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밤보다 더한 짓-91화 (90/94)

추가 외전 4화

예쁘네요…

“네?”

영준의 허를 찌르는 질문에 하은은 당황했다.

나 왜 이렇게 화가 난 거지?

스스로도 모르겠어서 하은이 눈동자만 굴리는데, 영준이 또 물었다.

“내가 키스한 게 화가 나는 겁니까? 내가 연락 안 한 게 화가 나는 겁니까? 그것도 아니면….”

영준이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내자, 하은은 발끈했다.

“그것도 아니면 뭐요? 뭐? 지금 무슨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아닙니다.”

“왜 또 말을 하다 말아요?”

“아무튼 그날 일은 미안합니다.”

“미안하다면 다예요?”

“그럼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말만 해요. 그쪽이 원하는 대로 할 테니까. 한 대 때릴래요?”

“제가 그쪽을 왜 때려요?”

“그럼 제가 뭘 할까요?”

하은이 아무 말도 안 하고 빤히 쳐다만 보고 있자, 영준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말해요. 어떻게 하면 되는지.”

진심이 느껴지는 영준의 말에 하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말하면요?”

“들어줄게요.”

“내가 뭘 말할 줄 알고요?”

“뭐든요.”

“진짜?”

“네.”

뭐든 해주겠다는 그의 말에 하은은 심장이 살짝 일렁였다.

고개를 숙인 채 티 안 나게 숨을 고른 하은은 고개를 들어 영준을 바라봤다.

“뭐든 한다고 했죠, 진짜?”

“네.”

“뭐든?”

“네….”

하은이 자꾸만 되묻는 게 살짝 찝찝해진 영준이 그녀를 또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뭐요?”

“이상한 건 안 됩니다.”

“네?”

“이상한 건 안 된다고요.”

“뭐든 된다더니….”

“뭐든 되는데… 이상한 건 안 됩니다.”

하은이 기가 막혀 헛웃음을 짓고는 팔을 꼬아 팔짱을 꼈다.

“어떤 게 이상한 건데요?”

“……?”

“어떤 게 이상한 거냐고요.”

“뭐 그런 거 있잖아요. 이상한 거….”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요.”

“됐습니다. 알겠으니까 말해요.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지.”

영준이 재촉하자, 하은은 눈을 들어 그를 빤히 바라봤다.

아주 여유로운 몸짓과 눈빛으로.

하은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뚫어지게 쳐다보기만 하자, 영준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이게 뭐라고 긴장이 되는 건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도통 하은의 생각을 읽을 수가 없자, 영준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잠깐의 적막이 흐르고, 여전히 하은이 바라만 보고 있자, 영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왜 아무 말도 안 해요?”

“나중에요.”

“네?”

“나중에 말할게요.”

“……?”

영준이 미간을 구기자, 하은은 웃음을 참으며 새침하게 말했다.

“갑자기 물어보면 생각이 안 나잖아요. 나중에 말할 테니까 기다려요.”

“네? 기다리라고요?”

“네, 기다려요. 그럼 저는 이만.”

하은이 자리를 떠나려고 하자, 놀란 영준이 그녀를 붙잡았다.

“잠깐만요.”

“왜요?”

“이렇게 가는 겁니까?”

“그럼요? 나랑 뭐 더 하고 싶은 거 있으세요?”

그 말에 순간적으로 하은과 나눴던 키스의 감촉이 떠오르자, 영준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네?”

“나랑 뭐, 하고 싶은 거 있으시냐고요.”

“무슨….”

영준은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정색했다.

“아뇨. 아무것도요. 뭐 더 하고 싶은 거 없는데요.”

“그래요, 그럼.”

하은이 다시 뒤돌아 떠나려고 하자, 영준이 또 붙잡았다.

“저기요.”

“또 왜요?”

“…언제까지 기다려요?”

“글쎄요.”

“……?”

“잘못하셨으면 기다리셔야죠. 사람 마음 강요하는 거… 싫어하시잖아요, 누구보다?”

“그건….”

전에 자신이 했던 말이기에 영준은 더 반박하지 못한 채 입술을 깨물었고, 하은은 여유롭게 웃어 보였다.

“그럼 저는 정말 갑니다.”

“저기요!”

“또 왜요? 진짜 저랑 뭐 더 하고….”

“아뇨! 그게 아니라… 신랑 신부 안 보고 가요?”

그 말에 하은은 입꼬리를 씨익 올리고는 고개를 까딱였다.

“전 갈게요.”

하은이 쿨하게 떠나자, 영준은 그녀를 또 붙잡지 못하고 힘없이 그 뒷모습을 바라봤다.

왜 아쉽다는 생각이 드는 거지?

* * *

“자, 한 번만 더 찍습니다.”

준비된 콘셉트로 웨딩 촬영을 마쳤지만, 지아와 영지는 다시 카메라 앞에 섰다.

이왕 드레스도 입고 전문가의 손길로 메이크업도 했겠다, 이런 기회는 또 없을 것 같아 우정 사진을 찍기로 한 거였다.

“영지야, 웃어.”

지아가 복화술로 말하자, 영지도 복화술로 답했다.

“웃고 있거든? 너나 좀 웃어.”

“나 웃고 있는데?”

눈을 마주친 지아와 영지는 서로의 어색한 미소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사진작가는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댔고, 그 모습을 보며 영준은 미소를 지었다.

“저것들이 언제 커서….”

영준의 옆으로 슬쩍 다가온 강현은 그를 어깨로 살짝 밀었다.

“형, 누가 보면 친정아버지인 줄?”

“내가 아빠였으면 너 사위로 안 뒀어, 인마.”

“……?”

“잘해. 전처럼 지아 힘들게 하면 넌 내 손에 죽어.”

“당연한 소리를… 말 안 해도 잘해줄 겁니다.”

“지켜볼 거야.”

영준은 강현을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노려보고는 다시 지아와 영지에게 시선을 돌렸다.

금세 또 아빠 미소를 짓고 있는 영준을 보며, 강현은 고개를 젓고는 함께 미소를 지었다.

그때, 지석이 강현에게 다가왔다.

“본부장님, 다음 스케줄….”

“문 실장, 잠깐… 저 촬영 끝나고 얘기하지. 금방 끝날 텐데….”

“네, 뭐….”

무심결에 강현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지석은 이내 눈을 키우고 동작을 멈췄다.

“……!”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있던 지석은 저도 모르게 혼잣말했다.

“예쁘네요….”

“지아야 늘 예쁘지.”

강현은 지석이 당연히 지아에게 한 말인 줄 알았지만, 그의 시선은 다른 곳에 꽂혀 있었다.

“소피 님….”

처음 보는 영지의 꾸민 모습에 지석은 심장이 일렁였다.

그 순간, 고개를 돌리던 영지와 눈이 마주치자 지석은 얼른 시선을 피했다.

티 나게 고개를 돌리는 것도 모자라 밖으로 나가는 지석을 보고 영지는 기분이 팍 상해 미간을 구겼다.

“뭐야? 저 사람?”

영지가 입을 삐쭉이고 있자, 지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래?”

“아, 아니야. 아무것도….”

영지는 지석의 뒷모습을 찌릿 째려보고는 다시 포즈를 취했다.

*

“도와줘서 고마워.”

강현과 지아는 웨딩 촬영이 끝나고, 지석과 영준, 영지에게 고맙다는 의미로 치킨집에서 자리를 마련했다.

기순은 역시나 메뉴판에도 없는 음식들까지 만들어가며 상다리 휘게 한 상 차렸고, 맛있는 음식과 함께하는 술자리는 금세 무르익었다.

어느 정도 취기가 올라가자, 눈치를 살피던 강현과 지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린 엄마한테 좀 다녀올게.”

“어, 그래.”

강현과 지아는 주방에서 일하고 있는 기순에게 다가갔다.

“엄마!”

“어머니!”

주방을 찾은 강현과 지아를 보며, 수용은 기순의 옆구리를 툭 밀었다.

“얼른 나가봐. 한가해져서 나 혼자 해도 되니까.”

“그래도….”

“애들 저렇게 세워둘 거야?”

기순은 어쩔 수 없이 앞치마를 풀고는, 못 이긴 척 쪽방으로 향했다.

기순과 함께 쪽방으로 자리한 강현과 지아는 서로 눈치를 보고는 그녀의 손을 한 쪽씩 잡았다.

“엄마.”

“어머니….”

“왜? 왜들 그래? 무슨 할 얘기 있어?”

지아와 강현이 빤히 바라만 보고 있자, 기순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왜?”

“엄마, 아까 왜 그냥 갔어?”

“그거야… 사진 찍을 때 방해되니까.”

기순의 말에 지아는 속상함에 한숨을 내쉬었다.

“엄마, 엄마가 매번 집에도 한 번 안 들어오고 현관 앞에만 음식 두고 가면 내 기분이 어떤 줄 알아?”

“뭘 또 기분이 그래….”

“오늘도 딱 그 기분이었어… 멀게 느껴지는….”

“어?”

“엄마는 내가 불편해? 나 때문에 강현 씨도 불편해진 거야?”

“무슨 소리야… 그럴 리가….”

“지석이랑 하은 언니 대하듯이 대해줄 수는 없는 거야? 두 사람한테는 안 그러잖아.”

“지아야….”

“엄마… 난 엄마 음식이 그리운 게 아니라, 엄마가 그리웠어. 그러니까 음식만 보내지 말고 내 얼굴도 좀 보고 가.”

“알았어. 이 말 하려고 이렇게 분위기 잡은 거야?”

지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강현도 한마디 보탰다.

“어머니.”

“응?”

“지아가 어머니 정말 많이 생각해요. 마음 좀 알아주세요. 그리고 저도 어머니 오래 보고 싶으니까 음식만 두고 가지 마시고요.”

“알았어. 미안해.”

“엄마, 미안하라고 한 말은 아니고….”

“알았다니까.”

지아는 입을 삐쭉였고, 기순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

한편, 술을 마시고 있던 영지는 지석과 시선을 피한 채 연신 술만 들이켰다.

강현과 지아가 술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분위기가 어색해졌는데, 설상가상으로 전화를 받으러 나간 영준이 근처에 친구가 있다며 술자리를 떠나자 분위기는 더 이상해진 상태였다.

어느새 테이블에 지석과 단둘이 남자, 영지는 어색함을 못 이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아는 엄마랑 얘기 길어지는 거 같은데, 저는 이만 가볼게요.”

영지가 가방을 챙기자, 술에 취한 지석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잠깐만요.”

“……?”

지석이 손목을 잡은 채 아무 말도 없이 쳐다만 보고 있자, 영지는 손목을 뿌리치고는 퉁명스럽게 대했다.

“왜요?”

“도대체 진짜 얼굴이 뭐예요?”

“네?”

“당신 진짜 얼굴이 뭐냐고요.”

지석이 따지듯 묻자, 영지는 기가 막혀 그를 찌릿 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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