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화
외전 3.
매력적이야
“죄송은 무슨. 몸은 좀 어떠냐?”
“다 나았어요. 걱정 끼쳐 드려서 죄송해요.”
“자꾸 죄송은 무슨. 차라도 한잔할까?”
“네, 제가….”
지아가 주방으로 가려고 하자, 차 회장이 막아섰다.
“아이고, 왜 직접 움직여? 내가 사람 다 데리고 왔는데.”
차 회장이 눈짓하자, 멀찍이 있던 비서실장이 주방에 있는 전문가에게 다가갔다.
그 모습을 확인한 차 회장은 지아를 보며 미소 지었다.
“계속 이렇게 서 있지 말고 소파에 앉을까?”
“네, 아버님.”
차 회장의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자, 강현은 그 모습을 보며 기가 막혀 입을 떡 벌렸다.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서 있는 강현을 보며 차 회장은 또 타박했다.
“뭐 해? 안 앉고?”
잠시 후, 식전 차와 과일이 차려지고, 차 회장은 지아가 먹는 걸 흡족하게 바라봤다.
“지내는데 부족한 건 없고?”
“네? 괜찮습니다.”
“어째 좀 마른 거 같은데, 강현이가 잘 안 해주든?”
지아는 ‘너무 잘해줘도 살이 빠져요.’라고 속으로 말하고는 미소를 지었다.
“아뇨. 잘해줘요.”
그때, 또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누구지?”
강현이 고개를 갸웃하는데, 차 회장이 그에게 턱짓했다.
“이제 오시나 보구나. 문 열어라.”
“누구요?”
“누구긴 사돈이지.”
“네?”
또 초인종 소리가 들리자, 강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인터폰을 확인했다.
모니터에 희숙과 건명이 보이자, 강현은 간단히 인사를 하고는 문을 열었다.
“아버지가 부르셨어요?”
“아니, 내가 여기 온다고 말했더니 사돈이 자기도 같이 가면 안 되냐고 하길래 그러자고 했다.”
“아버지도 참, 미리 말씀을 주시고….”
“네가 전화를 안 받았다니까 그러네.”
강현이 지아를 보며 난처한 표정을 짓는데, 현관 초인종이 울렸다.
이윽고 건명과 희숙이 양손 가득 지아가 좋아하는 음식을 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주고받다가 지아가 조금 배가 고프다는 말을 하자 건명과 희숙, 차 회장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차 회장은 비서실장한테 지시를 내리고도 답답한지 직접 주방에 가서 이리저리 고용인들을 참견하느라 바빴다.
희숙도 주방에 가서 집에서 가져온 음식을 냉장고에 정리하고 접시에 담아내느라 분주했다.
건명 또한 그런 희숙의 옆에 붙어 도울 일이 없나 찾으며 조금이라도 더 빨리 지아에게 밥을 먹이기 위해 밥상 차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내 자식 입에 들어갈 거니 다른 사람에게만 맡길 수가 없는 탓이었다.
그런 부모님들의 모습을 보고는 지아와 강현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
“이게 다 무슨 일이죠?”
“그러게… 나 때문에 오신 건 아니란 게 분명하네. 특히 아버지, 왜 저러시지?”
강현은 적응이 안 되는 차 회장의 행동을 신기한 듯 바라봤다.
그러다 뭐라도 도와야 하지 않나 싶어 지아와 함께 주방으로 가면 부모님들은 한마디씩 했다.
“여길 왜 들어와? 방에 들어가서 좀 쉬고 있어.”
“그래, 지아 데리고 들어가서 좀 쉬어라.”
“맞아, 차 서방. 지아 데리고 얼른 방으로 들어가.”
“그래, 넌 큰애 데리고 들어가라. 우리는 식전에 차나 한잔하시죠?”
“아, 좋죠.”
“네, 좋습니다.”
결국 방으로 쫓겨난 강현과 지아는 침대에 앉아 멀뚱멀뚱 서로를 쳐다보다가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이런 날도 다 있네?”
“그러게요.”
“좀 불길한데?”
“불길하다뇨?”
“매일 이러시진 않겠지?”
강현이 불안한 눈빛을 보내자, 지아도 덩달아 불안해졌다.
“설마요….”
“멀리 이사 갈까? 이러다가는 둘이 있는 시간 많이 없을 것 같은데?”
“강현 씨도 참….”
“가끔은 좋지만, 매번 이러면 곤란하잖아. 우리는….”
강현이 지아의 허리를 휘어 감더니 훅 끌어당겨 안았다.
“신혼인데 말이야.”
“강현 씨… 밖에 부모님 계시잖아요.”
강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지아를 더 세게 끌어안은 채 그녀의 목덜미에 입술을 붙였다.
“종일 이러고 싶다….”
“강현 씨, 밖에….”
지아가 밀어내자, 강현은 고개를 들어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갑작스럽게 밀려드는 그를 밀어내야 하지만, 지아는 어느새 또 힘이 풀린 채 그와 얽혀들었다.
진득하게 맞붙었던 입술이 떨어지자 강현은 아쉬움을 간직한 몇 번의 짧은 입맞춤을 지아에게 건넨 뒤에야 호흡을 정리했다.
그녀의 이마에 이마를 맞댄 채 거칠어진 호흡을 진정시키는데,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흥분이 원망스러웠다.
강현이 다시 그녀의 입술을 찾아 입술을 맞물리는데, 밖에서 차 회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와라.”
지아는 깜짝 놀라 강현을 밀어내고는 멍해졌다.
순간적으로 부모님과 함께 있다는 걸 잊은 탓이었다.
어떻게 잊을 수가 있지? 나 미쳤나 봐….
황당해하는 강현의 표정을 보고 지아가 기가 막혀 웃음을 터뜨리자, 갑자기 밀려나 벌러덩 드러누운 그도 웃음을 터뜨렸다.
“너무 한 거 아니야?”
“미안, 얼른 나가요.”
지아가 팔을 끌어당기자, 강현은 상체를 일으키며 그녀를 와락 껴안았다.
“지금 하고 싶다.”
“네?”
“안 해.”
“진짜 안 돼요.”
“걱정 마. 참고 있으니까.”
참는다면서, 강현은 말과 달리 미련을 뚝뚝 흘리며 다시 지아의 입술을 빨아당겼다.
겨우 참아내고 있는 그가 귀여워 지아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매력적이야.”
“뭐?”
“난 당신 이런 거 좋아요.”
“내 고통을 즐기는 거지? 취향 이상한 거 알아?”
“그런가?”
“부모님 가시면 당신 취향대로 놀자.”
“내 취향?”
“야하게 놀자고.”
“어머!”
강현은 지아의 입술에 입을 맞추고는 그녀를 일으켰다.
“나가자.”
그의 너스레에 민망해진 지아는 그를 찌릿 째려봤지만, 입꼬리는 씰룩였다.
강현은 그런 그녀의 볼을 꼬집으며 미소 지었다.
“좋구나?”
“강현 씨! 그만 놀려요.”
“싫은데?”
강현이 손목을 끌어당기자, 지아는 못 이긴 척 그를 따라 방을 나섰다.
* * *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진수성찬을 받은 지아는 평소 식사량보다 더 먹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있었다.
식사할 때 차 회장이 너무 빤히 쳐다보며 챙겨줘서 지아는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였다.
식사 끝나고 디저트를 먹을 때도 차 회장은 지아만 쳐다보며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 강현이가 처복이 있지. 어디 가서 저를 이렇게 아껴주는 예쁜 처를 만나겠습니까?”
너무 대 놓고 칭찬을 하는 차 회장의 말에 지아는 민망해 어색한 미소를 지었고, 강현은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딸이 칭찬을 받으니 건명과 희숙은 당연히 기분이 좋아 미소가 절로 입꼬리에 걸렸고.
“우리 지아도 남편 복이 있는 거죠. 어디 가서 우리 차 서방 같은 남편을 만나요.”
“예쁘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도 감사드려요.”
“그나저나 얼른 결혼을 시켜야 할 텐데, 언제가 좋을 것 같습니까? 큰애 호적도 잘 정리가 됐으니 이제 식을 올려도 되지 않겠습니까?”
“아, 염려해 주신 덕분에 정리가 잘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집행유예로 끝나 얼마나 다행입니까.”
“염려해 주신 덕분이죠. 정말 반성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지아를 정식으로 호적에 데리고 온 날… 그날은 정말 두 발 뻗고 잤습니다. 모두 회장님과 차 서방 덕분입니다.”
“아이고, 당연히 도와야지요. 그리고 회장이라뇨? 제가 어디 사돈한테도 회장입니까? 사돈이라고 불러주십시오.”
“네, 사돈.”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차 회장은 강현과 지아에게 물었다.
“두 사람, 결혼식은 어떻게 할지 생각은 하고 있는 거지?”
“지아랑 상의해 보겠습니다.”
“그래. 상의해 보고 얼른 합쳐. 그래야 아이도 빨리 갖지. 한번 잘못된 적이 있으니 더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아 관리사랑 주치의한테는 각별히 신경 쓰라고는 일러뒀다.”
건명과 희숙은 몰랐던 사실에 눈을 키웠다.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지아와 강현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엄마, 아빠, 그러니까….”
“너 언제… 왜 엄마한테 말을 안 했어?”
“너무 초기여서….”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말실수를 한 것 같자, 차 회장은 이마를 짚었다.
“죄송합니다. 내가 괜한 얘기를 꺼냈군요.”
“넌 나중에 말해.”
희숙은 속상한 마음에 가슴을 쳤고, 건명 또한 말이 줄어들었다.
애매하게 만남을 마무리하고 차 회장이 자리를 떠나자, 희숙과 건명은 집에 남아 지아에게 그동안의 얘기를 들었다.
“왜 말을 안 했어?”
“걱정할까 봐….”
“지아야, 나 네 엄마야. 너 진짜 이럴 거야? 그 힘든 걸 혼자 다… 얼마나 힘들었어, 이것아.”
희숙이 눈물짓자, 지아는 그녀를 껴안았다.
“엄마, 미안… 난 엄마랑 아빠가 슬퍼할까 봐… 내가 생각이 짧았어.”
“아이고, 딱한 것… 미안해.”
“엄마가 왜 미안해….”
“내가 그때 오죽했으면 네가 말을 안 했겠어….”
“엄마, 아니야….”
“지아야.”
“응.”
“나, 네 엄마야. 그것만 잊지 마. 네가 생모를 찾았지만… 그래도 넌 내 딸이야. 알지?”
“그럼….”
“그래, 내 딸… 엄마가 미안해… 혼자 감당하게 해서 미안해….”
“엄마….”
지아가 희숙과 껴안고 우는 모습을 보며, 강현은 건명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나도 죄인이네. 아빠가 오죽했으면 저것이 말을 안 했겠어… 누구 하나 지아한테 잘못 안 한 사람이 없구만… 앞으로 잘해. 나도 잘할 테니까. 잘하자고. 우리.”
건명이 어깨를 토닥여주자, 강현은 입술을 깨물었다.
“감사합니다. 아버님. 잘하겠습니다.”
“그래, 그래.”
잠시 후, 희숙과 건명을 배웅하고, 집으로 들어선 강현은 지아를 와락 껴안았다.
지아는 아무 말 없이 안아주는 강현의 등을 쓰다듬었다.
“당신 마음 알아요.”
“미안해….”
“우린 얼마나 서로한테 더 미안해야 할까요?”
강현은 고개를 뒤로 물러 지아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잘할게.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게 만들어줄 거야.”
“나도. 당신 행복하게 해줄게요. 우리 꼭 행복해요.”
“고마워.”
“고마워요.”
강현은 지아를 껴안은 채, 그녀의 정수리에 입을 맞췄다.
“사랑해.”
“사랑해요.”
지아는 강현의 품에 더 파고들었다. 따뜻하고 믿음직한 그의 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