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 착오 (8/33)

7. 착오

음력 3월을 목전에 둔 밤공기는 그럭저럭 훈훈했다. 쾌청한 하늘엔 별도 총총했고 가느다란 조각달이긴 해도 달빛 역시 좋았다. 그러나 그믐에 가까워진 달이 떠오른 숲에서는 소쩍새 우는 소리만이 유난했다. 그마저도 퍽 멀리서 울고 있건만 사위가 하 고요해 또렷이 들려오는 것이었다.

밤의 주인인 야행성동물들의 기척은 물론 풀벌레조차 잠잠하기만 한 밤길을 반은 인간 반은 소인, 참 크기도 한 사내가 걸어가고 있다. 필요할 때면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조용히 걷는 법을 아는 사내이다. 그의 뒤로는 한 필의 말이 천천히 따르고 있다.

말에 탄 이는 그럭저럭 따스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두툼한 방한용 검은 갖옷을 걸치고 있다. 희미한 달빛에 드러난 단정한 이목구비를 담은 얼굴이 푸르스름하도록 희다. 이따금 살짝 열려 긴 숨을 내쉬곤 하는 입술에는 이렇다 할 붉은 기운이 없다. 인간의 여자였다고 하면 온통 분단장을 하고서는 입술연지를 깜박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그리고 설령 그런 실수를 저질렀다고 해도 보는 이의 찬탄을 자아내기 충분한, 이론의 여지가 없는 미인이다.

그 미인의 매끈한 아미가 문득 찌푸려졌다. 계속 뜨고는 있었으나 텅 빈 것처럼 보였던 두 눈동자에 날카로운 번득임이 찾아왔다. 휙 고개를 돌리며 그 눈동자가 향한 곳에는 강이 있었다. 은호강이다.

왼편 언덕 아래로 보이는 시야의 끝에서 끝까지 강이 흘러가고 있다. 조운선이 드나들어도 좋을 만큼 깊이도 상당하고 폭도 넓은 강인데도 불구하고 오늘 밤에는 그 흐름이 잔잔하기 그지없어 강물 흘러가는 소리가 먼 곳에서 들려오는 소쩍새 울음소리에 밀릴 지경이다.

어쩌면 강렬한 감정을 담아 강을 쏘아보는 자의 시선에 움츠러든 것처럼도 보인다. 앞서 가던 사내는 뒤에서 들려오는 말발굽 소리가 그치자 무슨 일인가 하고 돌아보았다가 그 싸늘한 눈빛에 저도 모르게 목을 슬쩍 웅크렸다. 본 적은 없지만 이 강의 주인이란 게 있다고 하면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몸을 사리는 게 아닐까, 우송은 생각한 것이다. 강의 주인쯤 된다면 강을 따라 먼 길을 온 이 아름다운 사내의 기분을 거슬렀다가는 이 강에 연고를 둔 뭇 비늘 가진 것들의 생이 위태로울 수 있음을 모를 리 없으니까.

“아직도……못 찾아냈다는 것이 말이나 되느냐.”

앙다문 잇새로 내뱉는 말에서, 뚝뚝 독기가 흘렀다. 우송에게 하는 말이라기보다는 넋두리에 가깝다.

우송은 잠자코 무거운 눈빛을 그의 주인처럼 강물에 던졌다. 거의 검고, 빛이 닿는 부분이 은백색으로 빛나는 강물은 앙큼하도록 얌전을 떨고 있다. 그 안에 인간의 사체를 담고 있을 터인데도.

거기서 다시 우송은 머리를 저어보았다. 아닐 수도 있다. 물 위에서 사라졌다고는 하나 꼭 죽었으리란 법은 없다. 비록 그 녀석이 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라 해도.

“헤엄을 칠 줄 아는 녀석이지 않습니까. 못 찾아내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주인님.”

그 말에 그의 주인이 고개를 돌렸다. 딱딱해졌던 얼굴이 얼마쯤 풀리면서 눈동자가 흔들렸다. 하지만 이내 다른 의미로 표정이 싸해졌다.

“갈 곳도 없는 녀석이지 않느냐.”

축 가라앉은 목소리의 끝이 조금은 떨린 것처럼 우송의 귀에 들렸다.

“아무것도 없는 녀석이라고…….”

심지어 그를 만나기 전엔 이름조차 없었던 아이인데.

다시 강을 내려다보는 료의 눈이 아련하게 흔들렸다.

어쩌자고 그날 그 아이 없이 잠이 들어버렸단 말인지. 벌써 몇 번째 한 건지 알 수 없는 후회를 삼키며 료는 동이 터 오는 하늘을 뒤로 하고 은신처로 향했다.

후회가 지나간 자리엔 어째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의문이 찾아온다. 대체 배 안에서 침아가 완전히 사라져버리는 일이 가능하기는 한가?

열엿새 날 아침, 침아를 찾아 온 배를 다 뒤졌으나 침아의 머리카락 한 올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때, 처음 생각한 것은 화산 노파의 장난이겠거니 한 거였다. 배에 없는 건 확실한데 물에 빠졌다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화산 노파가 자신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하는 말을 료가 믿는 데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화산 노파의 말을 믿게 되었을 때 덜컥 침아에게 생긴 일에 대한 불안이 생겼지만 그 다음으로 그가 떠올린 건 누군가 그녀를 데리고 뭍으로 날아가 버린 게 아닐까 하는 거였다. 그것은 배를 채운 구성원들을 본 료의 머리에 자연스럽게 들 법한 생각이었다. 우송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날개를 지닌 자들이었다. 하지만 그의 그런 생각도 배에서 사라진 자는 한 명도 없다고 하는 가선의 말에 단념했다. 그렇다면 뭍에 데려다 놓고 돌아왔을 가능성은? 그의 의심은 그런 일을 해서 득을 볼 자가 없다는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부정되었다.

생각을 거듭해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마지막으로 침아를 본 게 틀림없는 가선의 시종의 말대로라면, 측간으로 향한 뒤의 침아는 대체 어디로 사라져버렸단 말인가?

속이 좋지 않아 바깥바람을 쐬러 나갔을 수는 있다. 자기 전까지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불쑥 뱃멀미를 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강물에 뛰어들었을 리는 없지 않은가. 그날 밤의 비는 폭풍 같은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약한 것이었다. 바람이 불었다 쳐도 그만한 체구의 누군가를 날려버렸을 리도 만무하다.

하지만 모든 게 짐작일 뿐이다. 정작 무슨 일이 있었는지 료는 알지 못한다.

다만 이제 시일이 열흘 넘게 흘러가면서 최악의 일 쪽으로 그의 생각도 고여 가고 있다.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나 아무도 없을 때 갑판에 나간 그 바보가, 강물에 휩쓸린 것이라고.

그림자길을 택한 것이 나빴을지도 모른다. 배에 타고 있던 다른 자들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던 불길한―사기(邪氣)에 가까운 요사스러운―무언가가 가장 약한 존재인 침아를 꼬드겼을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다. 가선이 그 뒷날 그런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냈을 때 료는 불쾌한 듯이 가선을 노려보고 말았지만 화산 노파는 “어쩌면…….”하면서 말끝을 흐렸더랬다.

비록 만월이었지만 비가 왔다. 안개와 구름이 달을 가리고 말았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에서 물살을 헤치고서 뱃전에 달라붙어 운 없는 손님을 불러낼 무언가를 료는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다. 특히나 물에 휩쓸려 잘못된 인간의 사령(死靈)은 집요함이 그악스럽지 않은가.

료와 함께 지낸 세월이 있으니 그런 것이 보이고 들리게 되었을 수는 있다. 보이고 들리는 것은 상관없으나 홀리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요망한 잡귀가 사람 살리라고 소리치는 식으로 덫을 놓았다면 그 순진한 아이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한시도 곁에서 떼어놓지 말았어야 하는데.

내 불찰이다. 모든 게 내 불찰이다. 어쩌자고 눈을 떼었었단 말인가.

의문에 이어 또다시 후회에게 그의 가슴이 자리를 내어주었다. 답답해진 마음에 가슴을 움켜쥐며 거친 숨을 내쉬면서 료는 고개를 뒤로 젖혔다. 빽빽한 나뭇잎 사이로 희붐히 밝아져오는 하늘이 드문드문 보였다.

‘살아는 있는 것이냐.’

‘죽었으면 그 시신이라도…….’

‘꿈에라도 한 자락…….’

뒤숭숭한 생각으로 머리가 빠개질 듯한 료의 귓가에 문득 가칠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은호강에 빠진 사람의 아이를 찾는다는 분이 맞습니까?”

“웬 놈이냐!”

느닷없는 기척에 우송이 창을 휘두르며 소리가 들려온 쪽을 살폈다. 부웅 하고 바람이 일 정도로 뿜어진 살기에 무언가가 에구구, 하는 소리를 내면서 근처의 나뭇가지에서 떨어졌다. 료가 말고삐를 고쳐 잡으며 돌아본 곳에 작고 시커먼 것이 웅크리고 끙끙대고 있었다. 우송이 대번에 커다란 손으로 그것을 움켜잡아 쳐들었다. 날붙이를 대기 무섭게 그것이 앓는 소리를 냈다.

“아이고, 그놈의 비린내 나는 것 좀 치우십시오. 기껏 반가운 소식일지 모르는 것을 들고 온 자에게 이러는 법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단 말입니까.”

우송의 팔뚝만큼도 되지 않는―하긴, 우송의 팔뚝은 어지간한 황소 뒷다리만 하지만―시커먼 것은 박쥐였다. 꽥꽥거리는 목소리로 우송에 이어 료를 쳐다보면서 박쥐가 하소연했다.

“제발 좀 놓아주십시오. 이런 대접을 받을 줄 알았다면 굳이 예서 몇 경이나 기다리고 있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예 올 줄은 어찌 알고 몇 경을 기다렸다는 소릴 지껄이는 것이냐!”

의심 충만한 우송이 대뜸 윽박지르며 박쥐의 면상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박쥐의 작은 눈이 끔쩍 사라지면서 가칠한 목소리가 더욱 빨라졌다.

“어찌 알긴 어찌 압니까, 보는 눈들이 있었으니 말하는 입도 있는 거지요. 아니, 설마하니 하늘 아래 두 분이 몸을 숨기고 다니기라도 하셨단 말입니까? 그리고 사람의 아이를 찾는다 하심은 저기 강에 사는 잡스런 것들도 다 아는 일인데 정녕 소문이 될지 모르셨단 뜻인지요? 뜯어먹다 만 거라도 좋으니 다리 한 짝이라도 찾아내지 못하면 이 강에 사는 것들의 씨를 말리겠다고 저주를 퍼부으셨다는 분은 대체 어디의 뉘란 말입니까? 내 이런 수모를 겪으려고 늙은 몸을 이끌고 온 줄 아십니까? 아이고, 나서지 않는 건데, 나서지 않는 건데. 근 백 년을 산 이 몸이 뭐가 아쉬워 자청해서 수모를 샀을꼬.”

꽥꽥거리는 넋두리도 넋두리려니와 근 백 년을 살았다는 박쥐의 푸념에 우송은 뜨끔하여 박쥐의 뒷덜미를 쥔 손을 느슨하게 풀었다. 힐끗 료를 돌아보니 료가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놓아주란 뜻을 보였다. 우송이 손을 놓자 박쥐는 삐쩍 마른 날개를 퍼덕이며 가까이에 있던 나뭇가지에 날아가 거꾸로 매달렸다. 켁켁대면서 힘든 기색을 숨기지 않는 박쥐를 향해 료가 고개를 숙여보였다.

“무례했다면 용서하시오. 은신처가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내 종복이 신경이 곤두서 있었던 모양이외다.”

“생각하는 머리가 한 줌이라도 있는 날것이라면 어찌 감히 공자 같은 분의 둥지 근처를 이유 없이 어슬렁거리겠습니까? 세상 경험이 일천한 종복 따위를 데리고 다니시면 공자께 누가 될 것입니다. 하긴 네발짐승치고 아둔하지 않은 것이 드뭅니다만.”

꼬장꼬장한 박쥐의 비아냥거림에 우송의 큼지막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우송은 주먹을 불끈 쥐면서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박쥐의 목을 비틀어버리고 싶은 것을 참느라 씩씩 숨결이 거칠어졌다. 료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는 듯 박쥐의 말을 무시하면서 물었다.

“반가운 소식을 가져왔다고 하시었소만……근거가 있는 것이오?”

“허튼소리를 지껄일 것이었다면 굳이 묻고 물어 이런 침침한 숲길까지 찾아왔겠습니까?”

음침하기 이를 데 없는 격리된 곳이 아니면 잠도 못 자는 겁쟁이 주제에 말은 잘한다고 우송은 눈을 부라리며 생각했다. 생긴 것만 봐서는 도무지 나이도 짐작할 수 없는 못난 녀석이 영 미덥지 않았다. 하지만 잡을 지푸라기 한 가닥이라도 필요한 료에겐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박쥐를 올려다보는 료의 얼굴이 보다 창백해졌다. 고삐를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가슴이 위태로이 뛰었다. 가져온 소식의 흉과 길을 저울질하였다.

“전해 들은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오, 아니면 직접 본 것을 말하려는 것이오?”

“이 두 눈으로 본 것을 말하려는 것이지요.”

“흥, 그 두 눈이란 게 믿을 만한 것이긴 합니까? 박쥐의 눈이 좋다는 말은 내 생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투덜거리는 우송의 말에 박쥐는 여우가 짖는 것처럼 웃었다.

“내게 있어 두 귀와 두 눈은 다를 것이 없는 것이지요. 마음먹어서 백 리 안의 것 중에 들을 수 없는 것이 없고, 그 때문에 볼 수 없는 것도 없는 것입니다. 박쥐처럼 눈이 머니 어쩌니 하고 지껄이는 멋모르는 어리석은 것들은 어차피 세상에 좁쌀처럼 많으니 크게 신경 쓰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 어리석음이 설마 공자님에게까지 미치지는 않겠지요?”

박쥐의 반짝이는 두 눈이 료에게 와서 멈추었다. 료는 덤덤한 얼굴로 대꾸했다.

“그대의 말처럼 아직 세상 경험이 일천한 녀석이니 그러려니 하시오. 마찬가지로 나 역시 책상물림에 가까운 몸이긴 하나 적어도 그대의 눈을 의심하진 않겠소. 말해 주시오. 무엇을 보았는지.”

“퍽 먼 길을 왔습니다. 늙은 몸이다 보니 사냥도 힘들어, 마음은 넘쳐도 호의만 베풀고 살기는 팍팍하여…….”

한마디로 보상을 해달라는 소리에 료는 우송을 보며 눈짓을 했다. 우송이 등에 지고 있던 봇짐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큼지막한 전대를 흔들자 짤랑거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내가 찾는 소식이라면 결코 섭섭하게는 않으리다.”

전대 쪽을 보면서 들려오는 소리에 유심히 귀 기울이던 박쥐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곧 박쥐가 날갯짓을 몇 번 하고 짐짓 점잖은 척하며 말을 꺼냈다.

“지난 보름에 이 몸은 야시의 불빛에 홀린 미물들을 찾아 포식을 할까 하여 늙은 몸을 움직였습니다. 사냥은 순조로웠으나 날이 바뀌면서 비가 올 듯하여 아주 배를 불리진 못하고 서둘러 귀로에 올랐습지요. 그저 늙음이 한이라……채 반도 가지 못하여 곤하여지기도 하였고, 이 늙은이의 날개보다 빗발이 들치는 쪽이 더 빨라 강변 근처의 숲에서 유숙을 하기로 작정하였나이다. 평소보다 이르게 든 잠이 얕았던지 새벽녘에 문득 잠에서 깨었습니다. 강을 따라 흘러오는 배의 기척을 느낀 것은 그때였지요…….”

이제야 본론인가 싶어 눈을 부릅뜨며 집중하는 우송의 귀에 말이 불안스레 히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말 등에 앉은 료의 안색이 잔뜩 굳어진 것이 보였다. 아무쪼록 아주 몹쓸 소식이 아니어야 할 텐데, 하고 바라는 우송의 귓가로 박쥐의 태평스런 지껄임이 흘러갔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시끄러워 계속 자긴 글렀다 했습니다. 가만 보니 뭔가를 찾느라 분주한 것 같더군요. 어디 한 번 슬쩍 둘러보며 구경이라도 할까 하고 강변으로 나갔지요. 횃불이 동동거리며 물가를 밝히는 배 두 척이 떠오고 있었습니다.”

“두 척?”

료가 말을 끊으면서 물었다. 우송도 으응? 하고 눈을 크게 떴다. 박쥐가 말하는 배가 자신들이 탔던 그 배인 줄 알았는데 두 척이라 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두 척이었습니다.”

박쥐는 분명하게 잘라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네발짐승들이 수두룩했지요. 처음에는 야시 구경을 왔다 돌아가는 여우들이나 되나 보다 했습니다. 하여간에 여우처럼 떠들썩한 걸 좋아하는 짐승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모였다 치면 난장판을 치고…….”

공연한 사족이 이어지자 료가 처음으로 짜증을 내었다.

“그것이 내가 듣고자 하는 이야기와 무슨 상관이란 말이오?”

“아이고, 예, 예, 아무 상관도 없지요. 소싯적에 이 몸이 여우에게 몇 가지 서러운 일을 당한 게 있어서……. 이크, 이것도 상관이 없는 이야기지요. 커험, 그러니까 그 배에 탄 이들은 여우는 아니더라 이겁니다. 그리고 소란스럽기는 했는데 음주가무로 그런 것도 아니었습니다. 찾는 것이 있었습니다. 뭐 그리 중요한 것인지는 몰라도 하여간 앞서 오는 배의 앞머리에 선 대장격으로 보이는 자가 ‘이 부근이다, 조심, 조심히!’ 하면서 소리치는 것을 똑똑히 들었지요. 그래서 이 몸도 덩달아 궁금하여 그 부근을 높이 날며 뭐가 보이나 살폈습니다. 온통 물결, 물결뿐이었습니다. 그러다 언뜻 그 물결 사이로 떠내려가는 다른 것을 보았지요.”

마치 이야기의 절정 부근임을 강조하려는 듯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며 박쥐가 말했다.

“사람의 형상을 한 것이었습니다. 아래로 내려가면서 살피니 하늘을 보며 둥둥 떠내려가는 그것은 사람의 암컷임에 틀림없었습니다.”

문득 료에게서 형용키 어려운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박쥐의 말은 그 자체로 그것이 익사체나 다름없었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의 시신이 물에 떠올랐을 때엔 암수에 따라 몸의 방향이 다르다. 박쥐의 말처럼 그것이 여자라면 얼굴이 하늘을 보게 되어 있다.

박쥐는 다시금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예, 제게는 이미 죽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제 오판이었던 모양입니다. 세상에는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닐 때가 있지 않습니까?”

“무슨 소리냐, 뜸들이지 말고 제대로 말을 해!”

다급한 마음에 료의 말투마저 고압적으로 바뀌었다. 박쥐는 진정하란 듯이 날개를 퍼덕이다가 말했다.

“배에 탄 이들이 마침내 제가 본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건져 올렸지요. 아까 말씀드렸던 대장격으로 보이는 자가 그것에게 다가가자 그것이 꿈틀거리며 눈을 뜨더란 말입니다!”

“눈을, 눈을 떴단 말이지? 틀림없는 참이렷다? 분명히 그것이 눈을 떴다는 이거지? 혹, 혹 무언가가 쓰여 몸만 움직이게 한 것 같지 않았느냐? 아니면 단순히 배의 반동에…….”

료의 불안한 확인에 박쥐는 두 눈을 유난스레 반짝거리며 단호하게 부정했다.

“그럴 리 없습니다. 물귀신은 그처럼 웃지는 않지요.”

“웃어?”

“웃었습니다. 다소 힘은 없었으나 그것은 웃음소리였습니다. 옆에 다가온 자가 붙잡아 일으키자 말도 하는지 입이 무어라 움직였지요.”

“뭐라고 말을?”

“그것은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입술이 움직였고, 옆에 있던 큰 개가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잠깐, 큰 개? 배에 있었던 것이 개였단 말이냐?”

“아,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던가요. 엄밀히 말하자면 개는 아니었습니다만. 늑대나 여우가 아닌 이상 제게 큰 의미가 없어서 굳이 따로 구별을 하지 않을 뿐입니다. 그 붉은 개를 달리 부른다는 것을 알고는 있으나…….”

잔뜩 집중하여 듣던 료의 안색에 돌연 어떤 변화가 찾아왔다. 무언가를 떠올렸다. 그것을 당장에 확인하는 료의 목소리가 유난히 낮았다.

“혹시 그것이 승냥이였느냐?”

그러자 놀랐다는 듯이 박쥐의 입이 벌어졌다. 잠시 후 박쥐가 말했다.

“예, 보통은 그렇게 부르는 짐승이었습지요.”

혜양군의 운몽산은 지세가 썩 험하지는 않으나 수령 몇 백 년은 기본인 큰 나무들이 빽빽하여 한낮에 길을 잡아 오른다 해도 컴컴한 것이 밤중과 같다. 또 나무가 아니더라도 사람이 들어갔다가는 길을 잃기 딱 좋은 무성한 대나무 숲들이 여럿 있다. 그 여러 대나무 숲 중 어느 하나와 이어진 오솔길을 따라가면 나오는 으리으리한 저택은, 그 산에서 나는 것들로 목숨을 연명해 가는 인간들 사이에서 일종의 전설처럼 회자된다.

오래전 심마니 하나가 뭔가에 홀려 산을 헤매다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와 그런 걸 보았다 하는 이야기를 했으나 정확히 어디인지는 말하지 못했다. 다시 찾아보겠다고 산을 탄 그 심마니는 그대로 종적이 묘연해졌다. 헛것을 본 것이 창피해 타지로 나갔다는 이야기도 있고 그 정체 모를 저택의 주인에게 홀리고 만 것이라는 소리도 있다.

애초에 산속 깊은 곳에 으리으리한 저택 따위가 있을 리 없다. 혹, 있다고 하면 그것은 길을 잃었던 나그네가 홀연히 다다른 저택에서 진수성찬을 대접받고 배웅을 받아 떠나다 돌아보니 그 자리가 공동묘지였더라, 하는 식의 이야기와 아주 다르지 않다. 그 심마니처럼 되돌아가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해도 그런 것에 홀린 자가 오래 산 경우는 드물다. 다 기가 약해서 그런 것도 보는 법이다.

그렇게 산밥을 먹는 자들 중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은 그 이야기를 아주 먼 남쪽 바다 어딘가에 선다는 신기루의 궁전과 같은 취급을 하지만, 그들도 단 하나 동의하는 것은 있다. 운몽산에는 뱀이 없다. 산에 오르는 이들에게는 여러 위험이 있지만 적어도 독사를 만날 위험은 운몽산을 명줄 삼아 사는 이들에게는 딴 세상 이야기다. 그래서 운몽산 근처에는 땅꾼이 살지 않는다.

만에 하나, 그 저택이 운몽산의 산신(山神)이 거주하는 곳이라고 친다면 그 산신은 적어도 뱀의 형상은 아니리라. 그것이 인간들의 머리로 상상할 수 있는 한계였다.

하지만 산 아래 사는 인간들의 상상과는 달리 운몽산에도 이따금 뱀이 산다. 죽림의 어딘가, 협죽도가 담장을 따라 늘어선 그 저택의 뒤뜰에 묻힌 큰 단지에는 때로 수십 마리의 유독한 뱀이 모여 소란을 떨고는 했다. 봄이 되어 집을 찾은 가재가 부려온 짐 중에는 저택의 도련님들을 위해 마련된 그런 몸보신거리가 빠지지 않았다.

“겨울을 난 것들이니 한층 물이 올랐을 것입니다. 지난해에 격조했던 것을 유감스럽게 여기시는 주인의 성의라고 여겨주십시오.”

“되었네. 성의는 받았다 칠 것이니 돌아오면 작은 주인들에게나 내어주게.”

가재인 청작은 화산 노파의 거절에 곤란한 얼굴을 지었다.

“충분히 생각하여 평소보다 더 많이 모아 온 것입니다. 너무 사양치는 마십시오, 어르신.”

“내가 아직 치레 삼아 하는 예의나 지키고 있을 나이로 보이는가? 거절할 때는 정말로 생각이 없는 게야. 나이가 이만큼 드니 굳이 먹고 싶은 것이 없어. 아, 전에 보내준 협죽도주는 괜찮았지. 또 꽃이 가득 필 때에 몇 동이 보내주면 고맙겠어.”

“그거야 얼마든지…….”

청작과 화산 노파가 뒤뜰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곳으로 다가오는 이들이 있었다. 하얀 옷을 입은 두 시종이 씌워주는 일산 아래 화사한 등색(橙色)과 붉은색 장포자락을 끌며 걸어오는 자매는 오래전에 지상에서 사라진 당나라 궁궐에서 막 거닐다 나온 듯이 풍성하고도 요염한 미로 충만했다.

혜양에 놀러 온 가진과 가선 자매가 이 저택으로 옮겨온 지도 열흘이 넘었다. 그리고 열흘 만에 이 저택의 공기는 확실히 바뀌었다. 지금 자매의 뒤를 따르는 녹색 옷의 여자들이 켜는 악기의 가락 같은 것은 보름 전이었다면 휘의 내실이 아닌 이상 들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두 자매는 어디를 가든 비파를 켜고 노래를 부르는 시녀들을 데리고 다녔다. 여행길에 오르며 자매가 데려온 시종이 서른 명이 넘는다. 그중 열이 오로지 가무만을 전담하는 축이었다.

가진이 부채를 가벼이 들었다 놓자 노랫소리가 그쳤다. 비파 소리는 잔잔히 계속되는 가운데 자매 중 언니인 가진이 화산 노파에게 말을 건네 왔다.

“예서 무엇을 보고 계시는지요? 재미난 것이라면 저희에게도 구경할 기회를 주십시오.”

늘 웃는 얼굴에 재미난 것을 유달리 좋아하는 가진의 청에 화산 노파는 청작을 돌아보며 공교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글쎄. 난씨 처자들이 볼 만한 것은 아닌 듯한데…….”

“그리 속단은 마시지요. 바람결에 떨어지는 꽃잎만 봐도 웃을 준비가 되어 있답니다. 감추려 하시면 더욱 궁금해지는 걸요. 어디……어머나, 흉측해라.”

가진이 걸음을 옮겨 청작의 옆으로 다가섰다가 아래를 내려다보고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부채로 얼굴을 가렸다. 화산 노파와 청작이 보던 것은 땅에 묻힌 뱀단지였다. 일단 나무로 격자를 짠 덮개가 단지 주둥이 위에 가로놓여 있긴 하나 그 안에서 쉭쉭거리는 뱀들의 소리는 위까지 전해졌다.

놀랐다는 시늉은 했으나 잠시 후 슬쩍 부채를 내려 빠끔히 단지 속을 구경하는 가진에게선 어린아이 같은 호기심이 엿보였다. 그런 언니 곁에 다가와 마찬가지로 안을 들여다본 가선은 가냘픈 비명과 함께 뒤로 물러났다.

“호호호, 항아리는 깊이 묻어놓았으니 이것들이 자네를 공격할 일은 없을 것이네.”

가선의 반응이 귀엽다는 듯이 돌아보며 화산 노파가 말했다. 시종 정의 팔에 기대어 이마를 누르던 가선이 겁먹은 목소리를 내며 도리질을 했다.

“다리 없는 짐승은 정말로 징그럽습니다. 저희가 사는 파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누런 이무기가 한 마리 산다는데 어찌나 새들을 못살게 구는지 그 근방에서는 때까치조차 살지 못해 씨가 말랐다고 합니다.”

“저런. 어린 시절에 새에게 잡아먹힐 뻔한 원한이라도 있나 보지?”

화산 노파는 심드렁한 얼굴로 혀를 차더니 다시 단지 속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하늘 아래 큰 새가 뱀을 잡아먹고, 큰 뱀이 작은 새의 알을 취하는 것이 비일비재한데 조물주가 그리 만들어 놓은 것을 뉘에게 따지겠는가?”

하지만 달관한 듯한 말과 함께 화산 노파는 청작을 돌아보며 당부했다.

“그래도 뒷일을 모르니 이것들은 달아나게 두면 안 되겠군. 시들어 죽기 전에 작은 주인들께 잘 요리해 올리게나.”

“혹시라도 달아나서 훗날 이무기라도 될 거란 말씀이십니까? 설마요, 저희처럼 영력을 가진 귀한 존재는 날 때부터 정해진 것이 아닙니까?”

깔깔거리며 가진이 한 말에 화산 노파 역시 일단 수긍했지만 오래 살아온 자답게 단정은 짓지 않았다.

“모르는 일이지. 때론 이삼십 년으로 죽었어야 할 것들이 두 배, 세 배를 사는 기이한 일들이 있지 않은가. 아주 가끔은, 극히 미미한 곳에서 비범한 것이 일어나기도 한다네.”

“그런 것은 한 대에 그치는 별종이 아닙니까. 언젠가 아버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있습니다. 인간도 신선이 되는 자가 아주 없지는 않았으나, 후사를 이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지요. 할머님께서 말씀하시는 그런 비범한 것은 홀로 우뚝 설지는 모르나 대를 잇지 못하니 결국 스러지게 마련이라 하셨지요.”

“글쎄, 그도 그러하나……나처럼 살 만큼 살았다고 믿는 늙은이라 해도 그리 단정 짓지는 못하겠네. 이 세상이란 곳에는 내 눈에도 보이지 않고, 내 머리로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아직도 많기만 해서.”

“어머나, 어르신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면 저희 아버님께서 난처한 얼굴을 지으시겠지요. 저희 아버님이 갓 날갯짓을 하시던 시절에 이미 주씨 일족의 큰어른이셨다고 들었는데요.”

웃음이 너무 잦아 차분한 맛이 없긴 하나 가진의 붙임성만큼은 화산 노파도 혀를 내두를 만했다. 이미 이 웃음 많은 처녀에게 퍽 호의를 지닌 화산 노파는 눈을 끔벅여 보이며 의뭉을 떨었다.

“음. 하도 후생이 많은 터라 자네 아비가 날갯짓하던 시절이 언제였는지 기억을 못하겠네그려. 보자, 송나라가 있던 시절인가, 원나라가 있던 시절인가?”

“호호호, 명나라가 서는 것과 비슷한 시기에 태어났다 하여 이름자에 명이 들어 있다고 들어 알고 있습니다만.”

“으음? 그리도 어리더란 말인가? 파현이 살기 좋은 곳이 못 되는 모양이지. 아름답기론 으뜸가는 난씨 일문의 자가 어찌 그리 겉늙었을꼬?”

“어머나, 어머나.”

제 아비가 겉늙었다고 흉보는 소리인데도 무엇이 그리 우스운지 가진은 웃느라 허리가 휘늘어진다. 발랄하다 못해 속이 없나 싶을 정도였지만 그래도 어린것이 이 정도 밝은 것이 화산 노파의 마음에는 들었다. 이 적적한 곳의 안주인은 천성이 밝은 편이 좋을 것이다. 어차피 나이가 들면서 경망함이란 것도 조금쯤 수그러들기 마련이다. 반면 가선은 언니가 웃을 때 따라 웃는 시늉은 하였으나 보다 성정이 차분한 듯 웃음기가 엷다.

조용히 머릿속으로 두 조카손자의 성정을 헤아려 보면서 참 알맞은 짝이라고 화산 노파는 생각했다. 화사한 것을 좋아하는 휘에겐 가볍긴 해도 가진이 비교적 어울릴 것이고 내향적인 료에겐 조금은 차분한 동생 가선이 어울릴 것이다.

료에겐 마치 가진만이 혼담의 대상인 것처럼 운을 띄워 놓았으나 실은 그 동생 역시 혼담의 상대였다. 화산 노파의 일족은 본디 암컷의 수가 극히 적어 처는 다른 일족에서 찾음이 일반적이다. 이제 두 번째 갑년(甲年)을 맞은 휘의 혼담 상대를 수소문하다가 일족의 격으로 보나 자질로 보나 가당한 처자가 있다 하여 보았더니 바로 밑으로 동생이 하나 있고 그 동생과 떨어져서는 시집가지 않겠노라 강경히 우겨대는 고집스러운 가진이 바로 그 처자였다. 그렇다고 휘가 둘을 다 맞아들이는 것은 난씨 일문으로서는 탐탁하지 않을 것이다.

공교롭지만 이쪽은 단념하고 다른 쪽을 찾아볼 생각이라는 조카의 편지에 화산 노파가 무거운 몸을 이끌고 파현까지 다니러 갔다. 거기서 터울이 고작 이십 년도 되지 않는 아름다운 자매를 보게 되면서 그녀는 생각했다. 비록 료가 이제 겨우 어린 티를 벗었기는 하나 혼담을 진행시키지 못할 정도로 어린것은 아니다. 암컷 쪽이 더 나이가 많은 경우는 흉이라 할 것도 없다. 언니는 휘에게, 동생은 료에게 짝을 지어주면 어떠할꼬?

화산 노파의 그런 생각에 추를 더해 주듯이 언니인 가진이 맹랑한 조건을 내걸었다. 혼사는 아버지의 뜻도 중요하나 그렇다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이에게 평생을 의탁할 마음은 없다면서 낭군이 될 사람을 만나보고 의사를 결정하겠노라 한 것이다. 아직 이리 철이 없다고 쩔쩔매며 가진을 야단치는 난씨의 가주를 웃음으로 다독이면서 화산 노파가 그 생각 아주 그르지도 않다며 가진의 편을 들어주었다.

그리하여 청했다. 보고서 못 하겠다 물린다 해도 어떤 원망도 하지 않을 터이니 일단 두 처자가 혜양으로 오는 것은 어떨지……? 일단 화산 노파가 먼저 그곳에 가 있다가 그들이 오면 자신의 손님으로 저택에 초대하겠다고 하자 가진이 당장에 그것 좋은 생각이라며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나섰다. 화통한 언니의 결정에 동생은 말없이 동의의 뜻을 보였다.

먼 곳에서 꾸민 계획대로 일은 착착 진행되는 듯하였으나 정작 이곳에서 사소한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첫 번째로, 정작 다다른 혜양의 저택에 휘가 없었다. 본디 방랑벽이 있어 훌쩍 떠나길 좋아하는 편이나 겨울에는 보통 집에 돌아와 머무르곤 하였다. 나름 면밀하게 한다고 2월 초까지 혜양에 머무르는 것을 확인하였는데 그새 어딘가로 떠나버린 휘 때문에 화산 노파의 뜻이 빗나갔다.

그리고 두 번째 불상사마저 일어났다. 화조의 밤에 귀로의 뱃길에서 침아가 실종된 일. 잠귀가 밝은 점은 의심할 것도 없었던 화산 노파는 그날 밤 유례없이 깊은 잠을 자서 다음날 아침에야 깨어나 희한한 일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다. 그래서 대체 어떤 경로로 침아가 배에서 증발했는지 화산 노파 역시 어리둥절할 따름이다.

더욱이 놀라웠던 것은 료의 반응이었다. 그렇게 폭발적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아이였던가.

물에 빠져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조심스런 추측을 내놓은 것만으로 가선을 죽일 듯이 응시하는 그 노한 시선에 화산 노파의 가슴이 다 서늘해질 정도였었다. 한 며칠 배로 은호강을 따라 수색하는 동안 떠나지 않고 곁에서 지켜본 료는 흡사 어미를 잃고 어찌할 바를 몰라 불안에 떠는 어린것 같았다.

다른 이들까지 마냥 그러고 있을 수는 없어 침아가 어찌 됐는지 알아내기 전엔―정말로 시신밖에 거둘 것이 없다고 해도―돌아가지 않겠다고 하는 료를 뭍에 내려주어야 했다. 운몽산으로 향하는 배 안에서 화산 노파는 침아의 일을 근심하는 한편으로 가선이 이 일을 어찌 받아들였을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번 정을 주면 퍽 깊이 주시는 분이란 뜻이겠지요. 그 아이가 부럽습니다. 아무쪼록 살아서 공자님께서 데리고 돌아오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여북 좋겠습니까.”

이미 멀어져서 모습도 보이지 않았지만 료를 내려준 곳을 쳐다보며 그렇게 말하는 가선의 모습은 참으로 의젓해 보였다. 혹 침아가 정말 잘못되었다면 참으로 애석할 노릇이겠으나 어떤 의미에서 그것이 료와 이 처녀 사이의 일을 수월케 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화산 노파의 뇌리에 스친 것은 그때였다.

누군가를 잃어 상심한 마음에 진심어린 상냥한 위로는 충분히 좋은 약이 된다는 것을 화산 노파는 알고 있다. 비록 그 약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데에 시간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나……우리 같은 자들에게 몇 년의 시간은 짧다면 아주 짧은 시간이 아닌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나 료가 돌아온다면 부디 따뜻하게, 상냥하게 대해 주게. 누구인들 정을 받으면 싫어할 리는 없겠지만, 료에게는 특히 그 정이란 것이 담뿍 필요하다네.”

쓸쓸함이 골수에 사무친 아이라……. 차마 그렇게 직설적으로 말하지는 못했지만 화산 노파는 가선의 손을 쥐며 간곡하게 당부했다. 가선은 엷은 미소와 함께 알겠노라 약속했다.

지금 언니인 가진과 함께 있는 가선의 모습은 그런 말을 나누던 때보다는 훨씬 발랄해 보였다. 그래도 문득문득 차분한 구석이 보인다. 언니가 없이 혼자 자랐다고 하면 훨씬 조용한 아이였을 거라고 화산 노파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 언니가 있어 또한 가선이 좋게도 여겨졌다. 이렇게 사이좋은 자매가 휘와 료의 짝이 된다면 썩 살갑지 않은 형제의 사이도 앞으로 달라질지 모른다. 현명하고 성품 따뜻한 안주인은 어떤 집안에서든 보배와 같다.

여러모로 좋은 혼사가 되겠다고 생각하며 화산 노파가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미소를 짓고 있을 때였다. 쿵쿵거리며 땅이 울린다는 느낌이 들어 의아하게 고개를 돌린 화산 노파는 터무니없이 커다래서 대번에 눈에 들어오는 우송을 보고 놀라 눈을 끔벅였다. 우송이 달려오고 있다.

“그렇다면…….”

화산 노파가 그리 중얼거리기 무섭게 시야에 료가 모습을 드러냈다. 낯선 자들을 보고 눈길 한 번도 주지 않고 료는 화산 노파를 향해 달려왔다.

“할머니, 여쭙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다급한 목소리에는 여유가 하나도 없다. 바로 앞까지 뛰어온 료의 옷에는 흙먼지가 자욱했고, 땀 냄새도 어렵지 않게 느껴졌다. 까칠한 얼굴을 비롯해 눈에 붉게 핏발이 서 있다. 그것은 뒤따라온 우송도 매한가지였다. 체력 하나는 비할 데 없는 장사인 우송이 헐떡거리고 있는 모습을 화산 노파는 처음 보았다.

“료, 제대로 자고 먹기는 한 게냐?”

걱정스레 묻는 화산 노파의 말을 못 알아들은 것처럼 료는 다그쳐 물었다.

“침아를 사들인 전 주인에 대해 기억하고 계신지요.”

“전 주인이라면 승냥이의 일을 묻는 게냐?”

“예, 그자의 일입니다. 말투는 어떠했습니까? 복색은 어떠했으며 사는 곳에 대해 알 만한 특징이 있었다면 빠뜨리지 말고 다 말씀해 주십시오.”

“글쎄다. 갑자기 그리 물어오면 딱히 기억나는 것이……. 그래, 말투로 보아 반도의 북쪽에 사는 자일 듯하고 복색만 보자 하면 저 대륙에서 사는 자일까. 어쩌면 국경 부근에서 사는 자일 수도 있겠구나. 길게 본 것이 아니니 더 많은 건 알 노릇이 없으나. 그런데 느닷없이 그런 것을 왜 묻는 것이냐?”

화산 노파는 의아해하면서 료의 안색을 살폈다. 료는 화산 노파가 해준 말을 곱씹으며 “북쪽인가”라고 중얼거렸다. 언뜻 북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료의 눈가에 살기가 이는 것을 본 화산 노파가 깜짝 놀라 료의 손을 잡았다.

“료, 말해 보렴. 그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화산 노파를 돌아본 료의 입술은 굳게 다물려 있었다. 눈을 한 번 깜박인 료의 입에서 이윽고 나온 답이 화산 노파를 놀라게 했다.

“아무래도 그 아이가 전 주인에게 달아난 모양인 듯합니다.”

“그 아이라 하면 침아가 말이냐? 달아나다니, 아니 어떻게? 대체 무슨 이유로 말이냐?”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에 되묻는 화산 노파의 질문에 료의 굳어진 얼굴에 비틀린 미소가 차올랐다.

“저도, 그것이 하 궁금하여, 찾아볼 생각입니다.”

일그러진 미소처럼 나지막한 목소리의 바닥에는 흉흉한 무언가가 깔려 있다. 덜컥 불안한 생각이 들어 화산 노파는 료의 손을 꼭 움켜쥐었다. 마른 나무껍질 같은 그녀의 손에 쥐어진 료의 손이 지독히 싸늘했다. 온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 손에 닿은 화산 노파의 손은 료에겐 미적지근하기만 했다.

그가 알고 있는 진짜 따뜻한 손. 그것을 료는 되찾아올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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