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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밤보다 더한 짓-73화 (72/94)

73화

당신 한정

희숙은 건명을 보며 입을 삐쭉였고, 강현은 제 할 말을 이어갔다.

“아버님 어머님이 그 어떤 남자를 지아 짝으로 구해 오신다고 해도, 저보다 지아 사랑할 남자는 못 구해오실 겁니다. 저보다 지아한테 잘해줄 남자도 없고, 아껴줄 남자도 없습니다.”

강현의 너무나도 당당한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건명은 기가 막혔다.

“이건 자신감이 아니라 거만한 거 아닌가? 또 제 잘난 맛에 내 딸을 얼마나 힘들게 하려고. 어디 내놔도 자랑스러운 내 딸이네. 자네 말고도 좋다는 놈 줄을 설 거라고. 어디서 건방을 떨어?”

건명이 무섭게 호통을 쳤지만, 강현은 평정심을 유지한 채 차분히 답했다.

“물론 지아 좋다는 남자들이야 많겠죠. 하지만 이건 자신합니다. 제가 지아 제일 사랑합니다. 제일 잘해 줄 거고, 제일 아껴줄 겁니다. 그건 누구도 저 못 이깁니다.”

강현의 오글거리는 멘트에 건명은 뭐 씹은 표정을 지었고, 희숙은 두 손을 모으고 눈에 하트를 그렸다.

아이고 우리 사위!

강현과 희숙이 눈을 마주치고 티 안 나게 미소를 짓고 있는데, 건명은 기가 막혀 발을 굴렀다.

“허! 아나 똥이다.”

“또… 똥… 뭐, 뭐라고요?”

희숙은 건명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믿을 수가 없다는 듯 눈을 껌뻑였고, 이미 그 말을 전에 들어봤던 강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도 망한 건가?

방에서 옷을 챙겨 나온 건명은 화를 내며 밖으로 나갔고, 그가 나가자, 바짝 긴장을 하고 있었던 강현은 고개를 떨궜다.

하… 망했네.

그때, 희숙의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차 서방!”

“……?”

“이리 와. 이리 와서 밥 먹고 가.”

“네?”

“내가 자네한테 얼마나 밥을 해주고 싶었는데 이제 와? 얼른 이리로 와서 밥 먹고 가. 아, 얼른!”

희숙이 손짓하자, 강현은 반색하며 씩씩하게 답했다.

“네, 장모님.”

희숙은 강현의 장모님 소리가 듣기 좋아 광대가 절로 올라간 채 분주하게 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 * *

- 돈은? 나, 오래 못 기다려.

마치 돈을 맡겨놓은 것처럼 말하는 병희의 전화에 지아는 분노했다.

어떻게 하면 건명과 희숙이 처벌을 안 받을 수 있을지 백방으로 알아보는 중이었다.

좀처럼 긍정적인 답변이 나오지 않아 초조한데, 이렇게 돈 재촉까지 받으니 지아는 머리가 아파 왔다.

“기다려.”

- 너 나 참을성 없는 거 알지? 시간 많이 못 줘.

“내가 너한테 돈을 못 주겠다면? 우릴 신고해서 너한테 남는 건 뭐지?”

- 재미있잖아.

“뭐?”

- 기억 안 나? 넌 내 장난감으로 우리 집에 온 거였어. 너 괴롭히는 재미에 살았는데, 오랜만에 괴롭히니까 재미있다, 야. 옛날 생각도 나고.

지아는 입술을 짓깨물며 주먹을 꽉 쥐었다.

“돈 구하고 있으니까 기다려.”

-허튼수작은 안 부리는 게 좋아. 알지? 수작 부리는 순간, 네 부모도 너도 바로 신고할 테니까 그렇게 알아.

통화를 끝낸 지아는 한숨을 크게 내쉬고 고개를 들었다.

근데 그 순간, 그녀의 눈에 건명이 들어왔다.

“아… 아빠.”

너무 놀란 나머지 말까지 더듬은 지아는 입술을 깨문 채 눈동자를 분주하게 굴렸다.

건명이 통화내용을 들었나 싶어 눈치를 살폈다.

내가 무슨 말을 했지? 뭐라고 했더라?

내용을 유추할 수 있는 말을 했나 싶어 통화 내용을 머릿속으로 더듬고 있는데 건명이 입을 열었다.

“우릴 신고한다니? 돈을 구하고 있으니 기다리라니? 이게 다 무슨 소리야?”

건명이 통화내용을 정확히 들었다는 사실에 지아는 절망했다.

지아가 아무 말도 못 하고 핑계를 생각하는 것 같자, 건명은 그녀를 닦달했다.

“무슨 소리냐니까?”

강현에 대한 지아의 생각을 진지하게 들으려고 온 거였는데, 또 다른 문제가 건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 * *

“애들 어떻게 할 거예요?”

“뭘 어떻게 해?”

“차 회장님이 보낸 거 보고도 그렇게 말하기예요. 뭘 그렇게 많이 보냈는지….”

희숙은 차 회장의 갑작스러운 선물 공세에 놀랐지만, 건명은 그걸 보고 고개를 저었다.

사실 건명은 차 회장의 만나자는 제안을 거절했었다.

지아와 강현의 관계도 아직 불투명한데 부모들이 먼저 만나는 건 아닌 것 같다며.

아무래도 전과는 다른 건명의 목소리, 분위기를 차 회장이 눈치챈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바로 선물을 보내다니….

건명은 혀를 끌끌 찼다.

“그걸 다 받았어?”

“그럼 돌려보내요? 그렇게까지 하는 건 아니지.”

“돈이면 다 되는 줄 아는 거지… 차 회장님한테도 실망이야.”

“실망은 무슨… 당신은 모르겠지만, 나도 그 집에 많이 보냈어요.”

“뭐야?”

“물론 오늘 차 회장님이 보내준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때만 되면 보냈다고요. 그게 돈 자랑하는 게 아니라 내 자식 잘 봐달라고. 예뻐해달라고 보내는 거죠.”

“당신은 그딴 걸 뭐 하러 보내? 그럼 그런 거까지 받고도 내 딸을 구박했다는 거야? 그놈은 고맙다는 전화 한 통을 한 번 안 했고?”

“당신도 참….”

희숙은 또 괜히 말을 꺼냈나 싶어 입을 닫았다.

그렇게 서로 등을 돌리고 잠을 청하려는데, 건명이 자꾸 뒤척이는 게 느껴지자 희숙이 물었다.

“왜 잠을 못 자고 그래요? 아까부터 한숨만 푹푹 쉬고. 당신이 걱정 안 해도 애들 잘 살 거예요. 차 서방 좀 믿어봐요.”

“그게 아니야….”

“그게 아니라고요? 그럼 뭐 때문에 못 자고 그러는데요?”

“그게….”

건명에게서 지아와 있었던 일을 들은 희숙은 놀라서 상체를 일으켰다.

“어떡해요?”

“방법을 찾아봐야지.”

“아니 뭐 그런 애가 다 있어요? 양심이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 지아가 그 집에서 많이 힘들었겠더라고.”

“이렇게 당해야 하는 거예요? 그 나쁜 사람들 우리는 신고할 수 없냐고요.”

“그래봤자 진흙탕 싸움이고 우리한테도 남는 건 없어. 당신하고 나한테도 죄가 없는 건 아니니까.”

“…….”

“지금이라도 은서 호적 정리하고 지아를 정식으로 입양하는 방법을 알아보자고.”

은서의 호적을 정리하자는 말에 희숙은 시선을 내린 채 입을 꾹 닫았다.

“왜 말이 없어?”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은서를 정말 호적에서까지 정리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니 희숙은 마음이 저렸다.

하지만 언제까지 붙들고 있을 수는 없으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래야지.”

건명은 희숙을 품에 안고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그래….”

건명의 품에 안겨 있던 희숙은 어쩐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의 품에서 벗어났다.

“생각할수록 화가 나네.”

“……?”

“그 집구석 어디예요? 내가 만나서 담판을 지을까?”

“뭐… 언젠가는 만나야 하지 않겠어?”

“우리 딸 불쌍해서 어떡해… 그래서 지아는 어쩌고 있어요?”

“그놈이 왔길래 그냥 나왔어.”

“그놈? 차 서방이요?”

“그럼 누구겠어?”

퉁명스럽게 말하는 건명을 희숙은 찌릿 째려보고는 꼬집었다.

“그놈이 뭐예요? 차 서방한테!”

“……?”

“남의 집 귀한 자식한테 이놈, 저놈 하는 거 아니에요. 내 딸 귀하면 남의 자식도 귀한 거라면서요? 당신이 그 시어머니랑 뭐가 달라요?”

“음!”

살짝 찔린 건명이 멋쩍게 헛기침을 하자, 희숙은 이때다 싶어 엄하게 경고했다.

“한 번만 더 차 서방한테 이놈 해요! 나도 당신한테 이놈이라고 할 거야.”

“뭐, 뭐야? 이게 무슨 억지야?”

“당신도 억지 부리잖아요. 그러니까 하지 말라고요.”

“알았어!”

건명에게 약속을 받아내고 나서야 희숙은 한숨을 푹 내쉬고 다시 걱정을 떠안았다.

“우리 차 서방이 이거 알까요?”

“말 못 하지. 차 서방은 지아가 입양아라는 것부터 모르는데….”

“그래도 차 서방이라면 이해하고 해결해주지 않을까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괜히 지아 책잡히게 하지 말고 우리 선에서 해결해. 말하더라도 해결하고 말해야지.”

“그래도….”

“말하지 말라면 말하지 마.”

“알겠어요….”

밤이 깊어갈수록 건명과 희숙의 한숨이 깊어만 갔다.

* * *

지아가 통화를 끝내자, 강현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무슨 얘기길래 그렇게 심각하게 얘기해?”

희숙은 지아에게 전화해 강현에게 솔직히 말하고 도움을 청하는 건 어떻겠냐고 말했다.

지아는 생각해 보겠다고 했지만, 쉽게 입이 떨어지진 않았다.

지아의 표정이 좋지 못하자, 강현은 지아를 제 무릎에 앉혔다.

“무슨 일인지 말해 봐. 내가 다 해결해 줄 테니까.”

“뭔 줄 알고요?”

“다 말해.”

“나보다 당장 당신 문제부터 해결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뭐?”

“오늘 잘난 척하다가 아빠가 결국 화내면서 나갔다면서요?”

“들었어?”

“잘난 척이 다 뭐예요? 무슨 잘난 척?”

“사실을 말한 건데, 잘난 척으로 들으셨나 봐.”

“네, 잘난 척이라던데요? 그리고 무릎까지 꿇었어요? 당신이?”

“뭐… 그랬지.”

강현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지아는 어느새 입을 삐쭉이며, 그의 무릎을 쓰다듬었다.

“속상해… 이 비싼 무릎까지 꿇었는데… 다리 안 저렸어요?”

지아가 염려해 주자, 강현은 일부러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엄살을 부렸다.

“내 걱정하는 건가?”

“그럼요. 다리 안 저렸어요?”

“저렸지.”

“얼마나 오래 있었는데?”

“일어나란 말도 안 하시더라고.”

“진짜?”

그런데 그 순간, 강현의 손이 점점 지아의 셔츠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지아가 움찔거리자, 강현은 피식 웃으며 그녀의 브래지어 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

지아는 뒤늦게 그를 밀어냈지만, 강현은 딱 붙어서 떨어질 생각을 안 했다.

“강현 씨….”

“계속 걱정해 줘.”

“응?”

“계속 걱정해 달라고.”

“못살아.”

“얼른. 당신이 걱정해 주니까 좋네. 무릎 까짓거 매일 꿇을까?”

“그렇게 가벼운 무릎이었어요?”

“당신 한정.”

그 순간, 강현이 가슴 끝을 쥐고 괴롭히자, 지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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