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제가 할게요.
대기실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카메라를 보고 놀라 입을 떡 벌렸다.
“이게 뭐야? 거기서 카메라가 왜 나와?”
“뭐긴 뭐예요. 이거 라이브로 다 나갔다고요!”
“뭐?”
“누나 개인방송 구독자 100만 돌파 기념 라이브 몰카 하려고 카메라 켜놓고 옷 갈아입으러 갔는데… 이 사람들이 저 붙잡고 못 들어가게 해서… 이 사람들 진짜 뭐예요?”
매니저는 곧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문밖에 있는 채영의 경호원들을 가리키며 원망했다.
“저 사람들이 저 꼼짝도 못하게 잡았다고요. 휴대전화도 여기 놔두고 갔는데… 날 왜 잡아? 이거 방송 다 나갔는데 어떡할 거예요? 누나, 막 이상한 소리 들리던데… 누나가 한 거 아니죠? 이상한 말 한 거 아니죠? 갑자기 이 사람들은 왜 들어왔대요? 아, 이거 어떡해요? 다 망했어요. 으아….”
속사포로 서러움을 털어낸 매니저는 이내 눈물을 흘렸고, 하은은 그를 토닥였다.
“야, 울지 마. 나 아무 말도 안 했어.”
“진짜요? 누나 진짜 그러면 안 돼요.”
“뭐가 그러면 안 돼. 네가 걱정할 일 없어. 난 없는데… 근데 쟤넨 어쩌냐?”
하은은 병현과 인형, 채영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쩌니?”
그 순간, 병현은 분노에 휩싸인 채 부글거리며 인형과 채영을 째려봤고, 그녀들도 절망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이게 다 생방송으로 나가다니… 이게 다?
병현도, 채영도, 인형도, 서로 분노의 포효를 했다.
역시나 이하은의 라이브 몰카는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다음 날부터 병현을 조롱하는 영상들이 여러 개 올라오기 시작했고, 채영의 발언으로 인해 그는 마약 사건으로 경찰의 수사망에 들었다.
경옥도 숨겨준 혐의로 조사를 받기 시작했고, 병현의 접대 사실까지 알려져 이 또한 조사가 시작되었다.
이것저것 조사를 할 때마다 여기서 펑! 저기서 펑! 죄가 밝혀진다고 해서, 병현은 시한폭탄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채영과 인형은 다른 남자의 애를 임신한 여자로 낙인이 찍혀 사회 활동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채영은 집안에서 내쳐졌고, 인형은 연예계에서 내쳐지게 되었다.
동영상이 워낙 유명해지자, 지석은 강현에게도 영상을 보여주고는 고개를 저었다.
“진짜 최악 아닙니까?”
“하은 누나는 어떻게 됐어?”
“누나는 전에 있던 시애틀 스캔들부터 오해 싹 벗겨지고, 걸크러쉬 소리 들으며 인기 더 올랐죠, 뭐.”
“다행이네.”
“본부장님도 시애틀 때 억울했던 거 사람들이 알게 돼서 얼마나 다행이에요.”
“난 뭐….”
“사모님이 사람들한테 말 안 들어도 되잖아요.”
“아, 그건 그렇네. 좋은 거네.”
강현이 그제야 미소를 짓자, 지석도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모로 혼자 자폭을 해서 고마울 따름입니다.”
“그러게. 우리가 손을 안 써도 이경옥도 같이 조사를 받게 됐으니 그것도 잘됐고.”
“그러니까요. 오늘은 축하주를 한 잔할까요?”
“아니. 지아 만나기로 했어.”
“그럼 우리 가게에서 한 잔?”
“아니. 지아가 집으로 온대.”
강현의 말에 김이 팍 샌 지석은 입을 삐쭉였다.
“아… 그래서 기분이 좋으셨군요?”
“그럼, 나 먼저 간다.”
강현이 재킷을 들고, 집무실을 쌩하니 나가자, 혼자 남은 지석은 절로 노래를 흥얼거렸다.
“내 님은 어디에 있나, 토성에 있나, 목성에 있나, 금성에 있나… 수성에 있나….”
* * *
“아악!”
아들의 죄를 감싸줬다는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나온 경옥은 성질을 못 이겨 호텔 방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놨다.
물건을 집어 던지고, 부수고, 깨뜨리고, 경옥은 성질을 있는 대로 부리고는 강 실장을 노려봤다.
“어떻게 할 거야?”
“방법 찾고 있습니다.”
병현이 구속 수사를 받고 있는 것에 충격을 받은 경옥은 차 회장을 찾아가 사정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더 분노한 경옥은 종일 강 실장을 괴롭히고 있었다.
“아니야, 내가 이럴 때가 아니야.”
경옥이 갑자기 외출 준비를 하자, 강 실장은 깜짝 놀랐다.
“어딜 가시려고요?”
“이대로 당할 수는 없잖아.”
“뭘 어쩌시려고요?”
“어쩌긴, 이렇게 바보같이 당하고만 있진 않을 거야. 나 이경옥이야. 감히 날 물로 봐? 내가 이대로 당할 거 같아?”
“도대체 어디를 가시려고요?”
“이게 다 그놈 때문이야. 내 인생 꼬인 것도, 우리 병현이가 이렇게 된 것도, 다 그놈 때문이라고. 그것만 없었어도… 그것만 없었어도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어. 이 모든 원흉은 그놈 때문이야.”
“자꾸 어딜 간다는 겁니까?”
강 실장이 붙잡자, 경옥은 거칠게 뿌리치며 이를 바득 갈았다.
“이거 놔. 강 실장도 죽고 싶어?”
강 실장이 잡은 손에 힘을 풀자, 경옥은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밖으로 나갔다.
* * *
지아가 꽃집을 다 정리하고 문을 나가려는 순간, 기순이 꽃집 문을 열었다.
“지금 나가려고요?”
“네, 사장님.”
음식 그릇을 들고 들어온 기순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지아에게 그릇을 내밀었다.
“강현이한테 간다면서요?”
“이게 다 뭐예요?”
“아… 먹을 거 좀 했어요.”
지아는 뚜껑을 열어보고는 깜짝 놀랐다.
“이거 갈비찜이잖아요?”
“갈비 안 좋아해요?”
“갈비 좋아하죠.”
“굽는 거는 번거로울 거 같아서 데워먹기 좋으라고 찜으로 했는데….”
“저, 이거 주시는 거예요?”
“그럼, 주려고 가져왔지. 가져가서 강현이랑 먹어요.”
“이렇게 번번이 얻어먹기만 해서 어떡해요?”
“뭘 어떡해? 강현이가 내 자식 같고, 또… 꽃집 사장도 내 딸 같으니까, 주는 건데.”
“매번 정말 감사해요.”
“에이, 감사는 무슨. 오늘 강현이 보고 저녁 먹으러 오라고 하려 했는데 꽃집 사장이랑 저녁 먹기로 했다더라고.”
“아, 네….”
“집에서 밥 먹는다는 얘기 듣고, 얼른 만들었지.”
기순의 말에 지아는 화들짝 놀랐다.
“네? 저희 때문에 만드신 거예요?”
지아가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자, 기순은 손사래를 쳤다.
“아니, 어차피 저녁때 먹을 건데 조금 더 빨리 만든 거, 뿐이에요. 가져가서 먹어요.”
“감사합니다, 진짜.”
“그럼, 난 갈게요.”
기순은 언제나처럼 음식만 전해주고는 얼른 꽃집을 나섰다.
어릴 때 그렇게 갈비가 먹고 싶다는 거, 제대로 해준 적이 없는데….
기순은 지아에게 갈비찜을 쥐여주고 나오며 혼자 또 눈물을 훔쳤다.
한편, 갈비찜만 주고 나간 기순의 뒷모습을 보며 지아는 미안함에 입을 삐쭉였다.
“나 진짜 이렇게 계속 받아도 되나….”
* * *
차고에 주차를 한 강현은 지아와 통화를 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거의 다 왔다며? 어디쯤이야?”
- 저 안 보여요?
차 불빛이 보이자, 강현의 입꼬리에 미소가 걸렸다.
“보이네.”
곧 지아의 차가 강현의 앞에 멈춰서고, 두 사람은 전화를 끊었다.
강현이 지아의 창문을 똑똑 두드렸다.
창문이 내려가고, 지아의 얼굴이 보이자, 강현이 고개를 기울였다.
“빨리 왔네?”
“강현 씨도 빨리 왔네요?”
“응, 내가 주차해 줄까?”
“아니, 내가 할 수 있어요. 조금만 기다려요. 빨리하고 나올게요.”
“같이 갈까?”
“뭘요, 이 앞인데….”
지아는 입꼬리를 씰룩이고는 창문을 닫고 차고로 들어갔다.
잠시 후, 주차를 하고 차에서 갈비찜을 들고 나온 지아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강현을 발견했다.
들뜬 마음으로 그를 향해 걸어가는데, 그때였다.
갑자기 불빛이 환하게 비치더니 차가 강현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강현이 눈이 부셔 눈을 가리는데, 직감적으로 위험을 감지한 지아가 주저 없이 그를 향해 몸을 던졌다.
“안 돼요, 강현 씨!”
끼익- 쿵!
지아가 들고 있던 갈비찜 냄비가 바닥에 나뒹굴고, 바닥에 쓰러진 강현이 몸을 일으켰다.
“지아야!”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반대편에 쓰러진 지아를 발견한 강현은 혼비백산이 되어 그녀에게 달려갔다.
“지아야!”
지아는 피를 철철 흘린 채 기절해 있었고, 그녀를 친 차는 강현의 집 담벼락을 박고 연기가 나고 있었다.
“지아야! 지아야!”
아무리 불러도 깨어나지 않는 지아를 부르며 강현은 절규했다.
* * *
“뭐? 사고?”
“어, 형은 멀쩡한데, 사모님이….”
“거기가 어디야?”
지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기순은 앞치마를 풀어 던졌다.
“거기가 어디냐고?”
“성문병원….”
“얼른 앞장서. 너 지금 가려는 거 아니었어?”
“어, 가야지.”
지석이 멍하자, 기순은 재촉했다.
“뭐 하는 거야, 빨리 안 가고.”
잠시 후, 성문병원에 도착한 기순은 정신이 반쯤 나간 채로 지아가 수술을 받고 있는 수술실 앞으로 달려갔다.
“어디야? 어디?”
“어머니….”
강현이 아는 척을 했지만, 기순은 그를 지나쳐 수술실 문 앞에 서, 오열했다.
“어쩌다 그랬어. 어쩌다….”
기순은 강현을 찾아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괜찮은 거야? 어?”
“그게….”
강현이 말을 잇지 못하자, 기순은 망연자실한 채 자리에 주저앉자 눈물을 흘렸다.
“다 내 죄야. 내 죄. 내가 다 잘못해서 이렇게 된 거야. 다.”
지석은 기순의 행동을 이해 못 한 채 고개를 갸웃했고, 그때 희숙과 건명이 수술실 앞으로 달려왔다.
“우리 지아! 지아야!”
희숙은 이미 거의 실신 직전의 상태였고, 건명이 겨우 부축하고 있었다.
건명도 제정신이 아닌 채 강현을 찾았다.
“우리 지아. 누가 우리 지아를… 누가!”
모두가 지아를 걱정하며 오열하고 있는데, 수술실에서 간호사가 나왔다.
“환자분 출혈이 너무 심해서 그런데, 환자분과 같은 혈액인 가족분 계실까요? 혹시 몰라 혈액을 미리 확보를 해야 할 거 같거든요.”
그 순간, 기순이 손을 번쩍 들었다.
“저요. 제가 혈액형 같아요. 제 피 가져가세요. 제가 할게요.”
“환자분과 어떻게 되시죠?”
“엄마예요, 엄마. 내 새끼 살려주세요. 내 새끼….”
“네, 환자분 어머니께서는 저를 따라오세요.”
기순이 자리를 떠나자, 수술실 앞에 있던 가족들 모두 놀라 강현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