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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밤보다 더한 짓-80화 (79/94)

80화

오빠 왔다.

“이게 뭐죠?”

“차 본부장님께서 특별히 주문하셨습니다. 좋아하시는 음료라고 하셔서요.”

웨이터가 테이블에 내려놓은 건, 과일음료 두 잔이었다.

하나는 복숭아 음료, 하나는 파인애플 음료.

병희는 눈치껏 웨이터가 내려주는 대로 먹으려고 했는데, 그가 멈칫했다.

“복숭아와 파인애플 중 어떤 알레르기가 있으신 건지 알려주시겠습니까?”

“네?”

“둘 중 하나는 알레르기가 있으시다고 들어서요. 하나는 좋아하시는 음료고, 하나는 알레르기가 있는 음료라고, 조심하라고 하셨는데… 어떤 음료를 드리면 될까요?”

“네? 그게….”

병희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지아한테 갑각류 알레르기 말고 또 있었나? 뭐지?

병희는 일기장 속 내용을 떠올리려고 노력했다.

“뭐지? 뭐지?”

이거 지금 테스트하는 건가?

그럼 나 이거 맞혀야 하는 거잖아.

손톱을 연신 깨물던 병희는 어쩔 수 없이 치한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당장 일기장 뒤져봐.”

- 뭘?

“지아한테 갑각류 알레르기 말고 또 뭐 있었어?”

- 나야, 모르지.

“복숭아랑 파인애플 중 어떤 건데?”

- 난 모른다고!

“아빠 딸이었잖아. 그것도 몰라?”

- 넌? 넌 걔 동생이었는데 그것도 몰라?

“나 지금 아빠랑 말장난할 시간 없거든? 그럼 빨리 일기장이라도 뒤져서 찾아내, 얼른. 거기에는 있을 수도 있잖아.”

- 알았어. 기다려 봐.

강현이 자리로 돌아올까 봐 병희는 불안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통화를 이어갔다.

“찾았어?”

- 아직.

“아빠, 빨리 좀.”

- 알았어. 도대체 무슨 알레르기가 또 있다는 거야.

“일기장에 없어?”

- 없는 거 같은데….

“좀 더 뒤져봐. 샅샅이.”

한편,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강현은 지석에게 전화했다.

“일기장. 그거랑 같이 그놈도 잡아 와.”

할 말을 전달하고 전화를 끊은 강현은 병희에게 말을 걸며 다가갔다.

“왜 안 마시고?”

“네?”

강현은 병희의 앞에 앉아 과일음료를 권했다.

“마셔.”

“제가 배가 불러서요.”

“그래도 맛은 봐야지. 좋아하는 거잖아.”

“오빠도 먹어요.”

“너 먼저 먹어.”

“그래도 오빠 먼저….”

“난 오랜만에 네가 맛있게 먹는 거 보고 싶은데?”

“그래도….”

“얼른.”

병희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건 분명 테스트야. 어떡하지?’

병희는 고민, 고민 끝에 파인애플 음료를 택했다.

그리고 강현의 눈치를 살피는데 그의 표정이 좋자 병희는 속을 쓸어내렸다.

“내가 좋아하는 음료도 기억하고… 오빠, 진짜 대단한 거 같아요.”

“먹어.”

“네….”

병희는 파인애플 음료를 한 모금 마시고, 빤히 쳐다보고 있는 강현에게 복숭아 음료를 밀어 넣었다.

“오빠도 마셔요.”

“그래. 파인애플은 맛있고?”

“네, 맛있어요. 오빠도 마셔요.”

강현이 복숭아 음료를 한 모금 마시자, 병희는 티 안 나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복숭아는 맛있어요?”

“어.”

강현이 미소를 짓자, 병희도 따라 미소를 지었다.

그때, 강현의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문자메시지를 확인한 강현은 고개를 들어 병희를 바라봤다.

“시간 되나?”

“시간이요?”

“같이 가고 싶은 곳이 있는데….”

“어디요?”

강현이 어디인지 말하지도 않았는데 병희는 벌써부터 기대감에 눈을 반짝였다.

* * *

“지아야.”

“어? 아빠?”

“엄마도 왔다.”

“엄마.”

건명과 희숙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지아는 하던 일을 멈추고 다가갔다.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에요?”

“네 엄마가 갑자기 네가 보고 싶다고 해서 왔지.”

“엄마, 잘 왔어.”

지아가 희숙의 팔짱을 끼고 생글 웃는데, 그때 도어벨이 울리며 강현이 들어왔다.

강현의 등장에 지아는 건명의 눈치부터 살폈다.

“강현 씨….”

강현은 건명과 희숙에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하고는 문밖을 바라봤다.

“들어와.”

이때, 병희가 쭈뼛거리며 들어오자, 지아는 깜짝 놀라 눈을 키웠다.

“네가….”

지아가 아는 척을 할까 봐 병희는 눈치를 줬다.

강현의 눈치를 보면서 아는 척을 하지 말라고 입 모양을 하는 병희를 보며 지아는 갸웃했다.

이때, 병희가 지아에게 다가갔다.

“사장님, 저 예쁜 꽃 좀 추천해 주세요.”

지아를 끌고 구석으로 간 병희는 그녀를 협박했다.

“나 아는 척하기만 해.”

“……?”

“아는 척하지 말라고. 알았지?”

지아에게 경고를 하고 병희는 강현에게 다가갔다.

“오빠, 어떤 꽃을 사려고요?”

이때, 희숙이 강현을 불렀다.

“차 서방!”

“네, 장모님.”

“이 사람은 누구… 어? 전에 가게 왔던 우리 지아 친구 아니에요?”

그 소리를 듣고, 병희는 깜짝 놀라 눈을 키웠다.

차 서방? 장모님? 지아?

병희가 놀란 눈으로 강현을 쳐다보는데, 그가 어깨를 으쓱이며 지아를 끌어와 어깨를 감쌌다.

“내 와이프.”

“네?”

“지아야, 이 여자가 자꾸 자기가 지아라는데… 어떻게 생각해?”

“네?”

지아가 놀란 눈으로 바라보자, 병희는 그보다 더 놀란 눈으로, 아니 공포에 질린 눈으로 바라봤다.

“이게 무슨….”

“어머님, 어머님께서 말씀하셨던 그 협박하는 여자가 이 여자입니다.”

“당신 말했어?”

“어? 어. 왜? 차 서방도 우리 식구인데 알아야지.”

“물론입니다. 장모님. 아버님, 저 지아 남편입니다. 알아야죠.”

“남편이라니?”

“왜 차 서방한테 그래? 지금 이 얘기 할 때야? 저 여자라잖아. 우리 협박한 사람이.”

희숙이 병희를 가리키자, 건명이 죽일 듯 그녀를 노려봤다.

“우리 지아 협박한 사람이… 댁이요?”

건명은 지아를 바라봤다.

“이 여자 맞아?”

지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건명과 희숙이 병희에게 다가갔다.

“어디 내 앞에서 협박해 보지?”

“맞아. 나한테 얘기해. 나랑 얘기하자고.”

병희는 어떻게 해야 하나 도망을 치려고 뒷걸음을 치는데,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꽃집 앞을 막았다.

남자들을 보고 병희가 겁을 집어먹자, 그걸 보며 강현은 비웃었다.

“어딜 나가? 물어보는 거에 대답을 해야지.”

“네? 그게….”

“지아야. 얘 누구야?”

“저 그게….”

지아가 말하기를 불편해하는 것 같자, 강현이 휴대전화를 들었다.

“문 실장, 들어와.”

곧 지석이 들어오자 강현은 병희를 바라보며 명령했다.

“문 실장, 얘가 누군지 읊어봐.”

“네, 이름 임병희. 사모님이 어릴 때 입양됐던 집안의 친딸로 나이는 사모님보다 두 살 어립니다. 어릴 때 가출을 해서 소년원과 교도소를 들락날락하다가, 얼마 전 출소를 했습니다.”

“외국에 가 있었다더니… 외국에 있는 감방에 다녀왔나?”

강현이 비웃자, 병희는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 이게 뭐 하는 거예요? 당신들 깡패야?”

“어머, 누가 누구더러 깡패래? 당신이야말로 깡패지. 어디 협박이야? 안 그런가, 차 서방?”

“네, 그럼요. 장모님.”

강현과 희숙을 보며, 병희는 비웃었다.

“장모님 좋아하네. 내가 싹 다 신고할 거야. 너네들 다 신고할 거야.”

강현이 지석을 바라봤다.

“문 실장, 데리고 들어와.”

“네, 알겠습니다.”

지석이 전화를 한 통 하자 꽃집으로 정장을 입은 남자와 그 뒤로 남녀 직원이 따라 들어왔다.

남자와 그 무리는 강현에게 정중히 인사를 한 후, 주위를 둘러보고는 건명과 희숙에게 다가갔다.

남자가 명함을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변호사 민해갈입니다.”

얼결에 명함을 받아든 건명은 강현을 바라봤다,

“이게 뭔가?”

“오늘부터 아버님 변호를 맡을 변호사입니다.”

강현이 눈짓하자, 민 변호사는 자세를 더 단정히 하고 건명에게 인사했다.

“상황은 들었습니다. 믿고 맡겨주십시오.”

“아버님, 민 변호사가 지금부터 설명을….”

강현이 설명하는데, 건명이 말을 막아섰다.

“됐네. 내가 알아서 해. 자네가 뭔데 내 일에 끼어들…”

그 순간, 희숙이 건명의 옆구리를 퍽 쳤다.

“윽!”

“지금 장난해요? 우리 차 서방이 우리 위해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당신 지금… 나 쳤어?”

“더 맞기 전에 조용히 해요. 이 변호사님이 얼마나 유명한 사람인지 몰라요? 이럴 때는 고맙다고 해야지. 끼어들지 말라니? 기가 막혀서!”

건명에게 경고를 날린 희숙은 강현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차 서방, 고마워. 역시 자네밖에 없어.”

“별말씀을요.”

상황이 정리가 된 거 같자, 민 변호사는 건명을 바라봤다.

“그럼 나가서 저랑 좀 얘기하실까요?”

“네?”

건명이 망설이자, 희숙이 얼른 그의 팔짱을 꼈다.

“네, 나가서 얘기하죠.”

희숙이 건명을 끌고 민 변호사의 무리와 함께 나가자, 지아는 어안이 벙벙해 강현을 바라봤다.

“이게 다 뭐예요?”

강현은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귀에 속삭였다.

“권지아.”

“……?”

지아는 놀란 눈으로 강현을 바라봤다.

권지아라니? 권 씨라고 아는 사람은 영지와 영준 오빠 말고 모르는데… 설마….

“설마… 어떻게….”

“언제까지 날 못 알아볼 작정이야? 첫사랑이라며?”

“……?”

“오빠 왔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내가 너 지켜준다고 했던 말 기억하지?”

“…오빠요?”

“그래, 권지아. 잘 봐. 오빠가 너 어떻게 지키는지.”

지아는 믿기지 않아 놀란 눈으로 강현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강현은 가볍게 미소를 지은 뒤, 지아의 허리를 더 세게 당겨 안고 병희를 바라봤다.

“넌 어떻게 할까?”

“나쁜 놈… 날 속여? 신고할 거야.”

강현은 가소롭다는 듯 웃으며, 지석을 향해 고갯짓을 했다.

“그거 가져와.”

“네.”

지석은 곧 지아의 일기장을 들고나왔다.

일기장을 본 순간, 병희의 눈은 튀어나올 듯 커졌고, 지아 또한 놀랐다.

“이건….”

강현은 지석에게 일기장을 받아들고는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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