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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야시(夜市)에서 산 선물 (2/33)

1. 야시(夜市)에서 산 선물

달도 없고 별도 없는 밤이었다. 음력 삼월의 첫 번째 사일(巳日). 그것은 인간 세상에서는 답청인지 뭔지를 하는 명절인지는 몰라도 또 다른 세상에서는 단순히 시장이 서는 날에 불과하다.

그래도 겨우내 바다에서 열리던 시장이 지상으로 그 터를 옮겨왔다는 점에서 지난 몇 개월간의 시장과는 다르다 하겠다. 바로 이때만 별러서 모처럼만에 시장 구경에 나선 자들도 적지 않다.

해시(海市). 가려고 들면 갈 수는 있지만 아무래도 물 위는 불안하다고 하는 게 땅에 사는 자들의 생리이다. 신기루를 빌려 진주와 산호로 꾸민 근사한 난간을 두른 유리 다리 위를 수레가 힘차게 달려 나가도 사방에 보이는 푸른 물결에 멀미를 하고 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비록 교인(鮫人)들이 파는 눈부신 구슬이며 산호 장신구들은 찾기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이번 봄의 야시는 시작부터 시끌벅적했다.

장소는 무주(霧州)의 무영산. 초여름에 가까우리만치 따뜻했던 낮의 공기가 싸늘해지면서 자욱하게 피어오른 안개 속에 산꼭대기는 구름에 잠긴 것처럼 뿌옇다.

그 뿌연 구름 사이사이로 인간 세상의 것과는 거리가 먼 불빛이 흘러나온다. 야시를 밝히는 희고 푸른 횃불이다.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그 횃불의 정체를 인간들은 종종 도깨비불이라고도 하는 듯하다. 저 먼 개벽의 아침 이래 아득할 정도로 수도 없이 살다 죽기를 반복한 존재들의 뼈는 분명히 훌륭한 불쏘시개감이다. 그 많은 뼈들이 땅 아래 묻혀 하릴없이 썩어 가는 것에 비해 이렇게 밝은 빛으로 화해서 반짝이다 가는 쪽은 참으로 드물고도 운이 좋은 편이라 하겠다.

그것을 인간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약하고 겁 많은 존재로 태어났으니 다 그네들의 업이다.

그리고 어차피, 인간이 봐서는 안 될 불빛이다. 만에 하나 불운하여 그 불빛을 보게 된다면 홀릴 것이다. 그리고 홀린 뒤의 일은 장담할 수 없다.

인간 중에 개미를 동정하는 자가 그리 많지는 않은 것처럼, 이 밤의 시장을 구경하는 자 중에 인간을 동정하는 자들은 그리 많지 않다. 개중에는 인간의 어린것들이 장난으로 그러듯이 개미를 밟아 죽이는 장난을 즐기는 자들도 있다.

홀리는 인간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확률은 고주망태가 된 술꾼이 천 길 낭떠러지에 걸린 외나무다리를 무사히 건너갈 확률과 비슷할지도.

그리고.

애초에 붙잡혀 온 인간이라면, 그나마 확률조차 없다.

다만 팔려나갈 때, 그 용도가 조금이나마 자비롭기를 바랄 뿐.

“머리 당 은자 넉 냥씩, 셋은 열 냥에 줘. 그 이상은 안 돼.”

“아이고, 그렇게 해서는 지금껏 먹인 사료 값조차 나오지 않는다고. 눈이 하나라서 잘 못 보나, 좀 보란 말이야. 지난겨울의 혹한에 이것들을 거둬서 이만큼 살찌우느라 내 마누라도 다섯 끼밖에 못 먹고 살았다니까 글쎄. 은자 열 냥이라니 이건 너무 턱없는 소리잖아.”

주인장의 엄살이 이어지는 가운데 잿빛 털이 부숭부숭한 곰의 몸에 머리 위로 달고 있는 건 멧돼지머리인 손님은 하나뿐인 눈을 끔뻑여 이리저리 재어보는 듯하다가 일없다는 듯 머리를 흔들고 돌아섰다.

“관둬, 어차피 맛도 없는 암컷 따위에 그리 돈을 쓸 바엔 저 위로 가서 수컷 하나를 사가지. 이건 뭐 똑똑하길 하나 일을 잘하나. 걸핏하면 픽픽 죽고.”

“흥, 멋대로 가보라고. 갔다가 도로 온다고 내 틀림없이 장담해. 인간은 아무나 키우나. 한 번 크게 경을 쳐봐야 세상을 알지.”

휘휘 수건을 흔들어 파리를 쫓는 시늉을 하고 주인장도 의자에 앉아 피우다 만 담뱃대를 입에 물었다. 그의 뒤로 놓인 우리 안에서 몇 명의 아이가 훌쩍이는 소리를 내자 으르렁, 하고 이를 드러내 보일 때 긴 송곳니가 번득이며 빛났다.

“어느 녀석이 가장 시끄럽게 구는지 내가 다 보고 있어. 팔려나가면 다행이지, 새벽까지 그대로 있으면 내일 호랑이 아침상에 오를 줄 알아. 저기 월인산에 사람 고기에 맛들인 호랑이가 산다는 말 했어, 안 했어?”

그 말에 훌쩍이던 아이들이 급히 울음을 참다가 그중 한 아이가 딸꾹질을 시작했다. 히끅 히끅 대는 소리를 누르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심하게 소리가 커졌다. 승냥이의 눈이 못마땅한 빛으로 가늘게 좁혀졌다. 그 눈빛을 온몸으로 받는 아이는 더더욱 어쩔 줄 몰라 숨을 쉬지 않으려고 코와 입을 막고 안간힘을 쓰다가, 그만 축 늘어져 버렸다.

승냥이가 담뱃대를 떵하고 두드리고 일어서자 아이들이 소스라쳐서 함께 구석으로 몰려갔다. 우리의 문을 열고 바닥에 늘어져 있는 아이 쪽으로 승냥이가 앞발을 내밀자 누군가 그 날카로운 발톱을 밀어냈다.

“안 죽었어요.”

승냥이의 눈이 자신을 막아선 당돌한 아이의 얼굴로 향했다. 왼쪽 얼굴을 머리카락으로 가리고 있는 여자아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컸다. 아이라고 부르기 애매한 몸집. 열한두 살쯤 되었을까.

“놀라서 기절한 거예요. 때리지 마세요. 그러다 정말로 죽어버릴지도 몰라요. 이 녀석, 여기가 아주 약해요.”

여자아이는 의식을 잃은 아이의 심장을 가리켰다.

“겁에 질려 죽는 애 한두 번 보나?”

“그래도. 크면 예쁠 것 같은 얼굴인데.”

빙긋이 웃기까지 한다. 우리 안의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엄청난 배짱이다. 승냥이는 트릿한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팔아버릴 거다. 매일 훌쩍대는 소리도 지겨워.”

“네에.”

기절한 아이의 팔다리를 주무르면서 여자아이는 반쯤 장난하는 것처럼 대꾸했다. 승냥이가 으르렁댔다.

“너도 마찬가지야.”

“난 안 울었는데?”

“팔아버릴 거야. 오늘이 그 날이다.”

“네에, 네에. 팔아만 주세요.”

여자아이가 대차게 빙글거리자 승냥이는 눈을 가늘게 좁히고 담배만 뻑뻑 피웠다.

“그 녀석, 재롱을 부릴 줄 아는군.”

그때 옆에서 끼어드는 소리에 승냥이가 힐긋 눈동자만 옆으로 굴렸다. 이미 간 줄 알았던 멧돼지머리가 아직 팔짱을 끼고 서서 둘이 주고받는 수작을 지켜보다가 말한 거였다.

승냥이는 담뱃대 끝을 까딱거리며 중얼거렸다.

“저놈은 댁이 살 만한 게 아니요. 가던 길이나 가쇼.”

“왜, 저걸 끼워준다면 셋에 열다섯 냥 주지.”

“아 글쎄, 저건 먹을거리가 아니래도.”

“나도 눈 있어. 이미 맛있을 시기는 지난 것쯤 알아.”

“그거 알면 가던 길 가라고.”

“얼마나 주면 팔려고?”

멧돼지머리는 여자아이가 못내 마음에 든 모양이다. 기절한 아이를 계속 주물러주면서 여자아이는 멧돼지머리 쪽을 쳐다보았다. 멧돼지머리의 하나뿐인 눈과 마주치자 여자아이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오른쪽 눈을 찡긋했다. 멧돼지머리의 눈이 천천히 감겼다 뜨였다.

“말해봐, 그래도 팔려고 데려온 걸 거 아냐.”

흡사 암컷의 암내에 안달이 난 것처럼 멧돼지머리가 재촉했다. 승냥이는 쳐다보지도 않고 대꾸했다.

“금 열 냥.”

“금? 은자도 아니고 금?”

“금 열 냥.”

“자네 제정신이 아니군. 팔 생각이 없으면 없다고 하지 무슨 저 작은 인간 아이 하나를 금 열 냥에 팔아, 팔기를?”

멧돼지머리가 쩌렁쩌렁 소리치는 소리에 주변 구경꾼들의 시선도 이쪽으로 향했다. 승냥이는 하품을 했다.

“팔 생각 있어. 군말 없이 금 열 냥을 내밀고 데려가겠다고 하는 자에게는 절까지 하면서 팔 거야.”

“그러니까 애초에 팔 생각이 없는 거잖아!”

“있대도 그런다. 맞나 안 맞나 보려면 금 열 냥만 내밀어 보래도?”

“금 열 냥 값에 누가 저런 인간 따위를 산다고 그래? 그 돈이면 오늘 시장에 나온 인간을 다 쓸어 담고도 남겠다!”

“다 담아가든가. 하여간 저건 금 열 냥이야. 더 받았으면 더 받았지, 한 푼도 덜 받진 않아.”

“아니 글쎄 어딜 봐서 그 정도 값을 하게 생겼냐고? 납득이라도 하게 이유라도 한 번 들어보지.”

담뱃잎을 새로 넣으며 승냥이는 대꾸했다.

“혈통이 좋아.”

“혈통? 으하하하하, 들었소? 이보시오, 방금 저 다 늙은 개가 하는 말을 들었냐는 말이오? 혈통이라 하오. 혈통, 흐하하, 고작 인간 주제에 혈통을 따져 무엇 한다고!”

멧돼지머리가 기가 차다는 듯 웃어댔고, 주위에서 구경하던 이들도 별 시답잖은 소리 다 듣겠다는 듯 웃는데 합세했다.

설사 우리 속의 여자아이가 저 고대의 상(商)나라 왕에서 비롯된 핏줄이라고 해도 혈통 운운할 거리가 아니다. 지금 야시를 채운 이들 속에 인간세계의 혈통을 진지하게 생각할 이들이 몇이나 될까. 오늘 야시가 선 이 무영산을 포함한 나라의 현재 이름도 모르는 이들이 꽤 된다. 그나마 최근 조선으로 바뀐 소식을 아는 자들 속에도 아직 이 작은 반도의 왕이 왕(王)씨라고 알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고려의 왕이 용의 자손이라던데, 들었나? 하는 심심파적 삼은 이야기. 아들이 할 게 없어 인간들 왕 노릇을 하겠다는데 그 아버지라는 용은 어디서 뭘 하고 있나? 라는 농지거리이다. 한(漢)나라 때 유방인가 하는 왕 녀석이 제 아비가 적룡이네 어쩌네 하고 꾸며냈던 이야기 이래 또 한 번 인간 세상 너머까지 비웃음을 산 나름대로 유명한 대목이다.

그리고 결론은 대개 이렇다. 인간들이 하는 짓이 그렇고 그렇지 뭐.

물론 그것이 아주 없는 소리는 아닐 수도 있다. 실제로 인간의 역사란 것에 인간이 아닌 존재가 종종 개입을 해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상당히 오래전의 일이다.

요새도 간혹 지나치게 길게 사는 몇몇 부류의 신진들이 인간 세상에 나가 놀다 오는 일은 있는 모양이지만 그거야 기백 년의 수명을 누릴 자들의 사치스런 놀이이지, 고작 일이백 년 정도 되는 짧은 수명이 고작인 이들이 노는데 몇 십 년을 허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양육자의 정신이 똑바로 박혔다면 그런 일에 한눈파는 자식을 내버려둘 리 만무하다. 호기심이며 장난기가 유난히 많은 여우나 고양이 쪽 부류는 열외로 친다손 해도 말이다. 아, 원숭이 놈들은 말할 것도 없고.

애초에 인간들의 혈통은 따져서 무엇 하는가. 그들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자꾸만 번식을 해대는 통에 그 꼭대기 조상이 어떤 피를 가지고 있었는지 후손만 보아서는 짐작도 할 수 없다. 다행히도 그 번식력에 맞먹는 파괴의 습성이 있어서 심심하면 저들끼리 치고받고 죽어나갔기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이쪽 세계의 존재들도 마냥 손 놓고 한가롭게는 못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개의 세상 일이 그렇듯이 하늘은 어련히 알아서 완급을 조절한다. 적당하다 싶을 때 비를 주듯이, 큰 가뭄 뒤에는 메뚜기떼가 생기고 홍수 끝에는 역병이 퍼지는 식으로.

제각각, 평화롭게 살면 그만이다. 굳이 존중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아니, 존중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지금 야시에 모인 존재들은 적어도 인간 대부분보다는 현명한 존재들이기 때문에 단조로운 평화의 고마움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자신의 후손을 남겨야 한다는 암묵적 원칙을 따르는 존재들로서 이쪽 세계의 전체 숫자는 천 년 전이나 이천 년 전이나 비등비등하다. 삼천 년, 사천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도 마찬가지다. 평탄하게 살아가다가 자신이 죽은 뒤를 이어갈 분신을 낳는다, 라는 개념. 그렇기에 이들에게는 ‘혈통’이란 말이 의미가 있다. 후손에게 전부를 남겨주고 떠나기 때문에 선대는 그 자체로 존경을 받는다. 절대적인 숫자가 비슷하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이름을 이을 후손 하나에 집중했다는 뜻이다.

그러한 ‘혈통’의 의미를 인간의 것과 견주어 비교한다면, 어불성설이다. 그렇기에 지금 멧돼지머리의 웃음에 주변의 존재들이 공감하여 웃는 것이다.

하지만 사방에서 쏟아지는 조소에도 불구하고 승냥이는 태연했다. 오히려 시큰둥하게 혼잣말을 했다.

“안 보이면 보지 말라지.”

여자아이는 그런 승냥이의 혼잣말을 들은 것처럼 말없이 웃었다. 그새 무릎에 머리를 뉘어 놓았던 계집애가 정신을 차리고는 자신의 동무들 곁으로 달려가 한데 웅크려 오들오들 떨었다. 구석에 몰려 있는 계집애들은 여자아이를 마치 낯선 존재처럼 쳐다보았다. 여자아이가 방긋이 웃었지만 그들은 그 미소에 오히려 흠칫하면서 시선을 피했다. 승냥이보다도, 이 여자아이를 더 무서워하는 것 같다.

여자아이가 일어났다. 구석의 계집애들과는 반대쪽으로 걸어가 우리 너머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안개가 자욱해서 밤하늘의 별도 잘 보이지 않았다.

“은하수의 별들이 흩어져도, 달은 나를 좇아 따르려 하네. 미인이 웃음 짓네. 날아오르는 새여, 어둠을 깨치고 내게로 오려무나. 내 너를 위해 노래를 들려주리라.”

흥얼거림은 작게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 그 소리가 사방을 채우는 유일한 소리가 되었다. 소녀의 노랫소리는 특별했다. 반주 하나 없었지만 그 목소리는 이미 그 자체가 뛰어난 악기 그 자체였다.

하늘에 못 박힌 소녀의 오른쪽 눈이 스스로 반짝이며 그 안에 은하수를 그려냈다. 얼굴을 비롯해 옷가지 사이로 드러난 소녀의 손과 발의 살갗은 연분을 가득 뿌려 빚어낸 듯 맑고도 투명했다.

그것은 우리 반대쪽에 몰려 있는 겁에 질린 계집애들의 볼품없는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 우리 안의 인간의 아이들을 바라본 이들은 비로소 그 차이를 깨달았다.

승냥이가 말한 ‘혈통’이란 것이 아주 거짓은 아닐지 모른다……라는 생각을 그들 중 일부가 했을 때, 문득 승냥이 앞에 쩔렁거리며 무언가가 던져졌다.

자그마한 전낭(錢囊)이다. 승냥이가 재빨리 그것을 주워 안을 들여다보니 다섯 개의 반짝이는 잣 모양의 금 조각이 보였다.

승냥이가 고개를 들었을 때 눈앞에 초록색 비단옷을 입은 깜찍한 동자가 있었다. 말없이 동자가 두 손으로 뒤를 가리키자, 거기엔 보기 드문 아름다운 붉은 수레가 서 있었다. 옻칠을 수도 없이 했을 유벽거의 측면에 드리워진 대발 너머에서 여주인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를 보자.”

승냥이는 잠자코 전낭에서 금 조각 하나를 꺼내 이빨로 깨물었다. 곧 고개를 약간 끄덕이더니 우리로 다가가 대충 시늉만 해둔 문을 열었다. 소녀가 승냥이를 향해 눈을 깜박였다. 승냥이가 어깨를 으쓱했다.

“손님이 보자신다.”

따로 이끌지 않아도 소녀가 제 발로 우리를 걸어 나가 붉은 수레를 향해 다가갔다. 대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멈춰 섰다.

“좀 더 가까이.”

수레 안에 있는 자가 명하자 소녀가 두어 걸음 더 다가섰다. 그러자 발 너머에서 깊이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났다.

“좋은 향기가 나는군. 꽃향기가 나.”

“이 아이의 체취입지요.”

“체취라……. 좋은 향기가 나는 인간은 그리 많지 않지.”

승냥이의 설명에 수레 안에서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승냥이는 앞발에 쥔 전낭을 무게를 가늠하듯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말했다.

“혈통이, 좋은 것입니다.”

“왼쪽 얼굴은?”

그러자 소녀가 직접 자기 손으로 머리칼을 한쪽으로 치웠다. 오른쪽 얼굴의 어여쁨을 상쇄하듯 왼쪽 얼굴은 광대뼈 부근까지 흉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왼쪽 눈은 앞을 본다는 것조차 불가능할 정도의 흉터였다.

“갓난애일 때 화상을 입었습니다.”

소녀가 대답하는 목소리가 밝고도 경쾌했다. 싱긋이 웃자 흉한 왼쪽 얼굴과 대조되어 오른쪽 얼굴이 더할 나위 없이 귀엽다.

수레 안에서 앙상한 손이 나온 것은 그때였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파의 손. 엄지와 검지를 제외한 세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황금 손톱집은 맹수의 발톱처럼 날카로우면서도 더할 나위 없이 사치스러웠다. 그 손이 뻗어오는데도 소녀는 피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겁이 없군.”

얼마쯤은 감탄이 섞인 말과 함께 노파의 손이 소녀의 왼쪽 얼굴을 가볍게 건드렸다. 이어서 오른쪽 얼굴로 옮겨갔다.

“몹시, 뜨겁군. 혹시 어디가 아픈 건 아니냐?”

소녀가 고개를 저었다. 승냥이가 대신 대답했다.

“아픈 데는 전혀 없습니다. 다만 몸에 열이 많습니다. 한겨울에도 두터운 옷을 입는 법 없이 사철을 얇은 옷 하나면 족합니다. 두고 키우신다면 필요한 때 귀를 즐겁게 해줄 재간도 충분합니다. 노래는 물론 비파도 약간은 탈 줄 압니다.”

노파의 손이 다시 수레의 발 너머로 돌아갔다. 잠시 뜸을 두었다가 수레 안에서 말하는 소리가 났다.

“썩 예쁜 건 아니지만 이만하면 흡족하군. 그럭저럭 선물거리가 되겠어.”

초록 옷을 입은 동자가 승냥이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잔금인 다섯 개의 금 조각이 승냥이의 앞발에 떨어졌다. 승냥이는 잠시 그것을 바라보다 씨익 웃었다. 그러고선 넙죽 앞으로 엎드려 절을 했다.

“좋은 물건을 택하셨습니다, 손님.”

날카로운 이빨을 번득이며 웃던 승냥이가 아직 근처에 있던 멧돼지머리를 향해 말했다.

“보시오, 열 냥이라 하지 않았소?”

멧돼지머리는 큰 눈을 끔벅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윽고 수레의 뒤쪽에 소녀는 초록 옷의 동자와 함께 걸터앉았다. 마부의 낮은 혀 차는 소리에 당나귀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수레가 천천히 멀어져 갔다. 소녀가 수레를 보고 서 있는 승냥이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 수레가 더 멀어지기 전에, 문득 반짝하고 하늘을 가른 무언가가 소녀를 향해 날아왔다. 소녀가 그것을 잡았다.

잣 모양의 금 조각이 하나.

“행운을 빈다, 꼬마.”

부루퉁한 작별 인사를 던져주고 돌아서며 다시 담뱃대를 당겨 잡는 승냥이의 뒷모습을 본 뒤 소녀는 계집애들이 갇혀 있는 우리 쪽을 보았다. 떠나는 그녀를 쳐다보는 어린 계집애들의 눈동자들을 보면서 소녀는 아이답지 않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대로 외면하듯 눈길을 거두어 금 조각을 눈에 갖다 댔다. 그리고 고개를 젖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안개 낀 푸른 밤 속에 잣 모양의 노란 별이 반짝거렸다.

수레는 새벽이 다 되도록 덜컹거리며 길을 갔다. 앉아 있는 게 불편하기도 하고 졸음을 참기가 힘들기도 해서 소녀는 무척이나 고생을 했지만 옆에 앉아 있는 초록 옷의 동자는 내내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다 희붐히 밝아진 하늘에 마침내 해가 나기 시작했을 때, 깜빡 졸다가 눈을 뜬 소녀는 옆자리에 동자가 아닌 새 한 마리가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걸 보게 되었다. 엷은 회갈색의 새는 미간에 마치 안료를 발라놓은 듯 선명한 초록 반점이 있었다. 그러나 그 반점만 빼면 단순한 휘파람새였다.

휘익, 하고 자그마한 소리로 소녀가 휘파람을 불자 새는 퍼뜩 놀란 모습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 소녀를 보고는 앙증맞도록 작은 눈을 깜박거렸다. 소녀가 다시 휘파람을 불어보았다. 새는 고개를 갸웃하고는 갑자기 날개를 퍼덕거려 날아올랐다. 하늘에서 가볍게 원을 그린 새가 좁은 길의 양측으로 울창하게 늘어서 있는 대나무 숲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새가 사라진 쪽으로 시선을 두고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는 소녀에게 문득 수레 안의 노부인이 헛기침 소리와 함께 말을 건네 왔다.

“먹이를 잡으러 간 게다. 배가 차면 돌아올 거다.”

“저 새는 무얼 먹습니까?”

“글쎄다. 애벌레며 나무 열매……. 어쨌든 죽림에는 먹을 게 많겠지.”

“부럽네요.”

“배가 고프냐?”

“으음. 우선은 졸립니다.”

하품을 늘어지게 하면서 소녀는 기지개를 켰다. 그 바람에 하마터면 떨어질 뻔했지만 표정엔 그리 놀란 기색이 없다. 수레 안의 노부인은 그 모습을 보기라도 한 듯 웃었다.

“넌 앞으로 어떻게 될지 걱정도 되지 않느냐?”

“걱정해야 하는 일입니까?”

“무서운 소굴로 가는 중일지도 몰라. 가자마자 웬 괴물의 밥상에 오르면 어쩔 테냐.”

“어쩔 수 없지요. 이번 세상엔 잘 먹히고, 다음 세상엔 보다 강하게 태어나서 나도 먹고 살아야지요. 그런데 한 번 먹고 말 셈치고는 너무 비싼 값을 치르셨습니다.”

천하 태평한 대꾸에 노부인은 더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그래, 어쩌다 그런 개에게 잡혀 팔리는 신세가 됐느냐?”

“글쎄요, 어쩌다 그렇게 됐을까요.”

소녀는 다시금 천하 태평한 대꾸를 하다가, 자못 건방져 보일까 걱정이 되었는지 금세 덧붙여 말했다.

“실은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는 저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어느 날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아재한테 밥 얻어먹는 신세였거든요.”

여전히 유심히, 휘파람새가 날아간 죽림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소녀는 말을 이었다.

“같이 있는 애들은 전의 집 생각이 나는지 매일 울기 바쁜데 저야 뭐 비교할 거리가 있어야 슬프고말고 하지 않겠어요. 통 울 일이 있어야 울죠. 아, 한 번 있다. 울기는 진짜 많이 우는데 노래를 잘해서 아재가 안 팔고 데리고 있던 애가 있었습니다, 걔가 작년 여름에 홍역을 앓다가 죽었지요. 그 아이는 죽을 때도 울던데. 네, 하여간 그때 울었습니다. 그 애가 죽으면서 자기 죽으면 울어달라고 해서 말이지요.”

멀뚱멀뚱한 눈이 조금 젖어드나 싶더니, 소녀는 크게 하품을 했다. 그러곤 배를 썩썩 문질렀다. 배가 고프긴 고픈 모양이다.

“울어달라 해서 울었어? 동무가 죽어서 슬퍼서 운 게 아니라?”

“음. 물어보시는 뜻을 잘 모르겠습니다. 앞의 말이랑 뒤의 말이 뭐가 다릅니까?”

소녀가 미간을 찡그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슬쩍 뒤를 돌아보는 오른쪽 옆얼굴을 보면서 수레 안의 노부인이 중얼거렸다.

“정말 모른다면 할 수 없는 일이지. 어차피 인간의 아이라는 걸 내 잠시 잊었구나.”

한동안 다시금 말발굽과 수레바퀴 소리만 주위를 채웠다. 가도 가도 끝없이 대나무 숲이 이어지는 길이었다. 아주 잠깐 방심해 버리면 앞뒤의 분간이 안 되지 않을까 싶은 비슷한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소녀가 불현듯 맑은 휘파람을 연이어 불었다. 저 멀리서 그 소리에 응하듯이 가느다란 새의 지저귐이 들려왔다. 그 소리를 또 소녀가 흉내 내었다. 크게 힘들이는 기색도 없이, 소녀의 입을 통해 새의 것과 다를 것 없는 지저귐이 흘러나왔다.

“그런 건 어디서 배웠지?”

노부인의 물음에 소녀는 머리를 흔들었다.

“흉내만 내는 겁니다. 듣기에 좋다 싶으면 그냥 다 따라 해요.”

“노래도?”

“아, 죽은 애가 부르는 걸 따라 하는 거예요. 그 애, 나중에 크면 정말 미인이 됐을 텐데. 홍역에 걸린 게 나였으면 좋았을걸.”

“그러다 네가 죽었으면 어쩌려고?”

“걔는 커서 도망칠 수 있게 되면 기생이 될 거라고 했었습니다. 저는 커서 뭘 하고 싶다는 생각 같은 걸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누군가 죽어야 한다면 제 쪽이 더 나았겠지요?”

수레 안의 노부인이 혀를 찼다.

“너는 별난 녀석이로구나.”

그리고 얼마쯤 뜸을 두었다가 물었다.

“인간의 아이야, 이름이 어찌 되느냐?”

“그런 거 없습니다.”

“없어?”

“없어요.”

“허. 그럼 널 뭐라고 부르느냐?”

“꼭 뭐라고 불러야 하나요?”

소녀의 대꾸에 노부인 쪽이 할 말을 잃었다. 그러다 반쯤 웃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내가 천치를 산 모양이군.”

그 말이 들렸을 법한데도 이렇다 하게 발끈하지도 않고 앞쪽을 바라보던 소녀는 문득 반색을 하며 웃었다.

“아, 온다, 온다.”

휘파람새가 돌아왔다. 가느다란 부리에는 흰 나비가 한 마리 물려 있었다. 소녀의 옆에 앉은 휘파람새가 부리를 소녀를 향해 내밀었다.

“우와, 착하다. 나 먹으라고 주는 거야?”

새가 소녀의 손에 놓아둔 나비는 축 늘어져 있다가 갑자기 꿈틀하더니 날개를 팔랑거렸다. 새가 부리로 다시 잡으려는 것을 소녀가 가로막았다.

“괜찮아. 어차피 나는 못 먹어. 그러니 놓아주자.”

소녀가 두 손을 들어 나비를 가볍게 던져주자 나비는 잠깐 동안 갈팡질팡하다가 마침내 하늘에 흰 점이 되어 날아갔다.

“날 수 있는 건, 날다가 죽는 게 좋아.”

소녀가 말했다. 그러곤 옆에 있는 휘파람새를 돌아보며 웃었다.

“너도 그편이 좋겠지?”

이윽고 수레는 검은 기와를 인 저택의 솟을대문이 보이는 곳에 멈추었다. 심산유곡이란 문자를 풍경으로 그려낸 듯한 녹음의 한복판에 덩그마니 존재하는 한 채의 장원은 그 자체로 하나의 별세계이다.

밤을 새워 길을 오면서 소녀는 깜빡깜빡 졸았던 시간을 제외하면 거의 정신을 차리고 있었지만 야시를 떠난 이래 본 것은 하늘과 숲뿐이었다. 집은 고사하고 누군가 사는 이가 근처에 있다는 흔적의 불빛조차 본 적이 없다.

수레에서 훌쩍 뛰어내린 소녀는 땅바닥이 실제인지 확인하듯 발을 쿵쿵 굴러보고 한 바퀴 주변을 돌아보았다.

하늘을 가릴 듯이 빽빽한 침엽수림 속에서도 저택 주위를 빼곡히 감싼 것은 그 초록빛이 유난히 선명한 대나무들이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는 계곡물 소리와 함께 대나무 숲을 지난 바람소리가 어울려 계절을 잊게끔 했다. 그 바람에 실린 공기가 유난히도 달고 맑았다.

“시원한 곳이네. 겨울이면 엄청 추울까.”

새로 도착한 곳에 대한 일말의 두려움도 없이 팔자 좋은 혼잣말을 하는 소녀의 옷자락을 누군가 잡아당겼다. 돌아보며 소녀는 놀란 듯 중얼거렸다.

“어느새.”

휘파람새가 다시 초록 옷의 동자가 되어 있었다. 눈을 깜박거리면서 동자가 입을 뻥긋거렸다. 어서 가자는 뜻인가 보다.

“말은 못해?”

“그런 일까지는 못한다. 평범한 새일 뿐이니까.”

소녀의 질문에 동자가 아닌 뒤쪽의 노부인이 대꾸했다. 노부인은 마부의 부축을 받으며 수레에서 내려선 뒤였다. 처음으로 제대로 얼굴을 보나 싶었는데 노부인이 쓴 외출용 유모의 큰 차양에 드리워진 짙은 보랏빛의 망사는 쉬이 그 안쪽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평범한 새가 변신을 합니까?”

“내가 기르는 게 남다를 뿐이지.”

그 말에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가 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저도 새로 바꾸어놓을 수 있습니까?”

노부인은 마부에게서 지팡이를 건네받고 천천히 돌아서며 대답했다.

“하려고 한다면야. 하지만 너는 내가 기를 게 아니구나.”

소녀는 자신이 선물용이란 말을 얼핏 들었던 기억이 났다.

“그러고 보니 전 무얼 위한 선물입니까?”

“참으로 빨리도 묻는구나.”

그런 가벼운 대꾸만 남기고 소녀의 질문에 대한 답은 해주지 않은 채 노부인은 걸음을 옮겼다. 마부가 노부인의 앞에서 걷고 초록 옷의 동자가 노부인의 뒤를 종종거리며 따라갔다.

세 명의 행렬을 뒤에서 지켜보면서 소녀는 그들이 참으로 조용한 일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마부가 말하는 소리 역시 전혀 듣지 못했다. 어쩌면 저 마부 역시 어떤 평범한 무엇일지 모르겠다고 짐작했다. 그런데 그게 딱히 무엇인지 궁금한 것도 아니었다.

노부인이 말한 것을 빌자면 거의 ‘천치’에 가까운 무심한 태도로 소녀는 하품을 한 번 하고는 조용한 행렬의 맨 뒤를 맡았다.

이쪽에서 딱히 두드리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는데도 솟을대문이 열렸다. 그 안으로 들어서면서 소녀는 노부인을 맞으러 나온 기묘한 화장을 한 하녀 둘을 보았다. 소라껍데기 모양으로 틀어 올린 머리에 우스꽝스럽도록 허연 얼굴은 눈썹까지 덧칠하여 보이지 않건만 양 뺨은 또한 핏물을 바른 듯 벌게서 소녀는 움찔하며 놀랐다. 흡사 귀신처럼 보였던 것이다.

“모처럼 어려운 걸음을 해주셨는데…….”

“모처럼 어려운 걸음을 해주셨는데…….”

두 하녀는 마치 쌍둥이처럼 동시에 같은 말을 내뱉었다.

“큰 주인께서 아니 계시어 대접이 소홀할 것이 걱정입니다.”

역시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노부인은 고개를 슬며시 돌려 중문 쪽을 건너다보며 말했다.

“청작도 없을 테고. 작은 주인들은?”

“휘 도련님은 서쪽으로 출타하신지 꽤 여러 날 되셨습니다.”

“료는?”

“작은도련님은…….”

목각인형처럼 누가 불러준 말만 읊는 것 같던 두 하녀의 얼굴에 표정이랄 게 떠올랐다. 둘은 서로를 쳐다보면서 말하길 주저했다. 노부인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들었다.”

노부인이 걸음을 뗐다. 마부와 동자는 그대로 멈춰서 있다. 소녀는 이쪽과 저쪽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이쪽에 남아 있는 쪽을 택했다. 하지만 얼마쯤 가던 노부인이 뒤를 돌아보며 불렀다.

“따라오너라.”

소녀는 마부와 동자를 쳐다보았다. 그들은 노부인의 말을 들었다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고 서 있다. 소녀가 노부인을 돌아보니 이미 노부인은 다시 걸음을 뗀 후이다. 그러나 이쪽에선 움직이는 자가 아무도 없다. 두 하녀조차 노부인의 뒷모습을 보고만 있다. 소녀는 고개를 갸웃해 보고는 이내 마음을 결정해 노부인에게 달려갔다.

저택의 가장자리를 두른 담 안쪽으로 협죽도가 빽빽이 늘어서 또 하나의 담을 이루고 있었다. 노부인은 모퉁이가 나올 때마다 왼쪽을 택하면서 그 넓이를 헤아릴 수 없는 집을 거침없이 걸어갔다. 밖에서 보고 얼추 상상했던 집의 규모와 걷는 동안 몸으로 체감하게 되는 규모가 크게 다른 것 같아 소녀는 어리둥절해졌다. 더욱이 그렇게나 큰 집인데도 가면서 기척을 내는 무언가와 마주치는 일도 없다. 설마 이 큰 집에서 부리는 이가 그 두 하녀뿐일까 싶은데도 말이다.

소녀의 두리번거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곧 소녀는 시선을 머리 위쪽의 하늘에 두고 그저 관성적으로 노부인을 따라갔다. 하늘이 유난히도 파랗고, 시려 보였다. 가붓하게 흩어진 구름 흔적조차 없다. 오는 길에 그렇게 자욱했던 안개도 여기엔 자취도 없다. 그 하늘에 떠 있는 해는, 특유의 눈부심이 어째선지 희미해서 달인가 싶을 정도였다.

이상한 곳이다.

무던하기 짝이 없는 소녀조차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다 소녀가 보는 하늘에 암녹색의 장막이 드리워졌다. 아차, 하여 멈춘 것이 다행이었다. 노부인이 이미 걸음을 멈추어서 한 발만 더 갔으면 그대로 부딪힐 뻔했다.

앞을 본 소녀는 두 가지 것에 놀라 눈을 크게 떴다. 하나는 방금 소녀의 하늘을 가릴 정도로 높고, 넓게 가지를 뻗어 빽빽한 잎을 달고 있는 향나무의 존재 때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 향나무 앞에 팔짱을 끼고 선 거인의 존재 때문이었다.

수령이 천 년쯤 되면 나무조차 영기를 뿜어낸다. 소녀가 보고 선 향나무는 영기 때문이라고 간단히 표현할 수 없는 강렬한 이질감을 안겨줬다. 그러고 보니 주변 공기의 밀도 자체가 달랐다. 어째서 향기가 없을까 의아해하던 소녀는 이미, 이 집 앞에서 내릴 때 좋다고 생각했던 그 달큼한 공기가 바로 이 나무 때문이었음을 깨달았다. 온 사방에 좋은 향이 배어 정작 그 근원지에 이르러 특별함을 느낄 수 없을 정도라니.

그런 향나무를 호위하는 수문장처럼 버티고 선 남자는 키가 두 길 가까이 된다. 한마디로 보통 인간 남자의 두 배 정도 되는 키에, 몸집은 네 배에 가깝다. 소녀는 놀란 눈으로 중얼거렸다.

“멋대가리 없이 크네.”

소녀의 말에 갈기처럼 하늘로 치솟은 거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녀를 내려다보는 툭 불거진 눈에서 불똥이라도 튈 것 같다. 인간이 아닌 존재라 해도 이 사내의 면전에서라면 겁을 집어먹기 마련인데 소녀는 목이 아플 정도로 빤히 사내를 올려다보며 자못 신기해할 따름이다.

“우송. 료를 보러 왔다.”

노부인의 말에 우송의 눈동자가 천천히 그쪽을 향했다. 어쩐지 시틋한 표정으로 우송이 입을 열었다.

“깨우지 말라셨습니다.”

목소리는 큰 체격에 걸맞지 않게 가늘고도 힘이 없다. 너무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라 소녀는 잠시 다른 누군가가 대신 말해준 게 아닌가 하고 주위를 살폈다. 우송의 얼굴에 붉은 기가 돈다. 창피한 것이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이 우송의 원한을 샀다는 것을 소녀는 짐작도 못하고 여전히 주위에 여자애가 숨어 있는 게 아닐까 찾고 있다.

“며칠 되었느냐?”

노부인이 물었다. 우송은 몇 번 눈을 깜박이다가 말했다.

“큰도련님이 서쪽으로 가신 날 저녁부터입니다.”

“휘가 떠난 날은 언제고?”

“초승달이 떴다 지고 두 밤 뒤입니다.”

“저런. 이레나 되었느냐. 이러니 애가 기운이 있을 턱이 없지.”

“주인님의 명령입니다.”

더더욱 시들해진 목소리로 우송이 중얼거렸다. 노부인은 우송을 지나쳐 몇 걸음 옮기다가 바닥의 흙이 다른 부분보다 봉긋이 튀어나온 지점에 이르러 발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료야. 료야. 할미가 왔다.”

땅을 내려다보는 노부인의 시선 끝에 소녀의 시선도 따라가서 멈추었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노부인이 짐짓 노한 투로 다시 말했다.

“집에 다른 이가 없으니 주인 노릇을 해야 할 녀석이 팔자 좋게 늘어져 있구나. 내게도 이러니 다른 이들에겐 오죽하리. 내 다시는 네놈을 보지 않을 테다.”

그리고 노부인이 막 돌아서려는 때에, 가볍게 땅이 흔들렸다. 소녀는 눈앞의 땅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무언가 나타날 것이다. 땅속에 사는 양과, 개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다. 그들은 아예 앞을 못 본다는 소리도 있었고, 눈이 하나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어떤 쪽일까 생각하며 눈을 빛내는 소녀의 눈앞에 불쑥 땅을 헤치며 나타나는 흰 손이 보였다. 손. 사람의 것처럼 다섯 개의 손가락이 달린 앙상한 손이었다. 기대에 완전히 어긋나는 광경이었고, 어떤 의미로 소녀에겐 무섭기도 했다. 소녀는 뒷걸음질 치다가 얼른 노부인의 뒤로 숨었다.

우송이 다가와 그 손을 잡아 앞으로 당기자 흙속에서 새하얀 무언가가 몸을 일으켰다.

작은 아이? 소녀의 눈이 좀 더 커졌다.

두 발로 땅을 딛고 서면서 몸을 흔들어 흙을 털어내는 아이는 작고도 하얗다. 회색빛이 돌 정도로 흰 피부에 입고 있는 옷은, 하얀 깃털만 모아 지어낸 우의(羽衣)였다. 다만 그 모든 흰빛 때문에 더욱 부각되는 까마귀처럼 검고도 푸른 머리카락이 치렁거리며 허리께까지 흘러내렸다.

“몽롱해서 꿈인가 생시인가 한 걸 가지고 일일이 화내지 마세요. 일부러 화난 척이라면 더더욱 마시고요. 솔직하지 못한 것들은 차고 넘쳐요.”

야멸친 말투를 툭툭 쏟아내는 아이의 얼굴은 몹시도 앳되다. 그러나 힐끗 눈을 치켜뜨는 큰 눈매와 빛을 받지 못해서인지 본디 빛깔인지 모를 회자색의 얇은 입술은 놀라울 만큼 요염한 구석이 있다. 특히 눈동자. 그 머리칼이 현(玄)에 가까운 먹빛인데 비해 눈동자는 묘하게 밝은 색으로 일렁거렸다.

소녀는 그 눈을 보려고 약간 더 옆으로 머리를 뺐다. 아이의 눈이 소녀에게 머무른 것도 그때였다.

한 번, 두 번 나른하게 아이의 눈꺼풀이 움직였다. 그럴 때마다 감추어졌다가 다시 드러나는 큰 눈동자를 소녀는 홀린 듯 바라보다가 저도 모르게 웃었다.

“참말이지 미인이네.”

아무 생각 없이 뱉어낸 혼잣말이 들렸던지 아이의 표정이 일순 굳었다. 얇게 다문 입술로 소녀를 직시하면서 아이가 노부인 쪽으로 다가왔다.

“이것은 뭡니까, 할머니?”

아이는 소녀에게서 시선을 거두며 물었다.

“오랜만에 조카손자들을 보러오는 길인데 빈손으로 올까? 야시에서 찾아낸 선물이란다.”

“휘에게?”

“휘에게 줄 수도 있지. 왜. 탐나느냐?”

“괜찮다면 제게 주십시오.”

아무리 봐도 좋은 뜻으로 달라는 표정이 아니다. 어련무던한 소녀도 어딘지 불안하여 노부인의 옷자락을 잡으며 슬쩍 뒤로 숨었다. 노부인은 유모를 위로 걷어 올리고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건 사람이라 쉽게 죽는단다. 상냥한 아이에게 주고 싶구나.”

아이가 싱긋 웃었다. 두 손을 모으며 노부인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

“상냥하게 대해 주지요.”

노부인의 입가에 엷은 웃음이 감돌았다. 손을 뻗어 아이의 뺨을 가볍게 만져줄 때 손톱집에 매달린 사슬들이 찰랑거리는 소리를 소녀는 들었다. 손가락은 전혀 닿지 않고 손톱집 끝으로만 살며시 건드리는 기묘한 접촉이었다.

“죽이지 않겠다 약속하느냐?”

“물론입니다.”

노부인의 은근한 미소는 여전했으나, 쉽사리 주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이는 빤히 소녀를 쏘아보았다. 소녀는 생각했다.

‘거짓말이야.’

이윽고 노부인이 말했다.

“그렇다면 네게 주지.”

소녀의 눈에 아주 잠깐 실망의 기색이 비쳤다. 그것을 아이도 보았다. 아이는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환한 미소임에도 불구하고 차디차다.

“우송!”

“예, 주인님.”

우송이 성큼 다가서는 육중한 움직임에 땅이 가벼이 진동했다. 무거우나 재빨랐다. 아이는 소녀의 시선을 붙잡은 채 아주 즐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묻어버려.”

“예!”

놀라고 어쩔 틈도 없이 덥석, 소녀는 들어 올려졌다. 소녀의 허리를 움켜쥔 우송의 손은 오히려 공간이 남아돌았다. 그대로 우송은 휘적휘적 걸어 아까 아이가 빠져나온 흙더미 속으로 소녀를 내던지려 했다.

“이런. 죽이지 않겠다 하지 않았느냐?”

노부인의 말에는 조급함이라곤 전혀 없었다. 아주 약간의 언짢음조차 비치지 않았다. 아이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거짓말이었습니다.”

터무니없을 지경으로 산뜻하다. 소녀는 허공에 매달려 지금 당장이라도 흙에 파묻히게 된 상황에서도 거꾸로 보이는 아이의 얼굴을 보며 기가 찬 웃음을 지었다.

“주위에 솔직하지 못한 것들이 차고 넘치는 것도 당연하네.”

아이가 그 소리에 소녀를 돌아보았다. 그런 아이의 어깨를 부드럽게 두드리며 노부인이 말했다.

“료야. 실은 처음부터 널 주려고 사온 거란다. 네 마음에 들지도 모른다 싶어서.”

“어디가요?”

“노래를 잘하더구나.”

“흐응.”

“다른 건 네가 찾아보렴. 아주 잠깐이면 알아채게 될 게다.”

노부인의 부추김에 아이는 미간을 찡그렸다가 소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우송이 아이가 잘 볼 수 있게끔 손의 위치를 조금 낮추자 소녀의 얼굴과 마주볼 수 있게 되었다. 머리카락이 아래로 처지면서 소녀의 감추어진 왼쪽 얼굴도 훤히 드러났다. 아이는 일그러진 미소를 지었다.

“흉측해라.”

그 뜻과 어울리지 않게 말투는 부드러웠다. 아이가 소녀의 왼쪽 얼굴에 손을 댔다. 아무 망설임도 없는 아이의 접촉과 달리 소녀는 얽은 피부에 닿는 아이의 손이 무섭게 차가워서 움찔 몸을 사렸다. 그때 아이의 눈이 살짝 커졌다.

“너, 향기가 나는구나.”

소녀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아이가 뒤를 돌아보자 노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또 하나 있다.”

노부인의 말에 아이가 다시 소녀를 돌아보더니 두 손으로 소녀의 얼굴을 잡았다. 그 손이 진정 차갑다. 살아서 붉은 피를 몸에 담은 존재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싸한 차가움이었다.

“따뜻해.”

아이는 손에 닿은 소녀의 온기에 경이롭다는 듯 중얼거렸다. 소녀는 얼굴에 닿은 아이의 손이 너무 싫어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살아 있는 것이 따뜻한 건 당연하잖아.”

아이는 그렇게 말하는 소녀를 진귀한 것이라도 보듯이 쳐다보다가 중얼거렸다.

“우송. 내려놔.”

당장에 우송이 소녀를 잡고 있던 손을 풀었다. 땅으로 떨어진 소녀가 엉기적거리며 일어섰다. 그리고 아이를 마주보는 순간, 찰싹, 뺨을 얻어맞았다. 분하다기보다는 어이가 없어서 다시 아이를 쳐다보았다가 다시 한 번 맞았다.

“똑바로 쳐다보지 마. 내가 그러라고 허락하기 전엔.”

잠깐, 소녀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곧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고 고개를 숙였다. 끄덕끄덕 알아들었다는 표시를 하기 무섭게 아이가 소녀의 턱을 잡아 올려 또 한 대 때렸다.

“벙어리가 아닌 이상, 내 말에 대한 대답은 제대로 해. 알겠어?”

“……예.”

더할 나위 없이 벌게진 얼굴. 하지만 소녀는 아이가 말한 대로 눈을 내리깔고 대답했다.

누군가에게 팔려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바 있다.

‘착한 주인이란 건 없어. 하지만 편한 주인은 있지. 편한 주인이, 바로 좋은 주인인 거야.’

승냥이가 해준 말이다. 소녀는 다짐했다. 요령껏, 잘해 봐야지.

“아직도 날 보고 미인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니오, 라고 대답하려다가 소녀는 마음을 바꾸었다. 요령껏, 요령껏.

“예.”

다시 아이의 손이 뺨으로 날아왔다. 고분고분히 맞은 다음 소녀는 눈을 내리깐 채로 중얼거렸다.

“솔직하지 않아도 상관없으시다면 달리 답하겠습니다.”

또 손이 날아올지 모른다고 각오했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아이가 그녀의 가슴팍을 밀쳤다. 소녀는 일부러 버티지 않고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주저앉았다. 아이의 목소리가 위에서 떨어져 내렸다.

“거짓말 따위를 하면 갈가리 찢어서 까마귀밥 신세가 되게 해줄 테다.”

홱 돌아서서 아이가 자박자박 걸어갔다. 아이의 뒤를 우송이 따른다. 소녀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부른다면 일어나야겠지만, 부르는 소리는 끝내 들리지 않았다. 대신 노부인이 다가와 소녀의 앞에 손을 내밀었다. 소녀는 그 손을 잡지 않고 스스로 일어섰다. 엉덩이에 묻은 흙을 터는 소녀에게 노부인이 물었다.

“내가 원망스럽니? 말려주지 않아서?”

“아닙니다. 방관하는 게 때로는 돕는 일이 되는 경우가 있다지요. 어차피 떠나실 분이니 남겨지는 건 저 혼자이고요. 원망할 일이 무에 있겠습니까.”

“총기가 있구나.”

영양가 없는 칭찬이었지만 어쨌든 소녀는 웃음으로 답했다. 노부인은 걷어 올린 차양 너머로 주름진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맑은 눈으로 소녀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저래도 료는 상냥한 면이 있단다.”

소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아마 얼굴에 미덥지 못한 표정이 드러났던 모양이다. 노부인이 덧붙여 말했다.

“자기 것에 한해선 말이다. 우송을 보았지? 그 커다란 녀석은 오로지 료의 말만 듣고 따른단다. 그래서 료는 우송에겐 상냥하지. 너는 그 하나만 명심하면 이 집에서 지내는 게 한결 수월해질 거다.”

마치 소녀가 알아듣지 못했을까 봐 걱정하는 것처럼 노부인이 거듭 강조했다.

“눈과 귀를 늘 료에게 열어두렴. 보이는 것도 들리는 것도 다 료밖에 없는 것처럼. 할 수 있겠지?”

소녀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엉뚱한 대답을 했다.

“저리 예쁜데 여자애가 아닌 게 유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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