통이 여울에게로 향했다.
“무얼 보고 있는 게야. 냉큼 하얀 그림자를 따라가지 않고.”
눈동자 없는 희멀건 눈이 분명하게 여울을 응시하고 있었다. 소름이 돋아 올랐다.
“큰사람을 만나 묶여 있던 운명이 풀려난다.”
희멀건 눈은 분명하게 여울에게로 향해 있었다.
‘망할! 귀신같은 노인네. 어떻게 알아차린 거야!’
숨도 안 쉬고 서 있는 여울을 향해 미친 노파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대기 시작했다.
“하얀 그림자야! 놓치면 안 돼! 지체 말고 따라가!”
노파가 몸을 일으키자 여울은 사색이 되어 뛰기 시작했다. 요괴나 귀신보다 미치광이 장님이 더 무섭다. 카랑카랑한 쇳소리가 고막을 긁으니 저도 모르게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잊으면 안 돼! 하얀 그림자야!”
꽁지에 불붙은 고양이처럼 내달리던 여울은 개천의 돌다리가 보이자 그제야 멈춰 섰다. 허리를 펼 수가 없었다. 가슴은 터질 것 같고 말라 버린 입 안에선 비릿한 쇠 맛이 났다.
***
행인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난전의 골목길.
“나무 비녀 하나, 땡전 두 푼. 개가죽 하나….”
“뭐야, 이게 전부야?”
“그게…. 사람도 너무 많고, 포졸들도 너무 많이 돌아다녀서.”
머리를 맞대고 앉아 있는 일곱 명의 아이들이 바닥에 내려놓은 물건들을 쳐다보고 있다. 덩치도 성별도 제각기였으나 행색만큼은 하나같이 더럽고 누추했다.
“입에 묻은 콩고물이나 닦고 말해.”
여울의 핀잔에 먹쇠가 소매로 입술을 훔친다.
“혼자 먹으니 맛나니? 많이 먹어 뱃고래 늘려 놓으면 배가 더 고프다고. 자꾸 먹어 덩치 커지면 개수가 널 어디로 팔아 버릴지 모른다 말했잖아! 이 멍충아!”
두목의 이름이 나오자 겁에 질린 아이들의 목이 자라처럼 움츠러들었다.
거지패의 두목인 애꾸눈 개수는 아이들에게 포졸이나 호랑이보다 더욱 무서운 존재였다.
“이걸로는 어림없는데….”
그녀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망울에 여울은 터져 나오는 한숨을 애써 삼켰다.
“여울 언니, 어쩌지? 내가 나가 볼까? 나는 언니 다음으로 손이 빠르니까, 내가.”
“안 돼!”
이미 두 번이나 포도청에 잡혀갔던 분례는 이번에 잡혀가면 죽임을 당할 것이다.
“개수한테 맞아 죽나. 포도청에 잡혀….”
“안 된다면 안 되는 줄 알아!”
여울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을 둘러보며 참았던 한숨을 내쉬었다. 돌림노래 하듯 아이들이 여울을 따라 폭폭폭 한숨을 내어 쉰다.
개수가 약 심부름만 시키지 않았어도 손 빠른 여울은 더 많은 것들을 훔칠 수 있었다. 개수의 마음에 들어 아이들이 매 맞지 않고 오늘을 넘길 수 있을 무언가를….
“맞다!”
여울은 늙은 도선에게서 훔친 비단 주머니를 떠올렸다.
잊고 있던 붉은 비단 주머니를 꺼내니 짤그락거리는 소리에 아이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도, 돈인가 봐!”
“여울이 누나가 엽전 뭉치를 훔쳐 왔어.”
주머니를 열어 거꾸로 드니 무언가가 와르르 흙바닥으로 쏟아졌다.
“뭐야, 누나, 이거 돌멩이잖아.”
납작하니 반들반들한 자갈을 손에 쥔 아이들이 저마다 입으로 가져가 깨문다.
“돌 맞네.”
“반들거리는 게 예쁘다.”
“옥돌인가?”
여울은 돌을 집어 손끝으로 만져 보았다. 곱고 반들거리기는 하나 옥돌은 아니다. 비단 주머니에 누가 돌을 넣어 다닐까. 당연히 엽전이라 생각했다.
“큭! 큭큭큭, 망할 노인네.”
주머니의 주인을 떠올리니 여울은 어이없게도 웃음이 나왔다. 차라리 잘되었다. 노인도 대단한 것을 잃은 것은 아닐 테고, 그녀 또한 불쌍한 이의 밥값을 훔친 것이 아니니 마음의 짐을 덜었다.
풀이 죽은 아이들의 모습에 여울이 키득거리며 돌들을 주머니에 쓸어 넣었다. 여울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아이들이 우르르 뒤따른다. 아이들이 덩치 좋은 먹쇠나 싸움 잘하는 칠석보다 여울을 따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언니, 어디 가….”
“먹쇠는 애들 데리고 먼저 들어가 있어.”
“개수한테는 뭐라고 해.”
얻어터질 생각에 잔뜩 겁먹은 먹쇠를 향해 여울이 환하게 웃었다.
“조금만 기다리라고 해! 여울이가 뭐라도 집어 온다 했다고.”
절망으로 가득 찼던 아이들의 눈동자가 금세 희망으로 반짝인다. 여울은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는 골목길을 벗어나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기세 좋게 나오긴 나왔는데, 어디로 가야 하나….’
나라에서 허가한 시전 상인이 아닌지라 난전의 장사치들은 해가 기울자 파장을 준비하느라 바빴다. 두리번거리는 여울의 눈에 미친 노파만큼이나 싫은 것들이 또바기 박혀 든다.
‘어두워지면 더욱 선명해질 거야. 서둘러야 해.’
토끼 가죽을 파는 절름발이 사내는 굶어 죽은 자식인지 눈이 퀭한 아이 하나를 발에 매달고 있다.
물그림자처럼 투명한 아이의 몸을 통과하여 흙바닥과 사내의 짐들이 보였다. 텅 빈 암흑으로 가득 찬 아이와 눈이 마주치자 여울은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처럼 시선을 돌려 버렸다.
‘아무것도 없는 거야. 아무것도 못 본 거야.’
밤이 되면 왕과 귀족들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닌 또 다른 세상이 열린다. 여울은 알 수 없는 존재들이 더욱 또렷해지는 어둠이 싫었다. 무녀들은 귀신을 본다 하지만 여울에게 보이는 것은 귀신뿐이 아니었다.
“어찌 이리 해가 짧누! 에구, 에구. 허리야!”
광주리에 물고기를 담아 일어서는 늙은 여인네의 허리에 매달려 있던 무언가가 처럭처럭 어깨를 타고 오른다.
“아이고, 어깨야.”
생긴 것은 분명 물고기인데, 자색의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며 네 개의 다리로 기어 다니니 참으로 기묘하다.
‘쳐다보지 마. 나한테 들러붙을지도 몰라.’
여울은 주문을 외우듯 입술을 달싹이며 행인들을 헤치고 꿋꿋하게 앞으로 걸어갔다. 멧돼지의 머리를 한 사내 하나가 콧김을 뿜으며 여울을 노려본다.
‘사냥꾼인가 보구나. 어쩌다 요괴가 되었을까.’
구걸만 하던 어릴 때에는 백정을 삼킨 소머리 요괴를 보고 기겁하며 주저앉았었다. 하지만 여울은 더 이상 여섯 살 아이가 아니었다.
“후후후, 나처럼 눈이 멀어 버리면 좋겠지?”
살곶이다리의 장님 노파, 유일하게 같은 것을 보는 이였으나 여울은 그녀처럼 미쳐 늙게 될까 두려웠다.
“하얀 그림자야! 놓치면 안 돼! 지체 말고 따라가!”
“망할 노인네. 그림자는 시커메야지. 세상에 하얀 그림자가 어디 있다고!”
요괴와 귀신, 사람들로 북적이는 난전의 거리.
짙어지는 어둠 속에 그들의 존재는 더욱 선명해졌다. 여울은 주문을 외우듯 마음을 다잡으며 걷기 시작했다.
“두려움은 마음속에 있는 거야. 내 마음속에.”
부모에게서 버림받은 걸인촌의 아이들은 노래를 하거나 병신 짓으로 구걸을 한다. 돈벌이를 위해 아이들을 불구로 만드는 참혹한 현실 속에서 여울은 살아남기 위해 여섯 살부터 도둑질을 시작했다.
개수에게 무언가를 가져가지 않으면 죽을 만큼 얻어맞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생존을 위한 전쟁이었다.
민첩하고 영리한 데다 담이 컸던 여울은 어느새 아이들의 우두머리가 되어 있었다.
아이들을 생각하니 여울의 걸음이 다시 빨라진다.
‘닭 한 마리라도 훔쳐 가야 할 텐데….’
등불을 올리기 시작한 주막거리의 북적임 속에 여울은 코를 벌름거리며 멈춰 섰다.
‘무슨 냄새지?’
은은한 난향을 따라 여울의 눈동자가 그녀의 곁을 지나는 한 여인에게로 천천히 움직였다.
도자기처럼 하얀 얼굴에 칠흑 같은 머리카락은 구름처럼 말아 올려 가느다란 목이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어여쁜 눈썹 아래 가늘고 긴 눈매는 짙은 속눈썹에 그늘져 있다. 코는 초승달이요. 입술은 작고 도톰하여 붉은 앵두 같았으며, 두 볼은 복숭아처럼 고왔다.
버들가지처럼 가녀린 몸을 감싼 순백색 저고리는 가슴 아래를 금실로 고정하여 소매가 바닥에 닿았다. 은하수를 끊어다 두른 듯 치맛자락은 물결처럼 살랑였다.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아름다움.
여인은 마치 자신만의 길을 걷는 듯했다. 그 누구의 시선도 받지 않았으며 북적이는 사람들의 옷깃조차 스치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왜 사람들은 그녀를 보지 못하는 것일까.
‘저게 뭐지?’
여인의 긴 치맛자락 아래 하얀 구름이 다리를 놓듯 따라 움직였다. 앞으로는 짙어지고 뒤로는 옅어지며, 걸음걸음 그림자를 드리운 듯 길고 하얗게 늘어졌다.
“하•얀• 그•림•자•.”
여울은 귀신에 홀린 듯 아름다운 여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나긋나긋 미끄러지듯 걷는 여인은 한걸음에 서른 보씩 멀어지니 여울은 죽을힘을 다해 뛰어야 했다.
“큰사람을 만나 묶여 있던 운명이 풀려난다.”
점점 멀어지던 하얀 그림자가 갑작스레 사라져 버렸다. 정신없이 달리던 여울은 두 개의 목조 건물 사이로 난 골목길 앞에 멈춰 섰다.
새까만 어둠이 들어찬 길 끝으로 작은 불빛만이 반짝일 뿐, 여인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이상하다. 분명 이리로 들어섰는데.’
뒤로 물러나 주변을 살피는 여울의 눈에 좌우로 낯익은 건물이 들어왔다. 희미하게 묵향이 느껴졌다.
글은 모르는 여울이지만 그녀의 오감은 한번 본 것과 들은 것, 만진 것, 맛본 것은 물론 냄새까지 절대 잊지 않았다. 날이 어두워 문은 닫았지만 붓을 만드는 필방과 먹을 만드는 먹방이 분명했다.
“필방과 먹방은 붙어 있었는데. 언제 떨어져 나갔지?”
고양이 한 마리 지나갈 틈도 없이 붙어 있던 두 건물이 벼락 맞은 나무처럼 갈라진 것도 기이한데 이렇게 넓은 골목길이라니.
‘거참 이상하네. 어제까지만 해도 분명 없던 길인데.’
영주 땅을 제집처럼 들쑤시고 다니던 여울은 거지 생활 팔 년에 처음 보는 길이 당황스럽다.
멍하니 서 있자니 갑작스레 강한 바람이 여울의 등짝을 후려쳤다.
휘청대던 여울이 순식간에 꼬꾸라졌다.
“이봐, 영노. 나 무언가에 부딪힌 것 같은데?”
“쉭, 쉭쉭. 뭐가 있나? 진짜 맛난 냄새가 나긴 나는데.”
청색 도포에, 머리에 관을 쓴 요괴의 등 뒤로 여울을 후려쳤던 날개가 퍼덕인다. 날개 달린 요괴 옆으로 시커먼 뱀이 쉭쉭 혀를 날름거리며 머리를 세웠다.
‘요, 요괴다!’
요괴나 악귀들을 보았어도 이리 가까이 근접한 적이 없는지라 여울은 돌처럼 굳어 버렸다. 그런 여울을 내려다보던 뱀이 놀란 듯 자색의 홍채를 응축한다.
“이보게, 서조. 저건 인간 아이 아닌가? 쉭, 쉭쉭.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 거지?”
“그러게 말이야. 쪼그매서 내가 미처 못 보고 부딪혔나 보이. 그런데 왜 움직이지 않지? 죽었나?”
사람의 얼굴을 한 인두조수 서조와 용과 비슷한 비늘을 가졌지만 뿔이 짧고 손발이 없는 이무기 영노.
“쉭, 쉬익. 인간 아이라면 자네의 요기에 닿아 곧 시커멓게 썩어 들어가지 않겠나? 어라? 살았네?”
“요상해. 아주 요상해. 분명 나와 부딪쳤는데 멀쩡하네?”
“서조. 이 아이, 우리를 보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이보게, 영노. 우리를 보았다면 이리 멀쩡하게 서 있겠나.”
시큰둥한 서조의 대꾸에도 의심 많은 영노는 세로로 찢어진 홍채를 번뜩이며 여울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이야, 무얼 보고 있는 거지?”
코끝으로 영노의 차가운 콧등이 섬뜩하게 닿았다. 징그러운 생김새보다는 바람이 새듯 쉭쉭하는 숨소리가 뼈마디를 오그라들게 했다.
“뭐, 뭐지. 망할.”
비린내가 진동을 했지만, 여울은 애써 숨을 참으며 손으로 바닥을 더듬거렸다.
“뭐에 부딪힌 거지? 보이질 않으니 알 수가 있나.”
두근거리는 심장을 들킬세라 여울은 허공으로 손을 뻗으며 허우적거렸다. 몸이 불편하면 동냥질이 수월하니 장님 흉내라면 광대 못지않은 여울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아이인가 본데?”
“그런가? 쉭쉭. 눈알은 멀쩡해 보이는걸! 고것 참 맛나겠다.”
이미 뜬 눈은 감을 수 없으니 여울은 먼 허공을 바라보며 최대한 초점을 흐렸다.
“하나, 쉭. 둘, 쉭쉭. 두 개밖에 없네. 반짝반짝 예쁜 눈알이구나. 왼쪽 눈알은 빼서 입에 넣고 오도독오도독. 오른쪽 눈알은 줄에 달아 목걸이를 만들까?”
시뻘겋게 갈라져 날름거리는 혀가 여울의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온몸에 소름이 돋아 털들이 곤두선다.
‘눈을 감으면 안 돼. 들켜 버릴 거야.’
또르르. 여울의 미간을 타고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예쁜 눈알은 아니 보인다 하고, 심장은 분명하게 보인다고 팔딱팔딱. 어쩐다?”
영노의 긴 혀가 여울의 땀방울을 따라 턱에서 볼을 핥아 올렸다.
“쉭쉬익. 담이 큰 아이로구나. 나를 속이려 하다니.”
“이보게, 영노. 그만하고 가지. 처음으로 요선각의 초대를 받았는데 늦으면 쓰나?”
서조의 재촉에 영노가 귀밑까지 입을 찢으며 웃는다.
“세상을 속이려면 먼저 네 자신부터 속여야 할 게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네 안에 숨어 있는 또 다른 너일 테니. 크크크.”
“영노, 정말 아이가 우리를 보는가?”
여울을 빤히 쳐다보던 영노가 스르륵 몸을 세웠다.
“크크크, 두고 보면 알겠지.”
“거참, 대답이 참으로 뜬금없으이. 그만하고 가지.”
휘적휘적 걸어가 버린 서조의 뒤로 영노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여울을 돌아보았다.
“다음에 만나면 반드시 널 삼켜 버릴 거야.”
두 요괴가 사라진 어두운 골목길, 영노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하아, 하아. 아아아, 빌어먹을.”
참았던 숨을 내어 쉰 여울은 바닥에 대자로 누워 가슴을 들썩였다. 신경을 태우는 긴장감에 온몸의 기운이 빠져나간 것 같다.
“다음에 만나면 반드시 널 삼켜 버릴 거야.”
한참이나 그 자리에 누워 숨을 고른 여울이 벌떡 일어나 영노의 혀가 훑고 지나간 얼굴을 문질렀다. 비린내가 진동을 한다.
“빌어먹을 요괴들!”
요괴들이 사라진 골목은 저승길만큼이나 음산했고 그 끝으로 반짝이는 불빛은 아득하기만 하다.
‘요선각…. 요괴들이 드나드는 기루인가?’
요괴들은 분명 저 골목길로 들어갔고, 불빛은 단 하나뿐이다.
돌아가야 하는 것일까.
왈칵 밀려드는 두려움에 여울은 망설여졌다.
“에잇! 망할! 빌어먹을! 염병!”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마음에 여울의 입에서 개수가 자주 쓰는 욕설이 거나하게 튀어나왔다.
어쩌지? 들어가면 다시 요괴들과 마주칠 것 아닌가!
“망할 노파 같으니라고. 내 운명이 요괴들과 같은 길에 있다는 거야! 제기랄!”
머리를 벅벅 긁어 대던 여울은 씩씩거리며 돌아섰다.
그래! 개천으로 돌아가서 달밤에 푸닥거리 한번 하고 말자.
‘괜스레 명줄 줄일 필요 없지. 망할 뱀 새끼한테 당한 것만으로도 명줄이 십 년은 줄었을 거야.’
잘한 결정이라 마음을 다잡으며 여울은 어두운 길을 씩씩하게 걸었다.
“인간은 모름지기 가늘고 길게 살아야 해. 돈이 아무리 많으면 뭐해. 저승길 순서는 바꿀 수 없는데!”
개천을 향해 걷는 여울의 걸음이 이런저런 생각들로 자꾸만 더디어진다.
“하얀 그림자를 따라가면 큰사람을 만나 묶여 있던 운명이 풀려난다.”
그림자를 따라가지 않으면 큰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그럼 운명은 계속 묶여 있을 거고.
뭐야! 개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평생 빌어먹어야 한단 소린가?
한숨을 들이쉬고 내어 쉬는 사이 여울은 어느새 저승길 같은 골목으로 돌아와 있었다.
“다음에 만나면 반드시 널 삼켜 버릴 거야.”
뇌리에 맴도는 영노의 음산한 목소리를 털어 내듯 고개를 휙휙 저었다.
“끝까지 가 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어.”
내일이 되면 오늘 가지 않은 이 길을 후회할지 몰라. 그렇다면….
“운명아! 개천의 여울이가 간다!”
두 눈을 질끈 감은 여울은 어둠 속을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