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천둥소리
“정녕 따라나서지 않을 참이야?”
닫힌 문 앞에서 가진이 물었다. 기다렸으나, 방 안에서 나오는 대답은 없었다.
“좋아. 여기서 더 굴욕스런 꼴을 당하는 것이 그리 원이면 말리지 않겠어. 내 돌아가면 보고 들은 그대로 아버님께 고할 것이야. 어떤 일이 닥칠지 곱씹으며 기다리도록 해.”
냉기가 펄펄 날리는 말을 내뱉고 가진이 휙 소리가 나게 돌아섰다. 방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문 앞에서 무릎 꿇고 있던 정을 향해 턱짓을 하여 보이고는 그대로 쿵쿵 소리가 나게 발을 놀리며 복도를 걸어 나갔다.
정은 아무도 없이 홀로 방에 있는 가선을 근심하듯 힐끗 돌아본 뒤 가진의 뒤를 따라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여전한 빗속에서 직접 우산을 들고 가진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포나루에서 짐을 풀고, 딱 닷새를 기다리겠다. 데리고 오너라.”
묵묵히 듣기만 할 뿐, 정도 그 주인처럼 입이 붙었다.
“차마 내 손으로 끌고 갈 수는 없는 일이지. 데리고 와. 그러면 내 모든 것을 묻겠다 하고.”
가선의 방 앞에서 말하던 위압적인 기세는 이미 없다. 가진은 한숨을 내쉬고 한참 서 있다가 못내 마음에 걸리는 얼굴로 가선이 있을 곳을 쳐다본 뒤 아무런 말도 없는 정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돌아섰다.
정은 비로소 눈을 들어 그녀를 기다리는 시종들에게 걸어가는 가진의 뒷모습을 보았다. 덮기로 하였구나. 그러지 않을까 막연히 짐작은 했지만.
그러나 자매의 사이가 원래처럼 돌아가기는 힘들 것이다. 겉으로라도 예전처럼 돌아간다면 그만큼 가진의 아량이 크다는 뜻이 될 터이다.
가선이 부릴 시종과 시녀 약간을 남기고 가진의 일행은 이날 운몽산의 저택을 떠났다. 오월 보름을 하루 앞둔 때였다.
지난밤 화산 노파의 객청에 들러 작별인사를 할 때 혼담도 아주 사그라졌다. 가진의 일은 물론 가선의 일도.
“좋은 인연이 될 수도 있을 듯하였으나, 여기에 저나 제 동생과 맺어질 인연의 분은 계시지 않습니다.”
딱 잘라 그렇게 매듭짓는 가진을 보며 화산 노파는 이 처자가 이런 구석도 있었던가 하였다.
“그렇다고 이리 뒤숭숭한 때에 떠나보내서야…….”
일단 붙잡는 말을 꺼내 보았으나 가진은 공손한 미소와 함께 단호히 사양하였다.
“지내는 동안 조금도 서운한 일은 없었습니다. 다만 서로 합이 되는 인연이 아니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평온했던 댁에 예사롭지 않은 일들이 짧은 기간 연이어졌으니 저희가 들어오면서 액을 몰고 온 것이 아닐는지요.”
“아니, 아니……그 무슨 해괴한 말씀을 하시는 겐가.”
“과연 어떠할는지는 저희가 가고 나면 알게 되겠지요. 아무쪼록 이 댁 분들이 다시 화평히 살게 되신다면 저희가 설사 액신(厄神)이었단 소리를 들어도 조금도 꺼리지 않겠나이다.”
가진의 미소 속에는 몹시 송구스러워하는 기색이 깔려 있었다. 경박하되, 어리석지는 않은 여자였다. 지난 며칠 홀로 생각을 더듬으면서 화조절 이후 침아가 겪은 곤경과 제 동생이 아주 무관하지는 않겠구나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음이다. 눈을 뜨되 보지를 못했으니 언니로서 그 책임을 통감하였다. 차마 더 깊이 캘 수 없어 이제까지의 일은 묻고 가려 하나 마음이 개운할 리 없다.
화산 노파는 가진이 꺼내지 못하는 저간의 깊은 사정을 어슴푸레 짐작하였다. 그렇기에 서로 공허하게 붙잡고 사양하는 말들을 연거푸 반복하면서 마침내 못 이긴 척 떠나보내는 데에 동의하였다.
정오가 좀 지나서 시녀들이 파현의 손님들이 떠나신다는 소리를 하자 배웅을 위해 나섰다. 료는 여전히 칩거 중이고, 휘도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어 저택에서 배웅하는 이는 화산 노파뿐이다.
착잡한 전송이었다. 꽃피는 봄에 화사한 풍악 소리와 함께 붉은 문을 들어서던 그 행렬이 이제 빗속에서 도망치듯 빠져나가고 있다.
하물며 거기에 가선의 모습은 없다. 길어도 닷새 내로는 그 아이도 떠날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가진은 떠나갔다. 정작 가야 할 이가 아직 남아 있는 상황에 화산 노파는 입맛이 썼다.
떠난 이들과 조금 차이를 두고 청작이 저택에 돌아왔다. 그가 저택을 비운 스무날 사이에 침아는 죽고 난씨 자매는 한쪽이 이미 떠나버렸으니 늙은 매가 어안이 벙벙해한 것도 이상치 않다.
“아직 둘째 아씨께서 남아계신 뜻은 혹시…….”
“아무 뜻도 없네. 닷새 내로 떠날 거야, 그 소저도. 있는 동안엔 전처럼 공손히 모시도록 아랫것들을 단속할 일이야.”
화산 노파가 단정 지어 말하자 청작도 고개를 주억거리고 더는 그 일을 거론치 않았다. 청작은 회색으로 센 머리를 떨구고는 착잡해했다.
“아깝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 작은도련님께서 그토록 아끼셨건만.”
“아깝지. 그리 허술히 갈 운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화산 노파는 창 너머 비 내리는 하늘을 쳐다보며 제 말을 생각했다. 그리고 료가 한 말을 생각했다. 반딧불이가 되어 밤마다 침아가 찾아온다 하였는데…….
툭툭, 손톱집으로 탁자를 두드리며 화산 노파는 새삼 되새겨 보았다. 야시에서 만난 그 승냥이, 혈통이 좋다고 거만하게 말했었다. 멸망한 왕조의 후손쯤 되나 하며 가까이 오게 한 아이에게선 예사롭지 않은 꽃과 같은 향기가 났다. 어리지만 그 골격이며 바탕이 얼굴 왼쪽의 흉터만 없다면 절색이 될 만한 미모였다. 인간의 어린것답지 않게 때로 달관한 듯한 눈빛을 짓는 묘한 버릇이 있었다. 료는 그 아이가 꽃을 먹는 버릇이 있다고 하였다…….
곧잘 데리고 다니는 휘파람새 시동이 계속되는 비가 지겨웠던지 바깥 나무에 앉아 지저귀는 소리가 흘러들어왔다. 손톱집을 움직이던 손가락이 공중에서 딱 멎었다.
‘날 수 있는 건 날다가 죽는 게 좋아.’
그렇구나. 휘 말고 누가 그런 소릴 하였던고 했더니, 이 집에 데려오던 첫날, 침아 그 아이가 바깥에서 휘파람새에게 그런 소리를 하는 걸 수레 안에 있던 화산 노파가 들었다. 새도 아닌 것이 용케도 그런 걸 아는구나 하면서 웃고 넘어갔었다.
그래, 새도 아닌 것이……. 틀림없는 인간…….
“왜 그러십니까, 어르신?”
화산 노파가 벌떡 일어나는 서슬에 곁에 있던 청작이 긴장하여 물어왔다.
“우송을 잠시, 아니야, 내가 그리로……. 아니야, 설마.”
갑자기 허둥지둥하며 말의 갈피를 잃었던 화산 노파가 다시금 의자에 기대어 앉았다.
“설마…….”
말은 그렇게 내뱉지만 눈동자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마침내 그녀가 다시 일어섰다.
“내 마땅히 료의 옆에 있어줘야 할 일이지만, 다행히 자네가 왔으니 이쪽 일은 맡기겠네. 내 잠시 나갔다 와야겠어. 하루 안에 왔으면 싶네만.”
“어디 멀리에 출타라도 하십니까?”
“음. 뭣 좀 확인하고 올까 하네.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하지만 아예 확인을 안 하자니 영 찝찝할 성싶어.”
그러고서 청작을 쳐다본 화산 노파가 거듭 강조했다.
“료를 잘 돌보게. 낙심천만하여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상심해 있다네. 한시도 눈을 떼선 안 돼.”
“절대로 눈을 떼지 않겠습니다.”
굳게 다짐하는 청작이 미덥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막상 하루라도 저택을 비울 생각을 하니 마음이 불안했다.
“료에게 가지.”
청작과 함께 객청을 나서는 그녀를 보고 휘파람새가 쫑쫑거리며 나무 아래로 뛰어내렸다. 별다른 영기는 없는 새지만 먹이를 주는 이를 알아보는 것이다. 우산 아래로 손을 내밀자 날아와 팔목에 앉았다. 그새 젖은 깃털을 만져주면서 조금 서둘러서 동쪽 채로 향했다.
빗줄기가 조금씩 수그러들고 있다는 것을 가면서 깨달았다. 자신도 모르게 이미 비가 오는 것에 료의 마음을 겹쳐보던 화산 노파로서는 반가운 조짐이었다.
“기운을 좀 차린 것이면 좋으련만.”
그리하여 동쪽 채의 중문으로 거의 다 갔을 즈음, 우송 말고도 따로 지킴이로 붙여둔 시종 셋 중에 하나가 급하게 달려오는 게 보였다. 어딜 그리 급하게 가느냐 물었더니 시종이 실로 반가운 소리를 했다.
“작은도련님께서 식사를 청하셨습니다. 그래서 큰 주방으로 가는 중입지요.”
“그래?”
“우송이가 도련님을 따라서 굶고 있는 것이 통한 것 같습니다.”
“그 커다란 놈이 기운이 없이 축 처져 있으니 보기 딱했던 모양이지. 다행이구나. 그래, 어서 가보렴, 어서.”
시종이 달려가는 모습을 흐뭇하게 보는 화산 노파에게 청작이 물었다.
“작은도련님께서 식음마저 끊고 계셨던 겁니까?”
“말도 말게나. 내 그런 일을 다시 겪을 바엔 차라리 부처에게 몸을 의탁하고 말겠네.”
이윽고 동쪽 채로 갔더니 시종 둘이 방 소제를 하고 있다가 그들을 보고는 료가 목욕 중이라고 말해 왔다. 목욕을 하는 것도 그렇고, 방 소제를 시켰다는 것도 장족의 발전이었다. 이쪽 분위기가 한결 좋아졌다는 것은 느슨해진 시종들 표정만 봐도 알 일이었다.
하지만 너무 갑작스러워 다소 걱정도 되었다. 내색은 하지 않고 마루에 나가 앉아 비가 오는 것을 보면서 기다리고 있었더니 이윽고 사내 하인들 몇이 음식을 날라 왔다. 안쪽은 소제 중이니 마루에 상을 차렸는데, 그러고 얼마 안 되어 료와 우송이 돌아왔다.
“할머니, 오늘은 쉬셔도 된다니까요. 아, 청작도 왔구나.”
문득 청작이 어떤 용무로 집을 비웠는지 떠올린 화산 노파는 료의 반응을 걱정하여 유심히 살폈다.
의외로 료는 덤덤하게 마루에 올랐다. 깨끗하게 씻은 몸에 하얀 깃옷을 걸치고 머리의 다친 부분을 정갈하게 동여맨 모습이 처연하리만치 고왔다.
“우송아, 나 때문에 굶어 죽겠다고 하지 말고 어서 올라와 수저나 들어.”
우송을 불러올린 료가 화산 노파를 보며 엷게 웃었다.
“저 녀석 배에서 자꾸 천둥소리가 나는 통에 제가 편히 쉴 수가 없습니다.”
“내려고 내는 것이 아니라 제 위가 위이다 보니…….”
“알고 있다. 위가 네 개지, 너는. 나는 다른 건 몰라도 소로는 태어나지 말아야지 한다.”
“아이구, 저는 뭐 좋아서 이리 태어났겠습니까?”
주종의 가벼운 티격거림에 화산 노파가 즐거운 낯을 지었다. 곁에 자리 한 시종들이 짐짓 웃전들의 기분을 맞출 생각이었는지 실없는 웃음을 지어 보조를 맞추었다. 하지만 그 부질없는 노력에 료도, 우송도, 그리고 화산 노파도 누군가 한 명이 없구나 하는 걸 느낀다.
이런 이야기에 재기 발랄하게 나서며 종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능력은 침아의 것이었다. 침아가 엉뚱한 소리를 하고 료가 면박을 주고 우송이 한 자리씩 끼어들며 추임새를 넣고. 그러면서 끝 모르고 새롱거림이 이어지기 마련이었으나 이제 그럴 일은 없다. 한 사람이 사라지매 온 나라가 기운 것 같다는 인간의 말이 있더니 당장 이 자리에서 침아가 그런 존재라 화산 노파도, 우송도 무거운 표정이 되었다.
그래도 료는 역시 담담하다. 조용히 젓가락을 놀리며 음식을 착실히 입에 넣고 있다. 그런 주인을 힐끔거리며 우송도 부지런히 배를 채웠다. 먹는 동안에도 료 말처럼 이따금 뱃속의 우레를 울리면서.
“……비는 밤중이면 더 약해질 것입니다. 내일 중으로 그칠 수도 있는데 그때 가시지요?”
잠시 다녀올 곳이 있다고 화산 노파가 말을 꺼냈더니 료가 하늘을 내다보며 그리 말했다. 화산 노파는 료와 시선의 방향을 같이 했다. 화산 노파가 기백 년을 살았지만 이 비만큼은 그칠 때가 가늠이 가지 않았다. 하늘이 내리는 자연스러운 비가 아닌 탓이다.
“음. 이만하면 되었다. 마음이 급해 마치 몸에 벼룩이라도 뛰노는 것 같아서 말이다.”
“정말로 화급한 용무이신 모양이니 잡을 수 없지요. 저 때문에 공연히 지체하고 계셨나 봅니다.”
“아니야, 아니야. 오늘 갑자기 생긴 용무다.”
“배웅하겠습니다.”
“아주 가는 것도 아니고 빠르면 내일 올 것인데 배웅은 무슨.”
만류하는 말에 료는 아무 말 없이 마저 식사를 하였다.
유시(酉時:오후 5시에서 7시) 무렵 화산 노파가 객청 바깥에서 대기 중인 수레에 오르려고 보니 옆에 와 수레에 오르게 거들어 주는 이가 료였다. 빗줄기는 료가 식사를 하던 즈음에 비해 현격히 약해져 있었다.
“올 것 없다 했더니 그런다.”
화산 노파의 말에 료는 가만히 웃기만 했다. 그 힘없는 미소가 유난히 가슴에 아려 화산 노파는 료의 뺨을 건드렸다.
“며칠 새, 야위었구나.”
“저는 괜찮습니다.”
해보는 말임을 모르지 않는다. 화산 노파는 료의 너머에 있는 우송과 청작을 한 번씩 보며 무언의 명령을 던졌다. 료를 잘 보살펴야 한다. 두 사내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료는 무언중에 오간 대화를 들은 것처럼 부드럽게 말했다.
“할머니, 정말입니다. 저는 이제 괜찮습니다.”
“어젯밤에도 꿈에 단조를 보았느냐?”
“보았습니다.”
“무슨 소리를 하던?”
화산 노파의 질문에 료는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머리를 살며시 저으며 그가 목소리를 낮추어 중얼거렸다.
“단조가 무슨 소리를 했겠습니까. 제가 정신이 없을 때 한 헛소리라면 부디 잊어주십시오.”
화산 노파는 의아한 눈으로 료의 눈을 들여다보았으나 그의 눈빛은 맑았다. 거짓을 고하는 거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설혹 거짓이라 하더라도 이리 능숙하게 덮을 정도로 평정심이 돌아왔다면 그건 그것대로 잘 된 일이다.
“그래. 잊으마. 자, 돌아올 때까지 끼니 거르지 말고 잠도 푹 자두도록 해라. 다시 볼 땐 살이 좀 포동포동하였으면 좋겠다.”
“무슨 재주로요. 제 위는 하나뿐입니다.”
그렇게 우스갯말을 하면서 료는 화산 노파를 보냈다. 조용히 산길을 내려가는 화산 노파의 수레를 오래 지켜보았다.
빗속이라 냉한 바람이 분다면서 어서 들어가셔야 한다는 청작의 말을 귀로 흘리면서 료는 우송에게 말했다.
“봐서 오늘 밤 산책을 하자.”
“밤 산책이요? 아직도 비가…….”
사냥을 하자는 뜻인 줄 알아듣고 우송은 어리둥절하여 우선 비 핑계를 대었다. 료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칠 게다. 축시(丑時:오전 1시에서 3시)에는 나가자꾸나. 며칠 큰비가 왔으니 당장 배 채울 것을 찾아 산짐승들이 몰려나올 게 아니냐.”
“그렇지만 길도 미끄러울 테고 주인님도 당장엔 기력이…….”
“나가기 전에 배를 한 번 더 채우면 되지. 그리고 길이 무슨 핑계냐? 이 정도 빗속에서 사냥을 한 적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혹 네가 곤하여 꾀를 부리는 게냐? 그럼 다른 자들을 데리고 가고.”
“아이구, 아닙니다. 당연히 제가 모셔야지요.”
팔을 내저으며 대꾸는 하였으나 우송은 암만해도 석연치 않다. 청작을 돌아보며 큰 눈을 껌벅거리니 청작이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슬며시 끄덕이고 입을 열었다.
“사냥도 오랜만이실 텐데, 저택 안에 무료하게 있던 자들도 데리고 나가심이 어떠십니까? 도련님 말대로 오늘 같은 밤이 사냥하기엔 호기일 텐데요.”
“그러든지.”
싫다고 하면 설득할 말까지 이미 생각 중인데 료에게서 너무 쉽게 대답이 나왔다. 이제는 청작도 작은 눈을 끔벅거리며 우송을 볼 차례였다.
태연히 앞서 걸어가는 료의 머릿속에 같은 말이 끝없이 되풀이되었다.
‘이젠 오지 않습니다.’
지난밤, 침아가 그리 말했다. 믿지 않는다. 오늘 밤도 잠들면 와줄 것이라 료는 믿는다.
그러나 그 곤한 목소리를 어이할까. 하루가 다르게 더 곤하여지는 그 목소리를 어찌할까. 그것은 실로 그 아이의 목소리일까, 아니면 자신의 목소리일까.
……이젠 오지 않습니다.
“그리해라, 침아야. 더는 오지 마라. 이제 곧 내가…….”
그의 입 안에서 소리 없이 맴도는 그 중얼거림을 그 누구도 듣지 못했다.
나갔을 때 그리했듯이, 휘는 기척도 없이 돌아와 제 침소에 틀어박혔다. 잠이 든 척 누워있는 그를 방 안에 무언가 가져다두려고 온 시녀가 발견하고 소리 없이 나갔다.
팔로 눈을 가린 채 휘는 풀리지 않는 난제에 거듭 골몰했다.
‘완아. 그녀를 만난 것은 이미 수십 년 전이다. 십 년, 이십 년 전이 아니라 거의 사십여 년이 흘렀다. 그 아이, 내 소생일 리 없다. 그럴 리 없다. 만에 하나, 완아가 그 당시 포태하여 있었다 해도 나이가 전혀 맞지 않는다. 그 아이, 이제 갓 열여섯……. 처음 들어왔을 때는 분명히 어린 계집애였고……. 하지만 연화란 이름은…….’
그럴싸한 대답은 있다. 완아가 다른 인간의 계집들처럼 인간 사내를 만나 새끼를 낳고 살았다 하면. 그러면 그 아이, 손녀쯤 될 수도 있다. 완아가 살아 있다 하면 이제 육십이나 되었을 것이다. 죽어가는 할미의 뜻으로 그 아이가 그를 만나러 온 것이라 하면…….
그러나 어찌 화산 할머니의 손에 의해 여기까지 오게 되었단 말인가. 혹, 화산 할머니가 거짓말을 하였을까. 이미 어떤 인연의 아이인지 알면서 데려온 것은 아닐지.
혼자 굴리는 생각은 같은 자리에서 맴을 돌 뿐이다. 전전반측하며 하릴없이 머리만 고생시키다가 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화산 노파부터 보기로 했다. 하지만 남쪽 채에 갔더니 화산 노파는 급한 용무가 있어 잠시 출타했다는 이야길 들었다. 시녀들은 가진이 일행을 데리고 떠난 일도 떠들어댔으나 휘는 건성으로 들었다. 궁금한 것은 화산 노파의 급한 용무였다. 료가 아직 불안한 것을 알면서 두고 떠날 일이 무얼까? 역시 침아와 관련된 일일까?
“료는 어쩌고 있는지 아느냐?”
“어르신이 출타하실 때 오셔서 전송하셨습니다. 곧잘 말씀하시고 웃기도 하더이다.”
“그래?”
향나무 뜰에서 보인 추태를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라 휘는 눈썹을 추켜세웠다. 곧 죽을 것처럼 괴로워하던 것도 결국 그리 정리될 것을, 참 싱거운 놈이라 여겼다.
“난씨네 둘째 아씨가 아직 남서쪽 채에 머물고 계십니다. 두 자매간에 싸움이라도 하였는지 떠나시는 첫째 아씨 모습이 보통 때와 심히 달랐다 들었습니다. 무엇을 기대하시고 둘째 아씨는 잔류하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흐음.”
묻지 않은 것까지 지저귀는 새들 때문에 휘는 귀찮은 것까지 알게 되었다. 끌고라도 데려갈 것이지, 동생을 내버려두고 가다니 언니란 자도 별수 없다고 속으로 혀를 찼지만 자신이라도 그런 성가신 일에선 손을 떼겠다 싶으니 불평까지는 나오지 않았다.
또 지금은 정신을 사로잡은 다른 생각이 있어 가선의 일에선 금세 마음이 떠났다. 화산 노파가 앉아 탁자를 두드리던 바로 그 자리에서 이마를 짚고 생각하던 휘는 시녀들이 바깥을 내다보며 비가 거의 그친 것 같다고 떠들어대는 소리를 듣다가 마음을 결정했다.
수이산으로 가보면 될 일이다.
그것이 무에 어려운 일인가?
가선의 침소에 휘를 모시는 시녀 중 하나가 달려온 것은, 아직 휘가 저택을 떠나기 전의 일이다. 내내 꼼짝도 하지 않던 가선이 시녀를 들이라고 입을 열었고 들어간 시녀는 가선에게 얼마간 속닥거렸다. 정이 바짝 귀를 기울였으나 알아들은 것은 휘의 이름이 고작이었다. 방에서 나온 시녀가 가선이 아끼는 노리개 중 하나를 손에 쥔 것을 정은 보았다.
“큰 목욕을 하겠다.”
시녀가 떠나고 가선이 그런 말을 꺼냈을 때 정은 덜컥 의심부터 들었다. 대답을 망설이는 그를 보지 않으며 가선이 차갑게 말했다.
“큰 목욕을 할 거야. 가서 준비를 시켜.”
일단 파현에서 데리고 온 시녀 중 하나를 가선의 방 앞에 대기시키고 정은 아씨의 명령대로 움직였다. 목욕간에 가서 말을 전하고 가선이 좋아하는 향료 등을 빠짐없이 주문한 뒤 서둘러 북쪽 채로 간 그가 기웃거리고 있자니 모처럼 비가 그쳐 뜨락을 쓸고 다니던 낭속과 마주쳤다.
휘가 저택 안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남쪽 채로 내려갔다 하는데 화산 노파가 급히 어딘가를 간 모양이니 헛걸음을 하고 돌아오리라 말한다.
그분을 만나려고 자신을 따돌린 것인가 싶어 다시 가선의 침소로 부지런히 온 정은 시녀가 아직 방 앞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보고 마음을 놓았다. 이윽고 목욕 준비가 됐다고 고하러 온 말을 듣고 가선을 불렀으나 안에서 대답하는 소리가 없었다. 퍼뜩 묘한 생각이 들어 방문을 열었다.
이부자리는 비어 있었다. 그리고 창문이 훤히 열려 있었다.
“아씨…….”
정이 마당으로 달음박질하였다. 시종들이 근처를 찾고, 정이 두루미로 화하여 하늘 높이 올라 저택을 이리저리 내려다보았으나 가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늘도 이미 텅 비어 있었다.
수이산 쪽 하늘은 드문드문 흰 구름이 퍼져 있긴 해도 달이 나와 청아하게 맑았다. 며칠 운몽산에 내린 지긋지긋한 비를 생각하면 그 아름다운 풍경이 가히 휘의 마음을 흔들기 족했다. 하늘 높이 한 바퀴 맴을 돌며 이제 찾아온 곳을 내려다보았다.
산세가 별 볼 일 없고 바위가 많은 작은 산이라 굳이 다시 찾지는 않은 곳이다. 어렴풋한 기억에 의지해 날갯짓하여 간 곳에 거무스름한 맹수의 앞발 같은 바위가 툭 튀어나와 있었다. 곰발바위. 그 이름이 기억났다.
어둑한 산을 아래로 굽어보니 곰발바위 위에 홀로 서 있는 흰 옷 입은 여자가 보였다. 언뜻 옛 기억이 하나 솟아났다.
떠나는 그를 저기까지 나와서 지켜보던 그 아이. 완아. 날아가면서 돌아볼 때마다 그 아이가 손을 흔들고 있는 게 보였더랬다. 그때는 분명 얼마쯤 애틋한 마음도 일었었는데. 그 뒤로 까맣게 잊었다. 솔직히 얼굴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떠올려 보려고 애써봤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다만 누이동생인 섬이를 닮은 귀여운 얼굴이었다는 인상이 남아 있다.
이제 그 완아 대신 곰발바위에 서 있는 것은 침아, 아니 제 말대로라면 연화였다. 짧은 머리를 빗어 넘긴 얼굴이 단연 빼어났다. 오목조목하게 자리한 이목구비가 하나씩 봐도 좋고 모아보면 더 좋으니 실로 조화옹의 걸작이다. 거기 담긴 고운 미소를 실컷 만끽할 수 없는 것이 지금 당장의 아쉬움일 것이다.
“무어냐, 너는?”
곰발바위 끝에 사뿐히 한 발로 내려앉으며 그가 물었다. 굳이 모습을 바꾸지도 않았다. 연화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어긴요, 인간이지요. 그리고 연화라고 합니다. 그리 불러주셔요.”
사뿐히 절을 한 그녀는 살짝 이마를 찡그렸다.
“거기 그러고 서 계시다간 이 바위가 무너지겠습니다.”
그러면서 돌아서서 저를 따라오란 듯이 걸어갔다. 의심스럽게 그 뒷모습을 보던 휘는 그녀가 입고 있는 것이 깃옷임을 알아보았다. 료가 자주 입는 그런 흰 깃옷이다. 맨몸으로 나온 줄 알았는데 언제 저런 것도 챙겨두었는지. 앙큼한 구석이 있는 아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긴 한데 이젠 분명해졌다. 아마 이번에 옛 기억이 돌아왔다는 말도 거짓일 것이다.
“애초에 날 목적으로 저택에 들어오려 획책한 것이지?”
힐끗 돌아본 연화는 아직 휘가 그 자리에 있는 것을 보고 손짓을 했다.
“바위 무너지겠다니까요.”
“지금 그런 게 대수냐?”
“대수입니다. 휘 님 체격이랑 몸집을 좀 보십시오. 이만한 바위가 무너지면 저 아래 산까지 내려갈 동안 산사태가 날 수도 있습니다. 그럼 애꿎은 생물들이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지요. 의도한 바는 아니라 해도 결과만 보면 악한 일입니다.”
태연하게 설교를 늘어놓다니. 그 배짱만큼은 인정하고 볼 일이다. 바로 그런 점이 재미있어 휘가 관심을 주었던 것이다. 어린것의 당돌함을 넘어 짐새인 자신을 내려다보는 듯한 시선으로 대하는 저 어울리지 않는 패기 말이다.
휘는 인간으로 모습을 바꾸어 천천히 연화에게로 다가갔다. 기다리고 서 있던 연화는 다시 휙 등을 돌리고 걸었다. 그녀의 앞쪽을 내다본 휘는 나무에 가려져 있긴 해도 아직 거기 서 있는 움막을 보았다.
“저 집에 아직도 사람이 사는가.”
그의 혼잣말에 앞서 가던 연화가 말했다.
“이제는 살지 않습니다만 언제라도 살 수는 있습니다.”
연화가 먼저 움막에 들어갔다. 등잔에 불을 붙여 걸었는지 곧 밖으로 불빛이 흘러나왔다. 밖에 서서 휘가 주저하고 있는데 문간에 연화가 고개를 내밀었다.
“아니 들어오십니까?”
그 말에 비로소 휘도 안으로 들어섰다. 사뭇 오랜만이었지만 안에 들어 한 바퀴 둘러보는 사이에 새록새록 기억이 났다. 거미줄 하나 없이 깨끗하게 소제 된 집에선 톡 쏘는 듯한 소나무 향이 났다.
“그대로구나.”
“이불도 좀이 슬어 내어다 버리고 지붕의 너와도 다시 올렸습니다. 나무가 썩어서 못 쓰게 된 부분도 수선을 하였지요. 집 자체는 잘 지었는데 역시 사는 이가 없다 보니…….”
그리 말하면서 연화는 아궁이에 올린 주전자의 물을 잔에 따랐다. 쪼르륵 소리와 함께 물 두 잔이 둥근 나무탁자에 놓였다. 나무등걸로 만든 의자에 앉으면서 연화가 다른 자리를 권했다.
“차를 좀 드시지요? 먼 길을 오셨는데.”
휘는 차는 물론 권해준 자리에 앉지도 않았다. 그대로 서서 연화를 보다가 물었다.
“너는 대체 완아를 어찌 아느냐?”
연화가 둥근 눈을 치뜨며 고개를 갸웃했다.
“기억이 나셨습니까? 완아가 누구인지 이제는 아세요?”
“기억하다마다.”
“에이, 제 서찰 보고서 겨우 기억하셨으면서 뭘 그리 잘난 체하십니까? 하기야 그렇게까지 쥐여 줘도 기억을 못하는 것보다야 낫습니다만.”
후루룩 차를 마시면서 연화가 웃었다. 휘는 언짢은 기색을 분명히 했다.
“네가 어찌 완아를 아느냐고 물었다. 그 아이와, 너는 어떤 관계냐?”
“음. 자매입니다.”
“자매?”
어리둥절해졌다. 완아의 나이가 있는데 어찌 이리 어린 동생이……. 아니 그보다, 완아에게 그때 부모가 있었던가?
“사촌이라거나, 뭐 그런 친족이더냐?”
“친족이라면 친족도 되겠습니다만. 구태여 따지고 들자면 저는 완아의 증조할머니의 어머니의 수양딸인데, 완아는 절 언니라고 불렀지요.”
“……뭐?”
이건 대체 무슨 소리인가. 휘의 말문이 막힌 것도 당연지사다. 연화는 차를 한 잔 더 따라 마시면서 휘를 보았다.
“차 좀 드시지 그러십니까? 이 산 샘물 맛이 괜찮은데요. 좀 신맛이 나긴 하는데 그건 그것대로 좋습니다.”
휘는 알 수 없는 미궁에 빠져드는 느낌이 되어 털썩 연화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이마를 짚고서 천천히 반복했다.
“네가 완아의 증조할머니의 어머니의 수양딸에, 완아는 널 언니라고 불렀다고?”
“바로 그러합니다.”
“그리고 네 이름을 지어주었고?”
“예. 그런 건 필요 없다고 했는데 굳이 말입니다.”
“그 이름이 연화라고?”
“예. 성도 있습니다. 누를 황. 그래서 황연화. 노란 제비꽃이란 뜻이지요. 그 아이가 그 꽃을 별나게 좋아했습니다. 이유는 당신 때문이지요. 그것도 기억하십니까?”
몸은 자유로운데 어째선지 칭칭 거미줄에 감기는 듯한 기분이 들어 휘는 거북하게 기침을 했다. 노란 제비꽃이라. 잘 모르겠다. 꽃을 비유로 여자에게 희롱의 말을 던진 것을 어찌 일일이 헤아리고 기억하랴. 다만 이제 와 보니 이 아이와 주고받은 말 속에 줄곧 그런 암시가 있었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딴에는 그가 완아를 기억하길 바라는 노력이었겠으나, 전혀 몰랐다.
다시 기침을 하면서 휘는 아궁이의 불꽃을 바라보았다.
“너처럼 어린것이 그 아이라고 부르니 우습구나. 이제 완아의 나이가 육십에 가까울 텐데. 여기서는 살지 않는 모양이고, 이젠 산 아래에서 사느냐?”
“육십이 훌쩍 넘었겠지요. 살아 있다면.”
이미 죽은 모양이다. 기억 속 완아는 어쨌든 젊디젊은데 벌써 죽어 흙으로 돌아갔나 싶어 얼마쯤 착잡해하며 물었다.
“언제 죽었지?”
“사십 년쯤 전에요.”
후루룩, 연화가 차 마시는 소리가 크게도 울렸다. 아궁이를 때고 있는 나무가 저절로 무너지면서 타닥, 타닥 소리와 함께 훅 연기를 피웠다. 좁은 공간에 매캐한 공기가 일시에 차오른다.
휘가 다시 물었다.
“언제?”
“사십 년쯤 전에요.”
“너는 대체 무슨 소리를……. 지금 날 가지고 노는 것이냐, 네가?”
노기를 드러내며 휘가 언성을 높였다. 연화는 차를 다 비우고는 잔을 내려놓으며 입맛을 다셨다. 새빨간 입술이 아름답게 휘어지며 그 안의 하얀 이와 함께 미소를 그렸다. 연기가 들어갔는지 눈이 따끔거려 휘는 자신의 눈을 비비려 했다. 그런데 손이…….
“저는 시간을 헤아리는 버릇이 없어서 말이지요. 얼추 계산해 보니 사십 년쯤 된 것 같아 드린 말씀입니다. 듣자니 료가 어릴 때 같이 놀아준 적이 있다는 인간의 여자가 완아인 것 같으니 아마 대략은 맞을 겁니다. 그리고 이미 말씀드렸잖습니까. 완아가 절 언니라고 불렀다고. 휘 님, 당신은 정말 멍청한 사내로군요.”
휘는 손을 움직이려고 했으나 이마를 짚은 손이 제 손이 아닌 듯이 무겁기만 했다. 뿐만 아니라 서서히 몸이 아래로 기울고 있었다.
“차를 드시라고 두 번이나 권했는데. 드시지 않으셨으니 제가 마실 밖에요.”
연화가 휘 앞에 놓인 찻잔을 가져갔다. 휘가 바로 그 자리에 머리를 떨구었다. 아득해지는 머릿속으로 연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당신을 가지고 노는 것은 이제부터라지요. 우선, 차부터 마시고.”
생전 겪어본 적 없는 옥죄어오는 숨 막히는 느낌 속에 휘는 눈을 떴다. 지독한 욕지기가 밀려오면서 몇 번이고 헛구역질을 하였으나 내장이 덧없이 뒤틀렸을 뿐 조금도 시원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갑갑한 느낌이 배가 되었다. 기력을 끌어 모으려고 단전에 힘을 주자 순간 탁, 하고 맥이 풀리며 몸이 뻣뻣해졌다. 그러면서 시야가 흔들흔들 좌우로 흔들렸다.
“깨어났군.”
계집의 목소리가 들렸다. 휘는 소리가 들려온 곳을 보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거듭 노력하여 두 눈으로 보게 된 것은 몇 발자국 앞쪽 풀 위에 앉아 무언가 먹고 있는 연화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꽃을 먹고 있었다.
“힘을 썼더니 배가 고파서. 너도 먹고 싶어? 정향이랑 둥글레꽃이 좀 있는데, 줄까? 정향은 말려둔 거라 신선하진 않지만 향은 좋아. 둥글레꽃은 막 따서 그리 고소하진 않아.”
그녀가 일어나 손에 한 줌 올린 푸릇한 꽃을 가져와 휘의 얼굴 쪽으로 내밀었다. 천진한 표정으로 물었다.
“싫어? 싫음 말고.”
무어라 말을 하려고 했는데 목소리가 잘 나오질 않았다. 시야가 겨우 맑아졌다 싶었을 때 머리를 흔들어보려던 휘는 그제야 무언가를 깨달았다.
휘는 나무에 매달려 있었다. 마치, 인간들이 교수형을 당하는 것 같은 꼴로. 그의 목이 아주 죄어지지 않은 이유는 그의 목 뒤로 등에 대어진 부목 역할을 하는 나무토막 때문이었다. 두 팔은 등 뒤로 돌려져 묶여 있다. 다리는 자유로웠다.
“감히……내게 이런 짓을…….”
아마도 움막 안에서 나던 그 강한 소나무 향은 또 다른 종류의 몽혼향이었음에 틀림없다. 연화가 꽃을 먹으면서 웃었다.
“차를 마시라고 했잖아. 좀 더 편하게, 긴 이야기를 할 수도 있었는데.”
연화가 마시던 차가 일종의 해독제를 탄 것이었다는 게 짐작이 갔다. 어처구니없는 꼴을 당했다는 자각은 들었으나 휘는 속으로 웃었다. 이 몸이 짐새라는 것을 우습게보았다, 이 꼬마는. 이제 분명히 깨었으니 이 정도 주박쯤이야…….
그러나 휘의 표정이 달라졌다. 그는 분명히 입 안에서 소리를 내지 않고 술법을 행하였건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심지어 짐새로 돌아가는 일조차 뜻대로 되지 않았다.
“가소롭게 보았지? 세상에 너 혼자 술법을 쓸 줄 안다고 착각했다면, 넌 정말로 멍청한 사내인 거지.”
연화가 고개를 젖혀 웃는 것을 멍하니 보다가 이내 휘는 발버둥을 치며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얻었다.
그는 녹나무에 매달려 있었다. 목과 손목을 두른 밧줄이 평범한 밧줄이 아닌 듯했다. 묶이긴 허술하게 묶여 있는데 도통 손목을 거기서 뺄 수가 없었다. 목이 부러질 듯한 고통을 참으며 겨우겨우 내려다본 땅에 둥글게 붉은 원이 그려져 있었다. 밧줄과 함께 이중으로 그의 기력을 봉인하는 주술이 확실했다.
“어렵게 사들인 널 잡을 덫이다. 위후의 피는 한 방울 한 방울이 얼마나 비싼 줄 알아?”
“누구의 사주를 받은 게냐?”
“사주 같은 거 없어. 사사로운 내 원한이지.”
“내가 네게 무슨 원한 살 짓을 했느냐?”
“엄밀히 말하자면 네가 나한테 한 짓은 없지.”
연화는 꽃을 다 털어먹었다. 빈손을 내려다보던 그녀가 한 손 위에 다른 손을 포개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완아와 인연을 맺었다. 손을 잡고, 이름을 받았던 것이 내 죄라면 죄다. 한때 아주 짧은 기간 그 아이로 인해 웃고 울었던 것이 죄라면 죄다. 그 쓸쓸한 죽음을 보고서 버려두고 떠났던 것이 죄라면 죄다.”
두 손을 떼며 연화는 휘를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내 죄가 일 할이라면 네 죄는 구 할이지. 그래서 널 여기 데려온 것으로 이 인연에서 아주 손을 떼고 싶구나.”
“바라는 것이 무어냐? 완아는 죽었다면서? 그것도 사십 년 전에.”
“음. 바라는 것이라. 너 죽으면 깃털은 죄 뽑아서 위후에게 진 빚을 갚고, 몸뚱이는 태워서 재로 만들어 완아의 무덤에 같이 묻어줄까 하고 있어. 짐새가 죽은 걸 방치하면 그 시신이 썩어 근처 백 리까지 역병이 퍼진다 하더구나. 우선 여기 한 두어 달 매달아 놓을 생각이야. 그쯤이면 아무리 네가 짐새라도 굶어 죽겠지?”
불길하도록 곱게 반짝이는 그녀의 눈은 진심을 말하고 있었다. 휘는 소름이 쭉 끼쳤다.
“네가 그리하도록 내 일족들은 손을 놓고 있을 것 같으냐?”
“내가 그 저택에 머문 것이 사 년이 넘는다. 온다 간다 말도 안 하고 저택을 나가 놀다 오는 것이 네 버릇이란 걸 모르는 자가 없어. 내게 시간이라면 차고 넘쳐.”
위협의 방향이 틀렸다. 휘는 서둘러 다른 방향으로 말을 돌렸다.
“완아가, 그 완아가 날 죽여 달라고 유언이라도 남겼단 말이냐?”
“완아는 지렁이 하나라도 밟아 죽일까 걱정하던 착한 아이야. 어찌 그런 말을. 너는 대체 완아의 그런 점도 모르면서 어딜 좋아한 거냐?”
그녀가 발끈하며 화를 내는 것에 한 가닥 희망을 잡고 휘는 마른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그래, 그럴 리 없으니 하는 말이다. 완아도 부탁하지 않은 일인데, 네가 대체 무엇이기에 이제 와서 이런 흉측한 복수를 하려 한단 말이냐?”
“나는 연화이고, 그 애 언니라니까.”
“말이 되는 소릴 해! 네가 어딜 봐서 그 아이의 언니가 된단 말이냐!”
호통에 가깝게 소리를 치고 그 때문에 목이 심하게 죄어와 휘는 고통스러워했다. 하지만 이내 그의 앞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 때문에 그 고통마저 잊었다.
침아가, 아니 연화가 입고 있던 흰 깃옷이 바람에 나부끼듯 일렁거렸다. 그러면서 서서히 그녀의 몸이 떠올랐다. 어찌하여 옷이 나는가……하고 생각하던 휘의 눈앞에서 또렷이 그 형체를 갖춘 한 쌍의 큰 날개가 펄럭이고 있었다. 옷을 가장한 날개에 감싸여 있던 연화의 새하얀 두 팔이 옆으로 펼쳐졌다. 하얀 배두렁이 아래 속살이 비칠 듯이 얇은 치마가 자르르 물결치는 사이로 그녀의 떠 있는 두 발이 보였다. 맨발이다. 그녀가 휘의 바로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자, 자욱한 꽃향기가 일어났다.
“너는…….”
“내가 무엇인지 알아?”
“……고획조였단 말이냐?”
신음 섞인 휘의 물음에 연화가 빙긋 웃었다.
“왼쪽 얼굴이 그리되었다 해도, 몸에서 풍기는 향기를 어찌할 방법은 없었어. 게다가 내 전 주인 행세를 한 그자, 심술 맞게도 내 혈통이 좋다는 둥 어떻다는 둥 하며 몹쓸 소리를 지껄였지. 그래도 너희는 다들 눈뜬장님이었어. 료야 뭐, 세상 물정 모르는 도련님이니까 그렇다 치고.”
“하지만 완아는…….”
“완아는 인간이었지. 내가 진짜 내 동생으로 만들어주려고 했는데, 기다리질 못했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속이 썩어 문드러져 버렸거든.”
웃음이 가시고 표정이 사라진 연화의 얼굴에는 서서히 귀기가 서렸다.
“어찌하여 오지 않았어? 완아에게 다시 찾아오마 약속했다던데. 계절이 지나기 전에 다시 찾아온다고. 거짓말을 했니?”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런 말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휘는 다른 대답을 억지로 짜냈다.
“기다리는 여자가 없었다. 처음 몇 번, 약속대로 돌아가 본 적도 있지만 이미 다른 사내를 만나 혼인을 하여 잘만 살더라. 나와의 일은 잠깐의 꿈이고, 그들에게는 그들 나름의 생이 따로 있었다는 소리다. 완아가, 그렇게 무턱대고 기다릴 거라고 내 어찌 생각했겠느냐.”
말을 하면서 휘는 스스로도 그 말을 믿었다. 약속이 생각나 돌아간 건 아니고, 우연히 언젠가 정을 준 여자가 살던 곳을 지날 일이 있으면 어찌 되었는지 궁금해 찾아본 적은 있다. 그들은 때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고, 때로는 그 지방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 아이 몇 딸린 중년 여인이 되어 있었다. 결코 그를 기다려 절개를 다 하다 간 여자의 이야기 같은 건 없었다.
연화는 서글프게 고개를 저었다.
“네 정은 고작 한 해밖에 못 사는 풀일 뿐이지. 과연 어떤 자이기에 완아가 그리도 흠모하였나 궁금해 했었는데, 저택에서 보고 들은 네 참모습이 너무 형편없어서 완아가 더욱 가여워졌어.”
그의 뺨에 연화가 손을 댔는데 그 손가락 사이에 딱딱한 무언가가 있었다. 눈동자를 굴려 확인한 그것은 붉은 기가 감도는 뼈바늘이었다. 휘의 등을 타고 쭈뼛 소름이 일었다.
“또 하나의 완아를 만들게 될까 봐, 너를 가까이서 지켜봐야지 했어. 한 명이라도, 단 한 명이라도 널 제 목숨처럼 아끼는 이가 있으면 죽이는 일은 단념하려고. 다행히……네가 죽는다고 해서 진심으로 통곡할 그 누구도 없더구나. 그러니 너는 여기에서 죽는 거다.”
휘의 등 뒤로 날아간 연화가 그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아 어딘가로 고개를 고정시켰다.
“저기, 보이니? 저게 완아의 무덤이야. 태워달라고 했는데 내가 돌무덤을 만들었었어. 이제 네가 죽으면 함께 태워줄까 해.”
그 말대로 돌무덤이 있었다. 휘는 마른침을 삼켰다. 시야가 다시 침침해졌다. 땀이 비 오듯 흘러 눈으로 들어간 것이다. 문득 격심한 요의도 느꼈다. 추하게 일그러졌을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휘는 소리쳤다.
“죽여라, 당장 죽여! 죽을 때까지 기다릴 게 무어냐, 어서 죽여. 나는 짐새다. 네가 고획조인지 뭔지는 몰라도 감히 날 이리 농락할 수는 없다. 내 과연 비명에 갈 정도로 잘못을 저질렀는지, 저 명부(冥府)에 가서 판단하게 하겠다.”
갑자기 당차게 나오는 그를 보며 연화는 피식 웃었다.
“호오. 곧 죽어도 체통은 지키겠다는 뜻, 가상은 하네.”
웃음 뒤에 휘의 눈에 뼈바늘이 겨누어졌다. 당장이라도 눈을 찌를 듯 반짝이는 그 뼈바늘 뒤로 연화가 귀기 서린 눈을 빛냈다.
“부디 그 명부란 곳에 가면, 완아는 무슨 잘못이 그리 커서 귀신이 되어 구천을 떠돌게 내버려두었느냐 물어라.”
“……귀신?”
의아한 휘의 물음을 들으며 연화는 바늘을 거두어 뒤로 훌쩍 물러났다.
“내 멋대로 죽일 수는 없다. 구차해도, 참아라. 기다려야 하니까.”
“여기서 더 무엇을 기다리란 말이냐?”
휘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연화는 날갯짓하여 멀어져가다가 무덤 앞에서 멈추어 땅에 내려섰다. 미리 준비했던 술병을 들어 돌무덤 위에 술을 뿌리면서 그녀가 말했다.
“비를 기다리는 거지.”
빈 병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녀가 곡(哭)을 시작했다.
멀리서 희미하게 우렛소리가 났다.
사냥터에 붉은 난조가 난입을 한 것은 마침 우송이 멧돼지 흔적을 찾아 쫓아가고 있을 때였다. 위에서 날면서 망을 보던 시종들이 커다란 새가 날아드는 것을 보고 경계의 뜻으로 울어댔다. 하늘을 나는 것이 난조임을 확인하고 료는 우송에게 계속 멧돼지를 쫓아가라 손짓했다. 창을 비껴 멘 우송이 큰 몸집에도 참으로 날렵하게 수풀을 헤쳐 달려갔다.
난조는 일행 중에 특히 료를 보고서는 땅으로 곤두박질치듯이 내려왔다. 크게 번득이는 눈이며 벌려진 부리 사이로 그렁그렁 숨을 몰아쉬는 모습이 마치 무언가에게 쫓기다 온 것처럼 화급해 보였다.
“제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소저?”
이미 가선임을 알아보았다.
“……우롱 당했습니다. 배신을, 우리는 배신을 당했습니다. 철저히, 잔인하게…….”
가선의 황당한 하소연에도 료의 무심한 얼굴엔 거의 변화가 없었다. 다만 위에서 시종들이 날고 있으니 료는 그들에게 손짓하여 좀 비켜 있게 했다.
“어떤 곡절인지는 모르나, 제가 아직 남의 일까지 걱정할 여유가 없습니다. 할머님께서 곧 돌아오실 터이니 오시면 아무쪼록 그분과 의논하여…….”
“우리라구요, 우리! 저뿐만 아니라 당신도 배신당했어요! 아니, 당신이 더 비참해야 할 일이지요, 저는 다만 사내에게 놀아나 웃음거리가 되었다 하면 그뿐이지만 당신 꼴을 보세요! 품 안의 계집을 다른 이도 아니고 제 형에게 빼앗기지 않았습니까? 이제 와 보니 알겠어요, 이젠 다 알겠어요. 애초에, 애초에 두 연놈이 작당을 한 것입니다!”
발악을 하는 가선의 절규에 료는 못내 싫증이 났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나 이 여자가 곱게 미친 것 같지는 않다.
“그만하십시오. 알 만하신 분이 곁에 아무도 없이 홀로 다니시는 것부터가. 여봐라, 거기 너희들, 와서 이분을 아래로 모셔다 드려야겠다.”
말고삐를 죄며 가선에게서 몸을 돌리는 료에게 가선이 외쳤다.
“침아 그년이 죽지 않았단 말이야!”
우뚝, 말이 멈춰 섰다. 그의 등 뒤에 대고 가선이 앞뒤 맥락도 없는 소리를 쏟아냈다. 휘와 누대에서 만나 벌였던 정사로부터 시작해서 그가 밤이면 몰래 침소에 찾아와 어떻게 사랑해 주었는가 하는 낯 뜨거운 소리를 비롯해 종래엔 중오절에 있었던 흉사에 대한 계획까지. 온통 뒤섞여 당장에 선후가 헷갈리는 엉망진창인 말 속에서도 몇 가지 뼈대는 분명했다.
“다 거짓이었어! 그 늙은이가 그년을 죽이라 했다는 소리도 틀림없이 헛소리일 거야. 죽은 척해서 그년을 빼돌리려고 연놈이 짜고 벌인 짓이야! 그래놓고선 내 앞에 나타나서 꽃신을 찾아? 멀쩡하게 살아서 딴살림을 차린 주제에, 멀쩡하게 살아서 제 집으로 휘 님을 불러들이는 요망한 것이, 감히 나한테 와서 꽃신을 찾았어! 반딧불이 따위로 사람을 우롱하다니, 그년, 그년, 진즉에 죽였어야 하는데, 불에 타 죽어버렸어야 하는데!”
“……그 집이 어디요?”
끝도 없이 되풀이되는 가선의 넋두리에 가까운 절규 사이로 료가 물었다. 이미 악에 받친 가선에게는 그 물음이 들리질 않았다.
뇌물을 쥐어주어 정보통으로 삼아둔 휘의 시녀가 휘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고 왔을 때 가선은 휘를 어떻게든 만나고자 정을 따돌리고 나왔다가 휘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급하게 뒤를 따랐다. 휘가 침아의 일로 기분이 꺼림칙해 나는 게 평소 같지 않았던 데다가 그 일에 골몰해 있느라 주위를 살필 여유가 없었기에 가선은 놓칠락 말락 하면서도 끝내 수이산까지 미행에 성공했다.
거기서 그녀는 곰발바위에 나와 있는 침아를 보았다. 너무도 멀쩡히 살아있었다! 게다가 휘가 그녀를 만나러 왔고, 그녀는 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다, 그것은 밀회였다!
그제야 가선은 자신이 완전히 농락당했음을 깨달았다. 휘에게, 그것도 모자라 저 침아에게조차.
그들이 움막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가선은 움막에 들이닥치려 하다가 마음을 바꾸었다. 더 좋은 생각이 났다. 료에게 알리리라. 그라면, 그 흉측한 괴물이라면 필경 저 계집을 죽일 것이다. 휘마저 죽여도 상관없다……!
그리하여 돌아왔다. 전에 없을 상심에 철저한 배신의 충격까지 얼크러져 마음이 미쳐 날뛰었다. 이제 그 광기를 쏟아내면서 가선은 저도 저를 말릴 수가 없었다.
문득 뭔가 단단한 것이 호되게 얼굴을 후려치는 서슬에 가선의 몸뚱이가 옆으로 내팽개쳐졌다. 고통보다 어리둥절함에 멍하니 눈을 깜박이는 그녀의 앞으로 아무리 보아도 괴물 같기만 한 검은 새가 다가왔다.
우르르 산 주위로 구름이 몰려오며 우레가 낮게 울었다.
“그 집이 어디냐?”
히잇 하고 괴상한 소리로 가선이 웃었다.
“죽이러 가려고? 그럼 나도 같이 가서…….”
순간 검은 새가 발을 들어 난조의 몸뚱이를 짓밟아 난조가 구슬프게 울었다. 몇 번을 무참히 차이면서 눈이 뒤집혀 꺽꺽대는 난조의 가슴을 검은 새의 발이 인두처럼 눌러왔다. 날카로운 발톱이 깃 사이로 파고들기 직전에서 멈추며 검은 새가 다시 물었다.
“어디서, 보았어?”
“……산, 수이사아안!”
근처 하늘에서 마른번개가 쳤다. 불현듯 산자락이 밝아지면서 검은 새의 눈이 타는 듯이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