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 외전 2화
키스하려고
차 안에서 촬영 순서가 되길 기다리고 있던 하은은 책을 읽으며 투덜거렸다.
“이 남자는 왜 이렇게 재미없는 책을 읽는 거야?”
책을 덮고 잠을 청하려고 하는데, 차 문이 열리고 매니저가 차 안으로 고개를 밀어 넣었다.
“누나, 촬영 더 미뤄질 거 같대요.”
“또?”
“아무래도 새벽에나 촬영 가능할 거 같다는데… 댁에서 쉬고 오실래요?”
“그래….”
하은은 눈을 감고 시트에 등을 기댔다. 그러다 이내 눈을 번쩍 떴다.
“아니야.”
“네? 뭐가 아니에요?”
“집 말고 다른 데로 가자.”
하은은 덮어놓은 책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 * *
웨딩 촬영을 위해 드레스와 턱시도를 갖춰 입은 지아와 강현이 대기실로 들어가는데, 뒤따라 걷던 지석이 손목시계를 보고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부회장님, 스튜디오 촬영은 야외 촬영 끝내고 와서 해야겠는데요? 시간이… 해지기 전에 야외부터 하시죠. 신혼여행 스케줄 때문에 촬영 일정을 또 빼기는 힘이 듭니다. 오늘 하루에 다 찍으셔야지.”
침대에서 벗어나는 게 왜 이렇게 힘이 든 건지….
강현을 밀어내던 지아도 결국엔 함께 흥분하는 바람에… 오후에나 웨딩 촬영장에 나타날 수 있었다.
지아는 은근히 눈치를 주는 지석의 눈빛을 외면했고, 강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당신은 괜찮아? 야외 촬영부터 하는 거?”
선택권은 딱히 없어 보이는데 와중에도 강현이 의견을 묻자, 지석의 심기를 더 건드리기 싫었던 지아는 얼른 답했다.
“네, 저는 좋아요.”
지아의 허락이 떨어지자, 강현은 지석을 바라봤다.
“야외부터 하지.”
“그럼 야외 촬영부터 준비를 시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면 준비해서 다시 오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나 셔츠 좀 다른 거로 바꿔줘.”
“네, 알겠습니다. 신 비서? 셔츠.”
율희가 스태프가 전해준 셔츠를 가져오자, 입고 있던 셔츠 단추를 풀던 강현이 지석을 바라봤다.
“셔츠는 알아서 갈아입을 테니까, 모두 나가 줬으면 좋겠는데?”
“네, 알겠습니다.”
지석이 눈짓하자, 대기실에 있던 스태프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태프들이 다 나가고, 지석까지 문을 닫고 나가자 강현은 입고 있던 셔츠를 벗고, 새로운 셔츠를 몸에 걸쳤다.
그 순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지아의 시선이 느껴지자 강현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지아가 화들짝 놀라 시선을 피하자, 강현은 피식 웃었다.
“고개는 왜 돌려?”
“내가 언제요?”
“당신은 봐도 돼.”
“됐어요.”
“보던 거 보라고.”
강현은 셔츠 단추를 채우지 않은 채, 지아의 앞으로 다가갔다.
“보라니까? 당신이 한 건데, 뭐 어때?”
흥분을 이겨내려 깨물었던 그의 어깨에 난 상처를 보는 순간, 지아는 고개를 홱 돌렸다.
“왜 이래요….”
시선을 피하긴 했지만, 뜨겁게 일렁이는 그의 눈빛이 느껴졌다.
그의 노골적인 시선이 몸에 끈적하게 달라붙자, 지아는 민망해져 아예 몸을 돌려 앉았다.
하지만 시선을 외면한다 한들 온몸의 세포마저 그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
아침 내내 몸을 섞고 왔는데도, 그의 시선에 또 달아오르다니….
더 이상 그의 뜨거운 시선을 외면할 수 없던 지아는 체념하듯 그와 눈을 마주쳤다.
“얼른 옷 안 입고 뭐 해요? 왜 그렇게 보는데요?”
“예뻐서.”
강현이 두 팔을 벌렸다.
“이리와.”
지아가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강현은 재촉했다.
“얼른.”
지아가 주위를 다시 살피고 다가가자, 강현이 그녀의 손목을 끌어당겨 와락 품에 안았다.
“어머, 누가 봐요.”
“누가 봐. 우리밖에 없는데?”
그윽하게 내려다보는 그의 눈빛에 또 얽혀들 것만 같아 지아는 그를 살짝 밀어냈다.
하지만 그가 다시 더 세게 당겨 안자 지아는 숨을 삼켰다.
“왜요….”
“키스하려고.”
그 말에 지아는 얼른 손을 올려 입술을 가렸다.
“여기서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은 강현은 지아를 번쩍 들어 안았다.
“악, 내려줘요.”
“싫은데?”
지아를 안은 채 테이블에 기대앉은 강현은 이내 고개를 내려 그녀의 입술을 머금었다.
지아는 그의 입술을 피하려 몸을 뒤로 물렀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럴수록 더 강한 힘으로 옭아매는 그에게 더 진하게 입술을 빼앗길 뿐이었다.
입술이 끈적하게 맞물리고, 질척이는 마찰음이 귓가를 울렸다.
점점 더 깊숙이 그의 숨결이 밀려 들어왔고, 어느새 그의 손이 허벅지를 타고 드레스 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
놀란 지아는 얼른 그의 손을 붙잡고는 고개를 저었다.
지아의 떨리는 눈빛에 더 흥분한 강현은 그녀의 입술을 또 뜨겁게 집어삼켰다.
그리고 동시에 밀려든 압박감… 그 감각이 너무나도 아찔해 지아는 저도 모르게 신음하며 허리를 움직였다.
“하아….”
고개를 젖힌 지아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접니다, 문 실장.”
지석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지아는 강현을 바라봤다.
강현이 미간을 찌푸리자, 지아는 이내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잠깐만요!”
지아가 밀어내려 하자, 강현은 더욱 그녀를 세게 껴안았다.
“들어오라는 말 없었으니까 안 들어올 거야.”
“그래도 내려줘요.”
강현이 아무 말도 없이 쳐다만 보자, 지아가 그를 타박했다.
“강현 씨!”
그때였다. 문밖에서 지석의 목소리가 또 들려왔다.
“엄마 오셨어요.”
“네, 잠깐만요. 엄마래요. 엄마 오신다고 했잖아요.”
“아, 그랬지….”
그 말을 듣고 나서야 강현은 어쩔 수 없이 지아를 내려놨다.
지아는 대충 거울로 상태를 살피고는 얼른 문으로 다가가 문고리를 돌렸다.
“미안해요. 오래 기다렸죠?”
“아닙니다.”
“엄마는요?”
지석은 고개를 돌려 기순을 불렀다.
“엄마!”
기순이 두 손 무겁게 짐을 들고 쭈뼛쭈뼛 나타났고, 문틈으로 대기실을 들여다본 지석은 그제야 뒤돌아 셔츠 단추를 채우는 강현이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 옷 안 입고 뭘 한 거야?
지석이 강현을 찌릿 째려보고 있는 틈에 지아는 기순이 들고 있는 짐을 같이 들었다.
“뭘 또 이렇게 많이….”
“그냥 일하시는 분들도 같이 좀 드시라고 치킨 좀 튀겨왔지.”
“고마워, 엄마.”
“고맙긴… 우리 딸… 오늘 정말 예쁘네.”
기순이 지아를 보면서 금세 눈시울을 붉히고 있는데, 옷을 다 갖춰 입은 강현이 뒤늦게 대기실에서 나왔다.
“어머니.”
“어, 그래. 아이고, 멋있네.”
강현이 지아와 눈을 마주치며 미소 짓자, 기순은 두 사람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너무 잘 어울린다. 사진은 많이 찍었어?”
“아직요. 야외 촬영부터 한다고 했는데… 문 실장?”
“네, 이제 곧 이동하시면 됩니다.”
그 말에 눈치가 보인 기순은 얼른 치킨을 내려놓고 뒷걸음을 쳤다.
“그래, 그럼 얼른 찍어. 난 이만 갈 테니까.”
“엄마, 벌써?”
“벌써 가시게요?”
“그럼. 난 이것만 전해주려고 온 거야. 조심히 이동해. 나 그럼 갈게.”
“엄마!”
“나오지 마. 잘하고.”
기순이 서둘러 나가자, 옷을 갖춰 입은 지아와 강현은 더 따라가질 못하고, 지석이 곧바로 따라 나갔다.
“엄마!”
“넌 왜 나와?”
“이렇게 금방 안 가도 돼.”
“봤으면 됐어.”
“그래도 더 있다가 가지.”
“이동한다며? 그리고 가게에 아빠 혼자 있잖아. 엄마 신경 쓰지 말고, 넌 얼른 들어가.”
“그래도….”
“너 지금 일하는 중이잖아. 공과 사는 구분 잘해야 한다고 했지?”
“알아, 잘하고 있어.”
“그래, 엄마 갈게.”
기순은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니건만 서둘러 길을 떠났고, 지석은 속이 상해 한숨을 내쉬었다.
“왜 저렇게 눈치를 보는 거야… 속상하게….”
터덜터덜 다시 스튜디오로 들어가고 있는데,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 지석은 고개를 돌렸다.
“어?”
“야! 여기!”
그제야 지석의 눈에 하은이 들어왔다.
“어? 누나? 누나가 여긴 왜 왔어?”
“이 근처에서 촬영이 있었는데 시간이 좀 남아서….”
하은이 곁눈질로 스튜디오 안을 살피자, 지석은 그 시선을 따라 스튜디오 안을 바라봤다.
“뭘 그렇게 봐?”
“아니 그냥….”
“엄마 왔다 가셨는데….”
“엄마? 언제?”
“지금 막.”
“그래? 에이, 조금만 더 빨리 올걸….”
“빨리 와도 오래 못 봤어. 치킨만 두고 도망가듯이 가셨다니까.”
“또 그러셨어?”
“어.”
“난 엄마가 너무 죄인처럼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인데… 엄마 입장에서는 또… 우리가 강요할 건 아니지.”
“그렇긴 한데… 지아 씨랑 강현이한테 한 번 얘기는 해야겠어.”
“오늘은 아닌 거 알지?”
“당연하지.”
하은은 다시 주위를 둘러보며 슬쩍 물었다.
“그나저나 다른 촬영은 끝났어?”
“다른 촬영?”
“아니 뭐… 누구랑 같이 찍는다고 하지 않았나?”
“아… 약국?”
“어.”
“하나도 못 했어. 형 이제 나왔거든.”
“에? 뭐 하다?”
“몰라. 촬영 이제 시작해야 해서 빠듯해. 신혼여행도 길게 가서 그 일정 다 맞추려면… 후….”
“대신 너 입사 이래로 최장기 휴가 받는 거잖아. 너도 좋으면서 그런다.”
“그건 좋은데, 그 일정 맞추기까지가 지옥이라고.”
“원래 다 그런 거야. 들어가자.”
“이제 곧 이동해야 돼.”
“이동? 어디로?”
“야외 촬영 장소로.”
“그럼 약국은?”
“약국?”
“약국 사장들도 그 장소로 이동해?”
“아니. 이따 여기로 올 거야.”
“아, 그래?”
“어, 근데 그건 왜?”
“아니 그냥… 약국 사장들은 언제 온대?”
하은이 자꾸만 주변을 살피자, 지석은 수상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